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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리브라가 버튼을 눌러서 획득한 데이트권의 정식 명칭은 ‘주딱과의 두근두근 일일 데이트권’.

        ‘일일’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은 만큼 유효기간은 날짜가 바뀌기 전까지였다.

        벌써 전야제가 시작되는 늦은 시간이었기에 자정을 넘기기까지는 기껏해야 두 시간 남짓이 남았을 따름이지만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운명의 강제력으로 상식을 초월한 존재를 붙잡아둘 수 있는 시간이 지극히 짧을 뿐이었다.

       

        “되게 예전부터 오늘 같은 날이 오기만을 꿈꿔왔어. 대숙청의 밤 기억해? 그때 분탕들에게 일침 날리면서 ‘이제부터 내가 하늘에 서겠다’고 말했잖아. 그때부터 쭉 지켜본 거야.”

        “오, 그런가요? 꽤 오래 전 일인데 기억한다니 반갑네요.”

        “나 지금까지 주딱에 대해서는 뭐든 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몰라서 만나면 직접 물어봐야 할 100,000문 100,000답을 노트에 적어놨어. 지금부터 하나씩 물어봐도 돼?”

        “잠시만요, 분명 이 근처에 미아 보호소가 있었는데…… 이상하네 지도가 틀렸나?”

       

        리브라는 주딱과 나란히 걸으며 단 1초도 쉬지 않고 입을 재잘거렸다.

        단순히 지난 수 년 간 그의 행적을 열렬히 쫓아다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점성학파의 신비, 천칭에 바쳐야 하는 대가는 대상에 대한 정보가 적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주딱의 정체는 지금껏 완전히 베일에 쌓여져 있던 만큼 필요한 마력과 대가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리브라에게는 단순히 그의 성별을 밝혀낸 것도 최근 반 세기 동안 깨달았던 마법의 진리보다 더욱 큰 가치가 있었다.

        만약 오늘 주딱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그에게 천칭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진짜 이름이 뭐야? 학파는? 사는 곳은 역시 탑 꼭대기려나? 아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주딱이 가장 좋아하는 것부터 말해주면 안 될까? 예전부터 정말 궁금했거든.”

        “음, 복사뼈려나요.”

        “복사뼈……? 아, 아니 됐어. 그럼 사용하는 마장의 종류는 뭐야? 설마 그 칼이……?”

        “아뇨, 이건 파딱이에요.”

        “?”

       

        쉽게 자신에 대해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말라는 걸까.

        질문을 던지면 던질수록 의미심장한 대답이 돌아와 머리가 어지러운 리브라였다.

        그의 목소리와 그의 냄새, 걸음의 보폭과 손바닥에 받힌 굳은살까지 모든 걸 느끼는 중이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저 흉물스런 부엉이 가면 아래 감춰진 진짜 얼굴.

        천칭에 대상을 특정하기에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갤러리에는 주딱의 외모가 제국에서 제일 잘생겼다는 떡밥이 주기적으로 돌았다.

        ‘마탑에서 가장 주목받는 마법사 랭킹!’에서도 1위였던 그가 직접 출연했으나 카메라 감독이 필름을 빼돌려 3위였던 헤르헤 소롯의 인터뷰만이 방영된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시청률이 저조해 폐지된 프로그램의 영상을 구하기 위해 천칭을 붙잡고 얼마나 씨름했던가.

        그의 맨 얼굴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 히히힝!

       

        “저런, 위험하게 시리. 근처 바닥은 또 왜 이렇게 젖었는지…… 저희 다른 길로 가죠.”

        “으, 응.”

        “찰스가 발굽에 밟혀 으스러져 버렸는데 괜찮나요?”

        “걔는 좀 밟혀도 돼. 그래도 낙원까지는 데려가야 하니까 잠시만.”

       

        골목길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마차가 바구니를 치고 갔다.

        떨어진 꽃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던 리브라의 시선이 가늘게 좁혀졌다.

        어둠 속에 숨어있는 홍채의 형상을 이룬 사이한 마력의 집합체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주딱의 페이스에 말려들긴 했지만 그녀는 손짓 한 번으로 별들의 속삭임도 멈출 수 있는 신비의 주인이었다.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네.”

        “네?”

        “올해는 교국의 사제들이 온다고 어둠의 숲에서 장작을 많이 구해놔서 그런지 불을 싫어하는 누군가는 방해를 하고 싶나 봐. 극채색인지 뭔지 부랴부랴 급조하는가 싶더니, 역시 하나도 도움이 안 되잖아.”

       

        마녀들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딱이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둘만의 데이트를 방해받길 원하지 않는 마음에 리브라는 작게 읊조렸다.

        마족에 의해 고통받은 영혼은 실낙원에도 있었으니 손속에 자비는 없었다.

       

        천칭에 얹는다, 그리고 바란다-.

       

        화형대에서 빛에 잡아먹힌 마녀들이 어둠 속에서도 안락하지 못하기를-.

        제 몸을 덮은 그을음이 소사(燒死)의 고통을 떠올리게 만들기를-.

       

        — 끼야아아악!!

       

        — 댕, 대앵……!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보호소 직원들이 퇴근할지도 모르니 조금 더 빨리 움직입시다.”

       

        추가 기울며 대가가 정산됐다.

        11시 정각을 알리는 종탑의 소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안 그래도 촉박한 시간이 더욱 줄어들긴 했으나 이걸로 마녀들을 신경쓸 필요는 없어졌다.

        리브라는 남은 1시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 그의 가면을 벗겨 맨 얼굴을 보기로 마음 먹었다.

       

        객관적으로 자신은 충분히 있었다.

        실낙원에서 잘 나오지도 않음에도 매년 수십 건의 청혼을 받고.

        한 번이라도 자신의 얼굴을 본 점성학파의 마법사들은 천칭에 꿈에서라도 다시 보게 해달라는 소원을 얹는데다가.

       

        [주딱은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한다]

       

        지금까지 주딱이 올린 모든 글을 기억하는 그녀는 그의 취향이 어떤지 전부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주딱, 나 목마른데. 우리 마실 거라도 살래?”

       

        오늘이 지나가기 전까지 운명은 그녀의 편이었다.

       

       

       

        *

       

        “미아라고요? 누가 봐도 아이처럼 보이진 않는데요?”

        “아, 거기 지나가시는 커플 분! 연애운을 점쳐보시지 않겠어요?”

        “죄송하지만 빨대가 하나밖에 안 남아서요. 참고로 이 음료는 그냥 입을 대고 마시려 하면 반드시 쏟아지는 마법이 걸려있답니다.”

        “괜찮으니까 그냥 줘. 가자 주딱.”

       

        참 이상하네.

        천문이와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부터 뭔가 알 수 없는 흐름에 딸려가고 있었다.

        거리에서 대놓고 주딱이라고 불러도 아무도 신경 안 쓰고 기껏 찾은 미아 보호소에서는 인계를 거절 당한데다 직원이 건네준 빨대까지 하트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다.

       

        기감을 활성화 해보아도 딱히 적의는 느껴지지 않아 묘한 기분이었다.

        아니, 오히려 편안한 기분에 가까웠다.

        저쪽은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고 그것에 놀라워하지도 않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쭉 대화해보니 천문이가 내게 보이는 건 단순한 팬심이나 우호적인 감정과는 궤가 달랐다.

       

        “태양이 세 개 뜨는 외계종족의 은하계를 갈아만든 맛이래. 마셔 볼래?”

        “궁금하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왜? 가면 벗으면 마실 수 있잖아.”

        “저는 설화수밖에 안 마셔서요.”

       

        ====

        까고보니글평

        [임산부석에 앉으면 임신하는 거 아니었어?]

       

        여동생한테 양보해줬는데도 멀쩡한데?

       

        참고로 나는 설화수만 마시고 메테오가 얼음마법이라고 생각 안하는 글레시아 학파임

       

        — 글평

        — 아오 글쌤

        — 제목부터 내용까지 진짜 어질어질하네 ㅋㅋㅋㅋ

        — 글평 가면 쓴 미평

         ㄴ 이건 글평인 척 하는 진짜 글평이지 ㅋㅋㅋㅋ

        — 오늘도 숨도 안 쉬고 음해 들어간다

        — 이 새끼 때문에 최근 글레시아 학파 가입율 개떨어짐

         ㄴ 니플헤이르 막내딸이 사고치고 다녀서 그런 건 아니고? ㅋㅋ

        — 파딱 일 안해?

         ㄴ 그러고 보니까 아까부터 갤 관리 전혀 안 되네 ㅋㅋㅋ

        ====

       

        “그럼 설화수 파는 데를 찾아보자. 아니면 다음에 내가 준비해 둘게.”

       

        시험 삼아 꽤나 강한 빨간약을 들이밀어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전긍정.

        갤러리에 별 관심이 없는 이자젤이나 시엔에겐 차마 보여주지도 못할 글을 읽고 태연하게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주딱은 설화수밖에 마시지 않는다]

       

        스토킹이 이쯤 되면 소름돋을 법 하건만 역시 순혈의 힘 덕분일까, 청초순백은발미소녀가 같은 행동을 하니 본능으로부터 올라오는 거부감도 없었다.

       

        “주딱이랑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이야. 오늘 너무 즐거웠거든.”

        “…….”

        “그러니까 얼굴, 보여주면 안 될까? 나중에 스쳐 지나가면 알아볼 수라도 있게.”

       

        아니, 오히려 직접적으로 대시하여 정신을 쏙 빼놓는 말에 안 좋은 첫인상이 상당히 희석되어갔다.

        붐비는 인파를 뚫기 위해 손을 붙잡을 때마다 기껏 부활한 내면의 고닉 프리나나가 사멸의 비명을 지르는 건 덤이었다.

       

        하루의 끝을 알리는 전야제가 시작되고 풍요와 승리, 그리고 지혜를 뜻하는 세 개의 화톳불이 피어오를 무렵.

        대답을 망설이던 도중 천문이가 들고 있던 음료수를 쏟아 버렸다.

       

        “앗, 미안. 빨대가 불편해서 입을 대려다가 그만…….”

        “닦을 게 있어서 괜찮으니 여기 앉으세요. 그러고 보니 신발을 안 신고 다니네요.”

        “응, 얘들이 싫어하거든. 신발로 밟히면 아프다면서.”

       

        호오, 꽃들이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그냥 미소녀에게 맨발로 밟히는 게 좋은 건 아니고?

        그녀가 소중히 간직하는 녀석들의 속내가 다소 이상하게 들이는 발언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벤치에 앉은 천문이의 발을 들어올렸다.

       

        하얗고 작은 발.

        상대적으로 분홍빛이 도는 발바닥에는 조금 전까지 돌바닥을 거닐었음에도 먼지 하나 묻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건 완벽한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얄상한 발목.

        그 위에 양쪽으로 볼록 튀어나온 종아리뼈의 맨 아랫부분이었다.

        나 정도 되는 모험가의 눈썰미라면 경골과 비골을 지탱하는 역할을 맡는 내외의 각도와 주변부의 살갖을 통해 생활 습관과 체형 등을 분석할 수 있다.

       

        시엔의 경우 검술로 균형을 잡을 일이 많고 늘씬하게 빠진 허벅지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천문이는 정원을 거닐거나 소소한 밭일 정도, 발목부터 이어지는 하체의 곡선도 넓게 벌어진 골반을 받치고 있었다.

       

        순혈 마법사라 그런지 얇은 피부 아래로 뼈의 모양이 그대로 느껴졌다.

        태어나서 한 번도 천이 닿아본 적 없는 게 분명했다.

        만약 여기에 잇자국을 새긴다면 그 흔적은 영원히 남게 되겠지.

        허나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답답한 가면을 벗어야만 했다.

       

        “흐응, 주딱은 특이하네. 진짜 좋아하는구나? 복사뼈.”

        “…….”

        “……원한다면 마음껏 가지고 놀게 해줄수도 있는데.”

       

        잠깐의 망설임 뒤에 떨어진 허락과도 같은 발언.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듯한 유혹이었다.

        머리채를 당기는 감각이 더욱 강해져 스쳐가는 산들바람에도 가면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드니 전야제의 불빛이 볼에 스며든 천문이의 얼굴이 올려다보여 더욱 감정이 고조되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나는 떨리는 손을 턱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부엉이 가면을 들어올리려던 순간.

       

        — 댕, 대앵……!

       

        “앗!”

       

        12시를 알리는 종에 화톳불이 거세게 타오르며 하루가 지나갔다.

       

        ====

        마린이444

        [성신제 안 가고 방구석에서 갤질한다고 했던 파딱 하나 저격한다]

       

        (사진)

       

        방금 교국 병사들이랑 술집 나가는 거 똑똑히 봤음

       

        전에 인증샷에 올린 손 모양 비교해보면 동일인물인 거 알 거임

        ====

       

        동시에 습관적으로 위치노트를 켠 나는 갤러리에 먼저 올라온 첫 번째 글을 읽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100화와 동시에 백만 조회수도 달성했네요.

    공지도 갱신해 두었습니다.

    후원해주신 달리도 님, 낮잠돌고래 님, 그리고 익명의 후원자님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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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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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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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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