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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그래서요?”

       

       “네?”

       

       “도대체 왜 이렇게 따라오시는 건지 궁금한데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일정 거리를 두고 멀리서 쫓아오는 금발 히로인. 이름이 아마···아멜리아였나?

       

       창쟁이라 그런가 쭉쭉 뻗어나가는 각선미가 눈에 띄었다.

       

       어쩐지 패배감이 엄습했다.

       

       뭔가 남자였을 무렵의 나보다 키가 더 큰 것 같은데.

       

       ···아니, 내가 작았던 게 아니라 저 녀석이 큰 거야!

       

       

       “친구가 되고 싶어서요.”

       

       “···친구? 아멜리아 양과 제가?”

       

       “네, 네에. 안될까요?”

       

       

       친구, 친구라.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기.

       

       대화도 나눠보지 못한 같은 반 학생이 친구가 되자며 찾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좋아요!”

       

       “저, 정말인가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당연히 수락해야지!

       

       

       [독자님이 친구를···! 심지어 히로인 후보! 세상에.]

       

       

       작가님이 잔뜩 놀라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욱 감탄해라!

       

       나에게 친구가 생기는 기념비적인 날이니!

       

       하, 물론 내가 원래 살던 곳에서 친구가 없는 아싸찐따는 아니었지만 말이야.

       

       아카데미에서 친구 하나 없이 생활해야 하나, 걱정하던 무렵에 무려 히로인 후보가!

       

       직접! 내게!

       

       친구가 되자고 찾아오다니. 기쁘다.

       

       

       “네에, 물론이죠. 저는 다가오는 분들을 거절하지 않는답니다.”

       

       “그럼, 말 편하게 해도···될까?”

       

       “그럼요. 아, 저는 이게 편하니 신경 쓰지 마세요.”

       

       “으, 응. 알았어.”

       

       

       싱글벙글.

       

       방실방실.

       

       아마 지금 내 얼굴을 표현하자면 그런 단어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지 않을까?

       

       

       “아르테는 들어가고 싶은 동아리, 생각해둔 거 있어?”

       

       “동아리, 말씀이신가요?”

       

       “응. 치, 친구니까. 조금 궁금해서.”

       

       

       ···으응. 그런데 아멜리아의 몸짓이 조금 뻣뻣하다.

       

       긴장한 건가? 왜?

       

       설마···?

       

       

       “아멜리아 양, 긴장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읏?!”

       

       “원래 친구와의 첫 대화는 긴장되는 법이랍니다.”

       

       

       그래, 친구와 처음 이야기 하는 건 언제나 긴장되는 법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풀어지기 마련.

       

       그러니 아멜리아가 긴장하지 않게끔 긴장을 풀어주도록 하자.

       

       어디였더라.

       

       인터넷에서 숨을 고르면 긴장이 풀린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자아, 숨을 들이마시고···.”

       

       “흐, 흐으읍···.”

       

       “내쉬고.”

       

       “후으으으···.”

       

       

       ···호흡곤란이 먼저 오게 생겼는데?

       

       전혀 긴장이 풀리지 않잖아!

       

       역시 인터넷은 쓰레기야.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네.

       

       

       “어쩔 수 없네요. 너무 긴장하신 것 같으니, 대화는 다음 기회에.”

       

       

       아멜리아는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나?

       

       외모가 약간 아가씨 스타일이긴 한데···.

       

       나중에 작가님에게 물어봐야지.

       

       

       “도, 동아리는, 어디로···?”

       

       “하하, 생각보다 고집 있으신 분이네요.”

       

       

       아멜리아를 공원의 벤치에 앉히고 자리를 떠나려던 찰나, 그녀의 말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잔뜩 긴장한 상황에서도 물어보는 게 내 동아리 여부라니.

       

       아멜리아 양은 정말로 나와 친해지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어쩌지.

       

       나는 생각하고 있는 동아리 활동 같은 거 없는데?

       

       어쩔 수 없다. 여기서는 진실을 이야기할 수밖에.

       

       

       “유시우 군이 어떤 동아리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다르겠네요.”

       

       “뭐, 뭐?! 잠깐만! 더 이야기를···.”

       

       “그럼, 수업에 늦지 않게 오세요!”

       

       

       나랑 같이 있어서 긴장하고 있었으니까, 금방 나아지겠지.

       

       충분히 그녀와 거리가 벌어졌다고 판단한 뒤, 작가님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작가님.”

       

       [네?]

       

       “아멜리아 양은, 친구가 없었나요?”

       

       [모르는데요. 아직 안정해졌어요.]

       

       “···네?”

       

       

       이게 무슨 소리야.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아···?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황당해하고 있자,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작가님이 내게 질문했다.

       

       

       [아, 혹시 독자님은 제가 등장인물을 전부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에요?”

       

       [전혀 아닌데요?]

       

       

       점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여태껏 작가님의 행동거지로 보았을 때 당연히 등장인물을 전부 직접 만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으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 슈뢰딩거···뭐더라. 그거 아세요?]

       

       “슈뢰딩거의 고양이 말씀이신가요?”

       

       [네, 그거.]

       

       

       작가님이 예시를 들기 위해 꺼낸 예제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였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 속 고양이는, 누군가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 죽어있는 상태와 살아있는 상태가 중첩되어있다는 논리 실험이다.

       

       근데 그게 왜 여기서 나오는 건데?

       

       

       [으음, 대충 내용은 알고 계실 테니 생략하고···. 그 사고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관찰자거든요.]

       

       “관찰자···.”

       

       [관찰자가 없으면 상자 속의 고양이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수 없어요. 영원히 고양이는 중첩된 상태로 있어야만 하죠.]

       

       “그게 작가님이 아멜리아의 과거를 모르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데요?”

       

       [저는 독자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한 존재가 아니에요. 제가 완벽했다면, 독자님을 내려보내지 않고 유시우 군의 시점으로 바라보면서 소설을 쓰면 그만이거든요?]

       

       “···아.”

       

       

       그래, 그랬다.

       

       작가님의 소설은 유시우 시점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작가님은 유시우의 마음을 읽기는커녕,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몰라 내게 스토킹을 지시했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그러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멜리아 양의 과거는 아직 관측되지 않은 상태에요.]

       

       “즉, 그녀의 과거는 텅 빈 상태다···?”

       

       [정확해요. 저는 비어있는 상자를 제가 원하는 대로 덧씌울 뿐이죠.]

       

       

       개사기잖아.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막혔다.

       

       

       [다만, 이미 관측해버린 걸 바꿔버릴 수는 없어요. 그래서 만능은 아니죠.]

       

       “아, 설마 제 능력을 바꿔주지 않는 이유도···.”

       

       [헤헤, 들켜버렸네···. 이미 제가 그걸로 정해버려서요.]

       

       

       처음부터 그냥 못 바꾼다고 말할 것이지.

       

       안 바꿔준다고 생떼 부리던 게 아니라, 못 바꿔주는 거였어?

       

       

       [아직 아멜리아 양의 과거는 관측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르는 거에요.]

       

       “···한번 정해지면, 영원히 바꿀 수 없고?”

       

       [그렇네요. 사소한 건 어떻게든 바꾸겠지만, 큰 줄기는 조금···.]

       

       

       그래, 대충 이해했다.

       

       작가님이 창조신은 아니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사기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없는 걸 창조하기는 쉽지만, 있는 걸 없애기는 힘들다.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편할 것 같네요.]

       

       “그런데, 그러면 관측자는 누구인가요?”

       

       [당연히 독자님이죠? 말했잖아요. 독자님의 시야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힘들다고.]

       

       “그거, 저는 모르고 있었는데···?”

       

       [말 안 했으니까 당연하죠?]

       

       

       미친년아,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아무런 언질도 없이 맡기면 어떡해?!

       

       ···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렀다.

       

       

       [그럼 아멜리아 양의 설정은 왕따였다는 걸로 할까요?]

       

       “아뇨, 친구는 여러 명 있었지만 정말로 마음에 두는 친구는 없었다는 걸로 해주세요. 언젠가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설정으로···.”

       

       [네입, 받들었습니다~]

       

       

       아, 잠깐만.

       

       나도 모르게 아멜리아와 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내뱉어버렸다.

       

       미안, 아멜리아···!

       

       

       [좋아요, 독자님. 대충 이해하신 것 같으니, 동아리로 넘어갑시다. ···어떤 동아리가 좋을까요?]

       

       

       작가님의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어차피 작가님이 한번 설정한 건 바꾸기 힘들댔잖아.

       

       내가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면 되는 것뿐이야.

       

       그걸 위해서 우선 동아리를 정해야 한다.

       

       

       “탐험, 같은 건 어떨까요.”

       

       [탐험이요?]

       

       “네. 비밀의 방을 찾아야 한다는 전개로 진행되어야 하니까···. 쉽게 연관될 만한 건 그런 쪽이겠죠.”

       

       [음, 나쁘지 않네요. 그럼 탐험 동아리로?]

       

       “외부로 나갈 때도 허가받기 쉬울 테니까요. 괜찮지 않을까요?”

       

       [좋아요!]

       

       

       ···그런데 잠깐, 갑자기 든 의문이 있었다.

       

       작가님의 능력은 대충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의문이 들었다.

       

       

       “작가님.”

       

       [네?]

       

       “만약 설정 오류가 생기면 어떻게 되나요?”

       

       

       그래, 설정 오류.

       

       사람인 이상 설정 오류가 생기지 않을 수는 없다.

       

       설마 설정 오류가 생기면 세계가 멸망한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글쎄요. 좋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설정 오류 없이 소설을 완결 낼 수 있다고요?”

       

       [아뇨? 제가 있는 설정을 비트는 게 힘들다고 했지, 불가능하다고 한 건 아니거든요?]

       

       “아.”

       

       [조오금 많이 힘들지만···. 억지로 비틀어 볼 수는 있어요.]

       

       

       그렇구나.

       

       순간 지구가 멸망하는 무서운 상상을 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방금 질문은 그렇다고 대답해주길 바라고 있었는데.

       

       설정 오류는 없어도 되는 거잖아···.

       

       

       [그리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 독자님이 있는 거에요. 오류가 생기면, 그걸 저 대신 해결해주셔야 하니까요?]

       

       “···네에, 알고 있답니다.”

       

       

       작가님과의 대화로 깨달은 것 세 가지.

       

       첫째, 나의 까딱하면 치녀가 되어버리는 이 능력은 바꿀 수 없다. 이미 그렇게 정해졌으니까. 젠장.

       

       둘째, 나 때문에 아멜리아는 정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한 친구가 없는, 얕고 넓은 인간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셋째, 만약 작가님이 똥을 싸면 나는 그걸 치워야 한다.

       

       첫 번째와 세 번째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언젠가 한번 작가님 캐릭터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 해야할것 같아서 설명하는 화를 짜보았습니다.

    작가님 캐릭터의 능력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 즉 양자역학적인 부분에서 따왔어요.

    어려우니 제가 설명하기는 힘들구요.

    그냥 작가님 캐릭터의 말을 인용해서요. 없는 걸 창조하기는 쉽지만, 있는 걸 없애기는 힘들다. 이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증거로 지금까지 작가님 캐릭터는 원하는 물건을 생성해냈지만, 있는 물건을 없애지는 않았어요.

    아무튼 생성된 비밀의 방, 클레어 선생님의 설정, 갑자기 튀어나온 마수, 없었다가 생겨난 아르테의 학생 데이터.

    모두 생성되긴 했지만 작가님이 지우지는 않았죠. 지우지 못하니까요.

    관측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바꿔버릴 수 있지만, 그 순간 그쪽 관련된 설정이 관측되어버리기 때문에 이후에는 쉽게 건드릴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겠네요.

    물론 아예 건드리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매우 힘들 뿐!

    아르테가 없으면 세상을 바라보기 힘든것도 여기서 따와서 그래요.

    관찰자가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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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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