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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침울한 회색빛 하늘 아래, 임시로 설치된 컨테이너 하우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재민 캠프 위로 섬세한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막을 피해서 도망쳐 온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것처럼 부드럽게 감싸 안는 비.

    강서구 이재민 캠프는 며칠째 내리는 비로 천천히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빗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촉감으로 내리는 비였지만, 그것이 며칠이나 계속 이어지니 캠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조용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구름의 장막으로 어두운 캠프 내부를 비추는 가로등은 빗물에 축 젖어 든 길거리를 신비롭고 반짝이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런 이재민 캠프에 커다란 문신투성이 여자와 작은 소녀가 들어서고 있었다.

    크기가 안 맞는 작은 우의를 뒤집어쓴 장신의 여자는 이슬처럼 흩날리는 빗물을 손바닥에 모아서 관찰하고 있었다.

    홀린 것처럼 계속.

    “언니?”

    빗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여자는 여동생이 부르는 소리 깜짝 놀라더니, 손바닥에 모인 빗물을 바닥에 버렸다.

    그리곤 잎사귀 하나를 꺼내더니 질겅질겅 씹으면서 동생에게도 입 속에 잎사귀를 하나 들이밀었다.

    “이거 엄청 쓴데?”

    여동생은 잎사귀가 어지간히 쓴지, 미간을 있는 힘껏 좁히면서 투정을 부렸다.

    “그래도 홀리기 싫으면 계속 씹어. 삼키지는 말고.”

    “그래서 뭔가 알아낸 거야?”

    “그래, 이번에도 예상대로야. 서울에만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가 있을 텐데, 모르겠군.”

    장신의 여자는 고개를 들어 은은하게 빛을 반사하며 멋진 풍광을 만드는 이슬비를 바라보았다.

    마치 보석을 뿌린 것처럼 반짝거리면서 가로등의 불빛을 반사하는 아스팔트는 분명 평범하지 않았다.

    직접 확인한 일기예보에는 당장이라도 비가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주고 있었지만, 확인해 보니 이 비는 절대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양천구 전체가 물에 수장될 때까지.

    빗방울을 쫓는 아이들.

    비에 젖어 신선한 향기를 풍기는 공기.

    축축한 공기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방수포 지붕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캠프는 아직은 평온한 분위기였다.

    이런 이슬비로는 사람들의 평온을 깨기는 힘들겠지.

    첨벙첨벙.

    발을 구르면 아스팔트에 고인 물이 조금 느껴졌다.

    대략 10mm.

    고작 이슬비로 물이 고이기 시작한 것이다.

    배수가 잘되는 이런 곳에서 이슬비로 물이 차오를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언니. 그럼 양천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마 일주일 정도 더 지나면 물이 눈에 띌 정도로 차오르겠지. 그때부터가 시작이야.”

    “그다음엔?”

    “그 뒤로는 계속 비가 올 거야. 그리고 지반이 내려앉을걸.”

    “그럼,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떡해? 막을 수는 없어?”

    “인간으로선 방법이 없어. 막을 수 없지. 이제 슬슬 돌아가자.”

    소녀는 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꾹 잡았다.

    그리고 소녀와 장신의 여자는 빗물 속에 운치 있게 잠겨가는 캠프를 떠났다.

    ***

    옴뇸뇸.

    품 안에 안긴 사신이가 푸딩을 먹는 것을 구경하다 보니, 푸딩을 얻기 위해서 좌충우돌했던 일들이 떠올라서 새삼 감개무량했다.

    전국의 푸딩을 찾아다니고, 푸딩 공장에까지 찾아가서 오브젝트들을 물리치기까지!

    지금은 머나먼 일처럼 느껴지는 푸딩 탈환 작전으로부터 무려 2주일이 지났다.

    다행히 하늘로 퍼져나간 푸딩들은 대부분 회수되었다.

    처음에는 비행기와 충돌하면 어쩌지?

    혹은 공중에서 방울이 터져서 사람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쩌지? 

    이런 걱정들을 했었는데, 별다른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우리 연구소에는 사신이만을 위한 특별한 시설이 만들어졌다. 

    푸딩을 생산하는 미니 주방!

    푸딩 공장에서 옮겨와서 격리실 내부에 설치한 것이다.

    덕분에 사신이는 격리실에 앉아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푸딩을 마음껏 집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조리모를 쓴 황금 사신이들이 미니 주방에서 꾸물꾸물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리모를 얌전히 벗어서 다른 황금 사신이에게 넘겨주었다.

    황금 사신이의 퇴근 시간이었다.

    조리실 노동의 대가는 푸딩!

    푸딩을 먹고 싶어 하는 황금 사신이들은 줄을 설 정도로 많아서 조리실의 불이 꺼지는 일은 없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암묵적인 규칙을 정한 것처럼 보였다.

    <일하지 않는 자, 푸딩을 먹을 수 없다.>

    무상 푸딩을 받는 것은 돼지처럼 누워서 푸딩을 먹는 회색 사신밖에 없었다.

    황금 사신이 기특해!

    일하지 않고 푸딩을 먹느라 빵빵해진 사신이의 볼을 콕콕 찔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을 안 하고 있지는 않았네.

    조리실이 동작하게 하는 에너지원은 회색 사신이 넣어주고 있었다.

    마치 공장주인 같네.

    아무리 먹어도 날씬한 사신이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TV를 같이 봤다.

    [지금 양천구는 아직도 비가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겨우 시간당 0.1mm 내리는 비로 양천구는 물난리가 났습니다.]

    [벌써 발목까지 차오른 빗물에 사람들은 대피를 시작했습니다.]

    양천구는 멈추지 않는 이슬비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펌프로 빨아내도 수위가 줄어들지 않는 괴현상.

    강수량은 겨우 시간당 0.1mm.

    하지만 배수로로 빗물이 들어가지 않고 그저 계속 차오르기만 했다.

    1주일은 이상 기후로 치부했지만, 2주가 넘어가고 눈에 보일 정도로 물이 차오르자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건 오브젝트로 인한 일이 분명해!]

    강서구 사막화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이번에 또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저주받은 사람들’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던데.

    여러 가지로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푸딩을 한 입 떠서 먹으니, 역시 너무 맛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걸까?

    역시 오브젝트라서?

    하지만 슬프게도 이 푸딩의 칼로리는 상당히 무거워서 하루에 한 개만 먹고 있었다.

    나도 사신이처럼 푸딩을 걱정 없이 계속 먹고 싶네.

    괜히 심통이 나서 사신이의 뺨을 쿡쿡 찔렀다.

    ***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끝없는 하늘 아래, 커다란 보름달이 태양에 버금가는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밝은 달이었다.

    달의 은빛 광채가 빛이 닿는 모든 곳을 은은한 빛으로 물들이며 호수 표면에 미묘한 반짝임을 드리우고 있었다.

    달의 광채를 머금은 호수는 보석 가루를 흩뿌린 거울처럼 아름다운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달빛이 비치고 있는 호수는 정말로 맑고 투명해서, 달빛이 내리쬐는 것만으로도 그 바닥까지 살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렁이는 달빛이 호수 깊숙한 곳에 오로라 같은 멋진 빛의 커튼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 멋지고 고요한 호숫가에서 금발 소녀가 검은 요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저씨, 정말 멋지지 않아요? 낮에도 이 호수를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표정에 잠시 그림자를 드리운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제는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었다.

    “분명.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겁니다.”

    검은 요원은 담담한 어조로 사실을 말하듯이 대답했다.

    요원의 말을 들은 금발 소녀의 표정에서 슬픔은 구름이 갈라져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환한 미소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겠죠? 분명히.”

    히히, 하고 웃은 소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호수 표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심장의 인도.

    그것을 따라서 도착한 호수였다.

    오브젝트의 힘을 담은 그녀의 붉은 눈에는 호수 표면에 비치는 은빛 달이 파랗게만 보였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양천구를 집어삼킨 호수.

    그 호숫가에 서서, 소녀는 다음 심장의 인도를 기다렸다.

    태양 아래, 다시 설 수 있게 되는 날을 위해서.

    ***

    흥겨운 노랫소리가 세희 연구소 뒤뜰에 울려 퍼졌다. 

    “건배!”

    “건배!”

    늦은 밤이지만 직원들이 퇴근하지 않고 모여서 신나는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뒤뜰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이 파티의 목적을 드러냈다.

    <<경> 오브젝트 사용 면허 취득! <축>>

    <면허 취득 파티 전야제.>

    세희의 오브젝트 사용 면허 취득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이 파티의 주인공인 세희는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해롱거리면서 서아와 예린에게 시험공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계속 토로하고 있었다.

    황금 사신들은 즐거운 분위기에 취해서 음식들이 놓인 커다란 탁자 위에서 현란한 춤솜씨를 선보이면서 파티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겨우 자격증에 이 정도 난리라니.

    뭐, 요즘 세희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힘들어하긴 했었다.

    눈도 퀭하고, 피부도 어둡고, 머리카락도 엉망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광란의 파티가 겨우 ‘전야제’라는 것이었다.

    시험공부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일주일이나 연구소 전 직원 대상으로 유람선 숙박 파티를 하기로 할 정도였을까.

    “사신아~ 살려줘.”

    세희로부터 탈출해 온 예린이가 달라붙어 왔다.

    그리곤 핸드폰을 열어서 잔뜩 저장된 호수 사진들을 보여주며 기대감을 마구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신아. 기대되지? 요즘 유명한 양천구 호수로 간대!”

    세희가 예약한 유람선 파티의 장소는 요즘 화제인 관광지, 양천구 호수.

    TV에서 정말 환상적인 곳으로 묘사돼서 다들 가고 싶어 하던 곳이라, 직원 대부분이 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다.

    “호수 바닥을 바라보면 물에 잠긴 양천구가 그대로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던데, 궁금하지 않아?”

    양천구 호수는 양천구를 물속에 수장시키고 탄생한 거대한 호수였는데, 조금은 궁금했다.

    양천구 호수는 절대로 오염되지도 않고, 수장된 도시가 녹슬거나 더러워지지도 않는다던데.

    100% 오브젝트겠지.

    그것도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종류일 텐데, 인기 관광지 취급이라니. 

    아무래도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아무리 한국이 오브젝트를 대충 처리해도 오브젝트 호수를 겨우 3개월 만에 민간 공개라니.

    “사신이도 간이 격리실로 같이 가는 거니까. 정말 재미있을 거야!”

    정말 즐거운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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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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