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0

       

       

       시우는 샤워를 끝마치자마자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대충 십 분 정도가 지나있는 상황.

       

       혹여나 아르테가 위험할까 봐 시우는 다급히 부엌으로 향했다.

       

       

       “벌써 오셨어요? 아직 준비 다 안 끝났는데.”

       

       “네가 위험할까 봐 빨리 끝냈지.”

       

       “신경 쓰지 말고 느긋하게 있어도 괜찮다니까···.”

       

       

       다행히도 아르테는 일찍 도착한 탓인지 별문제가 없어 보였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이것도 나아진 거지.

       

       동거를 시작했던 직후에는 정말로 심각했었다.

       

       

       “뭐야, 갑자기 왜 말이 없어요?”

       

       “아니, 많이 나아졌다 싶어서. 첫날에는 되게 심했는데 지금은 십 분 정도 떨어져 있어도 괜찮아졌잖아. 그때 기억나?”

       

       “···말하지 마요!”

       

       “샤워하는 것도 못 기다려서 주기적으로 문을 두들겨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해줘야 했던가?”

       

       “아아아아아악! 말하지 말라니까!”

       

       

       퍽, 퍽.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아르테가 마력을 담은 손으로 내 등을 내리쳤다.

       

       되게 아프네.

       

       쓰라린 등을 쓰다듬자, 얼굴을 붉히고 이야기하지 말라는 듯 눈을 부라리는 아르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많이 좋아졌다.

       

       그 무렵에는 내 눈치를 얼마나 봤던지.

       

       버리지만 말아 달라는 듯 눈치를 보는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놀리면 역공을 가할 정도로 나를 편하게 대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자리를 비우면 불안해하는 건 바뀌지 않았다.

       

       그 증거로, 내색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처음에 살짝 떨리던 목소리. 흔들리던 눈동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던 거다.

       

       타이밍 좋게 나와서 망정이지, 조금 더 늦었으면 아르테가 힘들어했을 거다.

       

       더는 그런 모습 보이지 않게끔 도와주기로 맹세해놓고 그런 꼴을 볼 수는 없지.

       

       

       “···아르테. 고기 타겠는데.”

       

       “아앗?! 나, 나중에 두고 봐요!”

       

       

       그래도 너무 놀렸던 걸까.

       

       자꾸만 등을 두들기는 아르테 탓에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아르테가 요리하고 있던 스테이크를 언급했다.

       

       황급히 나에게 경고를 날린 뒤 고기를 뒤집는 아르테를 보며 기분이 가라앉았다.

       

       원래는 저런 성격이었어.

       

       수상하기 그지없고, 냉혹한 아라크네로서의 아르테가 원래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성격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용서할 수 없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할 수 없다.

       

       아르테가 그런 짓을 하게 된 것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것도.

       

       전부 그 ‘작가님’ 때문인 거잖아.

       

       아르테에게도 몇 번 물어봤지만, 긍정적인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말은 고맙지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도 목소리만 알고 있을 뿐. 직접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 만약 그녀가 진심을 낸다면 정말 농담하지 않고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말을 아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도와줄 방법을 아직 모른다.

       

       방법은 단 하나.

       

       아르테의 신뢰도를 높여, 그녀가 내게 작가님에 대해 말할 마음이 드는 것. 그것 하나뿐.

       

       그렇기에 나는 아르테의 신뢰를 부술 수 없어.

       

       그녀를 돕기 위해서는 그녀의 신뢰가 필요하니까.

       

       ···그렇지만, 아르테와 같이 지낸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게 아닐까?

       

       아르테가 요리하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슬쩍 보이는 새하얀 목덜미가···. 아, 젠장.

       

       

       “요리 다 됐···. 응? 왜 그래요?”

       

       “아니, 잠깐 눈이 피곤해서.”

       

       “···블루베리 있으니까 하나 드릴까요?”

       

       “응. 부탁해.”

       

       

       큰일이다.

       

       아르테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최대한 그녀를 성적인 눈길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하는데.

       

       시선이 자꾸만 그녀를 향한다.

       

       부드러워 보여. 좋은 냄새가 날 것 같아.

       

       ···껴안으면 기분 좋겠지.

       

       그런 감상이 머릿속을 뒤엎고,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길 여러 번.

       

       시우는 생각했다. 더는 버티기 힘들 것 같다고.

       

       아예 아무것도 모른다면 버티기 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르테와 나는 생각보다 신체적 접촉이 꽤 잦은 편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연애 한 번도 못해본 놈이 아르테와 줄기차게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녀의 사물함에 숨어들기도 했었던가.

       

       빌런을 죽였던 날엔 그녀가 나를 위로해준답시고 뒤에서 껴안았지.

       

       내가 그녀를 업기도 하고, 무릎베개를 해주기도 했었고.

       

       수영복 차림도 봤었지.

       

       이런저런 경험을 해버렸기에 오히려 상상하기 쉬웠다.

       

       쓸데없이 좋은 감각들 탓에 그날들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하고.

       

       분명 껴안으면 기분 좋겠지. 부드러울 거야.

       

       분명 좋은 냄새가 나겠지? 샴푸, 뭔가 좋은 냄새가 나던데. 내가 쓰는 거랑은 조금 다르더라.

       

       

       “자, 여기 블루베리예요.”

       

       “아, 고마워.”

       

       

       아르테가 가져다준 블루베리를 입에 넣으며,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편하다며 입고 있는 돌핀 팬츠와 오버핏의 헐렁한 상의.

       

       물론 아르테의 입장에서는 편하겠지만, 내게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으음, 역시 불편하네.”

       

       

       아르테가 귀찮다는 듯, 무심한 눈길로 뒤를 흘끗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묶기 시작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끝나니까요.”

       

       “···응. 알았어.”

       

       

       미치겠다.

       

       뭐가 미치겠냐면, 너무 취향에 딱 맞는 게 미칠 것 같았다.

       

       헐렁한 상의에 돌핀 팬츠.

       

       머리를 묶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린 자세 탓에 슬쩍 보인 겨드랑이와, 묶인 탓에 잘 보이는 새하얀 목덜미.

       

       만지면 매끈할 것 같아 보이는 허리도 시야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가끔 이렇게 슬쩍 보여주는 노출이 미칠 것 같았다.

       

       눈에 좋지 않아.

       

       지금까지는 최대한 모른 척했지만, 슬슬 이야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르테.”

       

       “네?”

       

       “너 혹시···. 아니다.”

       

       

       오늘은 꼭 말하고 말겠다. 그런 다짐을 하며 아르테를 불렀지만, 내 다짐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집에서는 레오타드를 입지 않는 거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입밖에 내뱉으려던 말은 아끼기로 했다.

       

       아르테가 레오타드를 입는 이유는 나도 유추할 수 있었다.

       

       전투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몸에 걸친 실을 사용해야 하니까 최대한 면적이 넓은 옷으로 입는 거겠지.

       

       교복은 지정되어있어 건드릴 수 없으니, 장갑과 스타킹. 그리고 속옷류로 어떻게든 지속 전투력을 높인 거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따지고 보면 레오타드는 아르테의 속옷이다.

       

       저번에 사물함에 들어갔을 때 확인했다. 교복 안에는 레오타드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그런데 남자인 내가, 아르테에게 그런 걸 말한다면?

       

       아르테, 너. 집에서는 속옷 다른 거 입는구나. 이렇게 말하라고?

       

       미쳤냐, 유시우. 뺨은커녕 그 자리에서 죽이려고 들지도 모른다.

       

       예의도 아니고.

       

       시우는 가슴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아르테는 집에서는 최대한 편한 옷차림으로 다닌다. 그거면 충분하지.

       

       굳이 깊게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

       

       “아무것도 아니야. 빨리 먹자. ···음, 역시 맛있네.”

       

       “그렇죠? 스테이크는 자신 있으니까요!”

       

       

       어느새 여러 번 먹어 익숙해진 아르테의 스테이크를 맛보며 시우는 생각했다.

       

       최근 아르테를 보는 시선이 점점 음흉해져 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억누르고는 있었지만, 슬슬 힘들어지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아르테를 향하는 시선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었다.

       

       

       “하아···.”

       

       

       정말, 정말로 시도하고 싶지 않았는데.

       

       시우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아멜리아라면 뭔가 쓸만한 의견을 내놓지 않을까?

       

       최근 의심도 심해진 마당이다. 더 이상 숨기는 건 의미 없겠지.

       

       아르테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시우는 내일 아멜리아에게 상담을 해보기로 했다.

       

       

       

       ***

       

       

       

       “어쩐지 요즘 너무 자주 붙어있지 않나 싶었는데.”

       

       

       그래, 그런 거였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멜리아는 내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시간 없어, 아멜리아. 잠깐 화장실 간다고 하고 너한테 온 거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너도 중증이구나?”

       

       

       나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아멜리아의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다른 여학생들이라면 이런 상담은 할 수 없을 텐데.

       

       이럴 때면 아멜리아가 아르테와 관련한 사건에 얽힌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시나, 다른 여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변태 취급을 받거나 흥분해서 수다를 떨어대느라 시간을 허비할 테니까.

       

       아멜리아라면 걱정 없다. 이 여자는 그런 걸 할 성격이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멜리아는 사소한 이야기는 모두 집어치우고 내게 말했다.

       

       

       “확실히. 같은 집에서 최대 10분 이상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는 건 상당히 곤란하겠네. 아르테정도면 네가 곤란할 만하지.”

       

       “무슨 좋은 방법 없어?”

       

       “너는 내가 무슨 생각주머니로 보이니? 물어보면 다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여?”

       

       

       아멜리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하긴. 아멜리아라고 완벽한 건 아니잖아.

       

       이런 걸 물어볼 사람이 아멜리아밖에 없기는 했지만, 그녀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거라는 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범한 오류를 깨달았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긴 한데.”

       

       “이, 있어?!”

       

       “···음. 통할지 안 통할지 모르겠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싶은 건 있는데. 해볼래?”

       

       “말해줘. 당장.”

       

       

       안타까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게 희망적인 이야기가 들려왔다.

       

       확실하지 않아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면 해볼 테다.

       

       어떻게든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으니까.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이런 건 어때?”

       

       

       아멜리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설명을 모두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해야만 해.

       

       

       “중요한 건 정성이야. 알겠지?”

       

       “알았어. 고마워.”

       

       “별거 아니야.”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미안, 아멜리아. 나중에 보자!”

       

       

       문득 시간을 보자 오 분이 넘게 흘러있는 걸 발견했다.

       

       슬슬 아르테에게 돌아갈 시간이었다.

       

       시우는 다급히 아멜리아에게 인사한 후, 아르테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애처가도 아니고 저게 뭐야. 누가 보면 이미 결혼까지 한 줄 알겠네.”

       

       

       그렇기에 시우는 아멜리아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공지에 아르테의 일러스트 러프가 올라와있습니다. 한번 구경해주세요.

    Pwiikyarin님, 5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

    그렇게까지 러프가 보고싶었던거냐! 라고 말할수밖에 없네요···.

    아르테를 사랑해주시는 것 같아 언제나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