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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 * *

       

       소련

       

       

       예카테린부르크 공방전은 패배했다.

       

       철저하게 완전히, 백군 반동들에게 패배했다.

       

       빌어먹을 체코군단 놈들이 기어이 저쪽에 붙어 버렸다.

       

       살아 돌아온 붉은 군대의 보고에 따르면 황녀가 직접 싸웠다지만, 그게 말이 되나.

       

       중요한 건, 한 줌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예카테린부르크 점령에 실패했다는 것. 탈환하지 못하고 여전히 백군 반동들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황녀가 무사하다는 것.

       

       

       “젠장. 이 망할 황녀가, 그 어린 계집이 기어이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하려는 모양이오.”

       “노동자를 위한 각종 개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장에 시행 가능한 것을 미리 하면서 나머지는 내전 후에 전시체제를 푼 이후 전부 시행하겠다고 합니다.”

       “그걸 믿는다는 말인가?!”

       

       

       다급해진 레닌은 기어이 대노하였다.

       

       왜? 소련이 계획했던 개혁들을 내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황녀는 진행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원래 레닌이 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 미꾸라지처럼 살아남은 황녀가 혁명을 다 망쳐 버리고 있다.

       

       이 지경이 된다면 처음 황녀를 죽이지 못한 것도 뒤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황녀가 직접 인민들 앞에서 호소하며 설득하고 귀족들을 앞세웠다고 합니다.”

       “그게 그 어린 황녀 머리에 나온 것이겠소? 귀족들이 황녀를 앞세워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해 임시미봉책을 하려는 것이 분명하오.”

       “듣자 하니 우리 적군과 싸우는 앞에서도 황녀가 직접 나섰다고.”

       “동지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고작해야 온실 속 화초로 살던 계집이오. 뭘 알겠소? 소문은 과장일 것이오.”

       “그것과 별개로 반동들의 합류로 예카테린부르크가 더 견고해졌습니다. 지금의 붉은 군대로서는 뚫을 방법이 없습니다.”

       

       

       피해를 보면 그래도 예카테린부르크라는 벽을 허물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쪽은 붉은 군대만 죽어 나가고 원성이나 듣는 처지지만, 예카테린부르크는 더 많은 반동이 합류하고 있었다.

       

       여기에 남러시아까지 아나스타샤와 연계하려고 하니 레닌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끄응.”

       “게다가 유럽에는 이미 우리가 차르일가를 처형한 사실이 퍼졌습니다. 차르 앞에서 황후와 황녀를 강간하고 시간까지 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된 건지 연속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계획이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퍼지면서-”

       “그걸 막지 못하고 뭘 하고 있던 것이오?”

       

       

       레닌은 소련의 붉은 노동자의 깃발처럼 얼굴에 붉게 달아올랐다.

       

       이 정도라면 저 제국주의 열강들이 전쟁을 잠시 접어둘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인민들이 황녀의 정책에 현혹되고 있습니다.”

       

       

       소련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정책들을 황녀가 똑같이 하고 있다.

       

       예카테린부르크의 황녀를 혁명의 적으로 규정해놓고, 황녀를 따라할 수도 없다.

       

       일부 개혁이 뒤로 미뤄지는 것은 볼셰비키 때문이라면서 책임을 떠넘겨 소련에 대한 반감도 키우고 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콜차크의 백군마저 이제 예카테린부르크에 합류하는 상황.

       

       차라리 황녀가 꽁지 빠지게 블라디보스토크로 튀기라도 했다면 이걸 이용했으련만, 황녀는 예카테린부르크에 딱 알박고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기껏 자리 잡은 노동자의 나라가 초반부터 흔들리기에 충분했다.

       

       무능한 차르일가였으나, 로마노프 왕조라는 거목을 이제 막 태어난 소련은 쉽게 쳐 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 * *

       

       

       1차 세계대전은 원래 역사와 달리 크게 비틀어졌다.

       

       러시아에 투하해 버린 레닌이 차르일가를 잔혹하게 살해한 것을 알게 된 독일제국의 카이저(황제) 빌헬름 2세는 전쟁을 말아먹은 군부와 융커(독일 귀족)들 탓에 독일 황실도 같은 꼴을 당할까 두려워했다.

       

       심지어 저들 볼셰비키는 열강들을 붉게 물들인다 했으니, 가장 먼저 어디가 되겠나. 필시 자기들 영토를 뜯어간 독일이 1순위가 되리라.

       

       발등에 불 떨어진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최악의 경우에는 네덜란드나 영국으로 망명할 가능성도 두고 영국과 물밑으로 협상했다.

       

       

       “영국의 해상우위권도 인정하겠소. 다시는 함대에 얼씬도 하지 않지. 우리 카이저께서 원한다면 알자스 로렌의 영유권도 포기한다 하셨소. 그러니 이 끔찍한 전쟁을 멈추고 저 빨갱이들부터 뿌리뽑읍시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다 잡은 전쟁인데, 으음.”

       

       

       런던에 파견된 독일 밀사는 영국의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를 만나 최대한 저자세로 협상을 진행했다.

       

       

       “대영제국은 의회가 있어도 일단 군주국이 아니오. 그러지 말고 발트 3국과 우크라이나 등의 이권을 영국에 넘길 테니 어떻게 안 되겠소? 우리 카이저께서는 예카테린부르크 임시정부를 지원하길 원하오.”

       “프랑스를 설득하려면 식민지도 내놓으셔야.”

       “내놓겠소. 애초에 발단이 어디였소? 가증스러운 세르비아놈들이 아니오? 그놈들 때문에 우리가 붉게 물들어야 하오?”

       “카이저께서 어지간히도 급하신 모양이군. 좋소. 우리도 해협 하나를 두고 공산국가를 두고 싶지 않으니.”

       

       

       영국 내부에서도 말은 많았다.

       

       이참에 독일제국을 짓밟아야 한다는 대독일강경파와 독일이 주는 이권과 식민지 이권을 받고 적당히 족쇄를 채운 다음, 붉은 역병부터 뿌리 뽑고, 이후 독일의 행보를 지켜보자는 온건파의 마찰.

       

       어쨌든 동맹국이. 그것도 한때 그레이트게임이라는 세계를 두고 다툰 국가가 붉게 물들어 버린 것을 본 영국도 유럽에 파견된 갱생한?빨갱이들이 퍼트린 소련의 계획을 듣고 내심 고심이 컸다.

       

       무엇보다 그 전유럽에 퍼지는 붉은 역병에 대한 공포만큼, 러시아 혁명을 지켜본 각국 공산주의자들도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으니까.

       

       

       “아니, 글쎄. 그놈들은 감히 대영제국에서 그런 짓은 못 저지를 거라니까 그러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이 아닌가! 브리튼 섬에 사회주의자가 늘어나는 건 안 보이시오? 독일의 카이저가 저리 굽히고 나온 이상, 우리가 우세를 점한 강화요!”

       “프랑스는 어쩌고요?”

       “식민지 좀 나눠주면 되겠지. 급한 건 저 혁명의 불길을 끄는 것이오.”

       

       

       

       그러나.

       

       

       “그, 공산주의자가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하나 남은 아나스타샤가 불쌍하네. 당숙으로서 좀 도와주고 싶은데.”

       

       

       이종사촌인 니콜라이 2세와 같은 꼴을 당하기 싫었던 대영제국의 국왕 조지 5세가 온건파의 손을 들어 주면서 영국은 독일과 단독 밀약을 맺었다.

       

       당연히 동맹국이 단독으로 독일과 밀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프랑스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날뛰었다.

       

       

       “독일과 강화하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그렇다고 지금 저 사탄 놈들을 가만히 놔두고 독일부터 밟자는 말입니까? 프랑스가 독일에 복수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기껏 독일을 때려잡은 후에 붉은 역병이 창궐하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강화하자는 게 아닙니다. 휴전을 하자는 거지.”

       “하, 우릴 바보로 아는군. 독일이 그 빨갱이놈들에게서 뜯어낸 이권을 영국에 전부 내준다고 한 것을 우리 프랑스가 모를 줄 아시오?”

       

       

       말이 좋아 휴전이지 당장 지금 만 해도 미국 덕에 승기를 뒤집었는데. 휴전하는 기간 동안 독일이 없는 힘을 쥐어짜서라도 공격해오면 어쩌나.

       

       독일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는 어떻게든 이참에 독일을 최대한 짓밟고 싶었다.

       

       보불전쟁의 복수도 있지만, 독일의 군대는 그야말로 전쟁을 위해 태어난 군대였다.

       

       그 강력한 군대를 기회가 될 때 밟아야만 했다.

       

       

       “크흠, 이건 전쟁 당사국의 문제가 아닙니다. 카이저마저 저놈들에게 죽어 버리면 다음 저 사탄 놈들은 우리 대영제국 국왕 폐하 마저 노릴 수 있습니다. 왕 멱을 딴 귀국이야 그런 건 알 바 아니겠지만. 우리 처지도 좀 생각해주시오. 막말로 우리가 아니었으면 프랑스는 진즉 독일군의 군홧발에 짓밟혔을 것이 아니오?”

       “이 작자들이! 그럼. 미국. 미국은 어떻게.”

       “저들의 군대를 제한하여 다시는 침략전쟁을 벌이지 못하게 하고, 붉은 위협에 맞설 방파제로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미국도 재판도 없이 차르일가를 끔찍하게 살해하고, 심지어 저런 야만인들이 자기들의 세상을 붉게 물들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도무지 들어 줄 수 없었다.

       

       이 이상 전쟁이 지속되면 유럽이 아닌 대서양을 넘어 저들에게 동조할 사회주의자가 늘어날 것은 눈을 보듯 훤했다.

       

       애초에 미국은 독일 공작원이 일으킨 테러와 루시타니아호 사건, 치머만 전보사건 등으로 반독 감정이 커져 참전한 거지만, 원래 우드로 윌슨 대통령 등, 당대 미국의 수뇌부는 중립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제 독일도 좀 두들겨 패고, 우위점도 정한 마당에, 붉은 역병이라는 불안한 씨앗을 안에 품고 전쟁을 계속 치를 순 없었다.

       

       더군다나 아나스타샤에 의해 갱생?된 볼셰비키가 여기저기 퍼트린 차르일가 처형이야기와 열강을 붉게 물들이겠다는 소련의 야망은 반전주의자, 사회주의자 같은 이들에게는 희망을 주어 그들 세력이 더 불어나게 하였다.

       

       이들이 독일을 거의 다 두들겨 잡은 영미를 주춤하게 하였다.

       

       이쯤에서 독일이 저만큼 굴복하고 나오면 끝내는 것이 맞았다.

       

       여기에 영국마저 독일과 단독강화를 맺은 이상, 독일의 사죄와 배상을 받는 조건이라면 미국도 받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벨기에 같은 저지대 국가의 의견은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이 배신자들이! 저 독일이 벨기에에서 벌인 짓을 잊으신 겁니까?”

       “콩고에서 손목 수집 열심히 하신 그 벨기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소만. 살아남았으면 되는 일 아니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적당히 해체합시다. 헝가리는 독립시키고 보스니아 정도는 세르비아에 줘도 되겠지요. 이탈리아에는 남티롤을 떼줍시다.”

       “저들 볼셰비키가 거품 무는 것이 군주정 제국주의국가인 만큼 오스트리아 제국은 찢을 때 찢더라도 군주정은 유지해야 하오.”

       

       

       이쯤, 영국의 유럽 전략은 새롭게 바뀌었다.

       

       어차피 전쟁의 승기는 이쪽이 유리하고, 독일의 그 카이저가 마침내 굴복하고 영국의 우위를 인정했다.

       

       본디 대영제국은 유럽의 균형을 맞추는 수호자.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저 붉은 역병이라는 또 다른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하여 영국의 선택은 저 붉은 역병에 위협이 될. 독일과 오스트리아 오스만 모두 군주제, 제국이란 타이틀은 유지해주는 것.

       

       물론 배상금은 뜯어낼 만큼 뜯어내야겠지만.

       

       여기에 오스만 제국도 국채는 보존하면서 최대한 뜯어낼 건 뜯어내려 했다.

       

       

       “오스만에서만큼은 절대 양보 못하오. 절대로!”

       

       

       다만, 프랑스는 오스만에서라도 어떻게든 해 먹고 싶어 하면서 게거품을 물었다.

       

       오스만은 원 역사대로 해체될 예정이었고, 그나마 술탄국으로 유지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동맹국에 대한 처분은 끝났다.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독일은 최대한 족쇄를 채우고, 그리고 전쟁의 원인이 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적당히 찢어서 제국의 국채는 보존해주는 쪽으로, 오스만은 아주 살을 쪽쪽 찢듯이 해체한다.

       

       

       “그럼, 이제 아나스타샤 황녀를 지원할 방법을 모색해봅시다. 우리 측 정보원에 의하면 황녀는 일본을 믿지 못 하는 눈치요. 이렇게 되면 독일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전쟁이 끝나면 잉여물자가 많이 남으니 그것도 넘기면 되겠죠. 독일이 전쟁 생각을 못 하게 무기를 전부 그쪽으로 보내게 합시다.”

       

       

       당연히 이러한 열강의 움직임은 한참 한반도를 집어삼키고 유럽 열강들과 대등하게 대전쟁에 참전해서 한참 국뽕이 물오른 일본이 모를 리 없었다.

       

       

       “저희 대일본제국은 대영제국의 동맹국으로서 언제든 시베리아로 출병할 용의가-”

       “아, 괜찮소. 일본에게는 독일과의 강화협상에서 충분히 보상을 남겨둘 터이니, 이제 일본은 푹~쉬시오.”

       

       

       물론 원 역사와 달리 아나스타샤가 백군의 구심점이 되면서, 일본의 지원을 부정적으로 보는데다가, 독일이 아나스타샤 황녀를 지원한다 했으니. 원 역사와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 시베리아로 갈 좋은 기회인데!”

       “전쟁 좀 작작하자! 일러 전쟁 때, 우리 아들이 죽었다! 유럽의 전쟁에 휘말린 것도 그런데, 또?”

       “너 사상이 의심되는데? 너 빨갱이지? 대일본제국의 황국 신민이 그런 말을 할 리 없어! 이번 전쟁 덕에 우리 일본이 얼마나 호황을 맞이했는데!”

       “뭔 개소리야!”

       

       

       일본에서는 시베리아를 갈 기회를 놓쳐 탄식도 했지만, 일본도 일단은 천황이 다스리는 제국이었다.

       

       당연히 차르일가의 처형소식이나 제국을 무너트릴 붉은 혁명에 관한 계획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내부에서 슬금슬금 퍼지는 붉은 역병을 경계해야만 했다.

       

       1차 세계대전은 그렇게 실제 역사와 다르게 흘러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스톨리핀: 러시아 제국의 총리 및 내무부 장관. 농업 개혁으로 제국의 부흥을 꾀했으나, 이는 혁명세력과 제국 귀족세력의 반발을 불러왔고, 끝내 좌익 혁명가의 암살로 죽었다.

    치머만 전보 사건: 독일의 외무장관 아르투어 치머만이 독일이 미국과의 전쟁을 대비해 미국에게 빼앗긴 지역을 되찾아주겠다며, 멕시코에게 참전을 요구한 밀지를 보냈다. 영국이 중간에 가로채 미국에 알렸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옆동네?에서 동시 연재될 예정입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tmi: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조지 5세와 고종사촌 지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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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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