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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 * *

       

       

       호르티 미클로시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루마니아라는 소재로 나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전장에서 활약하고 그 러시아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폐하이십니다. 또 듣자하니, 미래를 본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앞을 보는 눈이 밝다고 들었습니다. 이 방공협정이 얼마나 제대로 이어지겠습니까?”

       “흠. 제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거란 말이군요.”

       

       

       이게 지금 딱히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네가 어려서 아직 잘 모르나 본데.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지.

       

       하긴, 내가 너무 당근부터 던져줬으니까.

       

       너무 세상 쉽게 본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예. 특히 헝가리 내부에서 이 방공협정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일 거 같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는 당장 독일의 위협도 있고, 불가리아는 그리스 침공을 조건으로 있지만, 우리 헝가리는 좀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자기 혼자 모든 걸 결정하기에는 미묘하다는 것인가.

       

       뭐 그런 말이 나올 거 같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뭔가 필요하다는 것이군요.”

       “하다 못해 오스트리아와 동군연합을 재결성하려면 귀족들을 비롯한 상류층의 설득이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그들을 입 다물게 할 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죠.”

       

       

       일단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해보자.

       

       한마디로 오스트리아와 동군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호르티 본인의 발언력이 강해야 한다는 것.

       

       지금 반응으로 보건대 호르티는 헝가리를 완전히 장악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대체 오스트리아가 제국으로 해체되면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호르티가 지금 이러는 건가 모르겠는데. 이걸 또 묻기에는 너무 내정간섭하는 거 같고.

       

       자, 그럼 내 멋대로 뇌피셜을 만들어보자.

       

       안 그래도 루마니아로부터 도움을 받은 처지고, 호르티가 보다 헝가리를 잘 휘어잡으려면 뭔가 점수를 따야 한다.

       

       

       “예. 최소한 트란실바니아는 받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루마니아가 공산혁명을 막게 도와준 건 고맙지만. 원인을 따지자면 루마니아가 호엔촐레른이면서 지난 전쟁에서 협상국측에 붙어먹어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뒤통수쳐 해체한 탓이 아니겠습니까. 그 전쟁의 패배로 인해 내부에서 공산주의자가 들끓었습니다.”

       “흐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루마니아는 중간에 항복하기야 했지만, 어쨌든 협상국이 승리하면서 해먹을 건 다 해 먹었지.

       

       더군다나 바뀐 역사는 내가 제대로 모른다.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내 모르고 있거든.

       

       일단 소련이 몰락했는데, 그럼에도 헝가리 내부에서 공산주의자가 태동한 것은 뭐 그쪽 나름의 나비효과가 있을 거다.

       

       

       “트란실바니아라. 흐음.”

       

       

       나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니가 알아서 하라고 하기에는 좀 동군연합에 차질이 생길 것 같고.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애초에 그걸 제게 묻는 것부터가 문제입니다.”

       

       

       내가 그래도 이럴 때를 대비했다고.

       

       내가 만든 방공협정은 어디까지나 방공에 한한 것이다. 

       

       

       “예?”

       “방공협정은 어디까지나 ‘방공’말 그대로 공산당에 국한된 방위동맹입니다.”

       “그 말의 뜻은.”

       

       

       슬슬 호르티도 감을 잡았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말이지.

       

       

       “오로지 방공에 한해서 영토를 보장한다는 거지. 예를 들면 방공에 한해서가 아닌 고토를 수복하겠다는 정당한 이유로 트란실바니아의 영유권을 주장한다면?”

       “그래도 되겠습니까?”

       “당장 영국과 프랑스만 하더라도 온갖 눈속임으로 지금처럼 나라를 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치들도 하는데 헝가리라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죠. 그리고.”

       

       

       이것을 말을 해야 할까.

       

       진짜 말장난이긴 한데. 음. 지금은 이거 말곤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러시아에도 그렇고, 날 믿는 사람들이 많잖아.

       

       호르티도 믿을지 누가 알겠냐.

       

       

       “차르께서 부디 복안을 알려주시지요.”

       “우리나라에 ‘특별군사작전’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전쟁’이 아니라 군사작전이라는 의미죠.”

       

       

       내가 내 입으로 이걸 말할 줄은 몰랐다.

       

       이런 말장난 뿐인 행위를 직접 말하게 될 줄이야.

       

       나는 특별군사작전에 대해 호르티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러시아 내에서는 튀르키예 파병을 “또 전쟁이야?”이런 말이 나오지 않기 위해 ‘특별군사작전’으로 포장한 것이긴 하지만,  호르티도 “어쨌든 전쟁아님!”이렇게 포장하면 좋을 거다.

       

       

       “그러면 전쟁선포도 없이 일단 트란실바니아를 장악한 다음. 이건 특별군사작전이라고 한다면?”

       “역시 군인이라 잘 알아들으시는군요. 이 과정에서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를 돕는다면 말입니다. 동군연합이 더 쉽지 않겠습니까?”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의 뒤를 돕는다면, 오스트리아 제국은 헝가리 관료들의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고, 불안정하게 나마 동군연합을 이룰 수 있을 터다.

       

       전혀 나쁘지 않거든 이거. 내가 생각해도 기발해.

       

       

       “으음, 기습적으로 하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판이 너무 커지면.”

       “처음에는 영유권 주장만 하시면서 한번 루마니아를 압박해 보시죠.”

       

       

       그렇게 선을 넘으면 특별군사작전이지만, 루마니아를 압박해 보면서 천천히 트란실바니아를 찾을 판을 마련하는 거지. 

       

       

       “흠, 하지만 갑자기 무턱대고 영유권 주장하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참 바라는 것도 많다. 응?

       

       

       아니, 아니지. 잠깐 기다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혹시 루마니아의 왕자 카롤에 대해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루마니아 내에서도 평판이 안 좋기로 유명한 왕자가 아닙니까. 예전에 차리나의 자매분인 올가 황녀와 혼인 이야기가 나올 때, 올가 황녀께서 문란한 카롤 왕자를 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호르티도 그것을 알고 있구나.

       

       실제로 올가 황녀는 그래서 카롤 2세를 싫어했다고 한다.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은 호르티에게도 내가 미래를 본다는 개소리를 믿게 하는 격이 되겠지만.

       

       이왕이면 확실한 것이 좋지 않은가?

       

       설령 내 예측이 빗나가서 원래 역사와 달리 루마니아 왕실이 돌아간다해도 영유권 주장으로 분쟁 일으킬 때 러시아가 중재하면 되는 일이고.

       

       그나마 명분을 갖춘 것과 적당히 갖춘 것의 차이일 뿐이다.

       

       

       “제가 미래를 점지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물론 저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입니다만. 뭐 이게 안 되면 정말 얼굴에 철판 깔고 영유권 분쟁으로 넘어가야겠지만.”

       “말씀해 보시지요.”

       

       

       약간 기묘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친 호르티.

       

       일단 한번 들어보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그래. 그럼 나는 편하게 이야기하겠다.

       

       믿든 안 믿든 이건 호르티의 결정이고, 솔직히 역사의 개변으로 어디까지 변할지 알 수 없으니 말이야.

       

       

       “앞으로 몇 년 안에 지금의 루마니아 국왕이 카롤을 왕위 서열에서 제외시키고 미하이 왕자를 왕세손으로 책봉할 겁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니 그때를 노려 카롤2세에게 접근해 보시죠. 정당한 왕위를 지지해줄 테니, 헝가리의 정당한 영토인 트란실바니아를 빼 오는 것입니다.”

       “만일 그게 내전으로 벌어진다면.”

       

       

       내전으로 벌어진다면? 오히려 좋잖아.

       

       그럼 바로 특별군사작전을 시행하면 되는 것이다.

       

       솔직히 내전까지는 안 일어날 거 같지만.

       

       

       “특별군사작전입니다.”

       “그럼, 러시아는 전혀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까?”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뭐하러 개입하냐. 개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야 그게 바로 방공협정의 허점이라는 거지. 러시아가 “아 님들 싸우지 마세요” 해도 헝가리가 “방공협정은 공산당 한정 동맹 아님?” 이러면서 트란실바니아 문제로 개입하지 말라고 하면 러시아는 “어쩔 수 없네~” 하고 빠질 수밖에 없다. 

       

       

       “당연합니다. 물론 방공협정이 좀 흔들리겠죠. 방공협정의 틈새라고 하고, 이 부분은 헝가리와 루마니아 내부의 일이라고 아쉽게 개입 못하는 척하다가 헝가리 측에서 우리 러시아에 중재를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하지만, 애초에 그 허점은 불가리아의 차르는 알아차리고 있던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방공협정이니까.

       

       그러니 나한테 방공협정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그리스를 걸고 넘어진 거지. 미리 그리스와의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말이다.

       

       

       “참으로 성녀에 어울리지 않으시군요. 놀랍습니다. 아, 무례하게 발언한 것 같아 사죄드립니다.”

       

       

       호르티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무례한 것도 아니다.

       

       나도 내가 왜 성녀인지 모르겠거든.

       

       사실상 사방에서 오 성녀셔! 이렇게 떠받쳐주고, 러시아 정교회에서도 성녀로 인정하고 있으니까. 그렇기는 한데.

       

       

       “이 바닥이 다 그런 것이죠.”

       “폐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러시아는 중재로 무엇을 얻으십니까?”

       

       

       그래. 중재를 하면 러시아도 받는 것이 있어야지.

       

       그럼 받는 건 베사라비아가 될 거다.

       

       

       “베사라비아가 되겠죠.”

       “루마니아는 기껏 확장한 땅을 다 잃게 생겼군요.”

       

       

       호르티가 비릿하게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말이야. 뭐 루마니아가 러시아나 영국과 같은 편이긴 했어도. 어쨌든 오늘의 일은 루마니아가 전쟁에 참전해서 남들 땅 뜯어먹은 대가가 아니겠나.

       

       페르디난드 1세도 아내와 비교해보면 그리 잘난 인간은 아니다.

       

       사실상 아내가 다 활약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

       

       그 아내도 정상은 아니지만.

       

       

       “애초에 협상국측으로 참전해 트란실바니아와 베사라비아를 뜯어간 루마니아의 잘못 아니겠습니까?”

       “성공만 하면 페르디난트의 아내 에든버러의 마리아가 뒷목을 잡겠군요. 하하하하하!”

       

       

       페르디난드의 아내 에든버러의 마리아.

       

       빅토리아 여왕의 친손녀이며,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의 외손녀라고 하지.

       

       페르디난드 1세의 아내. 루마니아의 왕비이며, 페르디난트를 설득해서 루마니아를 협상국(연합국에 참전시켰다.

       

       이후 보다시피 잔뜩 영토를 뜯어냈다.

       

       사적으로 에든버러의 마리는 굉장히 문란해서 남편인 페르디난드가 있음에도 불륜을 하고 심지어 불륜남의 자식까지 낳았다.

       

       심지어 남편인 페르디난드는 그냥 참았다고. 

       

       아마 트란실바니아를 뜯는 일이 빨라진다면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조금 더 빠르게 재건될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루마니아의 현상유지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루마니아가 실제 역사에서 편을 갈아탔던 것도 생각하면, 역시 좀 불안한 것도 있긴 하고.

       

       그렇다면 호르티를 확실히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저쪽 손을 들어줘야겠지.

       

       음. 그래도 오스트리아까지 내가 손을 뻗칠 수는 없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 협력받는 일은 섭정께서 하셔야 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호르티와 남 모르게 밀약을 맺게 되었다.

       

       호르티가 원하던 장난감을 얻은 어린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돌아갔다.

       

       이건 호르티 학생과 성적조작하는 교사의 느낌이다.

       

       그런데.

       

       

       “과연 대단하십니다.”

       

       

       최근 국방부차관에 오른 미하일 드로즈돕스키 학생이 존경하는  선생님을 바라보듯 눈을 반짝인다.

       

       이 사람, 밀약이라는 성적조작 자리에 있었거든.

       

       “예?”

       “베사라비아는 대전쟁 이후, 루마니아가 슬쩍해 간 저희 영토였습니다. 내전이 끝나고 보니 어느새 스리슬쩍 루마니아가 가져간 상태였죠. 영국이 뒤에 있어서 그간 베사라비아 관련건은 못 꺼냈습니다만.”

       “그랬습니까?”

       

       

       그랬구나. 그건 모르고 있었네.

       

       

       ”처음 베사라비아의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신다고 하실 때는 솔직히 폐하께서 무슨 그림을 그리고 계실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아.그랬습니까.”

       

       

       내가 그림을 그리다니. 우습지도 않지.

       

       나는 그냥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사실은 호르티 미클로시가 폐하를 찾을 거란 거까지 전부 계획하고 계셨던 거군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냥 마음대로 생각하게 두는 게 좋겠지.

       

       이거 괜히. 아 정말 그러려고 한 거 아니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그냥 신비주의 컨셉으로 말끝을 흐리는 것이 낫다.

       

       정말 우연히 얻어걸린 거라고 하면 좀 내 체면도 있으니, 좀 그렇거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100화! 독자분들이 읽어주셔서 여기까지 왔네요!

    실은 100화 때 연참 예정이었지만, 작가의 건강이 맛이 가서 비축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ㅠㅠ

    나중에 전쟁 터지면, 유럽 지도를 한번 만들어야 하는데…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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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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