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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우웩.”

   

   처음으로 순간이동의 진을 경험해 본 후의 감상을 말하자면 차라리 마차를 타는 편이 낫겠다는 것이었다.

   

   오래 걸리고 불편한데다가 속도 울렁거리지만 그래도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육신이 비교적 강인해진 지금은 처음처럼 그리 괴롭지도 않고.

   

   순간이동의 진은 격을 달리 했다.

   

   마차여행 한 달 동안 겪어야 할 고통을 일순간에 압축한듯한 이 방법은 오늘 내가 먹은 게 무엇인지를 남들에게 증명하기 좋았다.

   

   이건 여행의 수단이라기보다는 고문의 수단인데.

   

   한참 동안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에 추억을 떠올리다 간신히 고개를 든 나는 다시는 순간이동의 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런 걸 다시 겪을 바에야 그냥 시간이 오래 걸려도 마차로 돌아다닐 테다.

   

   그것도 무리라면 차라리 걷고 말지.

   

   이 끔찍한 경험을 다신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여아야. 어차피 돌아갈 때에도 저 마법을 이용해야 하지 않으냐?>

   

   할배. 눈치 챙겨요.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데 당신이 그런 말을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네. 당신은요?’

   “그래. 허접 넌?”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별 것 아니라는 듯 웃는 칼을 보고 있자니 새삼 이 녀석이 더럽게 강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부럽다.

   

   나도 계속 수련을 거듭하다보면 이 고통에도 멀쩡할 수 있을까.

   

   ‘기사는 대단하네요.’

   “머리가 근육으로 된 허접이라 멀쩡한 건가. 대단하네.”

   

   “칭찬 감사합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알새틴이 안내해주는 대로 뉴먼 가문의 건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알른 영애님.”

   

   내가 가문의 앞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뉴먼 가문의 집사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분명 얘가 커즈 뉴먼의 대역을 하던 사람이었지?

   

   “들어오시지요. 당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알겠어요.’

   “알겠어. 음침 집사.”

   

   빨리 안에 들어가서 앉고 싶다.

   

   평소에 아무리 힘든 훈련을 할 때도 이렇게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기숙사로 돌아가면 바로 침대에 드러누워서 눈을 감아야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전에 잠시. 무기와 방패는 제게 건네주시겠습니까?”

   

   ‘싫은데요.’

   “음침 집사. 내 무기를 뺏어서 뭘 하려는 거야? 상상만 해도 불쾌해서 싫은데?”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장소라면 모를까.

   

   아직까지 무엇 하나 확신하지 못하는 장소에서 메이스와 방패를 손에서 놓고 싶진 않아.

   

   절대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단순히 거추장스러운.”

   “난 싫다고 말했는데?♡ 내 무기에 무슨 변태적인 성욕을 풀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양이야♡ 이상한 냄새가 밸 것 같으니까♡”

   

   내 말을 들은 집사의 눈썹이 살짝 내리 앉았다.

   

   이 녀석도 사람이기는 하구나.

   

   표정 관리가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네.

   

   그러게 왜 나한테서 무기를 뺏으려고 그러는 거야?

   

   나에게서 할배를 뺏어갈 생각 하지 말라고. 냄새나는 아재야.

   

   미안하지만 난 BL취향도 아니고 NTR취향도 아니거든?

   

   혹시나 예상 외의 일이 일어났는데 할배가 없어서 내가 죽으면 책임 질 거냐? 어?

   

   “영애님.”

   “되었다.”

   

   집사가 한 마디를 더하려던 때에 뒤에서 커즈 뉴먼이 나타났다.

   

   “알른 영애. 제가 직접 안내를 드리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릴게요.’

   “잘 부탁하죠. 좆밥 당주님.”

   

   옆으로 물러나 고개를 숙이는 집사를 지나쳐 가문 안으로 향했다.

   

   나를 안내하는 와중에 커즈 뉴먼은 내게 치료제를 구하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날에 내가 말했던 대로 움직였더니 정말 그 곳에 치유의 기적이 담긴 비약이 있었다고.

   

   처음에는 반신반의를 했지만 감정사에게 감정을 맡긴 결과 그게 진품임을 알 수 있었다고.

   

   “정말 놀랍더군요. 알른 영애께서는 신의 축복을 받으신 게 분명합니다.”

   

   그리 이야기를 하는 커즈의 목소리에선 평소의 그답지 않은 들뜸이 깃들어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 그토록 기쁜 것일까.

   

   이 사람도 만만찮은 자식 바보구나. 베네딕과 바보 대결을 하면 좋은 승부를 겨룰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아니겠네.

   

   그 인간은 딸바보라는 단어보다는 그보다 더 험악하고 심각한 단어를 필요로 하니까 말야.

   

   “굳이 따지자면 영애님을 부를 필요는 없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말입니다. 맹세의 내용이 애매하여 알른 영애께 폐가 가지 않을까 싶어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커즈 뉴먼은 내가 걱정스럽다고 했지만 저 말은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이 인간이 자기 핏줄 이외의 다른 사람을 걱정할 만한 성격은 아니니까.

   

   무언가 얻는 이득이 있는 거겠지.

   

   당장 생각해보는 것만 해도 아그라의 저주를 내게 떠맡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니까.

   

   나한테도 득이 되는 부분이 있으니 속아 넘어가주겠지만 궁금하긴 하네.

   

   커즈가 노리는 건 도대체 뭘까?

   

   “이 방입니다. 들어가시지요.”

   

   방문이 열리고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오랫동안 깎지 않은 듯 어깨 너머로 늘어진 검은 색의 머리카락.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못해 자연스레 새햐얘진 피부.

   

   남자치고는 다소 과할 정도로 자그마한 체구.

   

   체스터 뉴먼.

   

   내가 어지간하면 소울 아카데미에서 기피하는 캐릭터는 없는데 얘만큼은 예외다.

   

   난 체스터가 싫다.

   

   이유? 이 놈이 빌어먹을 보추니까.

   

   예전에.

   

   그러니까 소울 아카데미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체스터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였다.

   

   2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얘를 괴롭히는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하지 못하면 얘는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죽어버리니까.

   

   체스터 뉴먼이 아카데미의 NPC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아낸 게 바로 나였다.

   

   당시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 미쳐서 수명을 깎아가며 게임을 하던 내가 우연히 얘가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조건을 알아낸 것이다.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요소를 찾아냈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나는 즉시 체스터 뉴먼을 공략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끝에 숨겨진 반전을 발견해냈다.

   

   이 새끼가 남장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 그냥 보추새끼였다는 사실을.

   

   그 때 내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모를 거다.

   

   일러스트도 괜찮고, 성격도 좋은데다, 캐릭터 스펙도 괜찮아서 조이만큼은 아니어도 애정캐라 삼을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얻어맞은 거라서.

   

   오죽했으면 체스터가 성능캐임에도 불구하고 업적 클리어 후에 건드리지도 않았을까.

   

   현실에서 봐도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네.

   

   여자처럼 생긴게 얘 잘못은 아니겠지만 한 번 순정을 배신당한 입장에선 진짜 극혐이야.

   

   “아버님. 이 분은.”

   “알른 가문의 루시 영애님이시다. 네 병을 치료해 줄 분이시기도 하지.”

   “그런가요?”

   

   체념이 어린 미소와 함께 답을 한 체스터는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나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조금도 안 하고 있구나?

   

   저 모습을 보니까 좀 불쌍하단 생각이 들기는 하네.

   

   나는 오는 길에 커즈 뉴먼에게서 받은 물약을 체스터에게 건네 줬다.

   

   “이건?”

   

   ‘마셔요.’

   “마셔요. 허접 약골 영식이라도 그 정돈 할 수 있겠죠?”

   

   “이게 치료약인가요? 하하. 이거 하나로 치료될 거라면.”

   

   ‘마신 후에 말씀해 주시겠어요?’

   “잔말말고 마시세요. 한 손으로 꺾을 수 있을 것 같은 허접이 왜 이리 말이 많죠?”

   

   치료를 해주겠대도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건지.

   

   조금 더 입을 나불대면 도발을 해서 먹여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메스가키 스킬을 쓸 일은 없었다.

   

   물약의 뚜껑을 열더니 들이킨 것이다.

   

   물약이 많지 않음에도 단번에 마시긴 어려운 듯 몇 번의 휴식이 있긴 했지만 그는 꾸역꾸역 물약을 모두 들이키는데 성공했다.

   

   “거봐요. 별 달라지는 것도… 어?”

   

   체스터 뉴먼이 눈을 부릅뜨기 무섭게 내 앞에 몇 개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허접 주신의 것이 아니었다.

   

   [아그라가 당신을 노려봅니다.]

   

   언제는 안 노려봤다는 듯이 말을 하네.

   

   너 만날 나 쳐다보고 있잖아.

   

   내가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어떤 식으로 억까하면 좋아할까 생각하면서.

   

   우리 주신이 허접 무능이라면 넌 쪼잔이다. 쪼잔. 쪼잔 악신.

   

   그리고 그 뒤에 떠오른 것이 아르마디의 메시지였다.

   

   아니 넌 주신이라는 녀석이 어떻게 악신보다도 늦게 반응을 할 수가 있는 거야?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래.

   

   너 만날 나 쳐다보면서 날 어떻게 괴롭히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는 변태잖아.

   

   악신보다 무능하기는 하지만 성실하다는 것 정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

   

   할 말은 많지만 더 깎아내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넘어가줄게.

   

   억까하는 거 아니ㅈ…죠?

   

   조금 투덜거렸다고 삐지면 저 쪼잔 악신이랑 똑같은 신이 되는 거라고요.

   

   조심스레 아르마디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르마디가 당신을 흐뭇하게 지켜봅니다.]

   

   그쵸? 저 잘했죠?

   

   당신의 대적자에게 엿을 먹였다고요!

   

   그러니까 좋은 거 내놔! 좋은 거!

   

   [루엘의 메이스의 기능이 개방됩니다.]

   

   [메이스에 신성이 담깁니다. 이 기능은 사용자의 신성이 강화될수록 드높아 집니다.]

   

   신성추가뎀?!

   

   대박! 이거 진짜 대박!

   아니 이거 원래는 레벨 60을 찍어야 루엘의 메이스에 생겨나는 특수 기능인데 그걸 지금 개방해 준다고?!

   

   와아. 안 그래도 딜부족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게 생기면 고민 해결이지!

   

   루엘의 메이스에 신성을 담을 수 있게 되면 기본적인 데미지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악신과 관계된 이들에게 상성상 우위를 거머쥘 수 있다.

   

   나크라드. 딱 기다려라.

   

   내가 수련을 거듭해서 네 뚝배기를 깨부수러 갈테니까.

   

   악신의 사도? 신성이 담긴 메이스 하나면 꼼짝 못해!

   

   이거 하나만 하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는데 메시지 창은 아직 남아 있었다.

   

   세상에. 아르마디님 왜 이렇게 인심을 베푸시는 건가요?

   

   이래서 남는 게 있기나 한가요?

   

   주신님이 미쳤어요!

   

   주모! 샷따내려!

   

   [‘로그’ 기능이 개방됩니다.]

   

   로그?

   

   어도적을 말할 때의 그 로그인가?

   

   아니 근데 그럼 기능을 개방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렇다면 남은 건.

   

   설마.

   

   난 퀘스트 창을 키는 것처럼 로그 기능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내 앞에 푸른 색의 창 하나가 떠올랐다.

   

   거기에는 방금 전까지 내가 체스터와 나눴던 대화와 아르마디와 아그라가 보낸 메시지의 내용이 떠올라 있었다.

   

   아. 이 로그.

   

   아르마디님이 그냥 보상을 부어주시는 줄 알았는데 쫄깃하게 조절을 하시는 군요.

   

   하긴 잘해줄 때 너무 잘해줘도 안되긴 하죠.

   

   혜안이 있으십니다.

   

   딱히 보복이 두려워서 이러는 건 아니고 진짜 아르마디님의 지혜가 놀라워서 그러는 겁니다.

   

   신성추가뎀이 생긴 것만으로 기뻐해야하긴 하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애매한 걸까.

   

   차라리 주지 말… 아뇨.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로그 창을 내리니 침대에서 일어나서는 신기한 듯 자신의 몸을 둘러보는 체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체스터. 어떠냐. 괜찮으냐?”

   “…신기해요. 이상할 정도로 몸이 가벼워요.”

   “오오. 신이시여!”

   

   자신의 아들을 와락 안는 커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차가운 뒷세계의 귀족도 결국에는 아버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부럽다고 생각을 했겠지만 지금은 나한테도 저런 걸 해 줄 사람이 있으니까.

   

   일단은 두 사람이 감동적인 대화를 하게 자리를 비켜주도록 할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커즈의 계획은 대 실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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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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