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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

         

         

        -타앙—!!

         

         이반은 허공에 권총을 발포하며 정면을 살폈다. 예상대로, 용사 파티의 학생들은 기겁하며 몸을 웅크리기만 할 뿐 대응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선 감지가 발달했다면 총성을 인지하기도 전에 뛰어나와 사수를 공격했을 것이다. 그것이 초인의 전투 방식이니까.

         

         사선 감지를 개화시키는 방법은 단순하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시킨 상태에서 생존 본능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역시 탄종을 바꿔야 하나.”

         “…예?”

         

         

         그의 옆에서 보조 사수를 맡고 있던 요원 하나가 식은땀을 흘리며 반문했다.

         

         이반은 합리적인 사람이었으므로 굳이 대답하는 대신 고민에 잠겼다.

         

         

         ‘응급처치 키트를 사용한다 해도 실탄에 피격된 부상은 사제의 도움 없이 완전히 치유할 수 없다. 힐링 포션을 사용한다면 가능이야 하겠다만….’

         

         

         힐링 포션은 제자에게 사용해도 되는 물건이 아니다.

         

         이반은 목적에 따라 도구를 구분할 줄 아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지금은 적절한 수준의 시련을 통한 교육을 하는 시간이지, 어린 애들에게 탄환을 박아가며 고문하는 시간이 아닌 탓이다.

         

         

         “대장님…?”

         “10분, 15분, 5분 간격으로 발포해라. 머리를 노리지 말고, 가능하면 신체 구동에 지장이 없을 부위 위주로.”

         

         

         이반은 짧게 지시하고 자리를 이탈했다. 다음 계획을 준비해야 했다.

         

         이럴 때 드미트리나 파벨이 있었다면 수월했을 것을. 최상위 지휘권자 아래로 현장 요원들만 차출하고 보니 명령 계통이 엉망이었다.

         

         이반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완전히 사령관의 마음가짐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서.

         

         그는 권총을 집어넣고 와이어 한 가닥을 뽑아 손목에 둘둘 감았다. 그 뒤에 도끼 한 자루와 단검 한 자루를 각각 나눠 쥐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애당초 그는 명령을 내리는 쪽보다, 임무를 수행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 이제 본업으로 돌아갈 차례다.

         

         

        *

         

         

         [안전한 장소를 의심하라.]

         

         

         엘피헤라는 엄폐물 뒤에 몸을 기대자마자 머리 위치에 붙어 있는 쪽지를 발견하고 곧장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악!!”

         

         

         방금까지 멀쩡한, 심지어 딱 몸을 숨기기 좋아 보이는 바위 뒤 흙바닥이 갑작스럽게 푹 꺼졌다.

         

         그녀의 비명을 듣자마자 손을 뻗은 이자벨이 가까스로 그녀를 건져 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다행히 바닥에 창이나 가시를 박아두진 않았군요.”

         “그게 무슨 미친 소리니, 오스칼?”

         “절멸부대라면 그랬을 거란 뜻입니다.”

         “난 이제 이 나라가 무서워.”

         

         

         오스칼은 함정을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조차도 사전에 눈치채지 못한 함정 설계였다.

         

         더더욱 악의적인 것은, 총성이 들린 방향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는 점. 즉, 이 바위를 엄폐물 삼아 숨어들면 반드시 빠지도록 유도되었다는 뜻이다.

         

         

         “혹시 부상 입으신 분 계십니까?”

         “아파 죽겠는데 다행히 몸은 또 움직이네.”

         “맞은 부분은 다들 등입니까?”

         “저는 허벅지두요….”

         

         

         에시디스의 말에 오스칼은 그녀의 허벅지를 힐끔 바라보았다가 애써 시선을 돌렸다.

         

         쓸데없이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서 온몸에 진흙을 바를 정도로 바닥을 나뒹군 탓에 자극이 심했다. 특히 에시디스의 경우엔 더욱이.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음, 저 정도면 맞아도 행동에 지장이 없겠군. 하고.

         

         보통 훈련받은 사수들은 저격을 할 때 배나 가슴을 노리기 마련이다. 다른 의도가 있다면 무릎이나 어깨, 팔꿈치처럼 운신에 지장이 가는 부위를 노리거나.

         

         머리는 논외다. 애초에 정확히 머리를 저격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는 이상 머리는 원거리에서 일반적으로 조준하기엔 너무 작은 표적지다.

         

         따라서, 기초적인 사격 훈련에선 언제나 신체의 정중앙을 기준으로 조준선을 정렬시킨다

         

         그런데 지금 이 파티의 인원은 그 누구도 그런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이가 없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 훈련 상황이니까 봐주고 있구나.’ 하고 넘기겠지만, 오스칼은 전문적인 훈련과정을 (훈련생도 과정까지만) 받았던 요원이다.

         

         따라서 그는 그 시점에서 오싹,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요원들의 훈련 상태가 너무 좋다.’

         

         

         기본적으로 사격훈련은 징집병들이나 익히는 과정이다. 그도 아니라면 교양 수준에서 넘기는 정도. 사격이란 기술은 결국 ‘결정적인 강자’들에겐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숲 속에 요원들은, 적어도 열 명은 넘을 것이다. 어쩌면 스물 정도일까.

         

         산 전체를 통제하고, 훈련생의 행동 반경과 동선을 모두 예측해서 트랩을 설치하고, 24시간 쉼 없이 감제하고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인원이 필요할까.

         

         그리고 그 인원 전부가, 원거리 저격에서 ‘단 한 번의 오차 없이 치명상을 피하는 사격’을 가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이건 실탄이 아니다.’

         

         

         실탄이 아니라는 것은 비단 훈련생의 경계심만을 흐리는 것이 아니다. 사수들 또한 내심 안심하게 된다.

         

         아, 이건 실탄이 아니니까. 실수해도 죽지는 않으니까.

         

         그런 안심은 사수의 손끝을 둔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지난 24시간 동안 그들에게 쏟아진 탄환의 발수를 생각했을 때, 단 한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표적만을 타격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는가.

         

         

         ‘이 자리의 모든 사수가 크라실로프 최정예 요원일 리가 없으니.’

         

         

         이것이, 크라실로프 방첩사령부의 숨겨진 저력. 적어도 그 일면이 아니겠는가.

         

         훈련생 지도 따위에 동원된 말단 요원들조차도, 밤낮과 거리에 상관없이 오차 없는 저격을 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고가치 인력을 단지 훈련생 교육 과정에 소모할 수 있다는 것.

         

         오스칼은 침중한 눈으로 숲 속을 바라보다가, 떠나가는 일행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작전 지역 북부, 전술 지도 구획상 12시 방향에 위치하는 해발 250m 구간.

         

         여름철 울창한 수풀 사이에서 이반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먼 거리에서 바스락, 거리는 풀잎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 탓이다.

         

         청각에 최대한 집중할 때, 그는 총 42종의 들짐승을 소리로 구분할 수 있다. 각각의 짐승마다 보폭과 체중, 무게중심, 보행 방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누구나 훈련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그러므로, 도합 42종의 들짐승 중 그 어떤 개체에서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는 점은 한 가지 사실만을 의미한다.

         

         민간인과 병력이 모두 소개된 이 자리에, ‘이족보행’을 하는 100kg 이상의 대형 개체. 즉, 인류 또는 유사인류가 난입했다는 뜻이다.

         

         

         ‘왔나.’

         

         

         상대의 가청범위를 알 수 없으므로, 이반은 숨을 죽인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근방엔 함정도, 흔적도 없다. 그런 것들을 배치하면 상대의 경계심을 자극하기만 할 뿐이다.

         

         소리로 먼 거리의 상대를 구분해야 하는 환경 탓에, 근방의 병력 또한 모두 소개했다. 즉, 피아식별이 불필요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의 눈 앞에.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통제선을 넘어 나타난 이들은 모두 적이다.

         

         단순한 이야기다.

         

         숲. 작전 범위 내에 아군은 그 혼자, 그 이외의 개체는 모두 적군으로 예상.

         

         언제나의 정찰 임무였다. 그리고 이반은 단 한 번도 정찰 임무를 실패한 적이 없었다. 상대가 누구든 그것이 칠용장의 왕거에 거주하는 정예병 수준은 아닐 테니까.

         

         

         “이 방향이 맞소?”

         

         

         먼 거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반은 소리 없이 나무 기둥 위를 기어올라 청각과 시각에 집중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 무성한 잎새의 틈에서 무언가가 버르적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수는 30인 남짓. 두 개체를 제외한 전원이 무장 중.’

         

         

         작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간의 흔적이 전혀 없지 않소. 정말 이 자리가 맞소?”

         “지금 의심하는 게냐?”

         “’눈’을 의심한 적은 없소이다. 하지만… 이상하잖소. 아침부터 대흉이 떴다면서 난리를 치더니만!”

         

         

         ‘대흉? 마법사? 인간이라는 표현, 인간이 아니다. 엘프는… 당연히 아니겠지. 엘프 치곤 말투가 공손하다.’

         

         

         이반은 숲 사이에 희미하게 번쩍이는 병장기의 광택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금속도포를 하지 않음. 야전 경험이 없거나…. 위장도색을 싫어하는 족속이거나.’

         

         

         마족 중엔 그런 족속들이 몇 있었다. 주로 백병전에 특화된 몇몇 족속들은 저들 나름대로의 ‘용맹’을 과시하기 위해 위장 도색을 거부하는 편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한 자들 대부분은 멸종되었다.

         

         곧, 숲 너머의 인물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반은 그 시점에서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는 빠르게 병력을 확인한 후 숲 깊은 곳으로 몸을 숨겼다.

         

         

         “본부. 여기는 O1.”

        -O1. 본부 수신 중.

         

         

         이반은 귀 뒤를 꾹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작전 A1-2는 폐기. C2 상황 발생.”

        -확인. C2 상황. 맞습니까.

         “맞다. 현장 타격조는?”

        -7번조 투입 중.

         

         

         이반은 머릿속에서 작전 지도를 떠올렸다.

         

         7번조가 투입되었으면 3번조는 감제, 5번조가 휴게 상황이겠군.

         

         

         “5-1에게 입전. C2 상황 대응 2번.”

        -확인. C2 상황 대응 2번. 실시 시간은?

         “10분 후.”

        -확인. 작전 ‘위기부여’. 1232 부로 실시.

         

         

         마지막 회신을 마친 뒤. 이반은 도끼를 허릿춤에 꽂아 넣고, 오른손에 단검을 들어 팔을 쭉 뻗었다.

         

         

        *

         

         

         ‘주인공들은 지금보다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아카데미 클리셰에 따르면, 훈련을 통해 주인공을 강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인공들에겐 위기와 시련이 필요하다.’

         

         

         여기까지가, 이반이 처음 계획을 수립할 때 했던 생각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아카데미 수련회에서 적들이 습격해오는 것은 상식이다.’

         

         

         당연하게도 이 지점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이반은 상식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한번, 요원으로서 생각을 더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습격자들이 모두 머저리가 아닌 이상, 습격하기 적합한 위치를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습격자들이 충분히 유능하다면, 실전 상황이 부족한 방첩사령부 요원들의 좋은 교보재가 될 수 있다.’

         

         

         이때 예상할 수 있는 가상적군은 다음과 같다.

         

         왕세자파, 숙청 귀족의 잔당, 타국의 반군, 국제 테러 조직.

         

         여기까진 방첩사령부 요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이 아카데미물엔 예상 가능한 습격 세력이 하나 더 있었다.

         

         열차테러부터 실습 수업 기습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유서 깊은 적대 세력.

         

         마족이다.

         

         이건 당연하게도 주인공이 해결해야 할 시련이다. 방첩사령부는 첩보조직이지 마족 처리 부대가 아닌 탓이다.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절멸부대는 전면전에 투입된 적이 역사상 단 한 번 뿐이었다.

         

         마족은 주인공들이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방첩사령부의 요원들이 자신들을 지켜주리라 믿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시련이 될 수 없지.”

         

         

         지구의 유명한 명작 소설에선 이런 말이 나온다. [충분한 용기가 있다면 삶을 시련으로 바꾸어라.] 보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날 죽일 수 없는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와 같은 의미다.

         

         이반은 그 진리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삶이 실제로 그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교육자라면, 자신이 겪은 전훈을 훈련생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적절한 난이도 조절과 상황 통제를 통해서, ‘죽일 수 없는 시련’만을 정교하게 배치하여.

         

         

        *

         

         

         “크헉!!”

         

         

         이자벨은 칼을 들어 소리가 난 방향을 겨냥하며 주춤 물러섰다.

         

         이번엔 또 무슨 개지랄을 하려는 거지?

         

         슬프게도 이제 그녀의 마음 속 친절하고 따듯하고 자상했던 (그런 적 없다.) 아저씨의 모습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대학생들을 방학에 데이트하자고 꼬셔내서 산골에 처박은 뒤에 총을 난사하는 괴인만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랐다.

         

         비명과 함께 숲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은, 위장 도색을 꼼꼼하게 바른 덩치 큰 요원이었기 때문이다.

         

         

         “무, 무, 무, 뭐? 뭐에요? 이거? 이것도 수련?”

         “도망… 도망쳐…!”

         

         

         요원은 피를 한움큼 토해내고는 비틀거리다가 픽 쓰러졌다.

         

         파티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꺄아아악! 괘, 괜찮으세요?!”

         

         

         에시디스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뛰어나가려는 그 순간, 타앙. 총성이 울리며 요원의 등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곧, 다음 총성과 함께 에시디스의 발치에서도 작은 흙더미가 튀어 올랐다. 그녀는 비명을 내지르며 황급히 엄폐물 뒤로 몸을 숨겼다. 이반이 봤다면 가산점을 줄 만큼 신속한 엄폐였다.

         

         

         “뭐야? 뭐야뭐야뭐야?! 이거 뭔데!”

         “실, 실탄입니다! 다들 일단 숙여요!!”

         

         

         오스칼의 고함과 함께 총성이 이어졌다. 크헉, 하는 신음이 들리고 숲 속에서 누군가가 내달리는 소리들이 이어졌다.

         

         

         “습격…? 지금 저 아저씨들 다 당하고 있는 거 맞아?”

         “그런, 그, 그런가 본데!?”

         

         

         그럼 우린 누가 지켜줘?

         

         네 사람은 서로를 동시에 바라봤다가, 겁에 질린 얼굴로 숲 너머를 살폈다.

         

         화창한 여름날의 태양 아래에서, 숲은 끔찍하게 고요해졌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크라실로프의 방정환, 크라실로프의 페스탈로치, 크라실로프의 루소, 근대 절멸부대 교육학의 아버지, 이반 페트로비치 예레모프 교수님의 실전적 생존기술 수업 1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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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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