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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이스미 구릉지는 시에라마드레 산맥과 휴즈 만 사이에 낀 고지대 해안가 일대의 명칭이었다.

         

       앞마당에는 국경이, 뒷산에는 드래곤이, 이웃으로는 강인한 고산 민족이, 지역 안에는 미개발 자원이 풍부해, 당장이라도 영지 개발 신화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입지를 가진 곳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국경이 가까워 투자 유치가 힘들고, 드래곤이라는 위협 요소 때문에 안전도는 극히 낮으면서, 고집스러운 이웃들 덕에 사사건건 분쟁에 휘말렸으며, 빽빽한 삼림과 구릉 때문에 발전하기는 힘든 땅이었다.

         

       그래도 이곳은 키예프와 샤를로티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육로였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두 나라의 가교 구실을 한 덕에 지금보다 훨씬 발전했던 지방이었다.

       그러나 항해 기술의 발달, 크고 작은 운하의 개발, 산맥을 넘는 새로운 루트들의 발견 등으로 인해 예전의 성세를 잃고 쇠락해가고 있었다.

         

       유빙이 끼기 시작하는 겨울이면 휴즈 만에서 배의 운용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구릉지를 통과하는 여행자들이 많아지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7월 말이었다.

       다들 배를 타면 탔지 이스미 구릉지의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이용하려 들지는 않았다.

         

       드발체프는 그러한 이스미 구릉지에 있는 마을 중 하나였다.

       평소라면 드발체프 사람들은 고랭지에서 여름 배추를 수확하느라 한창 바빴을 시기였다.

         

       그러나 며칠 전, 반갑지 않은 손님이 방문하면서 모든 일상이 파괴되었다.

         

       저주 역병.

       소문만으로 듣던 그 끔찍한 재앙이 이 변경의 마을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미 구릉지를 다스리는 영주는 소식을 듣자마자 기사와 병사들을 파견했다.

         

       그들의 임무는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하고 시체는 태우고 외부인의 출입은 막는 것이었다.

         

       저주 역병은 그 이름과 달리 전염성이 없었다.

       그것은 역병이라기보다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저주 현상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의 방호만 충실히 하면 외부로 번져나갈 염려는 없었다.

         

       데볼루트에 감염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은 은하수를 주사하면 감염 부위를 원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은하수는 상비 물품이 아니었다.

       저주 역병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인구의 1할 정도만이 약물로 구원받을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몸 일부가 제멋대로 변성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봐야 했다.

       그러다 몸이 더는 변성을 버틸 수 없게 되면 사망하는 것이었고, 죽은 것이 확인된 사람들은 병사들이 끌고가 그 시체에 불을 붙였다.

         

       전염병이 돌 때, 시체를 소각하는 일은 중요했다.

       병으로 고통스럽게 죽은 시체는 부정적인 영의 파장을 뿜어댔다.

       그것은 어비스와 이 세계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작용을 했다.

         

       특히, 이런 숲속 시골 마을은 영적인 방호에 취약한 편이었다.

       전염병으로 하루에 십 단위 이상으로 죽어 나가기 시작하면 사람을 해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마귀가 출현할 수 있었다.

         

       기사 이바넨코는 두 사람의 방문객을 목책 안으로 들여보냈다.

       두 사람은 자신을 마법사라 소개했고, 데볼루트를 방어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손이 하나라도 아쉬운 마당에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바넨코는 목책에서 내려와 마을 안쪽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장작에 지핀 불이 이제야 서서히 가라앉으며 차가운 연기를 토해냈다.

       

       오늘만 30구의 시체를 태웠다.

       그리고 아직도 500명이 넘는 감염자가 남아있었다.

         

       병세가 심하지 않은 주민들이 그들을 돕고는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드발체프의 인구는 1천 명에 달했다.

         

       애초에 그와 병사 열 명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 현장에 보내졌다.

       역병보다 독하다는 은하수를 몸에 주입받은 채.

         

       이바넨코는 병사들의 면면을 보고 그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발됐는지 알 수 있었다.

       능력도 연줄도 없는 자들.

       그러면서도 부양할 가족들 때문에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이바넨코 기사였지만 그라고 그들과 처지가 다르지는 않았다.

       그는 고지식한 일 처리 덕에 상관에게 미운털이 박힌 몸이었다.

       거기다 그에겐 마누라와 3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에게 명령을 거부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탈모, 발기부전, 영구적인 간 손상 등의 부작용에 동의한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은하수를 주사 받았다.

         

       그는 목책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까는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얼굴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잘생긴 청년과 흰 머리가 눈에 띄는 인형처럼 예쁘장한 소녀였다.

       곡예사라기보다 귀족에 가까운 인상들이었다.

         

       그는 둘에게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은하수를 마차째로 실어온 게 아니라면 얼마나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마을의 신부님은 성정을 20개 정도 사용하고는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셨소.”

         

       저주 역병을 치료하는 데는 3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는 연금술 길드에서 만든 치료제인 은하수를 주사 받는 것.

       둘째는 성교회의 사제들이 사용하는 빛의 말뚝을 박아 넣어 저주 인자를 퇴치하는 것.

       셋째는 다소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감염 부위를 물리적으로 도려내는 것이었다.

         

       마지막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의사가 필요했다.

       변성 부위를 특정하고, 신체를 절단한 후 후속 치료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불운하게도 이 마을의 의사는 역병 초기에 당해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바넨코는 마지막 방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침 의술을 익혔다는 마법사가 도와준다고 나섰으니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힘을 빌린다면 손목이나 발목 정도 잘라내는 것으로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은 있을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이바넨코의 뒤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집마다 문에 고대 제국어로 쓰인 종이가 덕지덕지 발려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익숙한 물건이었다.

         

       단원 중에 역병 걸린 미라 역할을 맡은 밴딕의 소품에 사용되는 것이었다.

         

       성 빅터라고 했던가.

       흑사병을 퇴치하고 역병 군주라는 악마를 물리친 공로로 성교회로부터 성자의 칭호를 받은 남자.

       그가 쓴 전염병 구제에 대한 저술은 당당히 성교회의 비서 중 하나로 대접받았고, 전염병이 돌면 그가 쓴 성경의 구절을 붙여두는 게 풍습이라 했다.

         

       병사들이 잿더미 사이에서 바스라진 유골을 갈퀴로 끄집어 내어 부수었다.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오지 않는 집이 없었다.

       곳곳에서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다.

         

       이바넨코는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긴장하거나 겁을 집어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고, 마야도 소각장에 던져지는 시체들을 무심한 표정으로 관찰했다.

         

       그 모습에 오히려 그가 긴장하고 말았다.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에 비해 둘의 태도는 소름끼치는 구석이 있었다.

         

       이바넨코는 두 사람을 마을 회관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상태가 양호해서 구제 작업을 돕고 있는 주민들이 있었다.

       변성 부위가 신체 말단 부위에 한정된 사람들 말이다.

         

       어차피 ‘절단’은 병세가 심각한 사람에게는 쓰지 못하는 방법이었다.

       두 마법사에게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식량 배급 사무를 처리하고 있던 노인이 처음 보는 얼굴에 놀라 달려왔다.

         

       “저, 기사님……. 이분들은……?”

       “지나가던 곡예, 아니, 마법사 분들이오. 의술에 조예가 있다고 하오. 이분들에게 그대들의 치료를 맡길 생각이오.”

       “치료라 하시면……그?”

       “그렇소. 변성 부위를 잘라낼 거요.”

         

       그의 말에 노인은 두 손을 황급히 뒤로 감췄다.

       그의 변성 부위는 양손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이었다. 장애를 안고가는 게 낫지, 아무리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지만 이것을 잘라낼 수는 없었다.

         

       기사도 그걸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노인장의 손을 잘라낼 생각은 없소. 대신 상태가 양호한 사람들을 추려와 주시오.”

         

       곧 몇 명의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귀 한쪽, 손가락 두어개, 허벅지 살 조금, 어깨 일부 등에 변성이 일어난 사람들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들이 내미는 부위를 보고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그들의 피부는 안에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들끓는 것처럼 꾸물댔다.

       그리고 시시각각 그 형태가 변하고 있었다.

         

       변성이 안정화된 부위도 보기 좋지는 않았다.

       촉수같은 돌기가 돋아났거나, 날카로운 이빨달린 주둥이가 뻐금거리거나, 심지어 눈알 비슷한 것이 껌뻑이기도 했다.

         

       원더스타인은그제야 저주 역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게임에서 지겹게 나온 원더스타인의 힘에 희생된 일반인들.

       그들의 꼴과 똑같았다.

         

       ‘데볼루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게임에서 희생자들의 모습은 이들보다 훨씬 비참했다.

       문어 다리 같은 것이 수십 개나 복부를 뚫고 나와 꿈틀댔고, 눈두덩이에는 안구 대신 뱀혓바닥 같은 것이 날름거렸으며, 손가락은 수미터나 자라나 자기네들끼리 뒤엉켜 피부와 살점이 들러붙어 있곤 했다.

         

       원더스타인에게 직접 당한 희생자들에 비하면 이들은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

       물론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거나 다름없는 본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이건 그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문제였다.

       아니, 어쩌면 이것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그밖에 없을지 몰랐다.

         

       “끄으으, 빠, 빨리 하시오! 어차피 잘라낼 거면 빨리 잘라내란 말이오!”

         

       원더스타인은 자신 앞에 선 환자를 바라봤다.

         

       그의 어깨에는 게딱지 같은 것이 자라나 있었다. 그것은 살갖 속에 몸을 파묻고 있다가 가끔 피부를 쩍 가르고 솟구치더니, 피가 떡칠이 된 근육덩어리를 혀처럼 내밀었다. 핏빛 물체는 8개의 꾸물대는 촉수 같은 걸로 기어나오더니 거품을 한 무더기 뱉어내고는 다시 딱지 안으로 들어가 몸을 감췄다.

         

       게임에서 봤을 때는 이보다 더 잔인한 것도 보고 넘겼는데, 눈앞에서 이런 끔찍한 꼴을 보니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웃는 남자 덕분에 간신히 미소를 유지할 뿐이었다.

         

       원더스타인은 호흡을 가라앉혔다.

       웃는 남자가 가장하는 평정심에 자신의 마음을 맞췄다.

         

       저주 역병이란 무엇인가.

       어째서 데볼루트가 이들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그에 대한 고민은 차후로 미뤄두고,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는 환자의 몸에 손을 대고 진단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가 미처 진단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상태창이 먼저 반응했다.

         

       [자유 데볼루트를 감지했습니다. 흡수를 시작합니다.]

         

       윽.

       갑작스러운 고통이 팔을 타고 흘러들었다.

       수십 개의 바늘이 손바닥을 찌르며 파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데볼루트 14를 습득하셨습니다.]

       [흡수한 데볼루트의 종속화를 시작합니다.]

       [종속화 도ㅈ ㅜ%6ㅇ에는 몸과 시%3ㅊㅇㅅ템에 부하가 걸ㅇ3$립니다.]

         

       상태창이 고장난 모니터처럼 깜빡거렸다.

       악성코드가 침입한 것 같았다.

       그가 가진 데볼루트는 오롯이 그에게 복종하는 녀석이었는데, 흡수한 데볼루트는 야생의 짐승 같았다. 그의 몸속에서 거칠게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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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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