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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실비아를 다시 방으로 돌려보낸 뒤, 앨리스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아직 교복 안에 바니걸 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복을 벗고 다시 토끼 분장……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옷이 된 다음, 거울을 통해 그 모습을 보며 앨리스는 얼굴을 붉혔다.

        

       다시 봐도 낯간지러운 복장이었다.

        

       앨리스 본인이 직접 이 옷을 입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후련하기도 했다.

        

       평소에 가슴 속에 꾹꾹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를 토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혼자서 그 자리에 간 것이 아니라, 실비아와 어쩌다 휘말린 다른 친구들도 함께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마치 앨리스가 그 복장으로 그 자리에 갈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실비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앨리스의 방을 찾아왔다.

        

       실비아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었는데도.

        

       실비아가 나타날 거라는 생각은 했다. 앨리스는 실비아가 어떻게든 미래를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생각이 공고해진 것은 지난번에 실비아가 전장에서 승리하고 왔을 때였다.

        

       혼자 힘으로 전장에 가서, 큰 부상 없이 돌아올 수 있는 병사가 얼마나 될까.

        

       단순히 적진에 잠입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전선과 전선 사이가 ‘무인지대’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사이에 들어간 인간들이 죄다 죽었기 때문이다. 설령 생존했다고 하더라도 금방 발견되어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렇게 텅 비어버린 죽은 땅을 실비아는 혼자 건너가,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긁힌 상처 하나 나지 않은 것은 덤이다.

        

       적의 기지의 형태, 적의 배치, 무기의 종류, 날아오는 총알의 궤적 같은 것을 전부 파악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위업이었다. 제니퍼 윈터필드조차 그런 전투는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했을 테니까.

        

       앨리스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생각해내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겠지.

        

       사실, 실비아가 직접 찾아왔기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언제나 앨리스가 억지를 부릴 때면 그랬듯, 실비아는 앨리스의 편을 들어주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앨리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듯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가 끝까지 상황을 주도할 수 있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옆에서 분위기만 잡아주었을 뿐이었다.

        

       물론 베라티가 달려들기라도 했다면 실비아가 나섰을 테지만…….

        

       “이래서야 언니 실격이네.”

        

       앨리스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누가 봐도 실비아가 언니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래도…….”

        

       하지만 앨리스의 얼굴에는 금세 다시 미소가 번졌다.

        

       실비아가 웃는 얼굴을 봤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고, 그사이에 금방 지워지긴 했지만, 분명 실비아는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평소에도 실비아의 기분을 느낄 줄 아는 앨리스였기에 실비아가 아무런 감정도 없는 괴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대놓고 미소를 지어준 것은 처음이었다.

        

       전혀 어색하지 않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순간 그냥 넘어갈 뻔했던 그 미소.

        

       앨리스는 그 미소를 보고, 순간 생각했다.

        

       실비아가 앨리스를 차기 황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실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실비아가 미래에서 뭔가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앨리스 팬그리폰’이기 때문에.

        

       아마도, 그녀를 믿고 있기 때문에.

        

       “예지도 아니고, 계산도 아니다.”

        

       실비아가 했던 말을 곱씹어본다.

        

       그렇다면, 실비아는 미래를 이미 겪어보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텐데.

        

       시간을 돌리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마 여신교를 믿는 이들이나 신비론자들도 마찬가지로 반응할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지었던 죄를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렇다는 건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서 신의 제대로 된 심판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니까.

        

       그 사실을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여신교의 신자들은 신성모독이라면서 들고 일어나리라.

        

       “아니지.”

        

       앨리스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정반대로, 자신들의 모순을 견뎌내기 위해서 실비아를 여신 취급하지 않으려나.

        

       베라티에게 그런 말을 들려주면 어떻게 반응할까.

        

       괜히 기분이 유쾌해져서, 앨리스는 옷 갈아 입는 내내 실실 웃음을 흘렸다.

        

       *

        

       “내 여동생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안전 가옥이라도 되는 곳일까.

        

       베라티의 눈을 가리고 데리고 온 이곳은 창문 하나 없는 지하실이었다. 마차에 실려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길을 외워보려고 했지만, 아마 이곳으로 오는 길이 평범한 길은 아니었을 거다.

        

       설령 평범한 길이라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베라티의 방향감각을 교란하려고 했을 테고.

        

       그래도 노스우드 영지 안이라면 길을 찾을 자신은 있는데.

        

       지난 수개월 동안 시간을 헛보낸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숲속을 뒤지고, 몇 번은 노스우드 공작가에 침입하고도 들키지 않았으니까.

        

       다만 아직 지보가 있는 곳은 확실하게 찾아내지는 못했다. 법국에서 가지고 온 여러 장비들을 통해 대략적인 위치는 알아냈지만, 그 모든 곳을 수색하지는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 ‘장비’를 떠올린 베라티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보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지보를 가진 채 수색하는 것이다. 하나의 조각에서 떨어져나온 보물들이었기에 짝이 맞는 것이라면 그 반응성을 토대로 위치를 특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협력자들이 시간에 맞춰서 그 지보들을 빼낼 수 있을까?

        

       “생각이 많은 모양이네.”

        

       거슬리는 하이톤의 목소리가 그렇게 물었다. 마치 놀리는 것 같은 목소리라서, 베라티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얼굴은 가면에 완전히 가려졌다. 아마 머리카락도 자기 머리카락은 아닐 거다. 귀는 머리카락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고, 목의 색조차 옷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온몸을 감싼 모습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지역에 참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뭐, 그렇지.”

        

       사실 황녀를 본 시점에서 작전이 실패했다는 것은 알아차렸다. 두 황녀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을 정도라면 제국 수뇌부는 전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 허울뿐인 것처럼 보이는 황녀가 모든 황녀를 움직이는 역할을 하고 있을 줄이야.

        

       황제도 핏줄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걸까?

        

       “무슨 착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황녀라는 말을 들은 괴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베라티의 생각을 말로 끊었다.

        

       “황제의 후계자는 아직 안 정해졌거든? 실비아가 여제가 될 수도 있고, 내가 그 자리에 오를 수도 있지. 아니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황자 중 하나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될지도?”

        

       “…….”

        

       “오늘은 그냥 돕고 싶어서 도왔을 뿐이야. 귀여운 여동생의 부탁이잖아? 언니 된 사람으로서 무시하기 힘들었거든.”

        

       “참 잘나셨네, 황녀님.”

        

       베라티가 이를 갈았다.

        

       “뭐, 그거랑은 별개로 황제 자리에 욕심이 있는 것도 한 사람 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가 무조건 걔를 황제 자리에 앉힐 생각일지는 우리도 모르고.”

        

       “황제 자리에 앉고 싶지 않은 인간을 그 자리에 앉혀봐야 제국이 똑바로 돌아가겠어?”

        

       “제국에는 의회도 있는걸?”

        

       “헛소리.”

        

       베라티는 코웃음을 쳤다.

        

       “황제의 꼭두각시들만 잔뜩 모여있는 곳이 황제의 뜻을 거스르고 움직일 리 없어.”

        

       “애초에 황권이 강력하니 그러고 있을 뿐이잖아? 후대에 황권이 약해진다면 의회도 좀 기를 펴고 살게 될지도 모르지.”

        

       “황제가? 뭐, 그 딸이라고 주장하는 인간이니 황제의 생각은 네가 더 잘 알겠지만, 글쎄……”

        

       베라티는 여유 부리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말했다.

        

       “적어도 우리 법국에서 보는 황제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닌데.”

        

       “법국의 정보를 믿어?”

        

       “너희들의 정보보다는 믿지.”

        

       “대단하네. 그냥 사람 죽이고 싶어서 성당 기사가 된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신앙심도 꽤 두터운가 봐?”

        

       “…….”

        

       베라티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만히, 자기 앞의 여우 가면을 노려보았다.

        

       “뭐, 말을 안 하겠다고 해도 상관없어. 조금 있으면 하고 싶어질 테니까.”

        

       “하.”

        

       베라티는 여기 들어오고 처음으로 긴장을 풀었다.

        

       “고문이라도 하려고?”

        

       고문이라면 상관없다. 사실 통증이라면 어느 정도 즐길 수도 있는 몸이었으니까.

        

       죽지만 않으면 법국은 베라티를 어떻게든 고쳐줄 수 있었다. 지보가 있었으니까.

        

       배신했다는 증거만 없다면.

        

       “아니. 우리는 신사적이거든. 아니, 나는 ‘숙녀적’이라고 해야 할까.”

        

       재미없는 농담 후, 여우 가면은 너스레를 떨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황실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측을 많이 하던데, 궁금하면 그 황실의 정점에 있는 사람한테 직접 물어보는 건 어때?”

        

       “뭐—”

        

       하지만 베라티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지하실의 문이 열리고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인상을 찡그리고 위를 보자, 빛을 등지고 서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풍채를, 베라티는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말했잖아. 말하고 싶어질 거라고.”

        

       검은 옷 때문이었을까.

        

       어둠에 휩싸인 그녀는 하얀 여우 가면만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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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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