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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마가렛 라미는 프리나와 같은 해 입탑한 168기의 수석이었다.

        빛 원소 계통의 루스리아 학파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녀는 동기들 중 가장 빠르게 천변의 방을 통과했다.

        백가의 낮은 서열임에도 뛰어난 사교성과 선구안을 바탕으로 지금은 60층대에서 활동하는 중견 공략대의 참모를 맡고 있었다.

        자연스레 동기 모임을 주최하는 것도 그녀의 주도 하에서였고 장소는 대체로 증명의 층이었다.

       

        중층의 공략대는 언제나 인원이 부족하기에 신예를 발굴해내기 적절한 장소였기 때문.

        비슷한 층에서 등반을 하는 동기들에게 정보를 얻기에도 좋았다.

        이번에는 성신제가 겹쳐 모임의 참석률은 평소보다 저조했으나 168기생들은 38층의 작은 술집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한 동안 연락이 끊겼던 동기가 오래간만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프리나? 초대장을 매년 보내긴 했는데 정말로 나올 줄은 몰랐어요.”

        “왜, 왜. 내가 동창회 나오면 안 돼?”

        “그 틱틱대는 성격이랑 방어기제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네요. 여기 옆자리에 앉아요, 창문 열어놔서 시원하니까.”

       

        긴장을 해서인지 식은땀을 흘리는 프리나를 마가렛은 창가로 안내했다.

        가장 구석자리라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다소 안심한 듯 맥주를 주문하고 곧바로 위치노트를 꺼냈다.

        안부를 묻는 말도 건배하자는 말도 전부 흘려들으며 수업 시간 맨 뒷자리에서 하던 짓을 그대로 하는 모습.

        수년 전 같이 강의실을 찾아 헤맬 때랑 똑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마가렛의 눈썰미로 보기에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혹시 화장했나요?”

        “어? 어, 얼굴 들이대지 마!”

        “묘하게 좋은 냄새가 나는데 향수도 뿌렸어요?”

        “설마 누구랑 연애라도 하는 거야?”

        “그 프리나가?”

        “무, 무슨 개소리야! 니들 다 진지하게 받지 마!”

       

        웃어 넘기는 분위기 속에서 몇몇 남자들의 시선이 유독 오랫동안 머물렀다.

        위축된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윤기나는 머리칼이나 위치노트를 붙잡고 있는 반짝이는 손톱.

        맥주잔에 낀 살얼음이 녹은 입술모양의 자국마저 묘한 색기를 발산하는 게 지금까지 알던 동기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자, 너무 놀리지 말고 마저 마시자고요. 프리나도 오랜만에 나왔는데 편하게 있다 가요.”

       

        마가렛은 무리하게 프리나를 대화에 참여시키지 않으려 했다.

        보아하니 성격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괜히 궁금한 걸 이것저것 캐묻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지도 몰랐으니까.

       

        “아직도 그 노트 갖고 다니는 거야?”

        “안에 뭐 써놓았는지 말해주면 안 돼?”

        “해주학파라고 했었지? 거기서 얼마 전에 또 큰 건 하나 나왔다면서?”

        “아, 나도 들었어. 뭐라더라…… 검은별보다 더 끔찍한 저주술사라던데”

        “프리나 넌 모르는 사람이지? 혹시 다른 학파로 전향하고 싶으면 얘기해. 나중에 연락처라도…….”

       

        그러나 화제가 프리나나 해주학파 쪽으로 흘러가는 건 막을 수 없는 수순이었다.

        수습생 시절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뒤에서 낄낄댔으면서 오늘에야 목소리 톤을 바꾸는 녀석들이 제법 많았다.

       

        이거 자리를 파할 때 혼자 보내면 안 되겠는 걸.

        마가렛은 프리나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도망치듯 일어설 때 같이 따라 나섰다.

        데리러 올 사람이 있는지 넌지시 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손을 씻고 나온 프리나는 그녀와 마주치자 먼저 입을 열었다.

       

        “나 네가 쓴 글 읽어봤는데.”

        “네?”

        “마, 마녀들에 대해 적은 거 있잖아……!”

        “아, 2년 전에 클로에 교수님과 공동발표한 논문 말인가요.”

       

        옛날에도 행사나 단합 대회가 있을 때마다 불참했던 프리나였다.

        어쩐지 그간 코빼기도 비치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더라니.

        마가렛은 오히려 안심했다.

        마탑 내에서 저주학파로 통용되는 수상한 학파에서 활동 중인 그녀가 별안간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어서.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마, 마녀는 사고와 영혼을 공유하는 군체라고 하잖아. 그럼 만약에 마녀 중 하나가 탑에서 이명을 얻으면 어떻게 돼?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야?”

        “전제가 두 가지나 틀렸는데요? 마족이 마탑을 40층이나 올라갈 수 있을리가 없고 한 번 마녀화가 진행되면 치료는 불가능해요.”

        “그, 그러니까 만약이라고 하잖아! 나랑 되게 친한 사람이 너한테 물어봐달라고 했어! 가족력이 있다던가 뭐라던가…… 아무튼!”

       

        프리나에게 친구가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마가렛은 머릿속의 한켠에 의문부호를 띄우면서도 친척이나 자매겠거니 싶어 자신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이명은 마법사의 유일(有一)한 본질을 뜻하니까 집단성을 갖는 마녀의 특성과는 상반되는 면이 있죠. 아마 절충안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절충안?”

        “네, 이명 자체에 마녀가 들어가는 거죠.” 

        “맞아, 그랬어!”

        “…….”

        “크흠, 계속해.”

        “다만 이렇게 되면 마녀도 인간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뭐 등반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문제는? 문제가 뭔데!?”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던가.

        마치 자신의 일 처럼 눈을 빛내는 프리나였다.

        좁은 통로를 막고 있으면 눈치가 보이니 마가렛은 술집 밖으로 나가서 마저 설명하기로 했다.

        문을 열자 마탑에서는 보기 드문 은색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새로 들어왔다.

       

        교국의 병사들인가?

        그들은 잠시 프리나를 응시하더니 이내 자리에 앉아 술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야, 뭐가 문제냐니꺄? 사람을 제일 화나게 하는 게 하던 말을 끝까지 안 하는 거고…….”

        “재촉하지 말아봐요. 그러니까 문제는 마녀들이 과연 그것을 용납하겠느냔 거에요.”

       

        수가 얼마 없고 어디에서나 배척받는 마녀들에게 결속력은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난데 없이 신참 하나가 자아를 갖겠다고 설치면 그녀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뭐, 뭐야 별 것 아니네. 지들이 용납 안하면 어쩔 건데?”

        “방법이야 많겠죠. 마녀는 죽지 않으니 십자가에 매달아 어디 심해 밑바닥에 쳐넣거나 뇌를 깔끔하게 리셋시켜버릴수도 있고. 그중에서도 최악은 발푸르기스와 함께 대마녀가 현계에 강림하는 건데, 만약 그러면 최소 국가 하나가 송두리째 전쟁터가 될걸요?”

        “…….”

       

        고개를 떨구며 좌절하는 프리나.

        정말로 사이가 끈끈한 사이였나보다.

        근데 귀족 태생도 아닌 그녀에게 다른 혈육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몇 년만에 만난 동기의 가족관계까지 기억하지는 않았기에 마가렛은 다시 술집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며 말했다.

       

        “뭐, 여기서부터는 이론적으로 정립되지도 않은 가설이지만 마녀의 이름을 달고 탑을 오를 수 있는 경우는 딱 하나에요.”

        “뭔데?”

        “마녀 전체가 감히 함부로 적대하지 못할 존재의 비호를 받는 거죠. 예를 들어…… 명계의 왕이나 태양의 적? 아니면 준하는 괴물이요.”

       

       

       

        *

       

        “우와 괴물이다.”

        “예?”

        “아니, 주딱이라고 했어. 우와, 주딱이다.”

       

        마치 예술작품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에 정순한 마력.

        가면을 쓰지 않고 들어온 마법사는 확실한 순혈 마법사였다.

       

        나는 콧대 높은 백가 출신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순혈마법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저들의 모습이 어떠했던가.

       

        릴리아는 눈 먼 장님처럼 내 결백을 증명해주지 못했고.

        비아지오는 아예 악의의 층에서 나를 시엔과 함께 죽이려 들었고.

        얼음정수기는 내게 목줄을 채웠다.

        유일한 정상인은 수백년 전 마탑을 오르던 메릴린 정도였다.

       

        즉 내 머릿속에서 백가 출신들이 재벌이라면 순혈은 광인쯤 되는 위치.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는 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는지 이름 모를 소녀는 뒤꿈치를 들썩이며 몸을 튕겼다.

        이목구비는 마치 인형처럼 조밀한데 표정 변화는 거의 없다.

        곤란한 점은 그녀가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은 내 정체를 한눈에 알아봤다는 것이었다.

       

        “주딱 맞지? 맞아. 맞는 것 같아.”

        “으음, 아닌데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 주딱이다. 정말 주딱이잖아? 말도 하고 고개도 젓고 우와, 우와, 우와아…….”

       

        우선 부정해봤지만 도저히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나마 가면을 쓰고 있어 저쪽이 내 얼굴을 모른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소녀는 앞에 놓인 카드를 뒤집어 엎었다.

        수레바퀴와 남녀 한쌍이 그려진 그림이 나왔다.

       

        “이건 진짜가 맞아. 응, 방금 순행을 확인했어. 어쩐지 기분도 싱숭생숭하고 갑자기 하층까지 내려오고 싶어지더라니 이거였구나. 그냥 잤으면 후회할 뻔했네.”

        “저기,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주딱, 난 주딱의 아주 오랜 팬이야. 이거 봐봐.”

       

        그녀는 위치노트를 펴서 자신의 계정을 보여주었다.

        ‘천문대묘지기’라…… 일단은 내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차단 당한 이력도 거의 없고 딱히 분탕을 치는 유저도 아니었다.

        작성한 글이 거의 대부분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나 아주 오랫 동안 이날을 기다려 왔어. 일단 여기 싸인해줄 수 있을까?”

        “어…… 표지 뒤에요?”

        “응, 내 닉네임 적고 ‘항상 행복하세요’ 라고 써줘. 그리고 사진도 찍자. 가보로 간직할게, 인증글은 안 올릴 테니까 걱정 마.”

       

        사진을 찍고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은 채 내 몸 이곳저곳을 더듬는 게 최애를 만난 사생팬 그 자체였다.

        나는 최대한 그녀를 진정시키며 대화를 시도했다.

        우선 무슨 상황인지는 파악해야 이후의 대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마침 스몰 토크하기 딱 좋은 물건이 옆에 있었다.

       

        “이 꽃들은 다 뭔가요?”

        “이거? 내가 거둬들여 한을 풀어주고 있는 영혼들이야.”

        “네? 아, 그렇군요. 꽃봉오리가 노란 게 참 예쁘네요.”

        “얘는 배우자에게 바람핀 걸 들켜서 혼나다가 자기 명예가 실추됐다고 느꼈는지 자기 아내에게 결투를 신청했는데 져버려서 목이 잘린 찰스.”

        “…….”

       

        도무지 대화가 안 통하는 화법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무래도 바람을 좀 쐬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타로카드를 늘어놓고 또 다시 이상한 운명을 점쳐 보려는 천문이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저희 우선…… 천천히 걸으면서 이야기해 볼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표지를 바꿔 봤습니다.
    천문대묘지기 리브라입니다.

    낮잠돌고래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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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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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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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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