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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101 – 우연한 조우>

     

    힘겨운 5교시가 끝난 뒤.

    나무 위에 매달려서 게밥이 될 걱정 없이 잠들고 싶지만 그러기엔 과제가 너무 많았다.

    가장 성가신 것은 <원거리 병기숙달> 강의.

    50m, 100m, 150m, 200m거리에서 각각 과녁 총점 1000점을 맞춰야 하는 사격훈련과제는 10점 과녁만 다 맞춰도 최저 400번을 쏴야 한다.

    하필이면 여기에 악천후도 겹친 탓에 야외사격훈련장에는 밤늦은 시각에도 비에 쫄딱 젖은 채로 활을 쏘는 불쌍한 학생들이 잔뜩 보였다.

     

    ‘저기선 안 돼.’

     

    안전문제로 교관에게 호위를 부탁하며 화살을 쏠 수는 있지만 교관들은 기숙사 통금시간을 지킬 것을 강요한다.

    다시 빠져나오면 그만이기는 해도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아깝다.

     

    ‘이럴 땐 비밀훈련장을 써야지!’

     

    양면띠지의 방만 봐도 알겠지만 기프트 아카데미에는 은근히 선배들의 후학을 위한 배려가 많이 있다.

    살인적인 과제.

    비인간적인 교수.

    물리적으로 에바인 남은 시간.

    혹사당하는 후배들을 딱하게 여긴 마법학부 선배들은 불쌍한 후배들을 위해 특별한 훈련장을 만들었다.

     

    ‘24시간 연중무휴 사용 가능한 사설 비밀훈련장!’

     

    마법학부 전용 건물에서만 출입가능하기에 폭우를 뚫고 마법동 건물로 향하는데, 늦은 시각임에도 눈을 마주친 1학년생이 있었다.

     

    ‘응? 쟤는 카시아잖아?’

     

    변방의 A그룹.

    제국의 B그룹.

    특수의 C그룹.

    제 잘난 맛에 사는 제국놈들과 지역차별이나 당하는 불쌍한 변방들이 대립구도를 이루고 있다면, C그룹은 양쪽 모두 꺼림칙해하는 존재였다.

    신원불명자.

    국적박탈자.

    무국적자.

    유사인간.

    수인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혹은 지나치게 위험한 음지 출신의 인간들만을 모아놓은 사회에서 인간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그룹.

    어쩌면 나 역시 속했을지도 모를 그룹이었다.

    C그룹 학생은 어딜 가더라도 교관이 동행해야 하기에 카시아의 근처에는 교관도 함께 대기하고 있다.

     

    살금살금.

     

    문득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창문을 피해 몸을 숨기고는 살금살금 창 밑으로 접근한다.

    그리고는… 창문 바로 앞에 이르러서 벌떡 일어나서 양 팔을 들고 놀래키기!

     

    “무오오오옹!”

    “…바보.”

    “어라? 어떻게 알았어?”

     

    분명 접근하기 전에는 입구 옆 첫 번째 창문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길게 돌아가서 놀래키려고 했던 시도가 무색하게 카시아는 입구 두 번째 창문자리로 옮겨서 옆에서 내가 튀어나오는 꼴을 비웃었다.

     

    “그냥.”

     

    왠지 도전정신이 생긴다.

     

    “이얍!”

    “바보.”

     

    두 번째 창문을 노리니 세 번째 자리로 옮겼다.

     

    “얍!”

    “멍청이.”

     

    허를 찔러서 두 번째 창문에 그대로 나오니 세 번째 창문에 그대로 있다.

     

    “한 번만 당해줘!”

    “싫어.”

     

    세 번째 창문으로 갔다가 첫 번째 창문까지 돌아가서 나오니 이번에는 두 번째 창문에 있다.

    브론즈 교수님과 대결해도 이기는 야바위 실력을 지닌 내가 C그룹 학생 상대로는 0승 전패?

    화가 나지만 덕분에 참고는 됐다.

     

    ‘이번 회차의 카시아는 성능이 높구나?’

     

    카시아는 매 회차마다 성능이 천차만별로 변하는데 이번 회차는 심할 정도로 강해 보인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운이 좋군.” 한 번 말하고 끝날 일이지만 당사자에게는 과하게 강한 능력 탓에 일상생활이 어렵다.

     

    “생체전기로 감지했지?”

    “…바보가 아니야?”

    “그룹수석이 바보일 리가 없잖아!”

     

    카시아는 전기능력자.

    마법보다는 권능에 가깝게 전기를 뿜어낼 수 있다.

    잘 키운 카시아는 도시 하나의 전력을 대체할 수 있는 인간발전기 급으로 성장한다.

    전격속성 능력자가 필요하다면 카시아를 찾아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기숙사는 안 돌아가?”

    “못 돌아가.”

    “왜?”

    “위험하니까.”

     

    보통의 학생이라면 자이언트킹크랩이 위험하다는 뜻이지만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는 위험하다는 것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뜻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죽어.”

     

    너무 강한 능력으로 인해 스스로도 능력을 온전히 제어하지 못하는 시한폭탄같은 존재.

    그것이 카시아라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컨셉이다.

     

    “오크노디 학생. 통금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기숙사로 돌아갈 준비를 하십시오.”

     

    카시아의 감시역인 교관이 설교를 시작하려 하기에 가던 길이나 마저 갔다.

     

    “그럼 안녕~”

    “…흥.”

     

    카시아는 퉁명스레 고개를 돌렸다.

    학년이 오르기 전에는 사귈 수 없는 동급생.

    강함도 차원이 다른 후반부 캐릭터답게 까칠함도 대단하다.

     

    ‘머, 안면만 텄으면 됐지.’

     

    망설임 없이 비밀훈련장으로 향했다.

     

     

    * *

     

     

    카시아는 고개를 돌렸지만 오크노디가 떠나는 모습을 생생히 감지할 수 있었다.

     

    “마음에 들었나? 저 아이가.”

    “전혀.”

    “그런 것치곤 오래 놀아주던데.”

    “당신보다는 나을 뿐이야.”

    “이거 섭섭하군. 본 교관은 아카데미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성심성의껏 감시 및 보호임무를 진행 중이거늘, 노고에 감사하기는커녕 냉대를 하다니.”

     

    교관은 너스레를 떨었지만 카시아의 눈은 오크노디를 대하던 때보다 더욱 차가웠다.

    앞선 차가움이 사람을 밀어내기 위한 차가움이라면 지금의 차가움은 적을 경계하는 차가움.

     

    “당신이 지키는 학생은 내가 아닌 나머지. 감사해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

    “섣불리 능력을 사용하거나 위험한 짓을 해서 동급생을 전기통구이로 만들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으니, 카시아양을 도운다고도 할 수 있지.”

    “정말로 실수하면 바로 목을 벨 작정이면서.”

    “첫 실수로 바로 목을 치지는 않네. 섣불리 움직여서 피해를 늘리지 못하도록 기절시킨 뒤에 손발의 힘줄은 끊어놓겠지만.”

    “…당신은 쓰레기야.”

    “이런 나라도 네가 살던 곳의 인간들보다는 나은 인간이지. 항상 그 사실에 감사해야 할 거다.”

     

    카시아는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융합생명체.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인간의 자아가 이식되었다.

     

    -인간의 힘으로 조종하기 힘든 생물체라면 다루기 쉬운 자아를 집어넣으면 되지 않겠나?

     

    목숨, 정신, 영혼.

    인간의 모든 요소를 철저하게 실험에 사용하는 끔찍한 연구소에서 탄생한 전격능력자 카시아.

    그녀에게는 돌아갈 장소 따윈 없다.

    기껏 막대한 돈을 받고 아카데미로 팔려온 신세다.

    그녀가 아카데미를 떠난다는 말은 연구소에서 받았던 돈을 도로 물어내야 한다는 뜻.

    연구소장은 절대로 그녀를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죽느니만 못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겠지.

    C그룹의 학생이 된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돌아갈 곳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되는 존재.

    아카데미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

     

    ‘너도 분명 이쪽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보통이라면 유치한 장난을 건다고 상대해줄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다.

    어렵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을 사는 학생들을 대하는 것도.

    그들이 죽지 않게 조심하는 것도.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거슬리고 조심스럽다.

    까딱 손끝에서 번개줄기라도 잘못 쏘아버리면 사람 하나가 타죽는 것은 일상이니까.

     

    -자아, 골라라. 사람을 죽일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를 죽일 것이냐.

     

    더 높은 강도.

    더 오랜 출력.

    그녀의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연구소에서 저질렀던 짓들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암살교육을 받은 아이라면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는데.’

     

    오크노디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녀의 주변에는 신원을 보증해줄 어른이 있었다.

    단 하나의 차이.

    그 하나의 차이가 그룹을 갈랐다.

    오크노디는 C그룹이 아닌 A그룹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친구를 만들고 상급반의 인기인이 됐다.

    떠도는 소문과 평판도 훌륭하다.

    하급반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제국출신이라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스럼없이 제국 학생들과 섞여서 밥을 나눠먹기도 하고 아니다 싶을 때에는 사회적 약자인 친구를 위해 불의에 맞서 싸울 줄도 안다.

     

    ‘실력조차도 예사롭지 않았지.’

     

    조금 전, 창 밖에서 접근하던 오크노디.

    카시아는 그녀의 모습을 줄곧 지켜보았다.

    사람에게는 생체전기라는 것이 있다.

    보통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훈련을 받더라도 대부분은 피부가 맞닿거나 같은 공간 내에서만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나는 달라. 절반은 인간이 아니니까.’

     

    그녀의 인간이 아닌 쪽의 몸이 감지한다.

    타인의 체내에서 작동하는 생체전기의 흐름을.

    창문으로 막혀있어도.

    마법역장으로 가로막혀도.

    물리적 방벽과 마법적 방벽을 뚫고 미세한 생체전기를 육안으로 감지할 수 있다.

    처음 세 번은 가볍게 피했다.

    오크노디를 따돌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네 번째는 달랐지.’

     

    오른쪽 창문으로 향하자 오크노디 또한 따라왔다.

    왼쪽 창문으로 향하자 이번에도 방향을 바꾸어 쫓아왔다.

    오크노디가 분명하게 자신의 위치를 읽고 있었다.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전기형상조작Electrical Phenomena Manipulation>

     

    뒤에서 지켜보던 교관이 살기를 품으며 멈출 것을 종용해도 능력을 발현했다.

    자신과 똑같은 형상을 지닌 분신을 만들어 제자리에 세워둔다.

    창문 너머 오크노디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두 번째 창문을 쳐다보았다.

     

    “얍!”

     

    확신은 없었는지 첫 번째 창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오크노디.

    능력을 해제하자 남은 것은 빈공간과 옆 창문으로 이동한 그녀, 그리고 이쯤에서 장난은 끝내라며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교관 뿐.

     

    ‘전기가 아니야. 마나를 감지한 거였어.’

     

    카시아는 깨달았다.

    이 아이는 역시 특별하다고.

    다음에 만난다면 인사 정도는 해줄까.

    처지가 같기에 몰려다니던 같은 C그룹 동기들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00화 축하인사 감사합니다.
    테디베어의 다음 목표는 응애 오크노디의 키높이인 1.33m 조회수 찍기에요!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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