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1

       

       

       

       

       “괜찮아, 괜찮아. 아르.”

       “삐유우….”

       

       잠시 그치는가 싶던 빗줄기는 꽤나 거세졌고, 천둥번개도 심심찮게 쳤다. 

       

       천둥이 꽈릉 울려 퍼질 때마다 아르는 내 품 안으로 더 파고들려고 침낭 안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나도 어릴 때 천둥번개만큼 무서운 게 없었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혼자 잘 자다가도 천둥번개가 치면 베개 들고 엄마한테 가서 안겨 잤던 기억이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천둥 소리가 좀 커서 나도 움찔할 때가 있는데…. 아르는 오죽하겠어.’

       

       이럴 땐 보호자 된 도리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아르가 안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나까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아르는 더 무서워할 테니까.’

       

       그러니 아르는 무서워해도 되지만, 나는 무서워하면 안 된다. 그게 천둥이든 뭐든 말이다.

       

       나는 아르를 좀 더 꾸욱 안아 주었다. 

       

       “삐유….”

       

       한 팔로는 몸통을 감싸고, 한 팔로는 궁둥이를 감싼 채 천천히 토닥여 주었다. 

       

       “쀼….”

       

       다행히 꼬옥 안기는 느낌이 안정감을 주었는지, 다음 천둥이 쳤을 때 아르는 아까보다 훨씬 안정되어 보였다. 

       

       거의 구겨지듯 말려 있던 꼬리도 서서히 펴졌다.

       

       후두둑.

       

       얼마나 지났을까.

       

       요란한 소나기였던 만큼, 비는 다행히 오래지 않아 다시 잦아들기 시작했다.

       

       “쀼우….”

       

       꼬옥 감았던 아르의 눈에 힘이 어느새 풀렸다. 

       

       “뀨우우…. 큐우….”

       

       아르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게 바뀌었다.

       

       “휴우.”

       

       드디어 아르가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리자, 누적되어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필이면 자는 도중에 경계 알람이 울려서….’

       

       차라리 저녁 먹고 완전히 잠들기 전에 구울이 나타났으면 깔끔하게 잡고 와서 잘 수 있었을 텐데, 애매한 새벽에 나타나는 바람에 수면 리듬이 깨지고 말았다.

       

       ‘하암. 지금 몇 시지…. 아침에 출발하려면 몇 시간이나 더 잘 수 있으려나.’

       

       일어나서 시계를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아르가 깰까 봐 그만두었다.

       어차피 시계를 본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일어났다. 

       

       ***

       

       “으음….”

       “뀨우….”

       

       왜인지 몸이 가볍다. 

       

       분명 새벽의 아주 어중간한 시간에 마지막으로 잠든 것 같은데, 굉장히 눈꺼풀이 쉽게 올라갔다.

       

       “뀨우움…!”

       

       아르도 아주 잘 잤다는 듯 손발과 꼬리를 쭈우욱 펴 기지개를 켰다. 

       

       “뀨우?”

       

       아르는 쌩쌩해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보며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물었다. 

       

       “…응. 아르야. 우리 너무 늦잠을 자 버렸는데.”

       

       나는 아주 푹신한 침낭을 열고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실비아는 일어난 듯 침낭이 곱게 돌돌 말려 정리되어 있었다.

       

       살짝 열려 있는 텐트 입구로는 찬란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피곤한 데다 침낭이 너무 푹신한 바람에 그야말로 세상 모르고 자 버렸다. 

       

       ‘이 푹신한 바닥 파츠랑 침낭의 시너지를 너무 과소평가했어.’

       

       보통은 아무리 두꺼운 침낭 안에서 잔다고 해도 바닥이 딱딱하면 허리나 등이 배기기 마련인데, 텐트 내에 바닥 파츠를 깐 상태에서 침낭까지 푹신하니 진짜 과장 좀 보태서 침대에서 이불 덮고 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되면 일정이 조금씩 밀리겠네. 아니면 아예 경로를 살짝 바꾸는 게 나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열린 텐트 입구 사이로 웬 맛있는 냄새가 솔솔 들어왔다. 

       

       킁킁.

       

       “이건….”

       “쀼우?”

       

       침낭에서 나와 푹신한 바닥에서 앞구르기를 한 번 하고 벌떡 일어선 아르도 냄새를 맡고 귀를 쫑긋 세웠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살짝 매콤한 이 냄새.

       

       아르와 함께 텐트에서 나오자, 떡볶이를 만들고 있는 실비아 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어나셨어요, 레온 씨?”

       “실비아 씨…! 아침은 제가 하려고 했는데…. 그보다 왜 안 깨워 주셨어요?”

       

       실비아 씨 성격에 지금까지 늦잠을 잤을 것 같지는 않고, 분명 나와 아르가 잠을 푹 잘 수 있도록 배려해 주려고 한 거겠지.

       

       “헤헤. 사실 저도 늦잠 잤어요.”

       “…….”

       

       실비아는 혀를 살짝 내밀며 웃었다.

       

       “어제 달달한 꿀 감자떡을 먹고 나니 매콤한 게 좀 당기더라고요. 그리고 마침 일어나서 침낭을 정리하면서 레온 씨 자는 모습을 보니 떡볶이가 생각나서….”

       

       …아르가 고른 빨간 침낭을 보고 떡볶이를 떠올린 건 아무래도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침 메뉴는 제가 정했어요. 아, 이제 점심인가? 아무튼. 맛있어 보이죠?”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실비아가 하고 있는 건 단순한 떡볶이가 아니었다. 

       

       “오오….”

       “짜잔. 저번에 레온 씨가 알려주신 라볶이란 걸 해 봤는데, 어때요?”

       

       낮고 넙대대한 쇠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빨간 국물.

       그 안에 들어 있는, 국물이 잘 배어 있는 길쭉길쭉한 떡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한창 잘 익어 가고 있는 면 사리까지.

       

       거기다 즉석에서 잘게 썰어 넣은 대파와 양파가 자칫 너무 달고 짜게만 느껴질 수 있는 국물의 향을 잘 잡아 주고 있었다. 

       

       “너무 완벽한데요.”

       

       꿀꺽.

       

       “쀼우!”

       

       내가 잠시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끓고 있는 라볶이를 바라보고 있자, 아르가 자기도 보여 달라며 손을 쭈욱 뻗고 방방 뛰었다. 

       

       “앗, 미안. 아르야.”

       

       나는 아르를 얼른 들어올려 안고 라볶이의 자태를 구경시켜 주었다. 

       

       “쀼우우!”

       

       그리고 아르도 곧 나와 같은 표정으로 라볶이를 바라보았다. 

       

       침을 뚝뚝 흘릴 기세로 눈을 빛내고 있는 나와 아르를 본 실비아는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집게를 가져왔다. 

       

       “그러다 땅 마르자마자 다시 젖겠어요. 얼른 덜어 드릴 테니 드세요.”

       

       실비아는 적당히 익은 면을 촤악 잡아 올려 그릇에 먼저 덜고, 떡볶이를 그 옆에 예쁘게 담아 내게 내밀었다. 

       이어서 아르도 면과 떡을 담은 접시를 받았고, 우리는 간이 식탁 앞에 앉아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후룹.

       

       푹 익은 면보다는 아주 약간 설익은 면을 좋아하는 나는 어서 면부터 한 젓가락 가득 입에 넣었다. 

       

       “와….”

       

       아직 삼키지도 않았는데 입술 사이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국물이 제대로 배었는데?’

       

       꼬부랑매콤국수, 아니 라면과 라볶이의 가장 큰 차이는 국물에 있다. 

       

       물론 국물 자체도 라면용과 떡볶이용 양념의 맛 차이가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차이는 국물의 농도에 있다. 

       

       라면은 물에 면을 넣고 끓인다는 느낌이라면, 라볶이는 걸쭉한 떡볶이 국물에 넣고 같이 볶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달달하면서도 쫀쫀한 맛이 일품인 떡볶이 양념 국물을 흠뻑 머금은 면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후루룹, 후룹.

       

       면이 불기 전에 얼른 흡입한 나는 이어서 떡을 집어 먹었다. 

       

       ‘크으. 떡도 딱 알맞게 말랑말랑하네.’

       

       떡은 상온 보관 시 쉽게 상하기 때문에, 마차에 챙겨 올 때 아예 냉동 마력석이 장착된 아이스 박스에다 담아서 가져왔다. 

       

       차갑게 굳어 있던 떡을 바로 투입한 게 아니라 말랑말랑해지도록 미리 꺼내 두었다가 알맞게 녹은 타이밍에 맞춰 투하한 게 분명했다. 

       

       게다가….

       

       “아, 레온 씨. 이걸 빠뜨렸네요. 이것도 드세요.”

       

       실비아가 아까 덜어 줄 때 깜박했던 삶은 계란을 집게로 집어 주었다. 

       

       “오오, 계란까지…! 고마워요.”

       

       진한 떡볶이 국물이 묻은 삶은 계란을 본 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거지. 라면엔 몰라도, 라볶이엔 이게 들어가 줘야지.’

       

       계란을 물에 따로 삶아서 넣어야 해서 번거로웠을 텐데도, 실비아는 일일이 계란을 삶아 까서 넣고 국물이 잘 묻도록 반으로 잘라 놓기까지 했다. 

       

       ‘최고다…. 실비아 씨!’

       

       나는 실비아의 정성에 감복하며 떡볶이와 계란을 번갈아 먹었다. 

       

       “쀼우움, 쀼우!”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옆을 보니, 아르는 라볶이 국물을 입가에 잔뜩 묻혀 가며 정신 없이 먹고 있었다. 

       

       거의 접시에 코를 박고 먹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나도 그렇고, 아르도 그렇고 새벽에 사냥 갔다 오느라 배가 많이 고플 만도 했지.’

       

       냄비가 워낙 크기도 했고, 실비아가 애초에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넣은 덕에 양은 매우 충분했다. 

       

       어제 저녁 때처럼 마부인 버트 씨에게도 한 그릇 푸짐하게 대접하자, 버트 씨는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쀼우, 쀼?”

       

       아르는 버트 씨 너머, 마차 앞에 앉아 있는 말 두 마리를 가리키며 쀼 소리를 냈다.

       

       대략 ‘마차 끄느라 말들두 고생 해써. 말들한테두 라보끼 주면 안 대?’라는 뜻이었다.

       

       “하하, 아르야. 말들은 라볶이를 못 먹어. 아니, 오히려 먹으면 큰일나지.”

       “쀼우?!”

       

       이 맛있는 걸 못 먹는다는 말에 아르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쀼우…!”

       

       아르는 굉장히 깊은 연민이 담긴 눈으로 말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은 초식 동물임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마 말들도 별로 라볶이는 먹고 싶지 않아할 걸? 말들은 저기 저 쌓여 있는 건초 있지? 그걸 더 좋아할 거야.”

       “쀼우…?”

       

       건초를 먹는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듯, 아르는 자신의 접시에 있던 마지막 떡을 쏙 집어먹은 뒤 일어서서 말들이 있는 쪽으로 도도도 뛰어갔다. 

       

       그리고 한쪽에 쌓여 있는 건초를 집었다.

       

       “쀼!”

       

       아르는 ‘안뇽! 이거 먹구 힘 내!’라고 말하며 건초를 말에게 쭈욱 내밀었다.

       

       히힝.

       말은 작게 히힝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온 조그만 해츨링을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건초를 내밀며 뭔가 기대에 찬 눈을 하고 있는 아르를 보던 말은, 곧 아르가 내민 건초를 받아 질겅질겅 씹어 먹기 시작했다. 

       

       “쀼우웃!”

       

       자신이 내민 건초를 말이 먹자 아르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르는 말이 건초를 다 먹자 먹어 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말의 주둥이를 껴안았고, 말은 가만히 히힝거리며 주둥이를 맡겼다. 

       

       “너무 귀엽네요.”

       “그러니까요.”

       

       실비아와 나, 그리고 버트 씨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쀼우!”

       

       말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돌아오려던 아르는, 문득 어떤 생각이 났는지 건초더미 앞에서 잠깐 멈추었다.

       

       “뀨우….”

       

       말들이 저렇게 맛있게 먹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고심을 하는 듯, 건초를 빤히 보던 아르는 결국 건초를 집어 입에 넣어 보았다. 

       

       “뿌웁…!”

       

       물론 바로 뱉었다.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