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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멍하다.

        

       어슴푸레한 기억을 더듬거려 보자면, 나는 아마 단련하는 중에 쓰러졌던 것 같다.

        

       신체를 부단히 단련시켜 온 덕분에 나름 체력엔 자신 있어서, 그만 한계치까지 깝치고 말았다.

        

        

       ‘나 지금 어딨냐?’

        

        

       데자뷰. 뒤통수에 푹신한 감각이 느껴진다. 안전한 곳에 눕혀져 있는 모양이었다.

        

       예전에 이든을 통해 특정 원소 저항력을 높여주는 원소 팔찌를 시험했을 때.

        

       그만 데미지가 누적돼서 기절하고 루체 방에서 깨어났었지.

        

       이번에도 누가 내 몸을 어딘가로 끌고왔나 보다. 요새 날 간간이 스토킹하고 있는 아이작의 친누나일까.

        

        

       ‘…아니겠지.’

        

        

       기절하기 전, [천리안]으로 근처를 살펴봤던 기억이 난다. 근처에 아이작의 누나는 없었다.

       

       즉, 다른 누군가겠지.

        

       그나저나 뒤통수에 맞닿아 있는 것이 어째 매끄럽고 말랑거렸다. 베개인 줄 알았는데, 이게… 뭐냐?

        

       이제 막 의식을 되찾은 직후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나 보게 될까, 싶었는데.

        

       순간 찬란한 광채를 보고 실명할 뻔했다.

        

        

       “회장, 깼어?”

        

        

       둥그런 가슴 너머, 별빛처럼 화사한 미소가 내 눈에 비쳤다.

        

       흘러내리는 연보랏빛 머리칼. 별 모양 동공이 새겨진 우주를 담은 눈동자.

        

       도로시의 미소 가득한 얼굴이었다.

        

       노을빛 하늘, 나비 정원 구석, 느티나무 아래.

        

       내가 단련하고 있으면 줄곧 도로시가 앉아서 말을 걸어오던 위치.

        

       그곳에서, 나는 도로시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모양이었다.

        

        

       ‘뭐야, 도로시였네.’

        

        

       일어나지 말아야지.

        

       다시 눈을 감고 옆으로 누웠다. 내 뺨에 최애캐의 살결이 맞닿았다.

        

        

       “니히히, 회자앙. 속마음이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야?”

        

        

       도로시는 배시시 웃었다.

        

        

       “그러면 이 누나도 조금 부끄러워지는데.”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닌 것 같아서요. 이거 팬 서비스 맞죠?”

       “물론이지. 어때? 행복해?”

        

        

       당근빠따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어요? 무릎베개도 다 해주고.”

       “…요새 회장 좀, 무리하고 있었잖아. 마음이든, 몸이든.”

        

        

       도로시 앞에서 감정을 숨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조급해하고 있었단 걸 알아챘었나보다.

        

        

       “어떻게 알고요?”

       “훗, 이 누나는 뭐든지 알 수 있다구?”

        

        

       자기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는 도로시.

        

        

       “그래서 이 누나가 굳이 번거롭게, 회장을 위로해주고 싶었단 말씀이지! 때마침 여기 와 보니까 회장 기절해 있더라구. 잘 기절해줬어!”

        

        

       좋은 타이밍에 정신을 잃었구나. 나이스.

        

       물론, 이런 행복한 시간을 하염없이 즐길 순 없는 노릇.

        

       이 잠깐의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복에 겹지.

        

       기절로 체력도 보충했으니 다시 단련에 돌입해야겠다.

        

        

       “고마워요, 선배. 이제….”

       “회장.”

        

        

       내가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도로시가 내 어깨를 꾹 눌러 도로 눕혔다.

        

       일어나지 말라는 듯.

        

        

       “쉬자, 지금은. 내 곁에 있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니.

        

        

       “옳지.”

        

        

       도로시는 아끼는 인형을 만지듯 내 옆머리를 쓰다듬으며, 잔잔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치 어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목소리와 미소가 안온하게 만든다.

        

        

       “…….”

        

        

       쉰다라….

        

       <메르헨의 마법 기사> 지옥 난이도에 빙의해, 나는 악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죽어라 달려왔다.

        

       내 자의로 쉬었던 건 사교회 날 밤, 질투의 말록을 쓰러뜨린 이후 잠깐의 시간이 전부였지.

        

       솔직히, 당연한 얘기지만.

        

       힘들었다.

        

       기왕 게임에 빙의할 거라면.

       

       기본 난이도에 빙의해 여유롭게 연애도 즐기고, 적당히 적들을 해치워 나가면서 꿀 좀 빨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피곤하긴 하구나.

       

       몸이 노곤했다.

        

       기절한 일로 체력이 보충되었다고 해도, 내 몸이 지쳐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몸 안에 담겨 있는 마력이 원활하게 흐르지 않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아예 몸 안에 있는 세포들이 파업이라도 하는 것 같다.

        

       아직 나는 철인까지는 못 되나보다.

        

        

       “…그럼 뭐.”

        

        

       도로시의 손길이 온화하고 기분 좋아서, 몸이 나른하게 늘어지고 말았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조금만 쉴게요.”

        

        

       단련을 위해서, 지금은 잠깐 쉬기로 결정을 내렸다.

        

        

       “응.”

        

        

       도로시는 활짝 웃었고.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 * *

        

        

        

       아이작은 잠들었다.

        

       제 무릎에 머리를 베고 잠들어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도로시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미미하게 흐르던 바람이 찬기를 머금자 도로시는 케이프숄을 벗어 아이작에게 덮어 주었다.

        

       그리고 회복 마법을 머금은 손길로 그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길 반복했다.

        

        

       “참 정체를 모르겠다, 너는.”

        

        

       도로시는 자신이 주신 만할라의 축복을 몰아 받은 희대의 천재라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 무릎에 누워 있는 이 남자는, 그런 도로시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

        

       어쩌면 [천라만상]의 힘으로 도로시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애당초 도로시가 아이작에게 관심을 품었던 것도 그의 숨겨진 힘을 목도한 까닭이었으니.

        

       그러나 그의 힘은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모양.

        

       아마도 단련은 본래의 힘을 사용했을 때의 강함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도로시는 추측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작은 너무 무리하고 있었다.

        

        

       “무리해도 정도란 게 있지.”

        

        

       얼마나 무리했는지, 아이작의 마나 회로가 심하게 꼬여 있다는 사실을 도로시는 느낄 수 있었다.

        

       피로감과 고통, 거부감이 상당했을 텐데.

        

       그런데도 단련하려고 미친 듯이 마법을 사용해댔으니, 원….

        

       도로시는 검지로 아이작의 뺨을 살살 문질렀다.

       

       그가 고개를 도로시의 손가락 쪽으로 기울인다. 강아지처럼 보여 귀여웠다.

        

        

       “니히히.”

        

        

       도로시는 겉보기엔 타인에게 친근한 태도를 유지하지만, 언제나 선을 긋는다.

        

       자신은 곧 죽을 운명이기에, 아무도 자기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이 삶에 미련 따위 갖지 않도록.

        

       그러나 [감정 간파]로 아이작의 심리를 살필 때마다 보였던 건 무한한 애정.

        

       처음엔 호기심 정도로 아이작을 찾아왔었건만, 그 따뜻한 감정을 보고 있으면 사람인 이상 절로 마음이 풀어지고 만다.

        

       하늘이 어스름하게 빛을 잃어간다.

       

       도로시는 아이작을 바라보다가, 그의 단단한 가슴팍 중앙에 손을 올렸다.

        

       꼬여 있는 마나 회로를 풀어낼 필요가 있으니까. 도중에 아이작이 깨어나면서 작업이 멈추고 말았으니, 이제 다시 이어가야 했다.

        

       도로시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력을 흘려내며.

        

       과한 단련으로 꼬여 버린 아이작의 마나 회로를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도로시의 별빛 마력이라면, 아이작 마력의 근원지인 심층부에 도달해 처음부터 끝까지 마나 회로를 온전히 회복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그렇게 도로시의 마력이 아이작의 마나 회로 안쪽으로 깊숙이, 깊숙이 들어가며, 심층부에 이르자.

        

        

       “……!”

        

        

       허허롭고 새까만 어딘가의 풍경이 도로시의 시야에 내비쳤다.

        

       푸른 냉기가 흐르고 있는 거대한 검은 문 하나가 검은 벌판 한가운데에 떡하니 놓여 있었고.

        

       그 압도적인 위용에, 오싹한 감각이 도로시의 등줄기를 타고 우르르 흘러내렸다.

        

       그녀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눈을 번뜩 떴다.

        

        

       “뭐야…?”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천라만상]으로 보았던 아이작의 본질 속 미지의 존재와는 별개의, 궤를 달리하는 무언가가, 아이작의 마나 회로 근원지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게다가 그 거대한 문 주위로 흐르고 있던 굵직한 마력.

        

       얼음 속성의 최고 경지에 이르러야만 도달할 수 있을 법한, 농도가 차원이 다른 마력이 그 검은 벌판에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1학기 때 또 다른 세계에서 세계멸망급 마법을 썼던 게… 그의 전력이 아니었단 말인가.

        

        

       “회장, 대체… 얼마나 힘을 숨겨두고 있는 거야…?”

        

        

       아이작이 도로시 자신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은 뻔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도가 넘어도 지나치게 넘지 않았는가.

        

       아이작은 이미 이 세계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제는 호기심을 넘어, 경탄에 이를 지경.

        

       한동안 도로시는 멍하니 아이작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편안한 얼굴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

        

       

        

       [ 저번엔 죄송했습니다! ─ 카야 아스트레앙 ]

        

        

       “이게 뭐야…?”

        

        

       중상위권 기숙사, 엘마관.

       

       복도에서 이브 로펜하임은 멍하니 서 있었다.

        

       자기 방 출입문 옆에, 대문짝만 한 화분과 온갖 마도구, 값비싼 과자 세트, 액세서리 등이 즐비해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겔을 쏟아부어 주문한 것인지… 이브로선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요새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의 여학생, 카야 아스트레앙이 간간이 이브에게 접근해왔다.

        

       어깨가 뭉쳐 있습니다, 하고 어깨를 주물러 준다든지. 아름답다고 아첨해준다든지. 필요한 거 없냐고 긴장한 투로 묻는다든지.

        

       마법학부 1학년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실력은 출중하며, 무려 검성 제랄드 아스트레앙 공작과 천재 마법사 히스토리아의 혈육이라고 했지….

        

        

       ‘그런 거물이 왜…?’

        

        

       대체 동생은 어떻게 그런 거물을 꼬셨단 말인가.

        

       우쭐하는 감정도 들지만, 어디까지나 카야는 아이작의 누나로서 이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카야를 편하게 대할 순 없었다. 수틀리면 끝장일 테니.

        

       이브는 막대한 부담감을 느끼며 기숙사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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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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