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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응?”

       

       이아린은 진성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이세린은 곤란한 듯 어색하게 웃더니 진성에게 슬며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저, 저기. 그, 그. 오빠?”

       “왜 그러느냐?”

       “지금은, 그. 조금 상황이랑 그…. 시기랑. 장소가. 네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이세린은 슬쩍 엘라와 아나스타시아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둘은 진성이 한 말을 듣지 못했는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로데오 축제에서 볼 법한 모습이었다.

       엘라의 등에 업혀서 놀려는 아나스타시아와 무겁다며 그녀를 떼어내려고 하는 엘라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있었다.

       

       “당장 그…. 나쁜 주술사한테 걸려서 고생한 게 얼마 안 되는데…. 그런 말을 하시면.”

       

       저 둘에게는 배려가 필요하다.

       이세린은 어색하게 진성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진성의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지었던 이아린은 눈으로 진성을 향해 욕을 하고 있었다. 차마 진성에게 말로는 욕하기가 뭐했는지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눈은 마치 ‘네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하냐’며 그를 비난하고 있었다.

       

       “흠.”

       

       진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엘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기억 속에 없는 사람.

       아나스타시아의 육체가 되어 사라져버린 여자.

       여동생들의 친구이자, 진성이 알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아이.

       

       ‘그렇군. 아직 세계 3차 대전이 터지지 않았으니….’

       

       본래 커다란 사건을 겪으면 그 뒤에는 정신 질환이 따른다.

       과거 그가 용병 생활을 할 때 전쟁터에 처음 나가서 사람을 죽인, 용병들의 은어로는 ‘살인 처녀 딱지를 뗀’ 신입들은 하나같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나와서 자신을 괴롭히는 꿈을 꾸거나, 일상생활을 할 때 문득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거나, 자신이 죽인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이 죽는 환상이 계속 보이는 등의 고통을 말이다.

       

       하지만 세계 3차 대전이 터진 후에는 이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일상 자체가 막장이 되어서, 어지간한 것으로는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신적 충격의 역치’가 올라갔다고 할 수 있으리라.

       

       살인?

       대도시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것이 살인이었다.

       당장 으슥한 뒷골목에 가보면 강도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도 있었고, 대도시 외곽에 있는 슬럼 같은 곳은 무정부주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목도할 수 있다.

       부자들은 아예 경호원이라며 사병을 길러 자신의 집에 침입한 사람을 ‘정당방위’라며 사살하고,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들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나마 도시는 나은 편이다.

       시골 같은 경우에는 아예 마을 전체가 담합해서 외지인을 죽여서 금품을 빼앗는 일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섬처럼 폐쇄적인 환경에서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마을 단위로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온갖 끔찍한 행위를 자행한다거나, 미치광이 마법사가 자리를 잡고 사람을 재료로 생체 실험을 한다거나, 정부 주도하에 어떠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일 말이다.

       

       용병으로 활동했던 진성은 꽤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미국에서는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주도하에 일어났던 세뇌 생체 실험, MK울트라가 MK울트라 오메가(Project MK-ULTRA OMEGA)라는 이름으로 다시 자행되는 일이 있었고, 일본에서는 일본인종개량론(日本人種改良論)과 나치 동맹 당시 얻었던 우생학 자료들을 토대로 인종 개량 실험을 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서유럽 동맹을 중심으로 악령의 군사적 활용에 관한 연구를 했고, 남미에서는 인신공양 주술 의식을 비밀리에 실행하기도 했다. 아프리카는 ‘처녀가 에이즈를 낫게 해준다’라는 이상한 미신에 미쳐있는 범죄 단체가 끔찍한 일을 벌이며 돌아다니고, 북극과 남극의 마법사들이 모여 만든 ‘빙하 연합’에서는 이 모든 게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면서 지구에 빙하기를 불러오려고 했다.

       

       그 외에도 육식이 사람의 폭력성을 자극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며 축사를 파괴하고 다니며 문제를 일으킨 단체도 있었고, 세상을 불로 정화해야 한다며 전 세계의 농지에 불을 지르고 다니며 식량난을 불러일으킨 범죄 집단도 있었다. 기계의 통제하에 전쟁 없는 세계를 이룩해야 한다며 끔찍한 짓을 벌이려고 했던 마법사도 있었고, 아나키즘에 심취한 정신 나간 무인이 전 세계의 대통령을 암살하고 다니기도 했다.

       

       전 세계가 미쳐있었다.

       진성은 그런 미쳐있는 세계에서, 온갖 미친 장면을 보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는 엘라가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겨우 그 정도의 일로는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으니까. 게다가 엘라의 몸을 쓰고 있던 아나스타시아가 온갖 더러운 것들을 보고 들으며 살아온 용병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터프하고 낙천적이었던 것도 그가 PTSD를 고려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진성의 머릿속에는 미래의 담비가 통일 대한민국이 만든 거대한 백골탑을 보고도 ‘냄새난다’라는 감상 한 마디로 끝내고, 사이비 종교가 만들어낸 끔찍한 참상을 보고도 ‘불쌍하다’ 한 마디로 끝내고, 생체 실험으로 탄생한 괴물한테 산채로 녹아서 죽을 뻔했음에도 실실 웃으며 자신을 먹으려 했던 괴물의 시체를 뜯어먹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저 둘만 보내면 될 터.’

       

       진성은 안심하라는 듯 여동생에게 손짓하고는 엘라를 향해 다가갔다.

       

       엘라는 자신의 등에 업혀있는 아나스타시아가 떨어지지 않자 반쯤 포기한 상태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진성이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자 언제 지쳤냐는 듯 반색하며 일어나 그를 맞이해주었다.

       

       “아, 헤어 박! 무슨 일인가요?”

       “혹시 프라우 빈터의 스승님께 연락했는지 궁금해서요.”

       

       엘라는 그의 물음에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연락하기는 했답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제가 겪은 일이 참 비현실적이라서…. 전화로는 믿기 힘드신 듯하더군요.”

       

       그럴 만도 했다.

       

       엘라에게 일어난 일을 간단하게 줄여보자면 이렇다.

       

       러시아에 유학을 갔는데 갑자기 웬 미친 점술사가 자기를 납치해서 인신공양을 하려고 했고, 친구의 오빠가 주술사라서 인신공양 주술 의식에 끼어들어서 자신을 구해주고 자신의 몸에 기형종의 형태로 있던 자신의 언니를 꺼내서 새롭게 육체를 준 덕분에 몰랐던 자매가 생겼다.

       

       이것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인데, 거기에 온갖 양념이 더해진다.

       진성이 목소리를 바꿔서 대마녀를 현혹하고, 대마녀만이 알고 있던 ‘한스’라는 사람의 정보를 토대로 대마녀를 현혹해서 온갖 물건을 뜯어내었다. 그리고 그걸로 인신공양 주술에 끼어들어 그녀를 구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그런데 대활약의 주역인 진성은 성인도 되지 못한 주술사다.

       그것도 주술의 불모지라고 불리는 통일 대한민국 출신이며, 유명한 주술사의 제자도 아니고 독학으로 주술을 익힌 주술사였다.

       

       지나가던 주술사가 자신을 구해줬다고 하면 이해시키기에는 편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된다면 진성의 공로가 없어지게 될 터. 은혜는 2배, 원수는 5배로 갚으라는 말을 스승님께 들으며 살아왔던 엘라의 입장에서 양심을 속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사실을 말해야만 했지만….

       그 사실이 더 거짓말 같은 것은 왜일까.

       

       “스승님께서 이곳으로 찾아오겠다는 것을 극구 말렸답니다. 아무리 말을 들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차근차근 이해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하시네요. 괜찮다고 말려도 계속 오겠다고 하시는데….”

       

       진성은 그 말에 방긋 웃었다.

       

       “잘됐군요.”

       “네?”

       

       진성은 엘라의 어깨를 눌러 침대에 앉히고, 엘라의 등에 업힌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아나스타시아를 허공에 띄워 엘라의 옆에 나란히 앉혔다. 그리곤 선한 미소를 지으며 둘에게 말했다.

       

       “지금 두 분에게는 멘탈 케어가 필요합니다. 정신이라는 것은 간과 닮았지요. 망가지는 과정에서는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한 번 망가지면 다시 고치기 힘들어요. 프라우 빈터와 프라우 렌츠는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정신이 많이 지쳐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가족이 커다란 버팀목이 되는 법이에요.”

       

       진성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슬쩍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프라우 렌츠의 문제도 있습니다. 제가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들 그것이 전산에 기록되는 것은 아니에요. 프라우 렌츠는 지금 무국적자이며, 공식적으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신분을 증명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죠.”

       “아….”

       

       엘라는 그제야 눈치챘다는 듯 놀란 눈으로 자신의 언니를 바라보았다.

       

       “어린아이. 무국적자. 신분 조회 불가능. 거기에 아름다운 외모까지. 나쁜 사람에게 노려지기 딱 좋은 조건입니다. 게다가 아직도 마피아가 세를 떨치고 있는 러시아라면 더더욱 위험하겠지요. 프라우 빈터와 함께 독일로 같이 돌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겠지만, 말했듯이 신분이 없는데 여권이 있을 리도 만무하지요. 그렇다고 밀입국을 시키기에는 위험이 너무 큽니다.”

       “그, 그렇겠네요.”

       “그러니 프라우 빈터의 스승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대마녀 오딜리아 A 라이히(Odilia A Reich)의 힘이 필요했다.

       강력한 힘과 인맥,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화장품 회사의 오너인 오딜리아의 힘이 말이다.

       

       “방법은 많습니다. 인맥과 돈이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지요. 난민 리스트에 슬쩍 끼워 넣어서 독일 국민으로 만들어도 되고, 보육원 하나에 돈을 먹이고 서류를 조작한 뒤 입양을 해서 합법적인 신분으로 만들어도 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신분을 새로 산 다음 개명을 시켜버리는 방법도 있겠지요. 범죄 피해자라거나, 숨겨진 사생아라거나 하는 등의 방법도 있지만 이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도 있으니 그 방법은 피하는 게 낫겠지요.”

       “네?”

       

       엘라는 진성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다채로운 방법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말이에요. 정신이나 프라우 렌츠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진성은 걱정스러운 듯 엘라를 보았다.

       

       “이러한 일을 겪었는데 경호원 하나 붙이지 않을 생각입니까? 돈이나 인맥이 없는 것도 아닌데 경호원을 사양하는 건 만용입니다. 언제까지고 붙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러시아에서만큼은 붙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모습에 엘라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에. 그게, 좋겠죠?”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이 있겠지요?”

       “네? 네. 아, 연락. 연락할게요.”

       

       엘라는 허둥지둥 스마트폰을 잡고 자신의 스승인 아그네스에게 연락하기 위해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아나스타시아가 호기심이 생긴 듯 연락처 목록을 슬쩍 보았다가, 연락처 목록에 사람이 얼마 없는 것을 보고는 안쓰러운 듯 슬쩍 시선을 돌렸다.

       

       “당장 오겠다고 하신 것을 보면…. 아마 금방 러시아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군요. 프라우 빈터, 프라우 렌츠 두 분은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주십시오.”

       

       아나스타시아가 바라보는 진성은 그들에게 고개를 돌려 이세린과 이아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역시 시간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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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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