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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수많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에서 즐거이 떠들고 있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음식과 술이 있으니, 그것은 이미 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루크도 그러한 분위기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즐거운 분위기를 마다하는 사람은 속이 꽤 뒤틀린 사람뿐일테니까.

    물론 매일같이 이렇게 시끄럽다면야 극구 사양이다만, 가끔은 이런 행사의 필요성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터다.

    그러나 전쟁을 하는데에 명분이 필요하듯, 축제를 하는데에도 핑곗거리가 필요한 법.

    축제의 핑계가 되어 얼떨결에 행사의 중심에 선 인물은 다름아닌 루크 이루시였다.

    오늘은 그가 10살이 되는 날이었으니까.

    10살이라면 인생에서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 준 성인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게다가 탄생일은 마력적으로도 특별한 날이다.

    그런데에다 무려, 마법에서 완전함을 상징하는 10번째 생일은 마법적으로 다시 오지 않을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따라서 루크도 오늘같은 날에는 시끄러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얼굴만 아는 많은 귀족들이 제각기 머리를 쥐어짜낸 ‘친애하는 루크 이루시’로 시작되는 웅장한 서술과 길다란 인삿말로 자신에게 ‘생일 축하’를 보내는 것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루크의 귓가에 정확히 틀어박혀 빠지지 않는 인삿말이 하나 있었다.

    “10살이 되신거 참으로 축하드립니다, 루크 이루시 나리.”

    이것은 오늘 수없이 많이 들어온 인삿말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인사.

    축하문에 미사여구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서? 

    예법이 엉망이라서? 글쎄, 그런것도 있기는 하지만 가장 특이할 점은 그 인사를 건넨 화자에 있었다.

    “오늘은 정말로 특별한 날이군, 케일. 그대가 내게 예의를 다 차릴 줄이야.”

    케일 프롭슨, 그가 루크에게 이토록 존대를 하는 경우는 손에 꼽았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자면, 검술연습을 굳이 복도에서까지 하다가 값비싼 도자기를 깨먹고는 제발 마법이든 뭐든 해서 고쳐달라던가, 정원에 생긴 벌집을 제거하다가 온몸이 퉁퉁 부어서는 제발 괜찮은 약좀 지어 달라던가 하는 경우를 꼽을 수 있으리라.

    뭐, 루크도 케일에게 구태여 예의를 강조한 적은 없었으니 그것을 딱히 지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가 스스로 아무이유 없이 자신에게 예의를 차리려 한다니, 쉬이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 특별한 날에 이변을 일으킨 남자, 케일 프롭슨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보는 눈이 많아서.”

    “이런 맙소사, 우리의 케일 프롭슨 경께서 드디어 눈치를 갖게 되었군. 오늘이 정말 특별한 날이긴 한 모양이야.”

    “윽, 때려치워. 젠장. 도련님을 괜히 존대해드렸네.”

    루크가 귀족적으로 과장된 억양으로 칭찬하자 그것이 자신을 놀리는 것임을 깨달은 케일이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그나저나, 왜 이런데 처박혀 계신가. 파티의 주인공이신데.”

    “별로 흥미로울게 없어서.”

    어차피 저들은 축제를 벌이고 사교를 할 핑계가 필요할 뿐이지, 루크의 생일을 정말로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들이 아니다.

    애초에, 귀족의 생일을 이렇게 성대하게 축하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말이다.

    아마도 모두 마계의 차원침식으로 뒤숭숭한 상황을 잠시만이라도 잊어보고자, 어떻게든 핑계를 지어낸 것이리라.

    대륙 곳곳에 정체불명의 던전들이 생겨나고, 듣도보도 못한 몬스터나 아티팩트가 튀어나오고, 식물들이 죽고, 멸망한 영지의 영지민들이 도적떼로 변질되고…….

    다행스러운 사실은, 마계의 침식은 아직까지는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급 재앙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모르고, 신탁마저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이런 때일수록 영지민들에겐 축제가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어둠에 삼켜지기보다야 차라리 축제를 즐기는 편이 좋겠지.

    “그럼 대체 뭐가 흥미로우실까.”

    “글쎄, 마땅히 생각나는건 없지만……. 그래, 오후에 있을 투기장은 좀 구경을 해보고 싶군.”

    몬스터의 형태는 아직도 책으로밖에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

    “예? 뭐라고요?”

    케일이 목소리를 높였다.

    “죄송합니다, 그……. 오늘 오후에 있을 경기의 선수가 전날 입은 부상이 낫지 않은데다 식중독까지 겹쳐서, 도저히 출전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라……. 대형몬스터와의 결투는 다음으로 미뤄졌습니다! 대신, 해상모의전은 예정대로 진행될 거라…….”

    머리를 조아리는 남자의 눈가엔 짙은 피로감이 묻어나왔다.

    알만하다, 오늘 꽤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물어보았겠지.

    오늘 있을 예정이던 전투는 고블린이나 그렘린같은 소형몬스터가 아니라 중~대형으로 분류되는 트롤과의 1대 1전투였으니까 말이다.

    분명 굉장한 볼거리였을텐데.

    케일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흠. 어쩔 수 없네. 다음에 와야겠어, 도련님.”

    루크는 케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치 악동같은 표정.

    그 표정에 케일은 어쩐지 오한이 들었다.

    ‘루크가 저런 표정을 지으면 보통 뒷맛이 좋지 않았었는데.’

    하루는 자기를 개구리로 만들어보겠다고 이상한 짓을 하다가 하루종일 개굴개굴하는 소리밖에 내지 못한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그 예감은 빗나가질 않았다.

    “케일, 그대가 대신 나가면 되겠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당황한 케일의 목소리는 뒤로하고, 루크는 투기장의 주인에게 광고하듯 케일 프롭슨을 가리키며 말했다.

    “녀석은 꽤 재능있는 검사이고, 오러서클도 형성된 유망있는 젊은이라네. 트롤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거라 보는데.”

    “이봐, 도련님! 내 의견은?”

    “그런게 필요한가?”

    피식, 웃어버리는 루크의 표정에 케일은 이번엔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데, 기사는 이런 투기장에 참여 안해.”

    그렇다. 

    ‘기사’는 투기장같은 곳에 마음대로 참여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이고, 주군의 명령이라고해도 그것은 거절해야한다.

    비록 명령이라고해도 투기장에서 놀음거리가 되는 것은 기사의 영예에 반하는 짓이기에 거절할 수 있으며, 거절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은 ‘동의’와 다를 바 없는 불명예이기에.

    “흠.”

    그러나 루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는 간단히 반박했다.

    “케일, 그대가 언제부터 기사였지? 내 기억상으론 ‘아직’ 기사 서임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아는데.”

    “…….”

    그건 그렇다.

    기사서임이 예정되어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루크 이루시의 종자’…….

    “젠장.”

    ——-

    트롤은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애초에 몬스터와 싸워본 경험이 전무한게 문제였을까.

    트롤은 뚱뚱한 몸집탓에 둔할거라는 뭇 사람들의 편견과는 전혀 달랐다.

    빠르고, 강력했다.

    녀석의 무력은 확실히 웬만한 기사의 수준에 닿아있었다.

    세련된 마력의 운용이나 몸을 움직이는 특별한 기술따위는 없지만, 단순한 물리력으로 기사를 찍어누를 수 있는 대형 몬스터의 위용을 충분히 뽑아내었다.

    게다가 특이할만한 것은 역시 재생력일까.

    물론 트롤의 재생력이 특별하다고는 하지만 민간에서 전해지듯이 사지를 잘라도 다시 돋아난다고 할 정도로 강력하진 않았다.

    그러나 출혈을 금방 멎게해 전투 지속력을 끌어올리는 정도로는 충분했고, 케일 프롭슨이 애를 먹었던 부분도 그쪽이었다.

    케일이 비록 젊은 나이에 기사 서임이 예정된 몸이라곤 하나, 트롤과 1대 1로 압도할만한 실력까지 갖추진 못하였다.

    무엇보다, 체격과 완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비록 트롤의 공격에 맞아줄 케일은 또 아니었지만, 전투가 계속 이대로 진행되다간 체력이 바닥나 공격을 허용하게 되는것은 시간문제…….

    -퍼억-!

    트롤의 몽둥이가 묵직한 타격음을 울렸다.

    그것에 맞은 케일은 마치 공처럼 날아가 바닥에 몇번 튀기며 몸에 흙을 묻혔다.

    머리가 찢어졌는지 피까지 흐르고 있고, 입고있는 옷은 굉장히 더러워져서 본연의 원색적인 화려함을 잃었다.

    죽었나?

    하지만 케일은 몸을 움직였다.

    검을 놓치지 않고 일어난것만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 다음번 공격은 버텨낼 수 없으리라.

    ‘……라고, 생각할까. 우리의 관객들은?’

    루크는 피식, 미소지었다.

    그럴리가, 케일은 지금 오기를 부리고 있었다.

    루크는 가볍게 서클을 돌려 바람에 목소리를 실어보냈다.

    “이제 충분하지? 이제 그만 ‘기술’로 이기겠단 오기는 때려치우게, 그대는 지금 몬스터를 기술만으로 이길 실력이 안돼. 아까도 살짝 삐끗하는게 보였다.”

    “크아아아! 닥쳐, 루크!”

    케일이 포효했다.

    ——-

    “그래서, 우리의 ‘멍청한’ 케일 프롭슨께서는 결국 내게 헌금까지 내게 해야 직성이 풀리나? 공연 보수금까지 전부 그대의 치료비로 나가게 하다니.”

    “닥쳐…….”

    “걱정 말게, 오늘 트롤과의 대결에서 있었던 그대의 깨달음은 내 필시 온 후대에 전해지도록 기록으로 남겨둘테니.”

    “그런거 하지마!”

    루크가 마침내 석판에 무언가를 새겨넣기 시작하자 케일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뭐라고 쓸지가 뻔하다. 

    검술 시험해본다고 깝치다가 안맞아도 될 공격 맞고 바닥에 구른 부끄러운 호위기사에 대해 적고 있겠지.

    방구석에서 마법이나 연금술같은거나 끄적이는 공상가 도련님주제에 검술에 대해 뭘 안다고!

    케일이 그리 속을 끓여대고 있자, 준비가 끝났는지 작은 소녀가 몸보다 조금 커보이는 성직자의상을 입고는 다가와 인사했다.

    “치료 시작할게요! 다친곳을 보여주세요!”

    밝은 목소리에 케일은 치료가 용의하도록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작은 여성직자가 피가 흐르는 머리 위로 신성력을 뿌리며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투기장에서 트롤이랑 싸웠던 분이시죠?”

    “그, 그렇습니다만. 혹시 보셨습니까?”

    “물론 봤지요!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고전하시다가 마침내 단칼에 적을 베어버리는 멋진 모습을요! 정말 조마조마했답니다.”

    “…….”

    “하하하! 남들에겐 그렇게 보였나보군, 케일.”

    “시끄러워!”

    이거, 굉장히 부끄럽구만!

    ‘사실은 그냥 타이밍을 실수해서 맞은건데.’

    한바탕 즐겁게 웃은 루크는 케일을 치료하는 소녀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신성마법까지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오랜만에 외출로 얻어가는 경험이 많다고 생각하며 눈을 빛내던 루크는 문득 감탄을 터트렸다.

    “호오.”

    상당히 어린데도 흘러나오는 신성력이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거의 교황에 필적할 수준이 아닌가?

    흥미가 생겼다.

    그리 생각하며 소녀의 얼굴을 뜯어보고 있으니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루크의 시선을 피했다.

    “저기, 왜 그렇게 보시죠……?”

    “신경 쓰지 말게, 그냥 흥미가 생겼을 뿐이니까.”

    “네, 네엣?”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지? 교회에서의 직책은?”

    “음……. 그게, 저는 레니에라고 합니다만, 그것이…….”

    당황한듯 시선을 돌려대는 소녀, 그리고 잠시후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침에 소녀는 깜짝 놀라서 신성력을 거두고 파랗게 질렸다.

    “원장수녀님……!”

    “성녀님! 또 허락없이 외출을 하신겁니까!”

    “아, 아니에요! 허락 받았어요! 수, 수녀님이 해주셨잖아요!”

    “제가 언제요!”

    “어젯밤에요……?”

    “잠꼬대는 허락이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은 또 왜 치료사 의상을 입고 있는 거에요?”

    “그게……. 그냥 이분이랑 대화하고 싶어서…….”

    그녀는 계속 뭐라고 변명하지만 단호한 원장수녀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칭얼거리던 그녀는 마침내 양팔을 다른 수녀들에게 붙들려 끌려가고 말았다.

    그 광경에 조금, 아니 굉장히 당황한 루크와 케일은 서로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방금 그게 성녀라고? 맞아, 루크?”

    “나도 들었다네. 신성력은 확실히 그래보였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성녀님께서 독단적으로……. 더 치료가 필요하시다면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원장수녀는 루크와 케일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건 됐네. 헌데, 성녀라니?”

    “오늘 영주님의 아드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어제 도착하셨습니다만, 성녀님께서 워낙 말괄량이셔서 말이지요…….”

    그 영주님의 아드님이 눈앞에 있는 귀족적인 의상을 입은 사람인줄은 모르는 모양이다.

    하긴, 오늘은 영지에 귀족들이 워낙 많아야 말이지.

    의상을 보고 맞추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루크도 그것을 알고 구태여 외출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

    루크도 굳이 자신을 밝혀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원장수녀의 설명에 당황이 조금 가셨는지 몸을 일으킨  케일 프롭슨이 루크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럼 또 만나겠네, 그렇지?”

    “그렇겠군.”

    루크는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레니에라고 했던가.”

    그 어린나이에 성녀라니, 상당히 재미있는 성녀로군.

    “……그나저나, 교회에서 치료비 안 받아서 굳었는데, 그 출전비 나 줘야하는거 아냐?”

    “그럼 치료도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지. 음, 돌아가는 길에 어딜 들를까. 의견을 좀 내보게.”

    “말 돌리지 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00화특집으로 루크가 ‘진짜’ 어렸을 때를 써보았습니다.

    하하!

    그렇습니다.
    사실 이 소설은 무려 정통 판타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TS물에서 주인공이 남자일 때를 묘사하는건 금지였던가?

    음, 생각해보면 지금이랑 별 차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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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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