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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

        “죽은 겁니까?”

        ​

        “그런 것 같은데. 이런 꼴을 하고 살아있을 리는 없으니.”

        ​

        초재생 능력 같은 게 있는 게 아니라면 단전도 깨지고,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지.

        ​

        나는 숨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흑영문주를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

        마교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얻고 싶었는데.

        ​

        원작에서도 마교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던 만큼, 흑영문주를 깔끔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면 꽤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

        끄나풀이라 내부 정보를 얻기는 힘들긴 했겠지만…

        ​

        “위 대협. 정리가 끝났습니다.”

        ​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

        “위 대협이 힘을 다 빼놓은 덕에 찰과상을 입은 몇 명 빼고는 멀쩡합니다.”

        ​

        뭘 그리 존경의 눈빛으로 보나. 나는 낯 뜨거운 남정네의 눈길을 슬쩍 피하며 바닥에 떨어진 삿갓을 주웠다. 싸우기 직전에 내다 버린 삿갓이었다.

        ​

        …그냥 하나 새로 사야겠네. 구멍이 나서 더 쓸 수가 없잖아.

        ​

        나는 흑영문주의 얼굴에 망가진 삿갓을 덮어놓았다.

        ​

        저런 끔찍한 몰골을 계속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저승 가는 놈 흉한 모습으로 가느니 삿갓으로 적당히 가리고 가란 뜻이기도 했다.

        ​

        “후.”

       

        이제 슬슬 일을 해볼까.

        ​

        “이보시오. 다들 저놈들이 도망치거나 난동을 부리지 않도록 잘 감시해주시오. 나는 저택 안을 뒤져볼 테니.”

        ​

        “저희도 돕겠습니다.”

        ​

        “눈썰미가 좋은 무사 둘 정도만 데리고 가겠습니다. 나머지는 심문을 진행해 주십시오. 이번 일의 전모를 밝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명은 세가로 보내 일이 잘 해결되었다 전해주시지요.”

        ​

        “이미 세가로 사람을 보내놓았으니 얼마 되지 않아 올 것입니다.”

        ​

        그럼 내가 신경 쓸 건 없겠네.

        ​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구멍을 내놓은 전각을 바라보았다. 뒤져 보려면 밤을 꼴딱 새워야 겠지만, 저 안에 값진 금은보화와 비급 같은 게 숨어 있다고 생각하니 입에 절로 군침이 고였다.

        ​

        그럼 가 볼까.

        ​

        나는 거침없이 전각 안으로 발을 들였다.

        ​

        ———————–

        ​

        “…고맙네. 정말 고마워.”

        ​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

        “아니네. 남의 일에 팔 거들고 나와주는 게 어찌해야 할 일이겠나. 자네는 큰일을 한 걸세.”

        ​

        강 가주가 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옆에 서 있는 구 가주도 눈시울이 붉어진 상황. 두 노인네의 눈물을 번갈아 쳐다보던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

        “심문은 잘 끝나셨습니까?”

        ​

        “많은 정보를 들었네. 저놈들이 오래전부터 우리 세가를 이이제이의 계책으로 양패구상하게 만들고, 이 도시를 장악하려는 속셈 말일세.”

        ​

        “간 큰 놈들입니다.”

        ​

        가주의 말대로, 일개 중소 문파가 저지를 수 있는 규모의 짓이 아니었지. 

        ​

        문도가 백 명 남짓인 작은 문파가 소도시라도 어떻게 이런 곳을 지배할 생각을 하겠어?

       

       여기엔 반쯤 유명무실하긴 하지만 관도 있고, 두 세가 전력만 해도 이런 문파 따위는 반나절 안에 갈아버릴 수 있을 텐데.

        ​

        그러니 당연히 뒷배가 있다고 예상할 수밖에 없었고, 흑영문주의 내공을 보고 마교가 뒷배라는 사실을 눈치챈 거지.

        ​

        …마교가 왜 이런 일에 연관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저택 내부에서도 관련 정보는 싸그리 소각했는지 나온 게 없었고.

        ​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바탕으로 추측해보자면 무림맹과 가까운 이 도시에서 몰래 마교 지부를 만들어놓고 전쟁이 벌어지면 무림맹을 기습할 생각 아니었을까.

        ​

        예로부터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기습은 효과적인 법이니까. 만약 정파가 원정을 나간다면 이 도시를 지나는 길이 쉽고 편하다는 점도 있겠지.

        ​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무림맹 무사들은 높은 확률로 이 도시를 지나쳐 갈 테고, 이 도시에 도착하는 순간 기습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게 눈에 선했다.

        ​

        자기 영역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으면 쉽게 와해될 테니.

        ​

        무림인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단체 행동에 약하니 더더욱 그럴 터.

        ​

        그런 의미에서 이번 건수는 뜻하지 않은 횡재라고 볼 수 있었다.

        ​

        내부의 폭탄 하나가 사라진 셈이니까.

        ​

        적어도 원작처럼 무력하게 무림맹이 패전만 반복하다 주인공 해줘 상태가 되진 않겠지.

        ​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급완결을 나버린 원작이 제일 문제겠지만. 

        ​

        후반으로 갈수록 편의주의적 전개와 설정 변경이 난무하는 작품이었으니. 그래도 지금은 현실이니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

        조연 이름도 까먹어서 수십화 만에 등장했더니 이름이 바뀌는 걸 현실에서 보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

        아무튼,

        ​

        “흑영문의 전각을 전부 뒤져보았으나, 마교의 흔적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철저하게 흔적을 지운 모양입니다. 한밤중의 기습이라 하나 정도는 있을 줄 알았습니다만…”

        ​

        쓸데없이 철저해가지고.

        ​

        하긴 그러니까 막판에 무림을 거의 다 먹었지.

        ​

        “허어. 아쉬운 일이로군.”

        ​

        “나온 것은 그들이 양민들로부터 갈취해간 돈부터 각종 병장기, 흑영문의 비급으로 추정되는 것 뿐입니다.”

        ​

        “추정이라?”

        ​

        “추정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

        나는 품속에서 비급을 꺼냈다. 

        ​

        “혹시 몰라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 적힌 게 마공이라면 읽어봐야 좋은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가주님들께 부탁드리자면, 이 비급을 무림맹에 전달해주셨으면 합니다.”

        ​

        …사실 좀 읽어보긴 했는데 영양가는 별로 없더라.

        ​

        “알았네.”

        ​

        “믿음직한 무사를 시켜 무림맹에 전달토록 하겠네.”

        ​

        “이 문제는 그럼 끝입니다만…흑영문의 재산은 시장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꺼림칙한 재산에 욕심내는 것도 그렇거니와, 빼앗긴 것은 빼앗긴 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순리 아니겠습니까?”

        ​

        “자네, 대단하군. 이렇게 욕심 하나 없을 줄이야!”

        ​

        “내가 딸만 있었다면…”

        ​

        가주들의 흠모하는 눈빛이 내 온몸을 촉촉하게 적셔댔다. 

        ​

        이게 게임이었다면 호감도가 꽉 차서 더 이상 올릴 데가 없을 지경이 되지 않을까.

        ​

        “이 일은 가주님들께 맡기겠습니다.”

        ​

        “알았네. 내 이름을 걸고 이 일은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도록 하겠네.”

        ​

        “나도 이름을 걸고 일을 처리하겠네.”

        ​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니 좋구만.

        ​

        역시 이래서 사람은 명성을 쌓아야 한다니까.

        ​

        일개 무명소졸이 말하는 거랑 이름값있는 사람이 말하는 건 설득력이 천지 차이니.

        ​

        “가능하면 두 세가도 이참에 화해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

        “화해라니..”

        ​

        내 말에 두 가주가 서로 눈치를 보며 헛기침했다. 아무래도 오랜 앙숙끼리 화해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두 세가가 반목하는 이상 그 틈을 파고들 놈들은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

        이참에 확실하게 정해둘 건 정해두고 화합을 하는 게 나을 터.

        ​

        “…강 가주. 이렇게 된 이상 한번 해 봅세.”

        ​

        “끙, 구 가주. 자네랑 이렇게 화해할 날이 올 줄은 몰랐군.”

        ​

        이쪽은 끝났고.

        ​

        그럼 이제 보상받고 이곳을 뜨면 되는 건가.

        ​

        “그리고, 보상 말입니다만…”

        ​

        ————————-

        ​

        “아저씨, 그런데 그렇게 조금만 받아도 돼요?”

        ​

        “혜령아, 이 금괴가 애들 장난으로 보이니?”

        ​

        금괴만 열 개야 열 개. 물론 가주들이 주겠다는 보상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많은 돈을 들고 다녀봐야 무슨 의미야.

        ​

        내가 청렴한 인간은 아니지만, 돈이 너무 많아 봐야 의미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고.

        ​

        “그래도 아저씨가 한 일에 비하면…”

        ​

        “영약도 세 개 받았잖아.”

        ​

        “하지만 저한테 하나 주셨잖아요!”

        ​

        “저한테도 말입니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도…”

        ​

        혜령이와 목경이가 망설이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까지 쳐다볼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

        “신경 쓰지 마라. 너희들이 강해져야 나도 편하니까.”

        ​

        나 혼자 강해져 봐야 의미가 없다.

        ​

        전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

        내 옆을 지켜줄 동료.

        ​

        내게 필요한 건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지켜주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

        “그래도…”

        ​

        “혜령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먹어.”

        ​

        혜령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목경이도 부담 갖지 말고 먹어. 복수하려면 강해져야지. 초절정의 벽을 넘으려면 그만한 영약 열 개 정도는 입에 집어넣어야 할 텐데.”

        ​

        복수 이야기를 꺼내자, 목경이도 마지못해 수긍했다.

        ​

        “그럼 이 이야기는 끝난 거다? 갑자기 안되겠다느니 하는 소리 하지 마.”

        ​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둘에게서 시선을 돌려 장례식 행렬을 지켜보았다.

        ​

        강씨세가와 구씨세가의 공자들.

        ​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단체로 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신기했다. 

        ​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법한 장면이었으니까.

        ​

        “…일이 잘 해결되서 다행이네.”

        ​

        흑영문은 멸문당했고, 흑영문도는 무림맹으로 가서 심문당할 예정, 흑영문주는 저잣거리에 사지와 머리가 찢겨 걸렸고, 도망친 의원은 살인멸구를 당한 건지 건물 뒤쪽 우물 속에서 시체를 발견.

       

       명희라는 여자는 일이 틀어진 걸 눈치채고 도망치려다 목경이에게 잡혀서 잡혀 왔고…

        ​

        깔끔하네.

        ​

        장례 행렬을 지켜보던 나는 으레 상투적인 말을 내뱉었다.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첫 만남이 영 좋진 못했지만, 죽은 사람한테 나쁜 말을 할 필요는 없지.

        ​

        나는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장례 행렬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당이 가깝다…

    길고 긴 에피소드가 드디어 끝!

    이번 에피소드는 괜찮았는지 모르겠네용.

    사실 그냥 무당으로 바로 가버릴까 고민하다 안 빼고 넣은 거라 흠흠…

    표지는 오늘 중에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럼…아디오스!

    다음화 보기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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