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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100 – 공포를 이겨내는 법>

     

    다각다각 자이언트 킹크랩들이 나무 밑을 서성이고 나뭇잎 위로는 폭우가 떨어지며 빗소리로 장막을 치는 사이, 우리는 나무 위에 앉아 침묵했다.

    잠이라는 것이 마냥 자고 싶다고 오는 것도 아닌지라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당.”

     

    감상에 젖어서 무심코 내뱉은 말에 즈앙과 티토소가가 너 돌았냐는 눈으로 쳐다봤다.

     

    “오해하지 마. 자이언트 킹크랩한테 쫓겨서 나무 위에서 잠자려고 애쓰던 경험은 아니야!”

    “그럼 어떤 경험인가요?”

    “궁금하긴 하네. 다른 암살자들은 어떤 추억을 지니고 있는지.”

     

    두 사람 모두 흥미를 보이기에 조금만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비는 아니고 눈이 엄청 내리는 날이었는데 발을 잘못 들여서 절벽에 매달린 적이 있었거든.”

    “그런 위험한 지대에는 어쩌다가 갔는데?”

    “전설의 눈꽃빙수를 만들러.”

     

    즈앙이 너 바보야? 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먹고 싶을 수도 있지! 수집효과가 얼마나 좋은 전설음식인데!”

    “그런 건 동화책에나 나오는 거잖아.”

    “전설의 눈꽃빙수는 진짜로 있거든!”

     

    티토소가가 어깨를 토닥였다.

     

    “그맘 이해해. 나도 작년까지는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었거든.”

    “산타클로스도 있거든!!”

     

    크리스마스 되면 이벤트NPC로 등장한다고!

    플레이어의 경험담에서 비롯된 외침도 NPC인 이들의 눈에는 엉뚱하게 보였나보다.

    티토소가는 흐뭇해하고, 즈앙은 걱정을 했다.

     

    “너 말야. 열 살이면 벌써 어른이 될 준비를 해야 할 나이거든? 마을 애들도 그 나이면 감자 캐고 잡초 뽑고 장작 나르고 다닌다고. 철이 들어야지.”

    “전설의 눈꽃빙수도 산타클로스도 진짜로 있는데 왜 내가 철없다는 소리까지 들어야해?”

    “어른은 그런 거 안 믿으니까. 알겠니, 오크노디? 암살자는 돈이 전부야. 그런 수상한 것을 주겠다고 의뢰대금을 후려치는 사기꾼들이 세상엔 널렸다고!”

     

    어째서인지 혼나기까지 시작했다.

     

    “둘 다 내말 안 믿지?”

    “아하하. 난 괜찮다고 생각해. 여자는 그런 거 믿으면 좀 귀여워 보이잖아?”

    “바보노디. 나중에 내 말 안 들었다가 사기당하면 크게 후회한다?”

    “티토소가도 즈앙도 다 미워!”

     

    진짜 있는데.

    내가 봤는데. 씨잉.

     

    “하하. 미안미안. 화 풀어. 응? 있다가 행복해지는 조명을 쏴줄게!”

    “…핑크색으로?”

    “핑크색이 좋아?”

    “…응. 숙련도 상승계수가 높아지니까.”

    “나도 핑크색이 좋아!”

     

    그런 느낌으로 잡담을 나누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래서 우리가 뭐 하려고 했더라?

     

    “겔겔겔. 이놈들, 누가 애들 아니랄까봐 집중력이 산만하기로는 고블린 못지않구나.”

    “윽. 죄송해요. 빨리 잘게요.”

    “아니. 되었다. 어차피 잠들어봤자 금방 잠이 깼을 테니까.”

    “네?”

    “자이언트킹크랩은 말이다. 실은 나무타기도 할 수 있다!”

    “네에에?!”

     

    해골교관이 새우비린내가 물씬 나는 물을 나무에 끼얹자 자이언트킹크랩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다각다각다각.

     

    나무껍질을 집게발로 뜯고 턱으로 씹어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급기야 이 나무가 새우가 자라는 새우나무라도 되는 줄 알고 나무를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꺄아악! 주, 죽어요. 저 이러다 죽어요!”

    “호들갑 떨지 마, 티토소가. 균형만 잡으면 나무에서 떨어질 일은 없잖아.”

     

    즈앙은 티토소가의 자세와 균형이 위태로워질 때마다 툭툭 가볍게 어깨를 밀거나 다리를 찌르며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오크노디, 어떡할래? 우리야 생존훈련을 받았으니 괜찮지만 이대로는 티토소가가 위험해. 저 교관,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생각이야.”

    “동물이나 몬스터는 천적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도망간다고 알고 있어!”

    “천적? 자이언트킹크랩한테 천적이 있어?”

     

    많지는 않다.

    그냥 킹크랩만 해도 주변에 천적이 없어서 쉽게 번식하고 수가 불어나 해저바닥을 가득 메우는 판에 자이언트킹크랩은 훨씬 더한 편이었다.

    그러나 해양에 몬스터가 자이언트킹크랩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킹크랩은 문어가 천적이야!”

    “저 덩치면 일반문어야 그냥 썰어버릴테고. 자이언트문어…? 그런 것도 있었나?”

    “크라켄이라고 불러!”

    “그렇구나. 크라켄… 잠깐, 크라켄? 한 번 떴다하면 대형선박도 집어삼킨다고 하는 그 미친 문어?”

    “응.”

    “그런 녀석의 울음소리를 알 리가 없잖아!”

    “그럼 내가 내볼까?”

    “너… 크라켄도 본 적이 있어?”

    “당연하지. 희귀한 몬스터는 전부 사냥했는걸.”

    “사냥을?”

     

    앗. 무심코 플레이어의 경험담을 자랑했다.

     

    “그게, 내가 아니라 스승님이! 스승님이 잡는 걸 구경했다고.”

    “헤에. 굉장하네. 오크노디네 스승님은. 암살유파에 크라켄을 잡는 비기도 있다니.”

    “힝!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좀 쫓아줘어!”

     

    티토소가가 힝잉잉을 터뜨리기 직전이다.

    어쩔 수 없지.

    약한 친구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수밖에.

     

    “큼큼.”

     

    목을 한 번 풀고는 입을 둥글게 말았다.

    포인트는 내복사근과 복직근을 이용한 발성!

     

    “무오오오옹!”

    “풉.”

    “오크노디. 장난 칠 때가… 어라?”

     

    방금 전까지 나무에 매달렸던 자이언트 킹크랩들이 화들짝 놀라서 나무에서 떨어졌다.

     

    다각다각.

     

    자이언트킹크랩 한 마리가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재차 나무에 다가왔다.

    이놈이 어딜 감히!

     

    “무오오오옹!”

     

    기선제압을 하듯이 크게 크라켄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겁도 없이 다가오던 자이언트킹크랩이 펄쩍 뛰며 다섯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하하, 오크노디. 그거 너무 웃겨!”

    “웃기는 소리인데 효과가 있잖아?”

    “웃지만 말고 도와줘! 우리가 너무 작아서 응애크라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천적도 유아기에는 물어죽이려고 할 수 있어!”

    “그럼 어떡해?”

    “같이 울음소리를 내는 거야!”

     

    정신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무오오오옹!”

    “무옹! 무옹!”

    “무오오옹.”

     

    나뭇가지 위에서 열심히 크라켄 소리를 내며 자이언트킹크랩을 쫓아내려는 우리들과 잠깐 물러났다가도 계속 다각다각 접근하려 시도하는 자이언트킹크랩들.

    치열한 신경전의 끝에 이대로는 끝이 안 난다고 판단하고 비장의 수단까지 꺼내들었다.

     

    “다들 팔을 들고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려!”

    “그게 무슨 효과가 있는데?”

    “쟤들한테는 널 잡아먹겠다는 공격동작이야!”

    “하핳. 나 이거 너무 재밌어!”

    “으으. 어디 가서 밤에 이런 짓을 했다고는 절대로 말 못해. 흑역사 갱신이야.”

     

    방긋방긋 웃는 티토소가와 울상을 짓는 즈앙 모두 팔을 뻗고 흐느적거리는 촉수 흉내를 내자 그제야 자이언트킹크랩들이 달아났다.

     

    “아니, 기껏 모은 자이언트 킹크랩을 모두 쫓아내다니. 고얀 것들!”

    “흥. 잠만 자면 되잖아요. 모인 몬스터를 쫓아내지 말라는 법 있어요?”

    “없지.”

     

    해골교관은 순순히 인정했다.

     

    “이제 어쩌지?”

    “잠이나 자자.”

     

    그제야 안심하고 나무 위에서 눈을 붙이며 휴식을 취하는 우리들.

    10분쯤 눈을 감았을까.

    투두두둑 나뭇잎을 두들기는 빗소리도, 쏴아아아 나무 너머로 쏟아지는 빗줄기도 듣기 좋은 배경음 삼아 잠이 솔솔 몰려오던 참이었다.

     

    다각다각다각.

     

    “겔겔겔. 도망친 킹크랩들을 다시 모으지 말라는 법도 없지!”

    “…오크노디. 스켈레톤을 쫓아내는 울음소리는 없어?”

    “그런 울음소리는 없어.”

     

     

    * *

     

     

    [당신은 기지를 발휘해 자이언트 킹크랩들의 습격으로부터 친구들과 간이잠자리를 지켜냈습니다.]

    [흉내내기 경험치+7]

    [울음소리 경험치+5]

    [매달리기 경험치+3]

    [오르기 경험치+1]

    [착한아이 경험치+1]

     

    천신만고 끝에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로부터 살아남았다.

     

    “모처럼 대체강의를 맡았는데 강의시간이 끝나다니 정말 아쉽구나!”

     

    빈말로라도 저희도요, 같은 소리를 했다가는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려 있을까봐 입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관님 너무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겔겔겔. 역경을 이겨내는 신입생만이 2학년이 되는 법. 오늘의 강의가 있었기에 앞으로는 밤마다 어디서 잠을 자든 잠꼬대 없이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악몽 때문에 몸서리를 칠 것 같아요.”

     

    티토소가는 이 강의가 그다지 유익하지는 않았나보다. 즈앙도 불만이 많아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저런. 안됐구나.”

     

    해골교관은 부쩍 주눅이 들었다.

     

    “나도 이렇고 싶어서 이런 강의를 했던 건 아니란다.”

    “설마 사다코 교수님이 시켜서…?”

     

    아직 사다코 교수를 향한 경계심을 놓치지 않았던 즈앙이 조심스레 물었다.

     

    “학생들에게 육신이라는 나약한 허물이 얼마나 불편한지 깨닫게 하고 스켈레톤 종족이 되도록 인도하고 싶어서 이랬을 뿐이란다.”

    “히에에엑!!”

    “사, 사이코!! 당신은 미쳤어!!”

    “피륙을 벗어던지고 해골이 되면 수면이라는 불필요한 활동에 고통 받지 않아도 되니, 어찌 잠꼬대를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겔겔겔.”

     

    사악한 해골교관이 본색을 드러냈다.

     

    “자아. 어떠냐. 이제 해골이 될 마음이 들었느냐? 말만 하면 언제든지 너희에게 <해골화> 주문을 가르쳐주마. 두 번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주문이다! 겔겔겔!”

    “힝잉잉!”

    “오크노디, 협공하자!”

     

    소리 높여 웃는 해골교관과 끝내 울음이 터진 티토소가,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처럼 잔뜩 날이 선 즈앙의 공격태세까지.

    개판 5분전의 강의장에 돌연 해골교관의 주변으로 마법진이 떠올랐다.

     

    “앗, 이건 사다코 교수님의 소환마법진? 분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10분만 더 일찍 강의를 끝내고 주문을 전수하는…”

     

    마법진이 종이접기라도 하듯이 공간을 휙휙 접으며 해골교관을 집어삼켰다.

     

    “…갔어?”

    “응.”

    “다음 강의에도 사다코 교수님 대신 저 해골바가지가 보이면 바로 도망칠 거야.”

     

    즈앙은 몇 번이고 진심이라며 거듭 강조했다.

    소환수의 성격은 주인을 닮기 마련이라는 사실은 비밀로 해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오오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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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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