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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제화전의 첫날이 끝날 즈음이 되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많이 지치고 배가 고플 무렵이지만, 관객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환호를 줄이지 않았다.

       

       “졌…습니다….”

       

       오랜시간이 걸렸던 마지막 비무가 끝이 났다.

       최종적으로 남은 이는 영성이라는 청년이었다.

       과거 영풍과 있던 객잔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청년이다.

       

       아마 삼대제자중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영풍을 제외하면 가장 매끄러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구령화는 처음의 승리를 끝으로 더는 올라가지 못했다.

       

       첫 비무의 승리도 실상 상대가 방심했던 탓에 이뤄졌던 일이고, 아무리 구령화가 갑작스럽게 변화를 했다고 한들 한계는 분명했다.

       패배를 겪은 구령화였지만, 비무대에서 내려오던 당시의 표정은 상쾌해 보였다.

       

       패배로 인해 잃은 것보단 얻은 게 더 많아 보였다.

       

       “아까 그 이대제자라는 여아 있잖나.”

       “아, 그 예쁘장하던….”

       “처음 보는 제자였는데 이름이 뭐라고 하더라….”

       

       사람들은 벌써 구령화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작은 소녀가 보여주는 몸놀림이라기엔 너무나 뛰어났으니 그럴 법도 하다.

       

       비무가 모두 끝났는지, 서로 예를 갖춰 인사를 끝으로 어느덧 제자들이 나와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람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산파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너무 늦은 밤이 되면 내려가기 위험한 탓에 슬슬 내려가야 할 것이다.

       지루함에 못 이겨 반쯤 졸고 있던 남궁비아는 위설아가 챙기고, 열심히 비무대를 뒷정리하던 이들에게 다가갔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던 탓이다.

       

       “영풍 도장.”

       “어, 구 소협…?”

       

       제자들 틈에서 열심히 노동하던 미공자, 영풍이었다.

       검룡이 의자나 정리하고 있다니…. 세상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풍을 날 보며 반갑게 웃는다.

       

       “아, 제화전을 보고 계셨던 건가요.”

       “어쩌다 보니 끝까지 봐버렸네요.”

       

       정말 어쩌다 보니였다.

       구령화가 탈락한 순간 가려고 했었는데, 위설아가 조금만 더 보고 가고 싶다며 조른 탓이다.

       거기다 와중에 내 어깨에 기대 잠들어버린 남궁비아까지 겹쳐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

       

       내가 말을 거니 영풍이 잠깐 생각을 하다 번뜩이며 말한다.

       

       “아, 죄송합니다 소협….”

       “예? 뭐가요?”

       “제가 오늘은 일찍 자야 해서 밤 수련은 같이 못 할….”

       “…할 생각도 없었는데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 하물며 내가 까였네?

       뭔가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럼 무슨 일로…?”

       

       영풍의 물음에 내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바꿨다.

       중요한 일이니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내 모습이 통했는지 영풍도 살짝 굳은 얼굴로 몸을 기울인다.

       

       나는 영풍의 귀에 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처음에 제 동생이랑 싸운 새…. 제자분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질문을 던지고 살짝 몸을 떨어트리니 영풍의 인상이 찡그려져 있었다.

       

       “…네?”

       

       약간 미친놈 보듯 한 눈이었다.

       

       

       ******************

       

        축시가 넘었을 시간.

       대부분의 이들이 잠이 들었을 시간이다.

       

       돌아올 때부터 비몽사몽이던 남궁비아는 진작 잠이 들었을 것이고.

       검존과 위설아도 마찬가질 것이다. 나는 이 틈에 살짝 나와 주위를 살폈다.

       

       가만히 불침번을 서는 호위들이 몇 보인다. 다행히 무연은 없는 모양이다.

       일부러 시간을 이때로 잡았는데, 다행이었다.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눈치를 살피다 벽을 넘어 빠져나왔다.

       들키면 산책이라도 하러 간다는 변명을 준비해놨는데, 우습게도 잡히질 않았다.

       

       내 수준이 많이 올라간 것도 있지만, 이렇게 부드럽게 나올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나중에 무연을 시켜서 살짝 갈궈야겠다.’

       

       화산파에서 지내고 있는 탓에 대충 서는 건가?

       어찌 되었든 다행히 잘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기를 두르고 산을 빠르게 타고 내려갔다.

       일이 안 꼬이려면 적어도 아침 일찍 돌아와야 하니 발을 바삐 움직여야 했다.

       

       ‘서쪽 숲이라 했는데.’

       

       위치를 대강 들었으나 지도까지 있는 것은 아니라서 신중해야 했다.

       나는 화산파가 수습했다는 흑야궁 지부. 정확히는 야혈적이 기거하던 곳을 지금 찾아가고 있었다.

       

       본래는 아까 구령화의 비무만 보고 가려고 했던 계획이었지만, 늦어버렸으니 밤늦게라도 가는 중이었다.

       

       ‘영풍이 알고 있어서 다행이야.’

       

       아까 영풍을 찾아 물어볼 얘기는 이것이었다.

       구령화와 비무했다던 제자에 관한 얘기는 반 장난이었지.

       

       ‘영진이라고 했지.’

       

       물론 그래도 이름은 기억해놨다.

       얼굴도 말이다.

       

       만일 영풍이 문파의 문제로 알려주지 못한다 말한다면, 당장 개방이나 하오문 둘 중에 한 곳을 찾아가 정보를 얻어낼 생각이었지만.

       내 물음에 영풍은 아무렇지 않게 답을 내놓을 뿐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왜 묻는지는 묻지 않는 거냐.’라고 물었을 정도다.

       

       -소협께서 물으시는 것이니, 무언가 뜻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풍이 내놓은 답에 헛웃음이 나왔다.

       저 무한한 믿음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되려 너무 믿으니 찝찝할 정도였다.

       

       근래 유별나게 많은 이들이 내게 믿음을 보인다. 좋은 방향이라 생각이 들면서도 알게 모를 꺼림칙함이 동반된다.

       

       ‘부담스러워 인가.’

       

       과거엔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라 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편리한 얘기는 아닐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탁-!

       

       영풍이 가르쳐준 방향을 찾아 이동하다 발을 멈췄다.

       정확한 위치까진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는 기감을 펼치며 다녀야 했다.

       

       ‘지금은 무림맹이 관리하고 있겠지.’

       

       정파인 화산은 엄연히 무림맹의 이름이 올라있다.

       

       초기의 흔적이나 관리는 발견한 화산파가 하고 있었겠지만, 아마 지금쯤 무림맹 쪽으로 일이 넘어갔을 것이다.

       

       “수색이 끝난 상태면 좋을 텐데….”

       

       지금즈음이면 무림맹에서 수색을 끝내고 철수를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일 아니라면, 무리해서 뭐라도 하기보단 돌아가는 게 나을 것이다.

       

       애초에 와보겠다 생각한 것도 반쯤 도박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더 뛰어 결국 목적지에 도달했다.

       수풀로 둘러싸인 지형 속에 유독 커다란 동굴이 보인다. 인적이 드문 곳일 뿐 아니라 주변 나무들이 가리고 있는 탓에 밤중에 발견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이런 지형에 진법까지 켜놨으니 쉽게 찾을 리가 있나.’

       

       영풍의 설명만 듣고 찾았다면 절대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말이지.

       

       ‘얕지만 아직 남아있다.’

       동굴에서 느껴지는 얕은 마기의 느낌이 아직은 남아있었다.

       그 기운을 찾아 움직였으니 지형이 어려워도 쉬이 찾을 수 있었다.

       

       ‘무림맹은 죄다 철수한 건가?’

       

       내기를 써서 주변을 살펴보지만, 여전히 인기척은 없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동굴에 발을 디뎠다.

       

       스으으으-!

       

       음습한 소리와 함께 동굴은 어둠이 가득했다. 이어 손을 타고 불길을 내뿜어 횃불을 대신했다.

       천천히 벽면을 따라 걸으니 동굴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길었다.

       입구에서 한참을 더 걸었어야 하니 말이다.

       

       내기를 길표 삼아 걷다 보니 평지가 나온다.

       지형이 동굴인 만큼 크게 만들진 않은 듯 보인다.

       

       ‘여길 지부로 삼았다고?’

       

       직접 눈으로 보고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부로 삼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먼저 화산파와 무림맹이 쓸고 지나갔다 하더라도, 남은 건물을 본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지부로서의 쓰임새가 빈약하다 못해 없다시피 했다.

       

       ‘놈들은 대체 무얼 위해 여기에 있던 거지.’

       

       좁디좁은 곳을 돌아다니며 도착한 곳은 그나마 커다란 공간이었다.

       크기상 사람이 오갈 만한 곳은 이곳밖에 없었다.

       

       벽면에 위치한 거대한 의자, 아무래도 야혈적이 기거하던 방인 듯싶었다.

       

       ‘이걸 방이라고 표현하기도 참 뭣 같네.’

       

       흔적이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부분에선 이미 치워버린 건가?

       이곳도 딱히 발견할 만한 것 없어 보였다. 역시 정보는 아는 걸 제외하면 직접 구하기보단 개방이나 하오문을 통해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무렵.

       

       “…음?”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향기에 멈칫했다.

       동굴에는 알 수 없는 피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뭐야….’

       

       이상할정도로 짙은 냄새였다.

       

       속이 울렁일 정도로 역한데, 이런 걸 내버려두고 무림맹에서 대원을 남기지 않고 떠났다고?

       등골을 스치는 싸한 감각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제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냄새가 아니야.’

       

       향(香)이 아니다.

       이것은 기(氣)에 가까웠다.

       

       어디서? 대체 어디서 이런 기운이 풍기는 거지.

       

       ‘기운이라 해도 마찬가지야, 다른 이들이 이걸 왜 느끼지 못했지?’

       

       만일 느꼈더라면 이렇게 버려둬 놓고 사라졌을 리 없다.

       

       ‘어디서 느껴지는 거지?’

       

       손에 있는 불길을 키워 방을 좀 더 밝혔다. 역시나 입구를 제외하면 사방이 돌로 막힌 공간이다.

       하지만 기운은 분명 한쪽 벽면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진법인가? 그렇게 판단하기엔 집중해도 느껴지는 기운은 없었다.

       

       ‘장치 쪽인가.’

       

       고작 지부에 장치를 만들 만큼 투자를 했을까 싶고, 흑야궁의 기술력이 설마 그 정도 일까 싶지만.

       만일 마교와 연관이 되어있다면 이상할 것도 없는 노릇이었다.

       

       동굴의 벽면을 더듬었다. 장치라면 흔적이 남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쪽으로는 그다지 전문가는 아니다만, 지부의 주인이 야혈적이었던 것만큼…’

       

       딱히 머리를 쓰지 않는 놈으로 보아 장치의 관리도 그다지 어렵게 되어있진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예상이지만 말이다.

       

       벽에서 벗어나 의자 쪽을 더듬었다.

       이곳도 딱히 이상함을 못 느끼겠는데…

       

       투툭.

       “…!”

       

       의자 팔걸이 아래쪽에서 거치적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오른쪽 팔걸이와는 다르게 아주 미세하지만 뭔가 더 돌출되어 있었다.

       

       혹시나 싶어 눌러보니 쉽게 들어간다.

       다만, 무언가 나타날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 다르게 방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기사 이 정도 위치라면 수색대가 발견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이건 아닌가 싶어 다른 곳을 찾아볼까 했지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몸을 고정했다.

       

       혹시나 싶어서다.

       

       몸에 미세하게 남은 마기를 살짝 건드렸다.

       내기를 사용할 때는 섞이지 않기에 따로 건드려야 했다.

       

       꾸룩.

       

       단전에서 잠들어있던 마기가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그 상태로 다시 한 번 돌출되어있던 부분을 눌렀다.

       

       끼긱…끼기긱…!

       

       “…씨발.”

       

       가능한 아니길 바랐던 부분이 들어맞았다.

       혈향은 둘째치고 무림맹과 화산파가 별다른 흔적을 찾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훗날 신교의 본궁을 만들 때 수백 가지의 장치를 집어넣었던 태잔귀(太殘歸).

       이건 마기를 사용해서 인식시키는 미친 장치를 만들어냈던 놈의 작품과 같았다.

       

       쿠우우우웅-!

       

       동굴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먼지를 사방으로 흘리며 벽면이 흔들린다.

       이윽고 의자 뒤편에 벽이 열리며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지독할 만큼 역겨운 피 냄새와 함께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_ )

    5분 뒤 다음편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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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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