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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양천구 호수 변두리에 위치한 동굴.

    양천구 호수에 오는 관광객이 꼭 들러본다는 유명 관광지.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그 동굴로 한 기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기자는 마치 관광을 온 것처럼 가벼운 복장을 하고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카메라를 움켜쥔 손은 긴장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이미 이 호수를 취재하러 간 선배가 2명이나 실종되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이번 오브젝트는 취재하고 싶지 않았다.

    양천구 호수는 기자나 언론사가 다뤄야 하는 오브젝트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파고들어야 할 국가재난 규모였으니 말이다.

    호수의 규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미쳐 날뛰는 이 현상 자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일반인들이 호수를 개방하라고 아우성을 쳐도, 이렇게 빨리 일반에 공개하다니 정상이 아니다.

    나라 전체가 미쳤어!

    기자가 몸을 담은 대형 오브젝트 언론사도 그것은 마찬가지여서, 선배 2명과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상함을 느낀 선배 2명은 종군 기자 같은 각오로 취재를 떠났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오지 못했다.

    그대로 실종된 것이다.

    선배들의 취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

    기자의 상념은 커다란 감탄사에 깨졌다.

    “와, 저것 좀 봐!”

    관광객들의 감탄 소리와 카메라 셔터음이 사방에서 울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수정과 푸른색 보석이 서로 뒤섞여 흐르는 듯한 동굴 벽.

    반짝이는 수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맥동하는 동굴.

    순수한 관광객 입장에서 왔다면,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법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기자는 정신을 다잡고 관광객이 드문 동굴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은 두 가지. 

    실종된 선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는 선배들이 취재하려고 했던 <양천구 호수 인신 공양 의혹.>의 증거를 잡아내는 것이다.

    인적이 급격히 드물어지는 동굴 깊숙한 곳은 또 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자수정, 사파이어, 에메랄드 색상의 크리스탈이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그 면들이 율동하는 빛을 받아 만화경처럼 다양한 색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기둥, 풍경을 장식하는 섬세한 아치, 마치 자연 속에서 탄생한 예술 작품 같았다. 

    이 동굴은 오브젝트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테니, 오브젝트에서 탄생한 사람을 홀리는 예술작품일 테지.

    그리고 사람을 홀리는 오브젝트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동굴 깊숙한 곳으로 계속 나아가는 기자의 앞에 수상한 인간들의 한 무리가 보였다.

    천장이 둥글게 뚫려서 보이는 커다란 보름달.

    보름달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처럼 보이는 암석.

    그 밑으로 펼쳐진 양천구 호수와 이어진 물웅덩이.

    그리고 계단 끝에서 웅덩이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

    “!”

    찾았다.

    호수로 떨어져 내린 사람들은 다시 물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찾았어.

    <오브젝트에 홀려서 인신 공양 되는 사람들.> 

    선배들이 찾으려고 했던 증거!

    증거로 남길 사진들을 마구 찍는 도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막내도 제법인데? 여기까지 오고 말이야.”

    “선배?”

    하지만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선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야. 여기.”

    선배의 목소리만 들렸다.

    “하하, 도대체 어디를 보는 거야?”

    동굴 내부에서 여기저기 울리는 목소리는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시리도록 푸르게 빛나는 달 옆에 서서, 손짓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실종되었던, 다른 선배도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 어떻게 된 거예요?”

    괜히 눈물이 찔끔 새어 나오는 눈을 문지르면서 선배를 따라서 천천히 계단을 걸었다.

    [킥, 이번에는 뭐가 좋을까?]

    그러던 중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악해 보이는 노파의 목소리였다.

    “어?”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선배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어느새 자신은 계단 끄트머리에 서서 웅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깨어나 버렸잖아!]

    날카로운 무언가가 심장을 꿰뚫었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기괴하고 추악하게 뒤틀린 괴물들이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

    키보드에서 경쾌한 엔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임스는 서류 작업으로 뻐근한 어깨를 돌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하군.

    푸딩 공장 사태의 뒤처리가 슬슬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미국으로 돌아가야겠지.

    한국에 길게 있기에는 미국에서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제임스는 서재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소파에 앉은 뒤 TV를 틀었다.

    [환상적인 호수, 몽환적인 동굴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껴보세요!]

    TV를 틀자마자 나오는 화면은 요즘 유명한 관광지 근처에 위치한 선상 호텔 광고였다.

    제임스가 보기에도, 꽤 매력적인 관광지로 보였다.

    “흠, 미국에 돌아가기 전에 한 번쯤 들러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기분이 드는 호수의 전경을 보자, 제임스의 입에서 절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삐- 삐- 삐-

    제임스가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에서 기분 나쁜 소리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오브젝트 경보 메시지.

    미국 오브젝트 협회에서 보내는 경고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긴급 대피 경보.>

    <현재 한국에서 체류 중인 미국 국민은 지금 즉시 안내되는 비행기로 탈출할 것을 강력히 권고함.>

    <한국 전역에 특급 정신 오염이 우려됨.>

    <특히 서울에서 당장 벗어날 것.>

    <48시간 이내에 귀국하지 않을 경우, 차후 정신 오염을 사유로 입국하지 못할 수 있음.>

    제임스는 이 메시지를 받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저런 수상한 호수에 놀러 갈 생각을 했다고?

    저런 수상한 호수가 생겨났는데, 이상하게 느끼지 못했다니?

    나름 오브젝트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줄이야.

    딩동. 딩동. 딩동.

    다급해 보이는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그 다급함을 증명하듯이, 제임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왔다.

    쿵쿵쿵. 

    “제임스 씨. 긴급 연락을 받으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데리러 왔습니다.”

    익숙한 억양의 영어.

    미국에서 제임스를 데리러 사람들이 도착했다.

    미국 오브젝트 관리 협회. 

    그곳에서 제임스를 데리러 사람들을 보낸 것이다.

    제임스는 자의 반 타의 반, 최소한의 짐만을 챙긴 채 서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

    호수는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했고, 광활한 호수를 가로지르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에서, 세희 연구소 직원들은 멋진 호수의 풍광을 바라보며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배의 갑판은 따뜻하고 반짝이는 조명으로 환하게 밝혀져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밝은 얼굴로 유람선 위를 잔뜩 뛰어다니는 황금 사신들은 축제에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바비큐 향이 퍼지며 요리사들의 화려한 불 쇼가 연구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지글거리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세희 연구소 파티는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어 갔다.

    축제의 중앙에서 조금 떨어진 살짝 어둡지만,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 세희 연구소 파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희 연구소는 여전하네. 

    수상한 호수에서 파티하고 있다는 걱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양천구 호수에 도사린 오브젝트의 능력은 아마 위화감이나 걱정을 줄여서 오브젝트에 대한 걱정을 못 하게 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세희 연구소는 원래 위화감과 걱정이 없던 곳이란 말이지.

    다들 머리가 너무 꽃밭이라, 별 차이가 안 느껴졌다.

    오히려 방긋방긋 웃으면서도 주변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는 황금 사신들이 더욱 연구원다웠다.

    제일 연구원 같던 서아도 요즘 상태가 안 좋아져서, 세희 연구소의 유일한 정상인은 김중뢰만 남았다.

    오브젝트에 대한 대비는 황금 사신에게 미뤄두고 나는 예린이의 품에 안겨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하나씩 집어 먹으며 파티를 즐겼다.

    “사신아, 사신아. 이것도 먹어봐.” 

    옴뇸뇸.

    “여기 회도 맛있어!”

    옴뇸뇸.

    예린이는 온갖 음식을 나에게 먹이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 선택들이 전부 맛있어서, 지금은 반쯤 예린이가 주는 것만 아기새처럼 받아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독 흥겨운 음악 소리가 크게 울리는 곳에서 예린이가 나를 불렀다.

    “사신아. 사신아. 저기, 저기 좀 봐봐. 엄청나게 웃겨!”

    예린이가 볼을 콕콕 찌르면서 부르길래 시선을 돌려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 보였다.

    세희 연구소 유일한 정상인 김중뢰가.

    농담 따위는 절대로 안 하는 김중뢰가 현란한 몸놀림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김중뢰가 춤을 추면, 탁자 위의 작은 황금 사신이 그 춤을 따라 하고 있었다.

    휘적휘적, 폴짝폴짝. 

    분명 김중뢰가 출 때는 절도 있어 보였는데, 황금 사신이가 추면 귀엽게 변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꽤 놀랐다.

    춤을 보고 바로 따라 하는 황금 사신이도 놀라웠지만.

    나에게는 김중뢰가 저런 짓을 한다는 게, 더욱 놀라웠다.

    김중뢰가 저러는 걸 보면 오브젝트 영향이 확실하네.

    띠링. 띠링. 띠링.

    그때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왔다.

    기분 나쁜 종소리에 주변을 둘러보자, 호수는 어느새 짙은 안개에 가려진 채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드디어 호수의 오브젝트가 나타났구나.

    지금 당장 인간을 해칠 생각은 아닌 것처럼 보이네.

    시체처럼 끈적한 느낌을 머금은 종소리가 갑판 위로 울려 퍼지자, 짙은 안개가 그 소리를 따라서 배 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기분 나쁜 종소리와 짙은 안개 속에서도 평소처럼 웃고 떠드는 세희 연구소 사람들.

    반대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긴장한 황금 사신들.

    갑판 위로 짙고 끈질긴 안개가 꿈틀거리는 덩굴손처럼 피어오르며 감싸 안기 시작했다.

    띠링.

    그리고 마지막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안개에 닿은 사람들은 부자연스럽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황금 사신들은 허둥지둥하면서 갑자기 잠드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받아내고 있을 때, 나는 안개의 중앙을 침착하게 바라보았다.

    [킥킥킥.]

    안개 속에서 노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그극. 

    발톱이 뭔가를 긁는 소리와 함께 안개 속에서 갑판 위로 무언가가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인간의 피로 물든 발톱.

    그리고 시체처럼 말라비틀어진 팔.

    망가진 빗자루 같은 머리털.

    텅 빈 눈구멍에 날카로운 이빨이 제멋대로 돋아난 얼굴.

    이리저리 뒤틀리고 피부를 뚫고 튀어나온 척추뼈.

    [이번에도 장난감이 잔뜩이구먼.]

    사악해 보이는 노파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안개를 뚫고 흉측한 괴물이 나타났다.

    그리고 갑판 위로 올라온 흉측한 무언가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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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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