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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엘라의 스승, 아그네스 A 라이히는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아 호텔에 도착했다.

        

       이세린이 자신의 능력으로 그녀가 온 것 같다고 말하자, 진성은 눈치껏 자매를 데리고 그대로 호텔로 나왔다.

        

       이세린과 이아린은 엘라의 스승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지금 인사를 해봐야 엘라에게 일어난 일들 때문에 정신을 힘겹게 붙잡고 있는 사람이 제대로 된 인사를 받을 수나 있을까?

       진성은 의식을 하고 돌아오면 그제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셋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해야 한다며 자매를 설득했다.

        

       그렇게 진성은 이세린과 이아린을 이끌고 오지로 향했다.

       재료들은 트럭 하나를 빌려서 쑤셔 넣었고, 상해선 안 되는 물건들의 경우 냉각마법이 부여된 박스에 보관해놓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염소와 카피바라는 뒤 칸에 집어넣기에는 러시아 기온이 너무나 추워 자칫 잘못하면 얼어 죽을 위험이 있었다.

        

       그 때문에 카피바라와 염소는 자매가 각각 한 마리씩 껴안고 탈 수밖에 없었다.

        

       “꺄, 꺅! 가만히, 가만히 있어!”

       “악! 이 똥 싸는 뻣뻣한 털 뭉치 같으니!”

        

       덕분에 카피바라와 염소는 그녀들의 체온 덕분에 죽을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대신에 이세린과 이아린이 고통을 받았다. 이세린의 품에 안긴 염소는 얼른 벗어나서 저 드넓은 눈밭을 뛰어다니고 싶다는 듯 몸을 계속해서 비틀었고, 이아린의 품에 안긴 카피바라는 나름 얌전하기는 했으나 쉴 새 없이 똥오줌을 그녀의 옷에다가 싸대고 있었다. 게다가 이 ‘똥 싸는 뻣뻣한 털 뭉치’가 똥을 싸기 시작하면 염소 역시 질 수 없다는 듯이 똥오줌을 갈겼으니,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나마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상한 진성이 청소 아티팩트를 갖춰놓았기에 트럭 안이 오물로 범벅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청소 아티팩트는 바닥에 싸질러진 똥오줌을 말끔히 지워주는 것은 물론이고, 동물의 오물을 가장 먼저 맞았던 옷 역시 세탁소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깨끗하고 뽀송뽀송하게 만들어주었다.

       오물이 묻었던 몸 역시 여행 중 청결유지를 목적으로 만든 세정용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씻으면 되었으니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기분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한 것이니.

       아무리 깨끗하고 새것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중고’, ‘리퍼’라는 단어가 붙는다면 꺼려지는 것이 본능이다.

       옷과 몸 역시 아무리 깨끗해졌다고 한들 똥오줌을 받았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으니, 당연히 악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다.

        

       “오라비! 목적지까지 얼마 남았어?!”

       “어, 어서! 어서 주술을!”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카피바라도 의외로 귀여운데…. 제물로 바치기에는 조금 불쌍해’, ‘염소가 너무 귀여운데, 그, 의식, 다른 거로 하면, 안되나요?’ 등의 말을 꺼냈던 자매의 입에서 ‘어서 이 사악한 짐승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자’라는 잔인한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악! 내 손은 왜 갉으려고 하는 거야!”

       “꺄아아악! 내 옷을 왜 먹으려고! 아, 아니! 염소의 습성 같은 건 알려주지 않아도 돼!”

        

       염소가 이세린의 치맛자락을 뜯어먹어서 넝마로 만들고, 카피바라가 자신의 자라는 이빨을 갈기 위해 이아린의 손가락을 갉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세린이 방심한 사이 염소가 탈출해서 이세린의 뒤쪽으로 이동하려다가 그녀의 머리에 똥을 갈기기도 했다.

        

       그야말로 자매들에게 있어 이 통제가 안 되는 동물들과 있는 시간은 악몽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악몽은 제 맘대로 끝나지 않기에 악몽인 법.

       자매는 ‘얼마 걸리지 않느니라’, ‘거의 다 왔느니라’, ‘밖의 풍경도 감상하고 그러거라’ 등의 무심한 대꾸를 들으며 한참이나 동물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결국 해가 뜰 때 차에 타고,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

        

       트럭에서 내린 이세린은 풍경을 보자 감탄했다.

        

       “우와, 진짜 풍경 한 번 끝내주네.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네? 오래비, 지금 여기가 목적지는 아니지 응? 아니라고 말해.”

        

       뒤를 이어 이아린이 감탄했다.

        

       하지만 둘의 감탄은 결코 긍정적인 감탄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절경을 보고 감탄하는 것과는 다른, 끔찍하고 두려운 것을 보았을 때 나올법한 감탄이었다.

        

       둘의 시선에 비친 것은 바로 폐장된 놀이공원이었다.

       가장 먼저 입구 부근에는 이름 모를 풀과 나무가 가득 자라나 있었다. 덩굴로 보이는 것들은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를 빼곡하게 둘러싸서 나무를 고사시키고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붕은 놀이공원까지 가는 길목을 새까만 어둠의 장막으로 감싸 안았다. 손전등을 켠다고 한들 오히려 빛이 어둠에 먹혀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저 멀리 입구가 보였는데, 그 입구 또한 심상치가 않았다. 굵은 쇠사슬과 자물쇠로 굳게 닫힌 정문에는 귀기마저 서려 있었다. 쇠붙이에 슬어있는 녹은 말라붙은 핏자국처럼 보였고, 누군가가 장난삼아 그린 듯한 그래피티(graffiti)는 ‘이곳은 위험하다’며 온 힘을 다해 소리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입구를 넘어서면 거대한 크기의 놀이기구가 보였는데, 그 모습이 지금 당장이라도 중심을 잃고 쓰러져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태위태한 것들뿐이었다.

        

       “여기가 맞다.”

        

       하지만 진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도리어 무엇이 문제냐는 듯 자매를 바라볼 뿐이었다.

        

       “의식을 거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술적 의미이니라. 당연하게도 역사와 전설, 전승을 가진 곳이 가장 좋을 것이나. 오직 그런 곳만이 제대로 된 주술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편견이니라.”

        

       모든 것은 시간과 함께 변화한다.

       주술 의식에 관한 것 역시 마찬가지.

        

       아주 오래전.

       인류가 갓 문명을 만들기 시작했을 무렵, 그들은 분명 주술을 영험해 보이는 곳에서 행했으리라.

       사시사철 운무 덕분에 하얀 바다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산꼭대기 위라거나, 쉴 새 없이 번개가 치는 호수, 특정 시간이 되면 햇빛으로 벽면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동굴, 사람이 누워도 가라앉는 대신 둥둥 떠다니는 호수, 너무나 맑아 바닥까지 볼 수 있지만, 그 깊이가 수십 미터는 되는 바다 등.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 동반되는 곳.

       자연스레 경외심이 들게 하는 자연이 만들어낸 걸작.

       아무리 탐구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장소.

        

       그러한 곳이 주술 의식의 주된 장소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왔고, 그러한 경외 역시 자신이 마땅히 정복해야 할 것이라 여기며 파괴하고 소유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술 의식을 벌이는 장소 역시 변화가 생겼으니, 그것이 바로 제단이었다.

        

       이 제단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 형상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돌을 깎아 수없이 많은 계단을 쌓아 수십 미터에 달하는 높이의 구조물을 만들기도 하였고, 어느 지역에서는 신화와 관련된 조각과 벽화가 가득한 하늘을 찌를듯한 높이의 탑의 형태를 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지역에서는 수없이 많은 해골을 탑처럼 쌓기도 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잘 반죽한 진흙에 사람의 두개골을 넣어 만든 진흙 벽돌로 사각뿔 형태의 제단을 만들기도 하였다.

        

       “오기 전에는 조금 걱정이 되었으나, 직접 보니 나쁘지 않구나. 아니, 오히려 훌륭하다.”

        

       사람은 높은 곳을 경외하고, 존경하며, 무서워하고, 갈망하였다.

       그렇기에 사람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하늘 저 너머에 있다고 믿어왔으며, 무언가를 기원하고 기도할 때 하늘을 향해 날려 보내는 방법을 선호하였다.

       제물을 태운 연기가 하늘 위로 올라갈 때 그것이 위에 있는 신에게 닿는다고 믿어왔으며, 불에 타서 그 흔적이 사라졌을 때 불을 매개로 신이 공물을 취했다고 여겼다. 커다란 소리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해 저 너머에 있는 신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이며, 동시에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신이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인간의 발버둥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의 하늘에 대한 집착은 커졌다.

        

       신과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제단은 높아졌다.

       신에게 닿을 소리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형태를 이루었다.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정신의 고양은 오직 그들의 목표가 되었다.

        

       마침내 인간이 하늘을 날게 되어서야 이러한 하늘에 대한 집착은 한풀 꺾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 상징이 사라지지는 않는 법.

        

       높은 곳은 하늘과 가깝고.

       하늘에 가까우면 번제의 효과는 커진다.

        

       그리고 여기, 인간이 만들어낸 높디높은 인공물이 있다.

        

       “저 대관람차가 네가 행할 의식의 장소이니라.”

        

       진성은 이세린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저, 저기요?”

        

       진성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당장 부서져서 굴러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고물 덩어리가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작동이 안 된 지 수십 년은 지나 보였고, 설령 작동된다고 한들 무언가 잘못되어서 폭발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고철.

        

       “힉.”

        

       이세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걱정하지 말아라. 저 위에까지는 올라가지 않아도 되니.”

        

       진성은 안심시키려는 듯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차에서 염소를 꺼내 그녀의 품 안에 안겨주었다. 염소는 내내 자신을 안고 있던 이세린의 품에 다시 안기자 메에에 울며 탈출하려고 했지만, 진성이 머리에 손을 얹는 것으로 스르르 눈을 감고 그대로 그녀에게 몸을 맡겼다.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염소가 잠들자 이세린은 허망한 듯 염소를 보았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이아린 역시 진성을 원망하는 듯 바라보았다.

        

       어째서 차에 있을 때 이렇게 재우지 않았냐는 물음을 담아서.

        

       “오랫동안 잠들게 되면 제물의 가치가 떨어지고 변질이 되느니라. 잠이라는 것은 예부터 죽음과 친밀한 것으로 여겨진바, 오랫동안 잠들게 되면 생명과 관련된 상징이 떨어지게 되느니라.”

        

       고대 그리스에서는 잠의 신 힙노스(Ὕπνος)를 죽음의 신 타나토스(Θανατος)와 쌍둥이 형제라 여겼다. 잠에 빠지듯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 사람들이 죽음을 ‘영원한 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

       잠이라는 것이 영혼이 쉬는 것이라 여기는 곳도 있으며, 어느 나라의 민담에서는 사람의 영혼이 동물의 형태가 되어 밖을 쏘다니다가 돌아온다고 묘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영혼이 길을 잃거나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하면 그대로 죽어버린다고 여겼으니, 이 역시 죽음과 잠이 긴밀한 관계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물론 엄청나게 오래 재우지 않는 이상에야 큰 차이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왕 해주는 것 최고의 효율로 받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진성은 둘에게 설명하고는 트럭에서 자루 하나를 꺼냈다.

        

       자루의 안에는 햇볕을 쬔 하얀 소금이 가득 들어있었다.

        

       진성이 허공을 움켜쥐자 소금은 중력을 역행하듯 스르륵 허공을 부유하더니 이세린과 이아린의 주변을 토성의 고리처럼 맴돌기 시작했다.

        

       “이 소금이 부정을 막아줄 것이다.”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둘을 이끌고 놀이공원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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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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