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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본래 사람에게는 모두 반발심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따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기하고 질투하며 음해하는 이들도 많아지는 이유였다.

         

       어떻게 따지고보면 이번 회차의 아르헨 오르카도 그런 심리에 빠져들었던 셈이다.

         

       네가 그렇게 잘났다면, 어디 한번 증명해보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미하일 비스마르크 총통은 그것을 강력한 리더십과 확실한 보상으로 통제했다.

         

       자신을 따르면 그만큼의 보상을 받는다.

       자신을 등지면 저 밑바닥에 처박아버린다.

         

       잔혹하리만큼.

       처참하게.

         

       지난 황제가 그러했고, 끝까지 황제를 따르던 가신ㅡ 황제파들이 그러했으며, 수많은 전쟁영웅들이 그러했고, 겁없이 딴 생각을 품은 총통의 옛 인연들이 그러했다.

         

       아슈블랑카 역시 그것을 위해서 만들어진 시설이다.

         

       사회적 위치, 쌓아올렸던 지위, 인간 관계뿐만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마저 짓밟힌 끝에 처형당한다.

         

       미하일에게 있어 채찍과 당근은 언제나 정답이었다.

         

       권력을 쥔 자만이 알 수 있는 감각.

         

       어째서 전쟁영웅 중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루터스 에단을 베르너 그라임이라는 가명을 주면서까지 휘하에 두려 했던가.

         

       쓸모가 있기 때문이었다.

         

       허튼 짓을 하려 했다면 계획대로 처리해버렸겠지만, 무기력하고 공허한 그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전설적인 전쟁영웅을 수족처럼 부린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 되는 법.

         

       아르헨 오르카의 고발을 적극적으로 커버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컷 사용하다가 쓸모없어지면 간단하게 갈아끼울 명분이 필요했던 거니까.

         

       루터스 에단이 베르너 그라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감찰실을 풀어서 그대로 처리해버려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러나 당시의 선택은 지금 미하일에게는 최악의 결과로 다가왔다.

         

       “총통 각하….”

         

       방송에서는 자신이 아슈블랑카에 직접 처넣은 이들의 증언이 쉬지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수도로 달리기를 하는 와중에 수용소를 먼저 습격할 줄이야.

         

       “이런 씨발!”

         

       쾅!!

       총통이 책상을 세게 내려쳤다.

         

       뛰어난 정치가이기에 알 수 있었다.

         

       결국 반란군과 정부군과의 싸움은 누가 더 많은 병력과 명분을 쥐고 있느냐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법이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밀어버려도, 반란군의 명분이 타당하다면 그것은 ‘무력 진압’이 되어버린다.

         

       철옹성같았던 총통의 권위에 깊은 상흔이 남겨지는 것이다.

         

       체제를 유지하기는 이전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찬탈자들의 도전을 받을지 모르는 법.

         

       지금 상황이 딱 그 꼴이었다.

         

       명분이 점점 옮겨지고 있었다.

         

       자신에게서 반란군에게로.

         

       “그래서 북부쪽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거냐.”

         

       “그… 그것이….”

         

       “이 무능력한 버러지 새끼들!!”

         

       총통이 포효를 터트렸다.

         

       첫 보고가 묵살되어 반란을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물론 반란군의 진격 속도가 무슨 이유인지 생각보다도 훨씬 느리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일단 수도 인근까지 접근한 이상, 총통은 자신의 목덜미에 칼이 들이밀어진 기분이었다.

         

       당장 이 방송부터가 북부에서 송출되는 것이지 않던가.

         

       ‘낮이 밝을 때까지 진압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폭동이 진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 시간 전부터 수도 호엔바렌 일대에는 비상 계엄령이 떨어진 상태.

         

       하지만 해가 떠오른다면 그때는 자신의 만행을 수도가 아닌 전국이 알게 되리라.

         

       이제 동이 트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시간 정도였다.

         

       그 전에 사태를 마무리 짓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후우….”

         

       집기따위를 냅다 집어던지며 안 그래도 난장판인 집무실을 또 한번 뒤엎은 총통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급할수록 침착해야 했다.

         

       이렇게 역정을 낸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 법.

         

       반란군의 선전 방송에 대응하여 이쪽에서도 여론을 통제할 준비도 해야 했다.

         

       안 그래도 수방사 소속의 헌병대원들이 국영 방송국으로 향했으니 곧 소식이 들려올 터.

         

       매듭을 하나하나씩 풀어나가다보면 마침내 정답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초, 총통 각하!!”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온 결과에 미하일 비스마르크는 웃을 수 없었다.

         

       “방송국이 괴한들에게 점령당했습니다! 수방사 헌병대원들은 전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괴한이라니! 수방사 헌병대라면 수방사 병력 중에서도 나름 정예 병력인데 그깟 깡패새끼들을 상대로 패배했다고?!”

         

       “아, 아닙니다! 깡패가 아닙니다!! 폭동을 주동했던 마테우스는 방금 전에 사살당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주 시가지에서 벌어지던 폭동은 완전히 진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설마…?”

         

       총통의 눈동자가 부르르 떨렸다.

         

       깡패가 아니라면 정해진 답은 하나였다.

         

       반란군.

         

       이미 자신과 대적하고 있는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전쟁영웅 루터스 에단이라는 사실은 진작 파악한 상태였다.

         

       안보전략국의 침묵과 자신이 심어둔 이들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보고.

         

       정찰기로 확인한 안전국 본부ㅡ 포비든 레이크 요새의 전경은 새카만 칠흑으로 뒤덮여 있었으니.

         

       진작 휘하의 병력이 모조리 빠져나간 이후였다.

         

       그런데 이렇게나 빠르게 병력이 진입했다고?

         

       “…!”

         

       그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총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으아아아아아!!! 루터스, 루터스 에단 이 개새끼가아아아!!!”

         

       미친 듯이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차마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루터스 에단을 수식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는 방어의 사자와 제국의 파수꾼.

         

       특히 방어의 사자라는 이명은 수십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몰아닥치는 적의 병력을 상대로 신기에 가까운 ‘기동방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다양한 방면으로 병력을 전개하여 상대를 미친 듯이 두드리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는 지휘관이라는 뜻이었다.

         

       과연 루터스 에단이 대놓고 북부로 처들어가고 있다 광고를 하겠는가.

         

       북부노드는 어디까지나 블러핑이었을 확률이 높다.

         

       머리에 뇌 대신 우동사리가 들어찬 병신 새끼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루터스 에단의 본대는 이미 수도 깊숙이 들어와있었던 것이다.

         

       “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한바탕 소리를 지르던 총통은 이내 정신이 나간 듯 웃음을 터트렸다.

         

       무수히 많은 감정이 뒤섞인 결과물이다.

         

       후회, 자책, 무기력, 두려움, 그리고 분노.

         

       “초, 총통 각하?”

         

       “헌병실장 어딨어.”

         

       “라인하르트 힘러 준장이라면 현재 수방사에서 휘하 헌병들을 지휘하고….”

         

       총통이 제 이빨을 뿌득뿌득 갈며 덧붙였다.

         

       “그 자식 보고 아르헨 그 씨발년, 데려오라고 해.”

         

         

         

       ***

         

         

         

       꿈을 꿨다.

         

       즐거운 꿈이었다.

         

       벚꽃이 만개한 언덕에서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잡고 거니는 꿈.

         

       부드러운 온기가 맞잡은 손을 따라 전해지고, 그가 자신을 바라보며 따스한 미소를 짓는다.

         

       “아르헨.”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

         

       드높은 하늘을 똑 닮은 푸른 눈동자에 슬며시 눈을 맞추고, 얼굴을 가까이 붙이며 시야를 감으려던 그때.

         

       “아르헨, 오르카!!”

         

       철퍽!! 촤아악!!

         

       온몸을 강타하는 충격과 피어오르는 냉기에 아르헨이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찬물을 뿌린 것이다.

         

       냅다 찬물을 뿌린 병사의 뒤에는 라인하르트 힘러 헌병실장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아.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이의 모습이 보고 싶었을지도.

         

       “총통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헌병실장 라인하르트 힘러가 벽면에 묶여있던 아르헨의 수갑을 풀어주며 말했다.

         

       그녀의 손을 구속하던 수갑이 풀렸음에도, 아르헨은 그저 바닥에 철퍼덕 쓰러질 뿐이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지쳐버린 것이다.

         

       “당신의 전 상관이 겁도 없이 반란을 일으켰거든요.”

         

       라인하르트의 말에 아르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랬구나.

       시간 감각을 알 수 없어 몰랐다.

         

       샬롯 에버그린이 말한대로 루터스 에단이 총통에 맞서 반기를 들어 올린 것이 분명하다.

         

       빠져나오길 잘 했어.

         

       괜히 붙잡혀 험한 꼴을 당하던 자신의 모습을 보기라도 했다간, 그 고결한 영혼에 몇 번의 죽음을 거듭하든 절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었을 테니까.

         

       “그러니 오늘에야말로 당신이 말한 약속을 지킬 때입니다.”

         

       “알겠… 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약속.

         

       본래 아슈블랑카에서 남들 못지 않게 험한 꼴을 당했어야 했던 아르헨이다.

         

       하지만 짐승만도 못한 간수들에게 짓밟히기 전, 그녀는 아슈블랑카가 아닌 수도로 긴급하게 이감되었다.

         

       수용소가 루터스에 의해 해방되기 고작 이틀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는 그녀의 증언 중에서 미하일 총통이 크게 관심을 가진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샬롯은 오라클 프로젝트에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했어요.

         

       -그 프로젝트, 제가 대신 맡을테니… 부디 총통께 이 말만을 전해주세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며 뻗대던 여자가 갑작스럽게 굴종해왔으니까.

         

       어쩌면 그 건너편 방에 있던 여자가 간수들 몇 명에게 덮쳐지는 걸 목격했기 때문일지도.

         

       꺾여버린 건가.

       재미없게.

         

       사실 헌병실장 라인하르트로서는 딱히 무슨 이유던 상관 없었다.

         

       오히려 잘 됐다.

         

       그가 다른 간수들을 즉결 처형하면서까지 아르헨에게 유독 젠틀하게 대한 것은 어디까지나 라인하르트의 비틀린 성욕 때문이었다.

         

       여자를 붙잡아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건 이제 재미가 없었다.

         

       그거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저 못생기고 덜떨어진 병신들조차 지나가던 여자를 붙잡아 강간하면 결국 그게 그거.

         

       라인하르트 힘러는 보다 진득하고, 보다 극적인 자극을 원했으니.

         

       이 일만 마무리되면 아르헨은 자신이 데려가 보듬어줄 생각이었다.

         

       마음을 열지 않던 이에게 스며들어 결국 그 감정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이제껏 쌓아온 기대감과 신뢰를 철저하게 부수는 것만큼 재미있고 값진 일이 있을까.

         

       “시간이 없어요. 어서 움직입시다.”

         

       라인하르트가 아르헨을 부축하며 일으켜세웠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아르헨의 노림수였다는 사실도 모른 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늦었습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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