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0

       *

         

         

         사선 감지란 무엇인가.

         

         초인이 초인이라 불리우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다. 단순히 빠른 몸놀림과 강한 힘은 사람을 ‘초인’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초인(超人). 인간의 영역을 초월했다는 명칭은 곧 인간의 수준에서 감히 범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

         

         인간의 기술과 지혜로 오로지 같은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고안해낸 가장 강력한 병장기에 거의 완전한 면역을 가지게 되는 시점에서, 그 사람은 초인으로 분류된다.

         

         

        -철컥.

         

         

         이반은 권총을 장전하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 세상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지구인과 완전히 동일하다. 지구의 창작물처럼 뭔가 마나 감응을 위한 내장기관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두뇌의 송과체에 특수한 공능이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혈액량, 근조직, 내장의 구조와 기능, 사지 각부의 작용까지 모두 지구인과 동일하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인간들이 지구에선 상상도 못할 짓을 맨몸으로 저지를 수 있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단 하나다. 지구에선 상상조차 못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마력이다.

         

         

        -스으….

         

         

         이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신경망에 마력을 가속시켰다. 이 불가해한 힘은 인간을 초인으로 탈바꿈하는 원동력이다.

         

         언젠가 회고했듯이, 마력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편의주의적인 힘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이세계인’들은 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누구나 재능만 있다면 다룰 수 있는 힘. 신체를 강화시키고, 마법을 직조하고, 기묘한 공산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힘.

         

         그러나 지구인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마력의 부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고려해야 했다. 무릇 세상 모든 작용엔 근본 원리가 존재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이반은 오랜 군역동안 마력을 깨달은 후부터 온갖 실험을 해왔다.

         

         마력은 어떻게 인간의 신체를 강화 시키는가.

         

         마력으로 인한 강화에 한계는 어디 까지인가.

         

         과도한, 또는 현저히 부족한 마력은 어떤 작용을 보이는가.

         

         스스로의 신체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인체실험. 전쟁이라는 생과 사의 기로에서 수집한 수많은 표본들까지.

         

         그 끝에 얻어낸 것이라면 두 가지.

         

         

         탁월한 수준의 마력 조응 능력과, 마력과 신체의 작용 과정에 대한 이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제 몸의 신경을 한계까지 혹사 시켜가며 얻어낸 감각이었으므로.

         

         그러므로 이반은 확신하고 있다.

         

         초인은 적절한 지도와 재능만 뒷받침될 수 있다면 양산할 수 있다고.

         

         초인 양산을 위한 커리큘럼이란 곧 휼륭한 요원을 한계 없이 충원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므로, 이반은 자신 있게 이 교육 과정을 절멸부대에 도입했다.

         

         아쉽게도, 절멸부대는 고작 총원 800여명을 넘지 못했고 그나마도 모조리 산화해버리고 말았으나.

         

         

         ‘저 녀석들은 다르지.’

         

         

         용사 파티의 핏줄, 반년간 시험해본 바 지닌 적성과 재능은 최상급이다. 저 꼬마들은 분명 그의 교육을 이수하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었다.

         

         거기다 하나 더 첨언하자면, 이반은 합리적인 교육자였으므로 자신이 겪지 못한 일들을 학생에게 강요하는 기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마력 한 줌 가지고 마족들의 눈 앞에서도 했던 일이라면, 그보다 비교할 수도 없이 안온한 지금 이 상황에서 저 꼬마들이 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가 이렇게 자비로운 사람이다.

         

         이반은 권총을 허리에 찬 뒤에 손을 까딱였다.

         

         수신호를 기점으로 숲 전체에 퍼진 요원들에게 행동 개시 지령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신나는 여름 방학 1일차의 일이다.

         

         

        *

         

         

         “에취! 프헷취!!”

         “인간은 왜 손을 달고 사는 거지? 재채기란 것을 할 때 입을 가리는 건 기본적인 보건 상식 아니야? 손은 흙장난 하려고 만들어진 기관이 아닐텐데.”

         

         

         에시디스는 훌쩍이며 엘피헤라의 말을 무시했다.

         

         모두가 숲에서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을 시점에 엘피헤라는 마차 안에서 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뒤부터 쭉.

         

         거기다가, 모닥불이 꺼질 때에도 자기한테만 보온 마법을 걸어두고 푹 자고 일어난 참이 아닌가!

         

         

         “대, 대체 왜 이런… 프헷취!”

         “쪽지가… 있네요….”

         

         

         오스칼은 멍하니 바닥에 굴러다니는 쪽지를 주워들었다.

         

         쪽지는 정갈한 표준 서체로 적혀 있었다.

         

         

         [심야에는 작은 불꽃도 시인성이 좋다. 적지에선 불을 피우지 마라.]

         

         

         “대체 언제부터 크라실로프가 적지가 된 거죠?”

         “아저씨 은근히 이런 거 좋아해. 니가 이해해.”

         

         

         이자벨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내려갈까, 올라갈까. 길 찾을 자신 있는 사람?”

         “어제 에시디스 양과 함께 장작을 주우러 가던 길이 마침 하산 루트 방향이더군요. 느낀 바가 적지 않습니다.”

         “응?”

         “저 아래는 지옥입니다.”

         

         

         오스칼은 끔찍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세 발자국 걷기 전에 한 번씩 함정이 있어요. 함정을 발견해서 해체하거나 피하면, 그 방향에 맞춰서 또 다른 함정이 있더군요. 들은 적 있어요. 이건…. 절멸부대의 솜씨겠군요.”

         

         

         연합 왕국의 수많은 특수목적 군사 조직들 중에서도 유독 크라실로프의 군사 기관은 특이한 행태로 유명했다.

         

         기본적으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든 무력과 대응력에 치중한 다른 국가와는 달리, 크라실로프의 군사 조직은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기본 행동 원리로 삼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빡치게 만들 수 있는가.’

         

         

         이를 조금 더 곱게 포장하자면 심리전의 달인이라 하겠다. 정보의 사전차단, 취약점만을 노리는 치밀한 설계, 때론 화약, 때론 생화학, 때때로는 인질극까지 자행하며 벌이는 더러운 작전 계획.

         

         말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가며 적진 지휘부의 판단을 어지럽히는 것에만 전념한 작전 수립 방식이다.

         

         그런 크라실로프의 전설적인 타격대. 전쟁 시절 용사 파티의 척후를 담당했다는 소문이 있는. 그리고 짧은 존속 기간과 그에 대비되는 흉흉한 소문으로 업계에서 유명한….

         

         절멸 부대는 전투 기록과 전훈만으로도 각국 첩보부대에 큰 자취를 남긴 조직이다. 틸레스 비밀정보국 소속으로서 오스칼은 절멸 부대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게 뭔데?”

         “이 나라 옛 첩보부대인데, 뭐 중요하진 않아요. 중요한 건, 그쪽 출신을 상대해야 하는 지금 상황이죠.”

         

         

         오스칼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올라오라고 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과정 자체가 훈련이거나, 올라가면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다거나. 그렇다면 내려가도 된다고 한 이유가 뭘까요?”

         “어차피 내려가지 못할 걸 알아서.”

         “맞아요.”

         “늘 그런 식이지, 뭐. 하여간.”

         

         

         이자벨은 기지개를 켜며 씩 웃었다.

         

         

         “어차피 뒤로 빠질 생각은 없었어. 뭘 준비했든지 한 대는 먹여줘야 속이 좀 풀릴 것도 같고.”

         

         

        *

         

         2시간 후, 학생들은 온몸에 진흙과 낙엽을 덕지덕지 붙인 채로 바닥을 버적거리고 있었다.

         

         

        -타앙—!!

         

         

         먼 거리에서 총성이 울릴 때 마다 으악! 하며 주저 앉았다. 실탄은 아닌지, 맞아도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더럽게 아프다!

         

         

         “총을! 총을 쏴!?”

         “어제도 쐈어! 엎드려!”

         

         

        -타앙!!

         

         

         총성이 들리자마자 푸른 불똥이 튀더니 엘피헤라가 픽 쓰러졌다. 방호 주문이 깨져버린 탓이다.

         

         

         “마나 다 썼다고!! 그만 쏘라고요!! 미친 인간들 같으니라구!!”

         

         

         엘피헤라는 곡소리를 내며 바닥을 기어 엄폐물을 찾았다. 그녀는 큼직한 바위 뒤에 웅크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슬쩍 고개를 뺐다.

         

         

         “갔나…?”

         “계속 있긴 하겠지. 방심할 때 마다 쏘겠다는 것 같은데.”

         “이게 무슨 훈련이야! 이거 그냥 자기들이 사격훈련 하겠다는 거 아니야?!”

         “사선 감지 훈련 같군요.”

         

         

         오스칼은 나무 뒤에서 숲 속을 살피며 말했다.

         

         

         “긴장하지 않고 있을 때 총격으로 급습. 그걸 반복해서 사선 감지를 깨워주겠다는 것 같은데….”

         “진짜 군대에서 이런 식으로 훈련해?”

         “그럴 리가요.”

         

         

         오스칼은 참담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대장님, 4번조 귀환했습니다.”

         “수고했다. 8번조는 감시로 돌리고, 4번조는 8시간 휴식한다.”

         “예, 대장님.”

         

         

         야전 막사에서 지도를 바라보던 이반은, 보고를 마친 담당병이 돌아가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질문 있나?”

         “예…!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작전 사항에 대해 문의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지?”

         

         

         담당병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적어도 5년 이상의 현장 경험이 있는 요원이었지만, 눈 앞의 인물은 그야말로 전설적인 존재였던 탓이다.

         

         방첩사령부의 그 증오스러운 ‘훈련’ 계획서. 이른바 신병고문안내서의 집필자다. 그런 사람이 직접 ‘민간인’을 훈련 시키고 있으니 그가 지금 느낄 공포는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작전지역 12시 방향의 민가 소개와 해당 지역의 병력 차출이 이번 작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흠.”

         

         

         이반은 담당병의 시선을 따라 작전 지도를 훑었다. 산의 중심을 기준으로 전개된 작전 권역에서 12시 방향이라.

         

         화전민촌 하나가 있는 별볼일 없는 산턱이며, 동시에 ‘훈련생도’들의 이동 반경과 정 반대편이다.

         

         즉, 훈련생도들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도달할 리가 없는 지역이다. 굳이 그 지역의 민가를 소개하며 인력을 낭비해놓고, 또 굳이 그 지역에 전개한 병력을 차출해버린 이유를 모르겠다는 뜻이다.

         

         12시 지역은 말 그대로 ‘무인지대’가 되었다. 일반적인 군사 작전이라면 이런 지역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감시 초소 하나는 배정해야 했다.

         

         

         “자네 이름은?”

         “저, 저는 미하일… 미하일 소로모비치입니다!!”

         “훌륭하군. 미하일. 자네 생각은 어떻지?”

         

         

         이번 작전은 물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현장 요원들의 학습을 도외시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합리적인 교육자라면 무릇 담당 학생 전반의 습득 역량을 최대한 끌어 올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반의 물음에 미하일은 딱딱하게 굳은 채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부의 훈련생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건 꼭, 외부의 가상 적군을 대상으로 한 모의전 훈련 같습니다.”

         “모의전이라.”

         “예, 꼭 적군이 침투하기 좋은 루트를 하나 파둔 것만 같은….”

         “합격이다. 자네 계급은?”

         “중사입니다!”

         

         

         이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민으로 입대해서 방첩사령부 타격대의 중사까지 올라왔다면 실전 경험도 충분하겠군.

         

         

         “이번 작전이 끝나면 자네는 임관 장교일세. 사령부실로 출근하게.”

         “여, 영광입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답을 해주자면, 자네 생각이 맞네.”

         

         

         이반은 작전 지도에 텅 빈 구획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적들을 유인하는 모의전 훈련이라. 맞는 말이지.”

         

         

         훌륭한 요원은 결코 한 번에 한 가지 목적으로 작전을 수립하지 않는다.

         

         학생들을 위한 훈련 계획이 작전의 목적이라 하더라도, 그것 하나만을 위해 이런 대규모 인력 동원을 무리하게 추진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반은 천천히 무장 상태를 점검하며 대답했다.

         

         

         “아카데미 수련회가 습격을 당하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라네.”

         “네?”

         

         

         왕세자파.

         

         숙청 귀족의 잔당.

         

         마족.

         

         그도 아니면 타국의 반군이거나, 국제적 테러 조직. 뭐가 되었든.

         

         이번엔 누가 오나 보자.

         

         이반은 상식적인 사람이었으므로, 이런 종류의 습격을 대비할 때 고문 계획 또한 준비해 놓는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엔 그를 지원할 ‘방첩사령부 현장요원’이 적어도 50명은 더 있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당연히 수련회는 습격 받아야 합니다.
    습격이 없는 수련회란, 아카데미 수련회가 아니라 그냥 고등학교 체험학습이기 때문.
    이것은 나히아에서 증명되었다.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