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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폴트 일가 말일세, 쫄딱 망했더군. 혹, 자네가 그런 건가?”

       “?”

       “흠, 자네가 아니었군.”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딱 얼굴만 봐도 안다네. 참으로 기사다운 단순함이야, 허허.”

       “…이봐요, 아재, 그거 칭찬 아니지?”

       “허허.”

         

       폴트.

       정확히는 레이놀 폴트와 그의 아내, 그리고 딸내미 한 명만 남은 일가.

       귀족이란 말조차 쓰는 게 민망한 그들이었고, 인간적으로도 경멸스러운 일가가 아닐 수 없으리라.

       

       “찾아다니긴 했는데, 보이지가 않더라고. 뭐 아는 거라고 있어?”

         

       지난 일주일 동안 이한은 폴트 가를 찾아다녔다.

       정확힌 레이놀 폴트란 이름을 가진 사람 말 하는 짐승새끼를 말이다.

       허나 어찌 된 건지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슬슬 열이 받을 지경이었는데, 그 힌트가 후작의 입에서 나오니 그로선 의아할 수밖에.

         

       그런 의뭉 어린 시선에 후작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여 보였다.

         

       “그저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보았다네, 후작가에서 조사해 본 바로, 레이놀 폴트에겐 자식이 딸내미 한 명뿐이거늘, 왜 갑자기 두 명으로 늘어났는지 말이야….”

       “…….”

       “5년 전을 기점으로 갑자기 딸이 생겼더군. 신기한 노릇이지. 없던 딸이 갑자기 생긴 것도 그렇고, 그런 딸을 후작가에 시집을 보내려는 심보가 말이야, 허허! 얼마나 트리스탄이 만만했으면 그런 짓을 했는지, 원….”

       “그래서, 어쩌려고?”

       “어쩌긴, 알러줘야지. 트리스탄이 왜 그 긴 역사 동안 왕국의 후작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를 말이야, 허허.”

       “…흐음.”

         

         

       입은 웃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맹금류의 눈이다.

         

       매섭고도 강렬했으며, 오연하기 그지없는 눈빛.

         

       민간인이 저 눈을 마주한다면 아마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랑 눈싸움이라도 하자고?”

       “…….”

       “그런 거 아니라면 힘 좀 빼. 손님한테 도끼 날리고 싶지 않거든.”

       “장난 좀 쳐봤네, 흐흐.”

         

       후작은 언제 눈에 힘을 줬냐는 듯 희소를 머금었다.

       마음에 드는 젊은이 앞에서 장난 좀 췄다며.

         

       “마음에 한두 번 들었다간 살인나겠구먼.”

         

       이한은 콧방귀를 끼며 혀를 찼다.

       하여튼 이놈의 대귀족들.

         

       누군가를 시험하는 게 패시브다, 아주.

         

         

         

         

         

       ‘이런 것도 나비 효과인가?’

         

       이한은 내심 후작이 폴트 가에 대한 것을 알아낸 것에 놀란 상태였다.

       이런 걸 보고 나비 효과라 하나 싶어서.

         

       ‘…원래라면 이렇게 빨리 밝혀질 게 아니란 말이지.’

         

       태창이, 데릭 녀석이 말해준 원작 스토리인지 뭔지를 듣자 하니, 원래의 역사에서 그의 제자는 시집가고 후작가에서 3년을 버틴다고 하였다.

         

       이 말은 즉, 원래대로라면 후작가를 상대로 한 사기극이 들키는 건 시집을 간 이후에 일이란 뜻이다.

       한데 지금 그게 달라졌다.

         

       자신이 후작가와 싸우면서 후작의 심경에 변화가 있던 것인지, 아니면 원래 후작가가 유능했던 것인지….

         

       사기극은 며칠도 안 되어 밝혀진 것 같으며, 또한.

         

       “우리 애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냥 이용당할 뿐인 착한 애야. 건드리지 마.”

         

       레비의 정체도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깨닫자마자 이한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애 건드리면 그땐 문짝이나 집 한 채로 끝내지 않겠다는 필사의 각오가….

         

       “알고 있네.”

       “?”

       “자네 같은 명예로운 기사가 직접 구하기 위해 나섰다. 한데 그런 소녀가 남을 속이고 이용하는 악녀일 리는 없을 터. 그러니 그녀는 이용당한 것뿐이겠지.”

       “…그걸로 믿는다고? …겨우?”

       “겨우 그게 아니라네. 자네를 믿는 거지.”

       “…….”

       “하니 믿네.”

       “…으음.”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내가 만난 귀족 중 가장 신사적일세?’

         

       ……이 아저씨, 생각보다 더 괜찮은 아저씨 같다.

         

       * * *

         

       “음, 뭐 결과만 말해주자면 레이놀 폴트. 그는 지금 신전에 입원해 있더군. 온몸에는 화상이 가득하고, 왼팔과 양쪽 발목이 잘린 상태이며, 혀조차 잘렸다던데…. 너무 늦게 발견되어 치료 시기도 놓쳐 지금은 겨우 목숨만 연명하는 상태라더군, 흘흘.”

         

       화상도 화상이지만, 다른 부상이 너무 심한 상태.

       신전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 있으나, 이 말을 바꿔 말하자면 신전에도 빚이 생겼다는 뜻이 된다.

       신전의 치료술은 확실하지만, 확실한 만큼 대가를 악착같이 받아내기로 유명한 바.

         

       뜬소문 같은 거지만, 빚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강도 높은 광산이나 염전에라도 보낸다고 했던가?

         

       “다른 모녀의 경우에도 큰일이 났다더군. 아내 쪽은 신전의 치료비와 도박비, 추가적인 빚 때문에 죽을 지경이더군. 중등 아카데미에 다니던 딸내미는 아예 아카데미에서 쫓겨났다고 하니, 원.”

         

       모녀의 앞날도 이제 긍정적이진 않으리라.

         

       과연 그녀들이 레이놀 폴트처럼 소녀를 핍박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결국 폴트와 레비의 관계는 불구대천.

         

       그들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바였다.

         

       “아마 그들 모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을 게야. 수녀원으로 가든, 아니면 최악의 선택을 하든, 무어가 됐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겠지. 아무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호오, 여자한텐 상냥할 줄 알았는데.”

       “레이디에겐 상냥하지. 허나, 동조하여 방관한 것도 죄는 죄이지. 과연 그녀들이 몰랐을까? 자기네들 가장이 하는 짓이 엄연히 후작가를 농락하고 모욕하는 행위임을? …모를 리가 없지. 하니 그녀들은 레이디가 아니네. 범죄자에게 남녀가 어디 있으랴.”

       “이야, 시원하네.”

         

       짝짝.

         

       이한은 손뼉을 쳤다.

       시원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며.

         

       저게 바로 옳게 된 어른이자 권력자의 모범이 아닐 수 없으리라.

         

       “…갑자기 너무 좋아하니 영 기분이 그렇군.”

         

       후작은 뜬금 그를 향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이한의 반응에 볼을 긁적였다.

       시종일관 건방진 태도로 일관하던 이가 왜 이러나 싶어.

         

       그래도.

         

       “허허, 기분이 나쁘진 않군!”

         

       유쾌한 건 어쩔 수 없는지, 후작은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두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대화했다.

       대개 레이놀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얘기였는데, 그 주제 대부분이….

         

       “분근착골이라고 있는데, 말 그대로 뼈와 살만 분리하면서 죽이지 않고 고통만 주는 수법이 있거든? 아직 죽지만 않았다면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네.”

       “허허, 정신적 충격으로 죽으면 어쩌려고, 일단 마취제와 포션을 이용한 고문부터 시작하는 게 괜찮을 거다. 매일 살을 발라내고 피를 뽑아도 마취제와 포션을 혈관에 꽃아 넣으면 일단 죽지는 않아! 전쟁 때 이 수법으로 포로에게 세 살 생일 때 뭘 했는지까지 기억나게 한 적이 있지 허허!”

         

       어떻게 안 죽이고 고문하냐는 토론이 대부분이었지만, 두 남자는 즐겁게 대화를 꽃피웠으며 서로에 대해 친근감을 느꼈다.

       나이를 떠난 우정.

       그 비스름한 것이 두 남자 사이에 싹 튼 순간이었다.

         

       그렇게 대화를 꽃피우던 중, 슬슬.

         

       “…그래서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건데, 왜 우리 애를 딸내미로 삼겠다는 거야?”

       “아아, 그거 말인가. 열성적으로 대화하느라 그걸 까먹고 있었군.”

         

       흠흠.

         

       후작은 잠시 말을 골랐다.

       이 부분에 대해선 진지하게 해야 할 것 같았기에.

         

       생면부지의 소녀를 입양한다는 결정은 그저 장난으로 결정할 게 아닌, 정녕 진지함이 필요한 일이니까.

         

       하며 그는 진지한 어투로.

         

       “분명히 말하건대, 자네 때문에 그 아이를 거둬들이려는 속셈은 아니라네. 굳이 말하자면 아까워서 그러는 거지.”

       “아까워서?”

       “그 재능이, 훗날 훌륭한 기사가 될 재능이 아깝네.”

         

       후작은 지극히 타산적인 얘기를 꺼냈다.

         

       “보고를 받아서 안 거지만. 그 아이 검을 제대로 배운 게 3개월을 안 넘었다고 들었네. 한데 겨우 3개월을 배우고 무려 바위 트롤을 이기고 마물의 대군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으며 활약을 펼쳤다지? 이거야, 원. 내가 수하 녀석에게 영웅 설화를 정보랍시고 듣게 될 줄은 몰랐지, 한데…. 자세히 교차 검증해보니 거짓이 없더군.”

       “…….”

       “…그 아이의 재능은 진짜야. 한데 그만한 재능이 ‘출신’과 ‘신분’ 때문에 묻혀야 하다니…. 혹 제2의 펠리시아 경이 될 수 있을지 모를 아이를 난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을 것 같군.”

         

       제2의 검공이 될지도 모를 아이.

       그런 아이를 트리스탄에서 거둬들여 훌륭히 키워낸다면 그 또한 트리스탄의 이름을 높이는 명예인 바.

       하여 후작은 여러 이해득실을 따져….

         

       “-본심은?”

       “…….”

       “이상한 이유 대지 말고 본심이나 말해.”

       “으음, 잘 숨겼다고 여겼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나.”

       “잘 숨겼지. 다만 내가 거짓말을 잘 꿰뚫어 볼 뿐이야.”

       “그거, 참 탐나는 재주군….”

         

       후작은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듯 한차례 감탄하였고, 5초의 침묵을 유지한 후 서서히.

         

       “…불쌍하지 않은가.”

       “…….”

       “알고 있네. 이러한 동정이 얼마나 얄팍하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허나 누군가가 그 아이를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천애고아가 되는 거야. 모르면 몰랐지, 이미 알게 된 이상 누구 한 명쯤은 손을 내밀어도 되지 않겠는가? 아, 물론 자네가 손을 내밀어도 되겠지만, 그래도 자네보다 내가 더 가진 게 많지 않은가, 나름 풍족하게 살게 해줄 자신이 있다네.”

       “…….”

       “나의 이런 이유가, 너무 얄팍한 것 같은가?”

       “…아니. 오히려 앞에 이유보다 마음에 드네.”

       “음?”

       “배부른 놈들이나 동정을 모욕으로 여기지. 진짜 절박한 놈들한텐 그 동정조차 정말 간절한 법이거든.”

         

       전생의 보았던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며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거절하는 놈들이 더러 있더라.

       한데 그런 놈들을 보고 있자면 고아였던 그의 입장에선 그토록 역할 수가 없다.

         

       그러며 깨닫게 된다.

         

       아, 저 등장인물들은 진짜 굶어 죽을 경험이나 진정으로 굴욕적인 게 뭔지 모른다는 것을.

         

       “진짜 굴욕은 말이야, 당장 내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오늘 먹을 음식이나 물이 없어서 눈물이 흐르고, 덮을 이불이 없어서 감기에 걸렸는데도, 약 하나 사먹을 돈이 없을 때가 진정으로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거야.”

         

       전기세조차 내지 못하여 집주인이 전기를 끊어버렸을 때.

       가스비와 물세도 내지 못하여 기어이 겨울에 보일러조차 틀지 못하며 살았고, 물조차 공중 화장실에서 받아마셨을 때.

       그때 느낀 절망과 처연함, 고독 등이야말로 진정한 굴욕이자 치욕이 아닐 수 없다.

         

       하여 진정으로 굴욕과 치욕을 아는 자에게 동정은 동정이 아니다.

         

       이른바….

         

       “내 삶이 너무 처연하고 더러워서 뒤질 것 같은데, …그런데 자존심 때문에 동정하지 말라고 하는 놈이 있다? 이런 놈은 말로만 배가 고픈 거지, 아직 살 만한 거야. 살아남을 능력이 있는 거지. 하지만 우리 애는 아니야. 걔는 지금 동정이건 뭐건 가릴 처지가 아니야. 그리고 진정으로 절박한 삶을 사는 녀석이지. 아마 아저씨가 그런 제의를 해주면 고마워할 거야.”

         

       ‘구원’이었지.

         

       이한이 덤덤히 내뱉은, 아니 덤덤하지만 결코 그 어떤 함성에도 뒤지지 않는 떨림이 있었다.

         

       …진정으로 지독한 굴욕과 고독을 느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떨림이 말이다.

         

       “…허.”

         

       후작은 진심으로 감탄했으나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이한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저씨 말대로 내가 거둬들일까 생각도 했는데, 내 한 몸 하나 건사할 뿐인 가난한 기사보단, 좀 더 풍성한 환경이 애한테도 좋겠지. 그러니, 가능하면 데려가. 물론 애를 설득하는 건 아저씨 능력이겠지만.”

       “…….”

       “뭐야? 왜 그렇게 봐?”

       “…보고 있을수록 탐이 나서 그러네.”

       “?”

       “원래도 좀 망설이고 있었다만…. 자네 말일세, 혹시-.”

         

         

       “─나를, 아빠라 부를 생각은 없나?”

         

         

       “…….”

         

       ……이한은 욕설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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