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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황제는 호위를 잔뜩 거느리고 내의원 복도를 뚜벅뚜벅 걸었다.

     

    그의 옆에 붙은 비서장은 심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주 쌍둥이의 사고 때문에 벌써 며칠이나 황제의 일정을 연기해야 했다.

     

    오늘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쌍둥이 중 언니인 게다 공주가 후유증을 앓는다 했다.

     

    그 상황을 황제가 보면 또 그녀들을 신경 쓰느라 일정을 미룰 것이 틀림없었다.

     

    “리비오 신관.”

     

    “존안을 뵙습니다.”

     

    황제를 기다린 리비오가 정중히 예를 표했으나 그의 표정은 심각했다.

     

    “게다를 보겠다.”

     

    황제가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았던 사람이 평온하게 병상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안도하기도 잠시.

     

    게다가 황제를 보고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니 그의 기분이 불편해졌다.

     

    “설마 오라버니이신가요?”

     

    증상은 이미 전해 들었다.

     

    치유의 부작용으로 그녀가 기억을 일부 소실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나다, 게다.”

     

    “후훗, 얼굴이 그대로 남아계셔서 알아봤어요. 참 이상한 일이네요.”

     

    게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똑똑하게 어제 일이 기억나거든요. 완다랑 뒷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었더니 오라버니가 찾으러 와주셨고… 얼마나 안도했는데요.”

     

    “게다.”

     

    황제가 혀에 차오르는 쓴맛을 삼키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40년 전의 일이다.”

     

     

     

    병문을 마친 황제는 밖으로 나서 리비오의 앞에 섰다.

     

    “권터의 주치의.”

     

    “예, 폐하.”

     

    “게다가 기억을 되찾을 가능성은 없는가.”

     

    “…송구하오나, 유감스럽게도.”

     

    황제가 매섭게 눈을 부라렸다.

     

    “상황은 들었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게다의 목숨을 건져냈다지.”

     

    “그렇습니다.”

     

    “공로는 치하하겠다. 하지만 포상은 없다. 게다는 인생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저래서야 죽은 것보다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완다는 멀쩡하거늘.”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고트베르크가 다르긴 하군.”

     

    그 이름을 들은 리비오의 얼굴이 굳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황제가 그의 매서운 표정을 보지는 못했다.

     

     

     

    “음.”

     

    퇴근하여 자택으로 돌아온 리비오는 지하실로 들어가 자신의 치유기록서를 파라락 넘겼다.

     

    그간의 기록을 확인하고, 깃펜으로 이번 공주를 치유한 과정을 상세히 적어나간다.

     

    오늘 황제가 했던 말을 되새기던 도중, 그의 손이 멈추었다.

     

    ―뿌득!

     

    자신도 모르게 준 악력에 펜이 부러졌다.

     

    그가 망치를 가져와 별안간, 방 안에 있던 달걀을 향해 휘둘렀다.

     

    ―쾅!

     

    힘없이 깨진 계란의 안에서 부화하기 직전의 병아리의 모습을 한 것이 흘러나왔다.

     

    쾌감은 느낄 수 없었다.

     

    “고트베르크.”

     

    리비오가 무감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황제의 눈에 띄어 부주치의가 되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지난번 기회를 뺏긴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완전히 황제의 눈 밖에 나버렸다.

     

    “제국 놈들은 은혜를 모르는군.”

     

    그깟 기억이 뭐라고 훌륭한 실력을 선보인 자신을 그따위로 폄하할 수 있단 말인가.

     

    치유사는 환자를 고치면 그걸로 역할은 끝이거늘.

     

    치매 걸린 늙은이의 수발까지 들어야겠는가.

     

     

    당연히 게다의 증상이 치매는 아니었다.

     

    파손된 두개골을 원상복구하려면 깨진 파편이 우그러지지 못하게 미리 깔끔하게 톱으로 도려내는 게 빨랐으니까.

     

    그 과정에서 게다의 뇌도 일부 잘라냈다가 수복했다.

     

    그만한 작업 중에도 환자의 숨이 붙어있게 할 신성력을 가진 치유사는 자신뿐이다. 리비오가 생각했다.

     

    내가 아니면 내의원의 그 어떤 치유사도 시체나 다름없는 할망구를 살려내지는 못했을 것을.

     

     

    딱 하나.

     

    고트베르크를 제외하면.

     

    “두 번의 패배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리비오는 인정했다.

     

    애초에 고트베르크는 그의 관심 밖에 있는 인물이었다.

     

    이룬 업적도 미미한 초짜 치유사다. 죽여봐야 별 감흥이 안 든다.

     

    당장의 분노에 복수심을 채워도 황제를 죽일 쾌감보다 적을 것이 분명했기에, 리비오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법국에서 최고였던 나도 이곳 제국에서는 고트베르크보다 밑이다.”

     

    그가 존재하는 한 시간이 지날수록 황제에게 접촉할 방법은 점점 없어질 것이었다.

     

    “더 빨리 행동해야겠군.”

     

    황제는 최선의 후계자를 선택해 자신의 일대기를 완벽한 성공담으로 완성하려 한다.

     

    그 전에 그가 죽어 제국이 혼란에 빠진다면 완성되지 못한 채, 가장 아름다울 때 망가진다.

     

    리비오가 집착하는 목표는 그것이었다.

     

     

    그가 엄중하게 잠가놓은 걸린 서랍 밑단을 열어 병을 하나 꺼냈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서는 새까만 기운이 담긴 무언가가 기분 나쁘게 꿈틀대고 있었다.

     

    “암흑사제의 저주.”

     

    상급이나 되는, 잘못 취급하면 굉장히 위험한 저주다.

     

    효과는 간단하다.

     

    이 저주를 품은 자는 어떤 치유주문에도 반대로 피해를 입게 된다.

     

    저주 자체가 지속적으로 숙주의 생명력도 깎아먹기에, 당한다면 손 쓸 방도가 없이 죽어버리는 저주다.

     

    처음에 리비오는 황제의 부주치의가 되어서 이것을 그의 음식에 탈 계획이었다.

     

    “법국의 이단심문관들이라면 모를까 제국에서 저주에 대해 이해하고 있을 리가 없다.”

     

    저주는 흑마술사들이 개발한 금기이기에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저주의 등급도, 효과도, 자신이 먹였다는 사실도 밝혀내지 못할 것이었다.

     

    “아직 수단은 있다.”

     

     

     

    다음 날, 리비오는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아침마다 그는 자신의 담당인 권터에게 정화와 축복을 제공한다.

     

    그 덕에 권터는 최근 몸의 기운이 넘쳐 주체를 못 할 정도였다.

     

    진료가 끝나고 리비오가 권터에게 말했다.

     

    “훌륭한 위용이십니다. 역시 전하께서는 제국의 차기 황제가 되실 황태자답습니다.”

     

    “어? 뭐, 그렇지….”

     

    평소처럼 의욕 없이 대답하는 권터에게, 리비오가 조금씩 독을 풀기 시작했다.

     

    “마음에 걸리시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뭐.”

     

    “월광궁의 3황녀가 승계 참전을 선언한 일 때문이신지요.”

     

    “…쯧.”

     

    권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리비오는 황태자 권터에 대해 이미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황태자임에도 형제 중 가장 능력이 뒤처진다.

     

    나이는 서른이 다 되어 가지만 헤이케처럼 이룬 업적도, 게오르크처럼 손에 넣은 부도, 아셀라처럼 특별한 재능도 없었다.

     

    그 때문에 항상 열등감이 그득하다.

     

    “당연히 제국을 물려받아 통치하실 성군은 전하뿐이신데, 다른 승계권자들이 지나치게 날뛰는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자존심이 긁힌 권터가 성을 냈다.

     

    “처음부터 황태자는 나로 정해져 있었어. 헤이케도 게오르크도 그 사실을 망각하고 설치는데, 이제는 아셀라까지 나를 개무시해? 나쁜 놈들.”

     

    권터가 홀로 꿍시렁댔다.

     

    리비오가 그런 그에게 다시 한 번 축복을 걸어주니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래도 리비오가 알아주니 됐어.”

     

    “소인은 일개 치유사일 뿐입니다. 전하의 진면목을 알아야 하실 분은 따로 계십니다.”

     

    “누구?”

     

    “물론, 황제 폐하십니다.”

     

    리비오의 말에 권터도 동의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내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는 게 아닐까. 권터도 최근 들어서는 그런 의심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바마마는 워낙 바쁘시기도 하고…”

     

    “그럴 때일수록 더 찾아뵙고 기운을 복돋아드리면 좋아하시지 않겠습니까.”

     

    “방법을 모르겠는데 어떡해.”

     

    리비오가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 시종을 시켜 자신의 대기실에 있는 어느 물건을 가져오게 했다.

     

    시종이 가져온 건 한 병의 술이었다.

     

    “중간계의 요정들이 빚은 술입니다.”

     

    “어? 진짜? 이거 엄청 귀하잖아. 돈이 있어도 못 산다고 들었는데.”

     

    “전하께서 폐하와 돈독한 이야기를 나누실 계기가 된다면 저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

     

    권터가 술병을 받아들고는 입가에 웃음을 피웠다.

     

    “고마워, 리비오. 너 마음에 든다.”

     

    “주군께 충성드리는 것이 주치의의 의무입니다. 전하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소인도 보람이 듭니다.”

     

    리비오는 아무 감정도 담지 않고 기계적으로 말을 내뱉었지만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 권터는 마냥 기뻐했다.

     

     

    하지만 권터가 황제와 독대할 일은 없었다.

     

    “짐은 음식 하나, 물 한 방울도 엄격하게 검증된 것만 입에 댄다. 어디서 온 지도 모를 술은 혼자 즐기거라, 권터.”

     

    무작정 술병을 들고 천황궁으로 뛰어간 권터였으나 돌아온 건 황제의 냉담한 반응이었다.

     

    그쯤 되니 권터도 빈정이 상했다.

     

    “검증이라니요, 친아들이자 황태자인 제가 가져온 진상품입니다. 그걸 믿지 못하시겠다고요?”

     

    “그 둘은 별개의 문제다, 권터. 술은 더욱이 고트베르크가 입에 대지 말라 하였다.”

     

    그 이름을 들으니 권터의 얼굴이 붉어졌다.

     

    “고트베르크라면 아셀라의 주치의 아닙니까! 이제는 그 아셀라조차 믿으시는데 전 못 믿으신다고요?”

     

    황제가 한숨을 쉬었다.

     

    “권터, 목소리를 낮춰라. 너는 나이를 먹어도 나아지질 않는구나. 그 가슴에 단 징표가 어울리지 않을 지경이다.”

     

    권터의 가슴에 훈장처럼 달린 가넷 브로치.

     

    황제가 권터를 황태자로 책봉하며 내린 하사품이었다.

     

    정제된 불사조의 깃털이 보석 안에 들어있어 착용자에게 막대한 생기를 불어넣는 전설급 아티팩트다.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한 권터였기에 황제가 특별히 선물한 황실의 비보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제가 증명해 보이죠. 아무리 월광궁이 성장했다 한들 아셀라가 제 급은 아닙니다!”

     

    권터는 황제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차올랐다.

     

    어릴 때부터 황태자의 의무를 떠안은 채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결과를 내지 못해 황제가 그를 인정하는 일은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도 점점 국정에 흥미가 떨어져 빈둥대게 된 게 지금이었다.

     

    아셀라에게 딱히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는 황제에 대한 화를 풀어낼 대상이 필요했다.

     

    “저를 황태자로 책정한 건 아바마마십니다! 차기 황제에 어울리는 건 저라구요!”

     

    권터가 술병을 바닥에 탁 내려놓고는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

     

    황제는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황태자가 아셀라 황녀님께 전략 모의전을 신청하셨습니다.”

     

    오후 타임 호위로 출근해 브루노와 교대한 타냐가 내게 정보를 전해줬다.

     

    “권터가? 월광궁에 찾아왔었어?”

     

    “예. 승계전에 참전한 황녀님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요.”

     

    “그렇다고밖에 안 보이네.”

     

    전략 모의전. 워 게임이다.

     

    두 사령관이 백 명 정도로 한정된 병력을 가지고 규칙에 따라 승부를 가린다.

     

    실제 기사들로 두는 체스라고 볼 수 있다.

     

    체스보다야 훨씬 박진감은 넘치지만.

     

    “그런데 권터란 말이지.”

     

    그는 본래 싸움을 즐기거나 호전적인 타입은 아니다.

     

    본래 역사에서도 다른 승계권자들에게 밀려 조용히 황태자에서 폐위됐던 인물이다.

     

    ‘그 소극적인 권터가 이렇게 큰 액션을 보이게 된 계기는.’

     

    리비오가 그를 흔들었음이 분명했다.

     

    권터의 속을 박박 긁어서 움직이게 만들었겠지.

     

    ‘내의원에서 더 활약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권터를 이용해 황제에 접근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구만.’

     

    이 건은 철저하게 대응한다.

     

    리비오의 액션이 커졌다. 움직임을 주시하면 이번에 그가 암살범이라는 증거를 확보해 퇴출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황녀님은? 오후 진료 시간인데.”

     

    “아직 훈련장에 계십니다.”

     

    “몇 시인데 마법 연습이셔. 모시러 가자.”

     

     

     

    타냐와 함께 아셀라를 찾으러 이동했다.

     

    아셀라를 발견하니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마법에 집중하고 있었다.

     

    머리 위로 떠오른 마법진은 다섯 개.

     

    마법진은 차분하게 천천히 회전하며 안정적으로 시전을 이뤄낸다.

     

    저 나이에 5위계도 통달하다니, 역시 아셀라였다.

     

    “음?”

     

    그때 상태창에 메시지가 떴다.

     

     

    ―――――――――――

     

    · 의학이 B랭크로 랭크업했습니다.

     

    · 재능 랭크 상승에 따라, 디버프 [체력 지속 감소 C]가 [체력 지속 감소 및 빈혈 B]로 랭크업했습니다.

     

    ―――――――――――

     

     

    “거 참, 반가운데 반갑지 않네.”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라스!!

     

    나는 다급하게 외치는 아셀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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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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