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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이른 아침. 미궁에 갈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자, 그곳에는 마찬가지로 먼저 와있던 리디아와 베니가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다들 제 꿈 꾸셨나요?”

       

       “난 술 마시면 깊게 잠들어서 꿈 안 꿔.”

       

       “샤도우랑 동화된 뒤로 악몽밖에 안 꾸는데?”

       

       숙취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리디아와, 어째서인지 오늘도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베니의 태연한 대답.

       

       그 뻘쭘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저희 그냥 좋은 아침까지만 할까요?”

       

       “응.”

       

       “하이하이.”

       

       -크릉.

       

       베니의 발밑에 드리운 작은 그림자에서 솟은 미니 샤도우가 살갑게 꿈틀거렸다.

       

       아니, 자세히 보니 촉수 끝을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게 변형시킨 것이었다. 눈, 이빨, 혀 등등. 있을 건 또 다 있네.

       

       …혹시 자기 말고 다른 사람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으려나.

       

       베니와 나란히 서 있는 베니 비슷한 무언가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 것도 잠시.

       

       베니가 앉아있는 테이블 앞에 서서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흐음.”

       

       찬찬히 베니를 보라색 정수리부터, 몸에 달라붙는 드레스 끝에 삐져나온 발가락까지 훑어보고는 피식 웃었다.

       

       “베니. 저를 천재 마법사 요나요나라고 불러주시겠어요?”

       

       “…진짜 갑자기 뭐라는 거야?! 그리고 요나요나는 또 뭔데!”

       

       “아니, 베니는 베니베니면서 저한테 그런 말 하기 있어요?”

       

       괜시리 투덜거리며 베니를 향해 여신상 받침대로 쓰던 기초 마법서를 돌려주었다.

       

       “잘 썼어요. 덕분에 손 패가 늘었네요.”

       

       “설마 하루 만에 다 습득한 거야? 아무리 기초 마법이라지만 그게 가능한가…?”

       

       눈을 땡그랗게 뜬 베니의 모습을 보니 살짝 양심이 찔렸지만…그렇다고 솔직하게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는 건 너무 자존심 상했다.

       

       “흐, 흥! 저한테 걸리면 이 정도는 어린애 지갑 훔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죠!”

       

       “왜 불쌍한 어린애 돈을 훔치려고 하는 거야?!”

       

       “제가 그 불쌍한 어린애니까 괜찮아요!”

       

       “안 괜찮아! 범죄의 연쇄 멈춰!”

       

       갓 잡아 올린 고등어처럼 펄쩍펄쩍 뛰며 그러면 안 된다는 베니. 그 활기찬 반응을 즐기고 있자니 뒤에서 유니폼을 갖춰 입은 엘리가 창고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 마 베니. 애초에 요나는 가난한 사람이나 어린애 주머니는 안 터니까.”

       

       “…진짜야 엘리 언니?”

       

       “어. 대신 다 큰 어른 주머니는 자주 털더라.”

       

       “???”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생각해 보세요. 어린애들 돈 뜯어봤자 얼마 되지도 않잖아요?”

       

       “그, 렇지?”

       

       “그러니까 다 큰 어른의 지갑을 노려야죠. 기왕이면 조금 나쁜 어른이면 더 좋구요. 보통 그런 사람들이 현금을 많이 들고 다니거든요.”

       

       “…….”

       

       “요는 효율의 문제랍니다. 엣헴.”

       

       “이, 이런 건 윤리와 범죄의 문제라는 거야 멍청아!”

       

       빼액 소리 지르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베니.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듯,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려 주었다.

       

       “아하하!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렇게 흥분하면…….”

       

       거기까지 말하고는 아까 슬쩍했던 베니의 지갑을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렇게 소매치기당할 수도 있잖아요?”

       

       “내 지갑?! 언제 가져간 거야?!”

       

       “아까 어깨를 토닥일 때요. 제 손에 정신이 집중된 틈을 타, 반대쪽 손으로 슬쩍했죠.”

       

       “나는 몰라도 샤도우에겐 사각이 존재하지 않을 텐……앗! 공범이구나!”

       

       그제야 샤도우가 알면서도 모른 척 내 손장난을 봐줬다는 걸 눈치챈 베니. 그녀가 그림자를 찰싹찰싹 두드리기 시작했다.

       

       물론 샤도우는 귀찮은 듯 몇 대 맞아주더니 스윽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지만.

       

       “사이 좋아 보이네요?”

       

       “이게?!”

       

       “어제보다는 그렇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긴 한데.”

       

       확실히 이전보다는 편해 보인다. 샤도우를 억지로 제어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거나, 언제 진행될지 모르는 침식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줄어서 그런 거겠지.

       

       아마 그만큼 샤도우도 베니를 향해 가시를 세우는 일이 줄어들겠지.

       

       침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속도를 현저히 낮추는 정도는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그나저나 베니. 베니는 오늘 왜 왔어요?”

       

       “내가 불렀어.”

       

       내 질문에 답한 것은 베니가 아닌 리디아였다.

       

       옆에서 엘리가 떠다 준 꿀물을 홀짝이며 숙취에 몸부림치던 그녀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요나. 오늘은 베니랑 둘이서 미궁에 가야 해.”

       

       “네? 왜요? 설마…벌써 저한테 질린 건가요 리디아 님?!”

       

       “…이상하게 말하지 마. 급한 일이 생겼을 뿐이니까.”

       

       “급한 일이요?”

       

       “응. 길드의 소집이 있었어.”

       

       고위 모험가는 길드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대신 여차할 때 길드 또한 고위 모험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데….

       

       말이 요청이지 사실상 반강제나 다름없다. 거절하면 이명과 함께 주어지던 모든 혜택을 토해내야 하거든.

       

       “무슨 내용이었나요?”

       

       “미친 마법사 하나가 마탑에서 사고 치고 도망쳤대. 흔한 일이야.”

       

       “흔한 일인가요….”

       

       담담한 리디아의 반응에 눈만 끔뻑이고 있자니, 마력초 연초에 막 불을 붙인 엘리가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마탑에서는 매일 같이 사고가 나. 대부분은 마탑 안에서 수습할 수 있는 일이라 외부인은 잘 모를 뿐이지.”

       

       “헤에….”

       

       “하지만 그 사고도 상위 마법사가 일으켰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그만큼 뒷수습의 스케일이 커지잖아? 마탑 안에서 끝나면 괜찮지만, 바깥까지 피해가 미친다면 빠른 해결을 위해 다른 모험가를 부르는 거야.”

       

       “리디아 님이 바로 그 해결사인 거네요?”

       

       “그렇지. 리디아는 튼튼한 몸을 바탕으로 여러 무기를 다루니, 어느 상황에서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거든. 그래서 지금 같은 돌발 상황에 자주 불리는 편이야.”

       

       “오오….”

       

       리디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시선이 마주친 그녀가 숙취로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손으로 V자를 그려 보인다.

       

       “이예이.”

       

       영혼 없는 자랑은 덤이었고.

       

       “숙취 괜찮은 거 맞아요?”

       

       “응. 오러 돌리면 금방 깨.”

       

       “…그럼 왜 안 깨고 계신 건데요.”

       

       “오러로 술 깨는 건 멋없는 짓.”

       

       “미련한 짓이 아니라요?”

       

       “미성년자 요나는 모르는 그런 세계가 있어.”

       

       “…….”

       

       전생의 20살 시절. 막 성인이 되어 온갖 술을 미친 듯이 퍼마시던 때의 기억을 떠올려 봐도 이건 리디아가 이상한 게 맞는 것 같다.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잠시. 내 시선을 오해한 리디아가 이번에는 양손으로 V자를 그렸다.

       

       “이예이.”

       

       무표정 더블 피스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베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베니. 그럼 저희끼리 먼저 갈까요?”

       

       “그건 상관없는데…밥은 먹고 가야지.”

       

       “아.”

       

       “뒤에서 엘리 언니가 샌드위치 들고 엄청 시무룩해하고 있어.”

       

       “…….”

       

       뒤를 돌아보자 귀와 꼬리를 추욱 늘어뜨린 엘리가 아련한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뭔가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죠! 든든하게 먹고 갈까요?!”

       

       그리 말하며 잽싸게 카운터 앞에 앉았다.

       

       엘리의 샌드위치는 고기고기라는 느낌이라 맛있었다.

       

       ***

       

       “그럼 우선 어제의 성과를 보여줄래?”

       

       단둘이 내려온 미궁 2층. 안전지대의 번호를 확인하는 내게 베니가 그리 말했다.

       

       “잠시만요. 여기가…32번. 응. 이제 됐어요. 뭐라고 했나요 베니?”

       

       “기초 마법. 어제 배운 거 보여달라고. 그리 자신만만한 걸 보니 익히긴 한 모양인데…사용할 수 있다와 잘 쓸 수 있다는 다르잖아? 우선 촉촉한 물방울부터 시전해 볼래?”

       

       “아, 그거 말인데요….”

       

       뒤통수를 긁적이며 헤헤 웃어보였다.

       

       “사실 다른 기초 마법은 하나도 못 익혔어요.”

       

       “? 아니, 그럼 책 돌려주면서 폼 잡은 건 대체 뭔데.”

       

       “대신 이런 걸 할 수 있게 됐거든요.”

       

       허공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리고 심장 어림에서 들끓는 마력을 단숨에 방출했다.

       

       퍼엉!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전방을 향해 쏘아지는 무형의 충격파.

       

       머리속에 새겨진 지식에 의하면 급할 때 쓰긴 좋지만, 효율은 별로라고 해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이 정도 위력이면 내 가는 팔로 후리는 진심 펀치보다는 세다. 그거면 충분하지 뭐.

       

       내 마력 방출을 본 베니가 순간 눈을 크게 떴으나, 이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뭐어. 깔끔하네. 특성상 낭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기술인데 필요 이상으로 새는 느낌도 없고. 근데 이건 마법이 아니잖아.”

       

       “기다려 보세요. 아직 하나 더 있으니까.”

       

       뻗었던 팔을 그대로 유지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들끓는 마력이 정해진 루트를 향해 순환한다. 뒤이어 떠오르는 선명한 이미지.

       

       다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성이 아니라 무려 2성 마법 아닌가.

       

       그러니 약간의 영창을 덧붙였다.

       

       “제물을 집어삼켜라. 격렬한 불꽃.”

       

       화르륵!

       

       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

       

       움직이거나, 던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내 몸집과 비슷한 크기의 화염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1성에서 2성이 되었을 뿐인데, 성냥불에서 캠프파이어 수준까지 진화한 화력.

       

       뿌듯한 마음으로 베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멍하니 입을 벌린 베니가 있었다. 뾰족뾰족한 상어 이빨도 보다 보니 귀엽네.

       

       “이,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3서클 수준의 마법이라고?”

       

       “아, 이거 3서클이었어요? 어쩐지 강하더라.”

       

       하긴. 1성과 5성은 단계로만 따지면 겨우 네 단계 차이다.

       

       하지만 그 네 단계 만에 기초 마법이 대마법 수준까지 이르러야 하니, 성급이 하나 뛸 때마다 위력도 휙휙 뛰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

       

       혼란스러워하는 베니에게 마지막 폭탄을 떨어뜨렸다.

       

       “아, 그리고 오러도 각성했어요.”

       

       “내가 빌려줬던 거 기초 마법서 맞지?! 응?! 무슨 고대의 마도서 같은 거 아니지?!”

       

       베니는(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허겁지겁 인벤토리를 뒤적이며 이쪽을 향해 들이민 엉덩이 라인이 귀여우니까 괜찮다.

       

       …진짜 저 드레스가 사기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뜌땨아…우땨땨…

    가는 곳마다 블아 빵이 다 팔려서 구할 수가 없는 거시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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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EP.100





       이른 아침. 미궁에 갈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자, 그곳에는 마찬가지로 먼저 와있던 리디아와 베니가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다들 제 꿈 꾸셨나요?”


       


       “난 술 마시면 깊게 잠들어서 꿈 안 꿔.”


       


       “샤도우랑 동화된 뒤로 악몽밖에 안 꾸는데?”


       


       숙취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리디아와, 어째서인지 오늘도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베니의 태연한 대답.


       


       그 뻘쭘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저희 그냥 좋은 아침까지만 할까요?”


       


       “응.”


       


       “하이하이.”


       


       -크릉.


       


       베니의 발밑에 드리운 작은 그림자에서 솟은 미니 샤도우가 살갑게 꿈틀거렸다.


       


       아니, 자세히 보니 촉수 끝을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게 변형시킨 것이었다. 눈, 이빨, 혀 등등. 있을 건 또 다 있네.


       


       …혹시 자기 말고 다른 사람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으려나.


       


       베니와 나란히 서 있는 베니 비슷한 무언가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 것도 잠시.


       


       베니가 앉아있는 테이블 앞에 서서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흐음.”


       


       찬찬히 베니를 보라색 정수리부터, 몸에 달라붙는 드레스 끝에 삐져나온 발가락까지 훑어보고는 피식 웃었다.


       


       “베니. 저를 천재 마법사 요나요나라고 불러주시겠어요?”


       


       “…진짜 갑자기 뭐라는 거야?! 그리고 요나요나는 또 뭔데!”


       


       “아니, 베니는 베니베니면서 저한테 그런 말 하기 있어요?”


       


       괜시리 투덜거리며 베니를 향해 여신상 받침대로 쓰던 기초 마법서를 돌려주었다.


       


       “잘 썼어요. 덕분에 손 패가 늘었네요.”


       


       “설마 하루 만에 다 습득한 거야? 아무리 기초 마법이라지만 그게 가능한가…?”


       


       눈을 땡그랗게 뜬 베니의 모습을 보니 살짝 양심이 찔렸지만…그렇다고 솔직하게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는 건 너무 자존심 상했다.


       


       “흐, 흥! 저한테 걸리면 이 정도는 어린애 지갑 훔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죠!”


       


       “왜 불쌍한 어린애 돈을 훔치려고 하는 거야?!”


       


       “제가 그 불쌍한 어린애니까 괜찮아요!”


       


       “안 괜찮아! 범죄의 연쇄 멈춰!”


       


       갓 잡아 올린 고등어처럼 펄쩍펄쩍 뛰며 그러면 안 된다는 베니. 그 활기찬 반응을 즐기고 있자니 뒤에서 유니폼을 갖춰 입은 엘리가 창고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 마 베니. 애초에 요나는 가난한 사람이나 어린애 주머니는 안 터니까.”


       


       “…진짜야 엘리 언니?”


       


       “어. 대신 다 큰 어른 주머니는 자주 털더라.”


       


       “???”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생각해 보세요. 어린애들 돈 뜯어봤자 얼마 되지도 않잖아요?”


       


       “그, 렇지?”


       


       “그러니까 다 큰 어른의 지갑을 노려야죠. 기왕이면 조금 나쁜 어른이면 더 좋구요. 보통 그런 사람들이 현금을 많이 들고 다니거든요.”


       


       “…….”


       


       “요는 효율의 문제랍니다. 엣헴.”


       


       “이, 이런 건 윤리와 범죄의 문제라는 거야 멍청아!”


       


       빼액 소리 지르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베니.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듯,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려 주었다.


       


       “아하하!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렇게 흥분하면…….”


       


       거기까지 말하고는 아까 슬쩍했던 베니의 지갑을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렇게 소매치기당할 수도 있잖아요?”


       


       “내 지갑?! 언제 가져간 거야?!”


       


       “아까 어깨를 토닥일 때요. 제 손에 정신이 집중된 틈을 타, 반대쪽 손으로 슬쩍했죠.”


       


       “나는 몰라도 샤도우에겐 사각이 존재하지 않을 텐……앗! 공범이구나!”


       


       그제야 샤도우가 알면서도 모른 척 내 손장난을 봐줬다는 걸 눈치챈 베니. 그녀가 그림자를 찰싹찰싹 두드리기 시작했다.


       


       물론 샤도우는 귀찮은 듯 몇 대 맞아주더니 스윽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지만.


       


       “사이 좋아 보이네요?”


       


       “이게?!”


       


       “어제보다는 그렇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긴 한데.”


       


       확실히 이전보다는 편해 보인다. 샤도우를 억지로 제어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거나, 언제 진행될지 모르는 침식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줄어서 그런 거겠지.


       


       아마 그만큼 샤도우도 베니를 향해 가시를 세우는 일이 줄어들겠지.


       


       침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속도를 현저히 낮추는 정도는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그나저나 베니. 베니는 오늘 왜 왔어요?”


       


       “내가 불렀어.”


       


       내 질문에 답한 것은 베니가 아닌 리디아였다.


       


       옆에서 엘리가 떠다 준 꿀물을 홀짝이며 숙취에 몸부림치던 그녀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요나. 오늘은 베니랑 둘이서 미궁에 가야 해.”


       


       “네? 왜요? 설마…벌써 저한테 질린 건가요 리디아 님?!”


       


       “…이상하게 말하지 마. 급한 일이 생겼을 뿐이니까.”


       


       “급한 일이요?”


       


       “응. 길드의 소집이 있었어.”


       


       고위 모험가는 길드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대신 여차할 때 길드 또한 고위 모험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데….


       


       말이 요청이지 사실상 반강제나 다름없다. 거절하면 이명과 함께 주어지던 모든 혜택을 토해내야 하거든.


       


       “무슨 내용이었나요?”


       


       “미친 마법사 하나가 마탑에서 사고 치고 도망쳤대. 흔한 일이야.”


       


       “흔한 일인가요….”


       


       담담한 리디아의 반응에 눈만 끔뻑이고 있자니, 마력초 연초에 막 불을 붙인 엘리가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마탑에서는 매일 같이 사고가 나. 대부분은 마탑 안에서 수습할 수 있는 일이라 외부인은 잘 모를 뿐이지.”


       


       “헤에….”


       


       “하지만 그 사고도 상위 마법사가 일으켰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그만큼 뒷수습의 스케일이 커지잖아? 마탑 안에서 끝나면 괜찮지만, 바깥까지 피해가 미친다면 빠른 해결을 위해 다른 모험가를 부르는 거야.”


       


       “리디아 님이 바로 그 해결사인 거네요?”


       


       “그렇지. 리디아는 튼튼한 몸을 바탕으로 여러 무기를 다루니, 어느 상황에서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거든. 그래서 지금 같은 돌발 상황에 자주 불리는 편이야.”


       


       “오오….”


       


       리디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시선이 마주친 그녀가 숙취로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손으로 V자를 그려 보인다.


       


       “이예이.”


       


       영혼 없는 자랑은 덤이었고.


       


       “숙취 괜찮은 거 맞아요?”


       


       “응. 오러 돌리면 금방 깨.”


       


       “…그럼 왜 안 깨고 계신 건데요.”


       


       “오러로 술 깨는 건 멋없는 짓.”


       


       “미련한 짓이 아니라요?”


       


       “미성년자 요나는 모르는 그런 세계가 있어.”


       


       “…….”


       


       전생의 20살 시절. 막 성인이 되어 온갖 술을 미친 듯이 퍼마시던 때의 기억을 떠올려 봐도 이건 리디아가 이상한 게 맞는 것 같다.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잠시. 내 시선을 오해한 리디아가 이번에는 양손으로 V자를 그렸다.


       


       “이예이.”


       


       무표정 더블 피스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베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베니. 그럼 저희끼리 먼저 갈까요?”


       


       “그건 상관없는데…밥은 먹고 가야지.”


       


       “아.”


       


       “뒤에서 엘리 언니가 샌드위치 들고 엄청 시무룩해하고 있어.”


       


       “…….”


       


       뒤를 돌아보자 귀와 꼬리를 추욱 늘어뜨린 엘리가 아련한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뭔가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죠! 든든하게 먹고 갈까요?!”


       


       그리 말하며 잽싸게 카운터 앞에 앉았다.


       


       엘리의 샌드위치는 고기고기라는 느낌이라 맛있었다.


       


       ***


       


       “그럼 우선 어제의 성과를 보여줄래?”


       


       단둘이 내려온 미궁 2층. 안전지대의 번호를 확인하는 내게 베니가 그리 말했다.


       


       “잠시만요. 여기가…32번. 응. 이제 됐어요. 뭐라고 했나요 베니?”


       


       “기초 마법. 어제 배운 거 보여달라고. 그리 자신만만한 걸 보니 익히긴 한 모양인데…사용할 수 있다와 잘 쓸 수 있다는 다르잖아? 우선 촉촉한 물방울부터 시전해 볼래?”


       


       “아, 그거 말인데요….”


       


       뒤통수를 긁적이며 헤헤 웃어보였다.


       


       “사실 다른 기초 마법은 하나도 못 익혔어요.”


       


       “? 아니, 그럼 책 돌려주면서 폼 잡은 건 대체 뭔데.”


       


       “대신 이런 걸 할 수 있게 됐거든요.”


       


       허공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리고 심장 어림에서 들끓는 마력을 단숨에 방출했다.


       


       퍼엉!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전방을 향해 쏘아지는 무형의 충격파.


       


       머리속에 새겨진 지식에 의하면 급할 때 쓰긴 좋지만, 효율은 별로라고 해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이 정도 위력이면 내 가는 팔로 후리는 진심 펀치보다는 세다. 그거면 충분하지 뭐.


       


       내 마력 방출을 본 베니가 순간 눈을 크게 떴으나, 이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뭐어. 깔끔하네. 특성상 낭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기술인데 필요 이상으로 새는 느낌도 없고. 근데 이건 마법이 아니잖아.”


       


       “기다려 보세요. 아직 하나 더 있으니까.”


       


       뻗었던 팔을 그대로 유지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들끓는 마력이 정해진 루트를 향해 순환한다. 뒤이어 떠오르는 선명한 이미지.


       


       다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성이 아니라 무려 2성 마법 아닌가.


       


       그러니 약간의 영창을 덧붙였다.


       


       “제물을 집어삼켜라. 격렬한 불꽃.”


       


       화르륵!


       


       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


       


       움직이거나, 던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내 몸집과 비슷한 크기의 화염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1성에서 2성이 되었을 뿐인데, 성냥불에서 캠프파이어 수준까지 진화한 화력.


       


       뿌듯한 마음으로 베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멍하니 입을 벌린 베니가 있었다. 뾰족뾰족한 상어 이빨도 보다 보니 귀엽네.


       


       “이,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3서클 수준의 마법이라고?”


       


       “아, 이거 3서클이었어요? 어쩐지 강하더라.”


       


       하긴. 1성과 5성은 단계로만 따지면 겨우 네 단계 차이다.


       


       하지만 그 네 단계 만에 기초 마법이 대마법 수준까지 이르러야 하니, 성급이 하나 뛸 때마다 위력도 휙휙 뛰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


       


       혼란스러워하는 베니에게 마지막 폭탄을 떨어뜨렸다.


       


       “아, 그리고 오러도 각성했어요.”


       


       “내가 빌려줬던 거 기초 마법서 맞지?! 응?! 무슨 고대의 마도서 같은 거 아니지?!”


       


       베니는(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허겁지겁 인벤토리를 뒤적이며 이쪽을 향해 들이민 엉덩이 라인이 귀여우니까 괜찮다.


       


       …진짜 저 드레스가 사기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뜌땨아...우땨땨...

    가는 곳마다 블아 빵이 다 팔려서 구할 수가 없는 거시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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