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장 아장.
그냥 걷고 있는데도 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귀엽다는 것이다.
스윽 –
루나의 얼굴이 나를 향해 돌아왔다.
“걸어쪄.”
마치 무언가를 바라듯 기다리고 있는 루나.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배시시 미소가 생겨났다.
아기는 자고 일어나면 커있다고 했던가.
그게 이렇게나 빨리큰다는 소리는 아닐 테지만….
“진짜 빨리 크는데…?”
“굉장히 흥미롭군. 신성력이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 것인가?”
쑥 커 있는 루나를 본 클로셀 영감님의 한마디였다.
어젯밤까지 루나는 아기의 몸이었다.
아직 기어 다니지도 못하던 작은 몸.
새벽에 침대 위에 서 있는 걸 본 뒤로 루나의 머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턱을 넘어갈 정도의 단발로.
몸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앞으로 몇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두세살 정도의 몸으로 클것 같았다.
“영감님.”
“왜 그러는가?”
“원래 이렇게 빨리 크는 게 맞나요?”
“그렇지는 않다네.”
아장 아장.
아장?
루나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렸다.
쓰담 –
배시시 –
내 주위를 계속해서 빙글빙글 도는 루나.
대략 세 바퀴 정도에 한 번씩 쓰다듬어 줘야 했다.
“직접 물어보는 건 어떤가? 알 수도 있으니.”
자기가 왜 빨리 크는지 아는 아기가 있을까?
루나는 성녀이니 알지도 모른다며 영감님이 나를 재촉했다.
“하부!”
“허허, 나를 부른 것인가?”
“루나, 빨리 커야 해.”
“이유를 물어도 되겠는가?”
“움…모르게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굉장히 앙증맞았다.
영감님의 입꼬리가 씰룩거릴 정도로.
잠시 생각하던 루나가 나를 반 바퀴 돌아서 세레나에게 다가 갔다.
“언니!”
“…응?”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빠!”
아직도 나는 빠인 것 같았다.
루나의 작은 손가락이 클로셀 영감님에게로 향했다.
“하부!”
“허허허허.”
루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란 하부는?”
“파란색 할아버지?”
끄덕.
왜 파란색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할아버지라면 파라몬 영감님일 것이다.
그러니까, 파라몬 영감님은 지금….
일종의 심문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암살자에게 알아내야 할 것이 있다고 했으니, 이걸 어떻게 루나에게 설명해줘야 할까.
클로셀 영감님이 먼저 선수를 쳤다.
“과자를 사러 갔다네.”
“까까?”
“그런 것이지.”
배시시 –
루나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야, 그런데 파라몬 영감님이 왜 파란 할아버지야?”
“움…”
아직 말하는 게 어려운지 고민하던 루나.
“파란빛이야.”
“음…?”
클로셀 영감을 쳐다본 루나가 한마디의 감상평을 남겼다.
“노란 하부!”
“허허허허.”
“하부는…저거!”
손가락이 향한 곳은 길에 핀 꽃.
왜 꽃을 가리킨 걸까?
영감님이 꽃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아, 맞네.”
새삼 깨닫는 사실이지만 루나는 눈이 남들과는 다르다.
육체의 눈이 보이지가 않으니까.
루나만이 보이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빛으로 보인다고 했었나?”
끄으덕 –
역시나 영안과는 다른 듯했다.
사람이 색으로 보이는 듯하니, 그 기질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무슨 색이야?”
갸웃 –
“우움…”
루나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영감님에게 했던 것처럼 비슷한 것을 찾으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없쪄.”
“응?”
“본 적 없쪄.”
나는 색으로 안 보이는 건가?
어쩌면 독특한 색이라 루나가 아직 본 적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물어보려는 찰나 루나가 두 팔을 뻗어왔다.
“업어 줘?”
끄덕.
“더 안 놀 거야?”
“이제 잘 걸어. 자야 해.”
그럼 지금까지 계속 빙글빙글 거린 게?
“걷는 걸 연습한 거야?”
“응!”
영감님이 놀랍다는 듯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기가 스스로 걸음마를 연습한 격이 아닌가?
루나를 안아올리니 내 등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얼굴을 비비며 자리를 잡는 듯 꾸물거리는 몸.
“잘 거야?”
“커야 해.”
“그, 그래…”
아이를 키워 본 적은 없지만,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커야 한다고 잠을 자는 아기?
아무리 봐도 보통 아기가 아니었다.
“천재네, 천재야.”
새근 –
새근 –
한마디를 내뱉기도 전에 루나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내 옆에서 존재감 없이 있던 드잔트가 헛기침을 했다.
“허험…”
“왜요?”
“성녀가 나를 까먹은 것 같군.”
그러고 보니 다 한 번씩은 불러줬는데 드잔트만 빠져 있었다.
클로셀 영감님의 핀잔이 날아들었다.
“그러게 진작에 안 친해지고 뭐 했는가?”
“….”
“참고로, 난 노란색일세. 꽃과 같은 색이란 것이지.”
“….”
“자네의 빛이 더러워서 입에 담기가 그랬던 것일게야. 음! 저게 좋겠군.”
영감님이 대충 시들어 있는 잡초를 가리켰다.
“저런 빛이 아니겠는가?”
“어처구니가 없군. 다시 성녀를 깨워라. 직접 물어볼 것이다.”
이어지는 실랑이.
클로셀 영감님이 한곳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파란 할배, 왔는가?”
“로셀…?”
***
파라몬 영감님이 돌아오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러니까, 냅다 주고 왔다는 말이죠?”
“마침, 제국의 정보원이 지나가더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하르프왕국에 제국의 정보원이 왜 지나다닌다는 말인가.
“그거 첩자 아니예요?”
“휴가 나온 정보원일세.”
“끄응…”
사실 그놈을 어떻게 하던 나랑은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내 볼일은 끝났으니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네.”
“예?”
“혹시 그자에게 무언가를 했는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냥 정체를 알아본 것밖에는.
애초에 영감님이 손수 곤죽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
“자꾸 허공을 보면서 중얼거리더군.”
“허공을요…?”
“내 평생 심문도 하기 전에 암살자 입에서 잘못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처음 보았네.”
대충 뭔지 알 것 같았다.
“혹시 그놈이 잠을 자던가요? 기절이나…”
“기절을 해도 금방깨어나더군.”
“갑자기 숨을 못 쉬고, 몸을 떨면서요?”
“정확하네.”
잠을 못 잔다면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놈에게는 아이들의 영혼이 따라 붙었다.
“가위눌린거예요.”
“…가위?”
아마 아이들의 영혼이 간섭을 시작했을 것이다.
제일 무서운 귀신중 하나가 아이의 모습을 한 귀신이다.
그 모습이 어릴수록 더 심해진다.
아이의 원한은 정말 순도 높은 원한.
거기다 나이가 어릴수록 달랠 방법이 없다.
말이 잘 안 통하니까.
떼를 쓰는 아기를 달래는 느낌이랄까.
“가위가 어떤 거냐면…”
클로셀 영감님의 눈이 번뜩였다.
“자고 있을 때 영혼이 몸 위에 올라가서 밟아대는 경우도 있고.”
“호오…”
“배 위에서 뛰어노는 경우도 있어요. 악몽을 꾸는 거랑 비슷해요.”
그놈의 경우에는 정도가 더 심할 것이다.
영혼이 한두 명이 따라붙은 게 아니었으니까.
당분간은 잘 때마다 가위에 눌리지 않을까?
“자네랑 있으면 신비한 사실을 많이 듣게 되는군. 영혼이란 것은 참으로 신비롭구만.”
“안 보이는 거라 그런 감이 있죠.”
모르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귀신이 한 것이라 넘겨짚는 경우도 많고 말이다.
애초에 제대로 된 가위눌림도 희귀한 현상이니.
영감이 중얼거렸다.
“원래 있었는데 모르고 살아온 것인가…”
애초에 이곳은 무속적인 지식이 거의 없는 곳이니만큼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제대로 된 영가물도 없는 세상에 그런 걸 알 수 있는 존재가 있기나 할지 의문이다.
대신에 신성력이라는 말도 안 되는 힘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보면 오히려 내 쪽에서 황당할지경이다.
순식간에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무당에게도 있었다면….
“이게 더 좋은 거 같은데…?”
“음?”
“아니예요.”
그것보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그놈이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혹시 검은 구슬 같은 거 없었어요?”
“별다른 물건은 없었네.”
“흐음…”
분명히 영혼을 모았던 물건이 있을 텐데 말이다.
벌써 그놈들 손으로 넘어간 건가?
“찾는 물건이 있는가?”
“지난번에 마족을 소환할 때 보면, 영혼을 모으는 매개체가 있거든요?”
“흐음…내 따로 연락해 두지.”
그렇게 한참을 더 걸어가며 숲길에 들어섰을까?
영감님들이 갑자기 피식거리기 시작했다.
“….?”
이 양반들이 갑자기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왜 실실거린다는 말인가?
클로셀 영감이 멀리 떨어진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에 말일세.”
“네.”
“자네가 있다네.”
“…예?”
피식 –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리는 영감님.
“정말 자네 말대로 알아서 찾아오는군.”
무슨 소리일까 생각하던 나는 잊고 있던 한 가지를 떠올렸다.
왜 나를 따라 하던 놈이 하나 있지 않았던가.
아이들을 납치하던 노예 상인들.
그놈들이 저기에 있지 싶었다.
“곧 만나겠군.”
“제법 수가 많지 않은가?”
이번에는 드잔트와 세레나마저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략 마흔 정도인가…”
그리고 나는 곧 그놈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놈들은 마치 상단처럼 위장을 하고선 커다란 수레를 옮기고 있었다.
속이 텅텅 비어 있겠지만.
“….”
제법 급해 보이는 얼굴들.
그중에 낯익은 놈이 우리를 보고선 눈을 번쩍였다.
땡 – 땡- 땡 –
“마나에 자질이 있어 보이는 아기입니다.”
“….?”
그놈이 저런 말을 하며 다가오자 영감님들이 얼굴을 씰룩였다.
“가족들이 여행을 떠나나 보군요.”
일행을 훑어보던 놈이 세레나와 드잔트, 그리고 루나를 보며 눈을 움찔거렸다.
딱 느껴지는 탐욕.
그리고 요사스러운 감정들.
그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문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땡 – 땡 –
“제가 바로 제국의 북부에서 언데드를 몰아낸.”
“….?”
“크리스입니다.”
피식 –
피식 –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웃음들.
놈이 다시한번 종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운명을 믿습니까?”
지랄이 풍년이다.
이곳에서까지 사이비를 만나게 될 줄이야.
100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