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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진이 모옥을 없애기 위해 사하라로 떠난 지 20일째. 프란체는 초조함에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빠르게 두드렸다.

         

       ‘분명 보름이면 끝난다고 했는데.’

         

       말했던 시간에서 5일이 더 지났다.

         

       딱히 보내온 전서도 없다. 소식을 알 수 없을뿐더러 안전한지도 알 수가 없다. 프란체는 아까부터 매만지던 구속구를 바라봤다.

         

       초록빛. 진의 의식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지?’

         

       상대가 대륙 최강의 길드인 만큼 전투가 길어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거라면?

         

       “…답답하네.”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인지라 가슴이 심란했다.

         

       “공녀님, 벌꿀차예요.”

       “아, 고마워.”

         

       눈치가 빠른 헬레나는 심신에 안정을 주는 벌꿀차를 건넸다. 프란체는 달콤한 향을 음미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후아…….”

         

       프란체는 뜨거운 벌꿀차를 들이키곤 크게 한숨을 내쉰 뒤 냉정하게 생각했다.

         

       진은 국가를 상대로 견제할 수 있는 병기, 대륙제일검. 암흑 길드 따위에 패배하는 선택지는 없다.

         

       그렇다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는 것.

         

       ‘무슨 변수일까.’

         

       변수는 여러 가지다. 케일과 라데아가 부상을 당했을 수도 있고, 적의 전력이 생각보다 많아 전투가 길어지는 걸 수도 있다.

         

       ‘이동에 문제가 생긴 걸 수도 있어.’

         

       제국과 사하라의 중간에는 사막이 존재한다. 여기서 이동에 문제가 생겼다면 전서도 보내지 못하고 복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네.’

         

       프란체 나름대로 판결을 내리고서야, 걱정으로 가득 차 심란했던 마음이 안정됐다.

         

       “헬레나, 안경을 가져다주렴.”

       “네.”

         

       명을 받은 헬레나는 안경을 가지러 바깥으로 나갔다.

         

       ‘진은 금방 도착할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진이다. 절대 실패는 없을 터. 프란체는 괜한 생각은 그만두고 룬어 해독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던 그 순간. 벌컥! 닫혔던 문이 거세게 열리며 헬레나가 소리쳤다.

         

       “공녀님! 도착하셨어요!”

       “응? 누가, 진이?”

       “네!”

         

       드르륵! 의자가 뒤로 밀리며 프란체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가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이 도착했다. 그간의 걱정과 그리움을 머금고 바로 공작저의 앞으로 달려나갔건만.

         

       “…….”

         

       진, 케일, 라데아의 복장이 심상치 않다.

         

       사하라의 전통 의상과 햇볕을 차단해주는 새까만 안경. 거기에 손에 들려있는 여러 가방까지.

         

       그들의 행색은 누가 봐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 * *

         

         

       “다녀왔습니다, 공녀님.”

       “…….”

         

       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프란체의 얼굴이 싸늘하다.

         

       ‘분명 반가워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줄 알았는데.’

         

       라데아는 이 차가운 분위기를 읽지 못한 듯 손에 든 가방들을 올리며 자랑했다.

         

       “공녀님, 기념품이에요!”

       “…….”

         

       사하라 관광으로 잔뜩 기분이 좋아진 라데아.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에 모옥을 부수고 관광을 다녔는데, 라데아 혼자 신나서 여기저기 싸돌아다녔다.

         

       “사하라는 꽤 재밌는 나라더군. 물담배? 그런 것도 있었고, 음식도 생소하니 괜찮았어.”

         

       케일까지 가담했다. 제발 눈치 좀 챙기면 안 되냐? 저 그늘진 눈빛이 보이지 않는 거야?

         

       적막과도 같은 공작저의 대문 앞. 침묵만을 유지하던 프란체의 입이 열렸다.

         

       “…위험한 곳에 다녀온 줄 알았는데 꽤 재밌게 놀다 온 거 같구나.”

         

       분위기에 적합한 차가운 목소리. 나는 프란체의 반응이 왜 저런지 깨달았다. 이건 내 잘못이다…….

         

       “나 혼자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네.”

         

       고개를 뻣뻣이 들고 경멸의 시선으로 우리를 번갈아 보는 프란체. 나는 할 말이 없어 시선을 피했다.

         

       ‘분명 엄청나게 걱정했을 텐데.’

         

       혼자 가겠다고 하던 것도 걱정이 된다며 케일과 라데아를 붙여서 억지로 보냈다.

         

       거기에 출발 직전에는 외동아들을 고행길에 떠나 보내는 어머니처럼 눈물까지 머금었다.

         

       보름이면 돌아온다고 했는데 멋대로 기한을 늘려 소식도 전하지 않고 관광을 즐기다 왔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지만…….

         

       “그, 공녀님. 사실 여기에는 피치 못할 깊은 사정이 있습니다.”

       “사정? 무슨 사정? 사하라 관광이 재밌어서 전서 보내는 것도 잊을 만큼의 깊은 사정?”

         

       아무래도 이거 큰일 난 거 같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나중에 얘기해.”

         

       휙. 그대로 등을 돌려 또각또각 공작저 안으로 들어가는 프란체.

         

       “공녀님 왜 저러세요?”

       “우리가 반갑지 않나 보군.”

         

       얘네들은 정말 눈치가 없나 보다.

         

       “후, 됐고. 너희들은 다 돌아가. 당분간은 휴가야.”

         

       라데아의 눈썹이 들썩였다.

         

       “그래요? 라이아랑 놀러 가야겠다.”

       “나도 오랜만에 동부로 가야겠군.”

         

       이유를 알 수 없는 케일의 실실거림과 라데아의 기대감 가득한 얼굴.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공작저 안으로 들어섰다.

         

       “기한은 2주일이야. 그때까진 복귀해.”

       “네, 알겠어요.”

       “그러도록 하지.”

         

       그렇게 라데아와 케일은 떠나갔다. 결국엔 이 뒤처리를 내가 해야 한다는 거지? 놀자고 한 건 너네들인데?

         

       “…….”

         

       사실 받아놓고 전서도 보내지 않은 내 탓이다. 그냥 남 탓 좀 하고 싶었다…….

         

         

       * * *

         

         

       창고만도 못한 숙소에 기념품들과 모옥의 금고를 털어 가져온 사치품들을 풀어놨다.

         

       “후, 이거 가져오느라 고생했네.”

         

       나중에 도망칠 때를 대비해서 챙겨온 비상금이다.

         

       내 정보력과 무력이면 굶어 죽을 일은 없지만, 남은 일생은 편하게 살고 싶지 않나.

         

       “이 정도면 얼마나 하려나.”

         

       현지인들한테 물어보니 이 많은 사치품 중에 하나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라고 했다. 그걸 이렇게 산더미처럼 들고 왔으니…….

         

       ‘돈 걱정은 없겠군.’

         

       앞으로는 고기도 마음껏 먹고 비싼 술도 마시겠다. 그간 케일에게 얻어먹기만 했으니 나도 한 번 사줄 때가 됐지.

         

       “후…….”

         

       이제 프란체의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데 벌써부터 막막하다.

         

       ‘내가 여자의 마음을 알아야지.’

         

       김공략의 삶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기억이 두루뭉술하다.

         

       그러나 이건 확실하게 기억한다. 나는 모솔에 여사친도 없었다.

         

       “…….”

         

       꽤 큰일이군.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

         

       거기서 있었던 일들을 조금 각색해서 얘기하면 프란체도 이해해줄 거다. 좋아, 작전은 완벽하고.

         

       “가자.”

         

       나는 공작가 기사의 제복으로 갈아입은 뒤, 걸음을 옮겨 공작저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하고, 프란체의 방문을 두드렸다.

         

       “공녀님, 진입니다.”

       ─…….

         

       아, 이렇게 대답이 없는 거면 진짜 제대로 삐진 건데.

         

       인상을 찡그린 채 고개를 휘젓고 있자니 때마침 헬레나가 등장했다.

         

       “헬레나.”

       “힉!”

         

       바로 도망치려 하기에 빠르게 손목을 잡았다.

         

       “사정은 알고 있으니 그리 피할 필요 없고. 공녀님이나 불러줘.”

       “공녀님이요…?”

       “그래. 있었던 일을 설명하겠다고 전해줘.”

         

       헬레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곤 나 대신 문을 두들겼다.

         

       “공녀님, 헬레나예요.”

       ─들어오렴.

         

       즉답이 돌아오는 걸 보니 나한테 제대로 화가 난 모양. 하지만 걱정은 없다. 내가 각색한 얘기는 프란체를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으니.

         

       헬레나를 따라 들어갔다. 프란체는 테이블에서 룬어를 해독하고 있었다.

         

       “공녀님.”

       “왜 들어왔니? 허락한 적은 없는데.”

       “얘기 좀 하시죠.”

       “…….”

         

       답이 없기에 나는 허락으로 알고 의자에 앉았다. 이제 내 각색한 얘기를 들려줄 시간이다.

         

       “공녀님, 사실 사하라에서 위기가 좀 있었습니다.”

         

       위기라는 말에 고개가 움찔거리는 프란체. 그럼에도 나를 바라보진 않았다.

         

       “모옥의 마스터가 저와 같은 초월자인데, 그놈과 싸우느라 부상이 좀 있었습니다. 그걸 치료하는 김에 사하라에서 잠깐 머문 거고요.”

         

       사실에 픽션을 섞어 각색했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저 때문에 분위기가 음침한 채로 마냥 기다릴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케일과 라데아에게 관광이라도 즐기라고 한 거예요.”

         

       반응이 없다. 여기서 좀 더 파고 들어가야 한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파열되고 피를 토하고 장난 아니었습니다. 모옥의 마스터가 그리 강할 줄은 몰랐네요.”

         

       이건 진실이다. 말렉이라는 놈한테 처맞아서 전신이 맛탱이 가버렸으니.

         

       ‘오러로 단번에 회복됐지만.’

         

       툭. 별안간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시선을 돌려보니 프란체의 손 위에 있던 마법서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게 정말이니?”

       “예.”

       “허…….”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을 한 채 내게 손을 뻗었다.

         

       “지금은 괜찮은 거 맞지?”

       “그럼요. 쌩쌩합니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프란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 머리를 품속에 안았다. 따뜻한 온기와 함께 느껴지는 꽃향기.

         

       “사정도 모르고 화만 내서 미안해…….”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프란체. 왠지 죄책감이 드는데.

         

       ‘그래도 사실이니까 뭐.’

         

       나는 피식 웃으며 품에서 벗어났다.

         

       “괜찮습니다. 공녀님의 마음은 알고 있으니까요.”

         

       다행히 싸늘해진 분위기가 가시고 훈훈해졌다. 그래, 고생하고 왔는데 이래야지.

         

       ‘사실 사하라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기긴 했는데.’

         

       사막 국가에 유흥 거리가 많다는 건 처음 알았다.

         

       사소한 도박부터 시작해 신기한 물담배나 음식들. 거기에 구릿빛 피부가 돋보이는 예쁜 누나들까지.

         

       ‘관광으로는 최고였어.’

         

       그때를 기억하니 또 가고 싶다. 나중에 도망치면 사하라로 도망칠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생각인지라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자, 이제 지나간 일은 잊고. 제가 없는 동안의 일은 어찌 됐습니까?”

       “사업에 관한 거라면 순항 중이야. 여러 영지에 매장들도 짓기 시작했고.”

         

       내가 없는 동안 많이 진행됐군.

         

       “탑에 대한 건은 어찌 됐습니까? 이제 5개월 정도 남았는데.”

       “순조롭게 진행 중이야. 마법사가 계속 지원해서 더 단축될 거 같다고 하더라고.”

         

       시간이 더 단축된 건가. 그럼 때를 더 일찍 당길 수 있겠군.

         

       ‘시기를 보니 재앙의 파도도 얼마 안 남았고.’

         

       계획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사업은 이미 성공한 거나 다름없고, 탑은 완성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일로 페델리안 사자 패도 받게 됐다.

         

       ‘이제 남은 건 프란체를 가주로 만들고 떠나면 되는 건가.’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시원섭섭한 기분. 그동안 날 괴롭혔던 동기화와 멀어짐과 동시에 프란체와 헤어져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눈빛이 왜 그래?”

       “예?”

       “갑자기 풀이 죽어서.”

       “아닙니다.”

         

       걱정이 가득한 프란체에게 미소를 보여줬다. 그제야 프란체도 웃었다.

         

       “그런데 이제 그 망할 성녀와 황태자의 결혼식도 2주일 남짓이야. 따로 준비할 건 없니?”

         

       준비라, 확실히 대비는 해야 한다. 소미레의 목적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차근차근 생각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니?”

       “예. 조사가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이번에 모옥의 마스터를 만남으로써 알게 된 소미레 대신 움직이는 인물.

         

       ‘초월 마법사.’

         

       그 망할 할멈이 왜 소미레를 도와주는 건지 모르겠다마는, 죗값은 철저히 치러야 할 거다.

         

       “그리고 휴식을 조금 취하려 합니다. 이틀 정도만요.”

       “겨우 이틀? 2주일 넘게 남아서 더 쉬어도 되는데?”

         

       다소 걱정이 가득한 프란체의 손길.

         

       “괜찮습니다. 다 공녀님을 위한 일이니까요.”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정말 나만을 위해 움직이는구나.”

       “그게 약속이자 명령이었으니까요.”

         

       훈훈해진 분위기에 한껏 미소가 번졌다. 다만, 머릿속에서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결혼식에서 쓸데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마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00화 달성, 챌린지 미션 완료!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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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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