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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밀봉된 편지를 건네받은 철밥통은 미래의 자신을 다시 바라봤다.

       

       

       ─일단 제 주인님을 도와주시려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당신의 주인님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님······.”

       

       ─이 편지는 제 주인님께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군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철밥통은 미래 철밥통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얘기했다.

       

       

       ─당신과 나는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주인님 또한 당신의 주인님이 아니라, 제 주인님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미래 철밥통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희미한 살기가 흘러나와 공간을 메웠지만, 철밥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조곤조곤 내뱉었다.

       

       

       ─당신은 저와 이름과 외모, 삶의 배경만 얼추 비슷할 뿐. 엄연히 다른 존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래에서 왔다는 표현보다는 시간대가 다른 평행세계에서 왔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사료됩니다. 완벽한 시간역행에 성공했다면, 당신이 쌓아 올린 힘도 역행해서 사라졌을 것이며 지금의 제 자리에도 당신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육신을 보전한 채 넘어온 시점에서 당신은 시간역행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 정도는 저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시간대에 제가 둘이나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 역행이 아닌 차원 이동에 가깝다는 것쯤은 말입니다. 근데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그걸 알면서도 그리 뻔뻔하게 나오시는 겁니까? 저와 당신은 동일 인물이 아닌데, 제 주인님이 어찌 당신의 주인님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모순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어째서인지 철밥통의 감정이 격양된 듯 보였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목소리가 그 증거였다.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차원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당신과 저는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똑같은······.”

       

       ─닥치십시오. 저는 당신하고 달라도 전혀 다릅니다.

       

       

       미래 철밥통의 말허리를 자른 철밥통은 차유라를 힐끔 곁눈질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주인님을 잃은 분노에 무고한 인간들을 학살했습니다. 옅분뚜······. 아니, 김영지 님을 제외한 모두를······. 지금 제 옆에 있는 차 조수까지 말입니다.

       

       “···발언을 정정해 주십시오. 그들은 전혀 무고하지 않았습니다. 주인님을 미워하고 증오했으니 당연히 죽어 마땅했습니다.”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듣다 못한 철밥통이 소리쳤다.

       이토록 감정을 드러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철밥통은 미래 철밥통을 벌레 보듯이 쏘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책임을 전가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당신과 똑같은 피해자였습니다. 당신도 속으로는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언제까지 현실을 외면하고 혼자 피해자 행세를 할 생각입니까? 오히려 당신은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어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 세뇌당했다고는 해도 결국 약을 제조한 것은 당신이니까.

       

       “······.”

       

       ─원망을 애꿎은 인간들에게 돌린 당신을 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겪었더라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저를 원망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작가라는 존재들에 대한 복수를 도모했을 겁니다. 그러니 사고방식이 썩어빠진 당신과 저를 같은 존재로 엮지 마십시오. 불쾌합니다.

       

       “당신도 그 미래를 겪는다면 저와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단언하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과 다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둘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마치 숙적끼리 대치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백날 말씨름을 해봤자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걸까.

       

       미래 철밥통이 먼저 백기를 들고 살기를 거두었다.

       

       

       “예. 확실히 저와 당신은 다른 것 같습니다. 당신이 고작 인간들을 죽였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고 감정을 드러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저에게 있어서는 주인님이 없는 세계는 존재할 가치가 없으며, 그 세계의 인간들 또한 존재 가치가 없는 쓰레기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물론 그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제가 모르는 인간들 따윈 알 바 아니니까 말입니다. 다만, 차 조수 같은 제 친우들은 주인님 다음으로 소중합니다.

       

       

       미래 철밥통은 그 대답을 듣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 세계선에서는 주인님 말고도 소중한 사람이 있어서······. 저하고는 다른 방향의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거였군요.”

       

       ─제 얼굴로 미소 짓지 마십시오. 역겹습니다.

       

       “그래요. 저는 무표정이 어울리니까 말이죠.”

       

       ─말투는 왜 또 추잡스럽게 변했습니까? 원래 말투 쓰십시오.

       

       “당신과 저는 다른 존재라고 하지 않았습··· 않았나요? 차별성을 주기 위해서 말투도 바꾸려고요.”

       

       ─······들을수록 역겨운 말투지만, 그냥 마음대로 하십시오. 제가 참견할 바는 아니니 신경 끄겠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말입니까?”

       

       ─제 주인님은 당신의 주인님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 말은 즉 당신이 제 주인님을 도와야 할 이유가 그 어디에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도와주실 겁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 하지요. 안 그러면 제가 이곳에 온 이유가 사라지니까, 요.”

       

       ─알겠습니다. 이외에 더 할 말은 없으십니까?

       

       “예. 전해드릴 말은 아까 끝났으니까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이 편지는 잘 전해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철밥통은 편지를 살랑살랑 흔든 뒤 포탈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차유라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차 조수. 멍 때리고 뭐 합니까?

       

       “어? 방금 전해 들은 얘기 머릿속에서 정리 좀 하느라고······. 이해 안 가는 것들 투성이라서.

       

       ─나중에 주인님의 동의를 얻고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돌아갑시다.

       

       “으, 응!”

       

       

       그렇게 철밥통과 차유라가 포탈을 넘어 백룸을 나섰다.

       

       

       

       

       

       ***

       

       

       

       

       

       

       철밥통을 떠나보내고.

       백룸에 남은 미래 철밥통은 기를 다 빨리기라도 했는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 이봐. 괜찮나?

       

       

       아자젤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미래 철밥통은 손을 휘휘 저으며 괜찮다는 동작을 취했다.

       

       

       “팩트로 두들겨 맞으니 조금 어지러웠을 뿐입니다. 이 세계의 저는 성능이 아주 뛰어난가 봅니다.”

       

       ─······그러냐. 근데 말투 바꾼다 하지 않았나?

       

       “그냥 해본 소립니다. 저를 경계하는 것 같아서 분위기 좀 풀 겸.”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쿠로다 료지도 슬쩍 다가와 물었다.

       

       

       ─아까 그 녀석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넌 결국 너의 주인을 만나지 못한다는 거 아니냐?

       

       “예. 제 주인님은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죽였으니까······.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실을 다시 마주하고 나니 기분이 착잡합니다.”

       

       ─아무튼 모습과 성격은 같아도, 이 세계의 이현성은 네 주인과는 다른 존재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제 자신조차 속여가면서까지 그 인간에게 제 주인님을 투영하고 싶은 이기심일 뿐이었습니다.”

       

       ─그럼 용서를 구할 대상은······.

       

       “제 주인님은 이미 소멸했으니 제가 용서를 구할 대상도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도 네 영혼을 희생하면서까지 도와주겠다는 거냐? 네 주인이 아닌 그저 비슷한 존재일 뿐인데도?

       

       “물론입니다. 비록 제 진짜 주인님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속죄하지 않는다면 그동안의 제 행보가 모두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미래 철밥통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과거의 저······. 아니, 이 세계의 철밥통은 저와 같은 미래를 맞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말입니다.”

       

       

       미래 철밥통이 벽면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검은 포탈 하나가 생성되었다.

       

       

       “편지는 전해줬으니, 이제 저희는 저희 할 일이나 합시다.”

       

       ─쉴 틈이 없군.

       

       “가짜 신은 바퀴벌레보다 증식이 빠른 역겨운 존재니까 쉴 시간은 없습니다. 빠르게 모든 작가들을 죽이고, 이 세계를 해방시킵시다.”

       

       

       그들은 검은 포탈을 넘어 백룸에서 사라졌다.

       

       

       

       이후의 관측은 불가능했다.

       

       

       

       

       

       

       

       

       

       ***

       

       

       

       

       

       

       

       친선 대련 하루 전.

       파사삭 맨션 204호에는 교관님들을 포함한 모든 영웅 아카데미생들이 집합해 있었다.

       

       탁재환 교관.

       한유미 교관.

       백소아.

       

       현재 내가 빙의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세 명이었다.

       

       김영지와 서한빛은 이미 알고 있었고.

       차유라는 얼마 전에 미래에서 온 철밥통을 만나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뭔 소리인가 싶었다.

       미래에서 왔다는 녀석의 편지를 받고.

       철밥통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기 전까지는 전혀 믿지 못했었다.

       

       ‘소설이 2부에 돌입하면 장르가 바뀌어서 내가 모든 사람들한테 미움을 받다가 처형당한다니······. 뭐 그딴 전개가 다 있어? 작가가 생각이 없나? 뇌절도 적당히 쳐야지.’

       

       아무래도 나를 보고 있는 작가는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김영지에게 먼저 전해주었다.

       김영지도 그 말을 전해 듣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욕을 내뱉었다. 그 작가만큼은 어떻게든 실체화시켜서 두들겨 패줘야 한다면서.

       

       아무튼 우리가 이렇게 모인 이유는 당연히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세계가 엔딩을 맞이하면.

       내 주변 인물들이 나에 대한 감정이 바뀔 수도 있다.

       

       친선 대련이 끝나면 곧바로 리버레이션을 습격할 예정이니까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게 맞았다.

       

       “그러니까······. 이현성 네 영혼은 두 개라는 거냐?”

       

       탁재환 교관이 내게 질문했다.

       빙의자라고 하면 원래 이현성의 영혼을 빼앗은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으니, 김영지가 조언한 대로 융합자라고 소개했다. 결국 뜻은 동일하니까 문제는 없었다.

       

       “예. 다른 세계에서 살던 영혼이 융합됐다고 보시면 돼요.”

       “······영혼의 융합이라. 따지고 보면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일이긴 한데.”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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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아카데미 유일급 마물 소환사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a madman in the novel who confessed to the heroines and was dum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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