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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마침 비도 저녁 다 먹으니까 오네요.”

       “그러게요. 운이 좋았네요.”

       “쀼우!”

       

       우리는 텐트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잘 준비를 했다. 

       

       ‘잘 준비라고 해 봐야 침낭 꺼내는 거 밖에 없지만.’

       

       나는 짐더미에서 이번에 새로 구매한 침낭을 꺼냈다. 

       

       “이건 실비아 씨 거.”

       “고마워요.”

       

       실비아는 자신이 고른 초록색 침낭을 받아 들었다. 

       

       ‘취향 특이하시네.’

       

       육군 만기전역자로서 초록색 침낭은 도저히 못 고르겠던데.

       

       “이게 나랑 아르 거.”

       “쀼우!”

       

       내가, 아니 정확히는 아르가 고른 침낭은 붉은색이었다. 

       

       ‘…실비아 씨한테만 할 말은 아니었군.’

       

       아마 아르가 소중히 여기는 루비 색이랑 비슷해서 고른 것 같은데, 웬 커다란 떡볶이 같은 느낌만 들 뿐이었다. 

       

       ‘난 그냥 평범하게 회색이나 하얀색, 갈색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 침낭의 색깔이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니까.

       

       푹신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는 침낭에 들어가 보았다. 

       

       “쀼웃!”

       

       아르도 나를 따라 침낭에 쏙 들어와 안겼다.

       

       ‘오호, 이거 꽤 아늑한데?’

       

       애초에 아르와 같이 들어가서 잘 걸 상정하고 좀 사이즈가 큰 걸 골라서 그런지, 공간은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성장한 아르를 안고 자기에 충분한 공간이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공간이 남아서 아늑함이 없어질 정도도 아니었다. 

       

       “이거 침낭 진짜 좋네요. 솔직히 그 가게 사장님 말하는 게 좀 사기꾼 같았는데 텐트도 그렇고 침낭도 그렇고 품질은 정말 좋아요.”

       “그러게요.”

       

       침낭과 함께 몸을 돌려 실비아 쪽을 보니, 실비아는 이미 침낭 밖으로 얼굴만 동그랗게 내민 채 꽁꽁 몸을 감싸고 있었다. 

       

       “푸흣.”

       “왜, 왜요? 그렇게 웃기게 생겼어요?”

       

       실비아가 볼을 부풀렸다. 

       

       “아, 아뇨. 조금 귀여우셔서….”

       “귀엽…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실비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잘 자요, 레온 씨!”

       

       실비아는 부끄러웠는지 몸을 홱 돌렸다. 

       

       ‘의외로 이런 거엔 또 부끄러워하시네.’

       

       나는 피식 웃으며 내 품에 안긴 아르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뀨우.”

       “그래, 아르도 잘 자.”

       

       폭신한 침낭 속에서 나와 아르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빗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

       

       삐요오오옹—!

       

       “헉!”

       “…뀨우?”

       

       우리는 한밤중에 울리는 경계 알람에 잠을 깼다. 

       

       실비아는 이미 벌떡 일어나 검을 챙기고 있었다. 

       

       “제가 갔다 올게요.”

       “아니에요. 같이 가요, 실비아 씨.”

       “쀼우.”

       

       어느새 빗소리는 잦아들어 있었다.

       잠이 덜 깬 아르를 안고 텐트에서 나온 나는 경계 알람 아티팩트를 확인했다. 

       

       “동쪽이면…. 숲 쪽인데. 아, 설마 그건가.”

       

       알람이 울린 방향을 바라본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레인 구울.’

       

       레인 구울은 숲과 같이 동물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비가 온 뒤에 종종 발견되는 마물이다.

       

       ‘마나가 풍부한 지대에서 땅에 묻혀 있는 동물들의 사체가 비를 매개로 마나와 반응을 해 생성되는 언데드형 마물이지.’

       

       농축된 마나를 가지고 있고, 확실하게 죽이지 않으면 계속 움직이는 언데드의 특성 상 상대하기 까다로운 면은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보통 4성급 기사나 마법사 정도 되면 딱히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는 마물이었다. 

       

       ‘행동 패턴이 워낙 단순하니까. 체급만 되면 잡는 건 어렵지 않지.’

       

       잡는 난이도에 비해 경험치도 나름 잘 주는 편이라, 이런 꼭두새벽에 깬 것만 아니면 땡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건….’

       

       「레키온 사가」를 했던 나는 이 게임에서 언데드가 얼마나 끔찍한 모습으로 묘사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물의 사체를 기반으로 생성된 마물이라 악취는 기본이요, 끔찍한 외모를 가진 마물이 바로 레인 구울.

       

       그나마 게임을 할 때는 그래픽이 구지고 냄새를 맡을 일도 없어서 별로 상관없었지만, 지금 이 현실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사실 나야 그렇게 크게 상관은 없긴 한데….’

       

       아르가 무서워할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아직 귀신 같은 거 한창 무서워할 나이에 밤중에 구울 같은 걸 보면 트라우마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르야, 나랑 실비아 씨랑 갔다 올 테니까 텐트에 있을래?”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뿌우.”

       

       이제 잠이 다 깬 아르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따라가면 아주 무섭게 생긴 마물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쀼우우, 쀼!”

       

       아르는 ‘걱정 안 해두 대! 모가 나와두 안 무서어! 아르 씩씨캐!’라며 허리에 양손을 얹고 당당히 배를 내밀었다.

       

       “…정말?”

       “쀼우!”

       “알았어. 그럼 가자. 실비아 씨, 갔다 오죠.”

       “저한테 그냥 맡기셔도 되는데.”

       “그럴 수는 없죠.”

       

       레인 구울 경험치가 얼만데, 잠 깬 김에 이런 기회는 무조건 잡아야지.

       

       나는 아르를 후드에 넣어 주고 실비아와 함께 동쪽의 숲으로 들어갔다. 

       

       타다닷.

       

       단검술을 배우며, 어느새 암살자 클래스만큼이나 단련된 보법으로 나는 실비아를 따라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어둠 속에서 꾸물대는 무언가를 발견한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 있군요.”

       

       구우우우….

       꾸어어엉….

       

       여러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마치 프로그램으로 괴물 목소리 필터를 씌운 것처럼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쀼, 쀼우.”

       

       후드 안에서 일어서 내 목을 껴안은 채 어둠 속을 빼꼼 바라보던 아르는 구울들의 울음소리에 살짝 몸을 떨었다. 

       

       “무서우면 후드 안에 가만히 있어도 돼, 아르야.”

       “뿌, 뿌우!”

       

       아르는 ‘아냐! 아르 안 무서어!’라며 내 목을 더 세게 안았다. 

       

       안 무섭다면서 더 밀착한 아르가 귀여우면서도 가여웠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무를 수도 없다.

       

       “후우. 그럼 간다, 아르야.”

       

       나는 실비아와 함께 앞으로 튀어나가며 손을 뻗었다. 

       

       [사역마 ‘아르젠테’로부터 스킬 ‘라이트’를 공유 받습니다.]

       

       “라이트(Light).”

       

       달빛마저 숲의 나무들에 가려 거의 드리워지지 않고 있었기에, 시야를 밝히고 언데드들을 주춤하게 만들 빛 마법을 먼저 시전했다. 

       

       화악!

       

       “구우우우…!”

       “쿠우우르르…!”

       

       주위가 삽시간에 밝아지며 구울들의 위치가 훤히 드러났다. 

       

       상상대로 해괴망측한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주저없이 단검을 뽑아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악!

       

       단검으로 구울 하나의 목을 베었지만, 놈은 여전히 나에게 달려들었다.

       

       ‘언데드는 핵을 파괴해야 완전히 생명을 잃는다.’

       

       목을 베어 낸 자리 안쪽에 꿈틀거리는 핵을 발견한 나는 간단한 몸짓으로 놈의 공격을 피한 후, 핵이 있는 곳을 단검으로 힘껏 찔렀다. 

       

       “꾸우우욹.”

       

       그러자 구울은 힘을 잃고 무너졌다. 

       

       ‘역시 행동 패턴은 단순하기 짝이 없어.’

       

       그저 목표물을 발견하면 달려들어 공격한다. 

       

       어떤 동물의 형태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각 개체의 속도와 힘이 조금씩 달라질 뿐, 패턴 자체는 단순했기에 전투는 순조로웠다. 

       

       ‘실비아 씨는…. 역시 말 안 해도 완벽하고.’

       

       반대쪽을 맡아 구울들을 처리하고 있는 실비아는 현란한 몸놀림으로 구울을 일도양단하고 있었다. 

       

       실비아가 한 번 손짓할 때마다 구울이 반으로 갈라졌고, 그녀의 검의 경로에는 언제나 구울의 핵이 있었다.

       

       ‘나도 얼른 마무리해야겠군.’

       

       [레벨이 올랐습니다!]

       

       역시 경험치 하나는 잘 준다. 

       

       아르가 구울을 무서워하고 있으니, 어서 단검술로 마무리를….

       

       “쀼—.”

       “—플레임 스피어!”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아르의 입에서 나온 영창, 그리고 내 손 앞에 생성된 마법진에 나는 바로 플레임 스피어를 외쳤다. 

       

       화르르륵!

       

       “꾸우우욹.”

       “쿩….”

       “구룩.”

       

       커다란 화염의 창이 세 마리의 구울을 단번에 꿰뚫고 지나갔다. 

       

       [사역마 ‘아르젠테’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르야…?”

       “쀼우웃!”

       

       아르는 어느새 내 목을 한 팔로만 안은 채 언데드들을 눈에 힘 딱 주고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아르 씩씨캐! 하나도 안 무서어!

       

       그렇게 말했던 아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르야, 성장했구나!’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 있게 마법을 쓰는 아르를 보며 나는 씩 웃었다. 

       

       “좋아. 그럼 나머지도 싹 해치워 볼까.”

       “쀼—.”

       “—플레임 스피어!”

       

       [사역마 ‘아르젠테’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내 목을 껴안고 떨던 아르가 용기를 낸 덕분에 레인 구울들은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후우. 이제 다시 푹 잘 수 있겠네요.”

       “그러게요.”

       “고생 많으셨어요, 실비아 씨.”

       “레온 씨야말로요.”

       “쀼우!”

       “그래, 아르도 무서운 거 참고 따라와 줘서 고마워.”

       “뿌!”

       

       아르는 ‘무서운 거 참은 거 아냐! 안 무서어써!’라며 콧김을 뿜었다. 

       

       “그래, 그래. 우리 용맹한 아르.”

       “쀼우!”

       

       나는 아르를 안고 실비아와 함께 텐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후두둑.

       

       오는 길에는 다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또 레인 구울이 나타나는 건 아니겠죠?”

       “아마 괜찮을 거예요. 한 번 쌓여 있던 마나랑 반응해서 구울들이 일어난 거니, 당분간은 또 일어나진 못할 거예요.”

       “쀼우.”

       

       아르도 그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텐트로 복귀한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비에 젖은 아르의 몸도 정성껏 닦아 주었다. 

       

       “고생했어, 아르.”

       

       내가 웃으며 말하자, 아르는 의기양양하게 허리에 손을 얹었다. 

       

       “쀼우웃!”

       

       아르는 ‘레온, 봐찌? 아르 씩씨캐! 아르는 이제 무서운 거 아무것도 업써!’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 아르 다 컸네. 다 컸어.”

       

       나는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는 아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때.

       

       번쩍!

       텐트 바깥쪽에서 섬광이 한 차례 지나갔고.

       

       꽈르르릉!

       

       하늘을 가를 듯한 천둥 소리가 텐트를 울렸다. 

       

       “삐꾹!”

       

       포옥.

       

       아르는 곧바로 내 품에 쏙 들어와 안겼고.

       

       “삐유우우…!”

       

       나는 침낭에 들어와서도 눈을 꼭 감은 채 서글프게 우는 아르의 엉덩이를 말없이 한동안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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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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