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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페델리안 제국의 황궁을 상징하는 사자의 문양이 떡하니 박힌 커다란 아치형 문.

         

       알현실의 앞이다.

         

       “내가 황제 폐하께서 직접 하사하는 상을 받을 줄은 몰랐네.”

         

       후우, 다소 긴장되는 듯 심호흡하는 프란체. 나는 웃으며 말했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상을 받으러 온 거 아닙니까? 그리고 예전에도 황제 폐하에게 제안이나 거래 같은 거 많이 하셨잖습니까.”

         

       황실 파티 때도 그렇고, 회담 때도 그렇고. 인제 와서 새삼스레 긴장할 필요가 없지.

         

       “그래도 이렇게 직접 알현실로 오는 건 처음이니까.”

         

       장소가 주는 분위기가 있긴 하다. 그때는 파티장, 회담실이었지만 여기는 알현실이니.

         

       “들어가자.”

         

       또각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프란체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알현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황금의 기사가 소리쳤다.

         

       “데카르트 공녀님께서 들어가십니다!”

         

       쿠구궁. 커다란 아치형 문이 반으로 갈라지며 알현실의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금빛의 테두리를 가진 붉은 카펫을 쭉 따라가면 계단이 나오고, 그 위에는 황제가 앉아있는 옥좌가 있다.

         

       좌우에는 황실 기사단이 행렬해있으며, 황제의 근처에는 재상과 황실 기사단장까지.

         

       “…….”

         

       프란체는 붉은 카펫을 따라 걸었다. 나는 드레스의 자락을 밟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곤 따라 들어갔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뒤 왼쪽 가슴에 손을 얹는다. 황실 예법이다.

         

       “잘 와주었네, 데카르트 공녀.”

         

       인자한 미소로 반겨주는 황제.

         

       “사하라로 수색대를 파견해 확인해보았네만, 확실하게 처리해주었더군. 모옥이라는 길드 자체를 아예 없애버린 모양이야.”

         

       이어 만족스러운 듯 천천히 고개를 주억인다.

         

       “제 호위기사가 일을 잘 처리한 듯하옵니다.”

         

       그럼. 내가 누군데.

         

       “확실히 진 바렌베르크일세. 듣자 하니 모옥의 마스터인 말렉이라는 자는 사하라의 최강자라고 하더군.”

         

       말렉. 그놈은 사하라의 최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수준이었다. 나와 초월 마법사가 없었더라면 대륙 최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다시 생각해도 밸런스가 안 맞네.’

         

       자신이 유리한 홈그라운드로 데려가는 고유 결계를 펼치는 주술과 물리적인 공격을 전부 흘려내고 틀어내는 권법. 확실한 오러 활용.

         

       기술적으로만 보면 놈이 나보다 앞섰다.

         

       “그럼 계약을 이행해야겠지.”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상에게 두루마리 하나를 받고 계단에서 내려왔다.

         

       “데카르트 공녀. 그대에게 약조한 대로 페델리안 사자 패를 수여하겠네.”

         

       프란체는 “황송하옵니다.”하곤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한쪽 무릎은 꿇은 채였다.

         

       “그대는 진 바렌베르크를 제어하여 제국의 위엄을 지킴과 동시에 국위 선양을 하였고, 우리에게 이를 드러낸 모옥에 확실한 보복을 해주었다.”

         

       촤락! 황제가 두루마리를 넓게 펼치며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페델리안 황실의 상징인 사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프란체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를 높이 사 그대에게 페델리안 사자 패를 수여하노라.”

         

       재상에게 펜을 받은 황제는 그대로 두루마리에 사인을 마쳤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데카르트 공녀.”

       “황송하옵니다, 폐하.”

         

       프란체가 고개를 숙인 채 손만 뻗어 두루마리를 받아 든다.

         

       “이것으로 페델리안 사자 패 수여식은 마치겠네.”

         

       모든 형사, 민사 책임을 면책해주는 만큼 황실이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

         

       이제 프란체는 이 시대의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페델리안 사자 패를 가지게 되었다.

         

       “그럼 고개를 들게, 데카르트 공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하는 프란체. 황제는 말을 이었다.

         

       “곧 재앙의 파도가 올 시기이네. 이 역시 그대에게 기대하고 있네.”

         

       재앙의 파도.

         

       게임에서나 존재하는 고유 명사지만, 쉽게 얘기하면 몬스터 웨이브다.

         

       곳곳에 태어나는 마수들은 개체가 폭발하여 인간들이 사는 곳까지 침범한다.

         

       시기는 1년에 한 번, 겨울이다.

         

       “이번 재앙의 파도는 북부에서 올 거라는 정보가 관측되었네. 데카르트 공녀가 제어할 수 있는 진 바렌베르크에게 이 또한 맡기고 싶군.”

         

       이제는 페델리안 사자 패도 수여했다고 직접 부탁하는 건가.

         

       ‘상관없긴 해.’

         

       어차피 재앙의 파도는 목적을 위해 참전할 예정이었다. 데카르트 공작가 또한 파도를 막기 위해 움직이니까.

         

       힐끔 시선을 뒤로 돌려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나는 문제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명, 받들겠습니다.”

       “의견이 잘 통하여 좋군.”

         

       만족스러운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는 황제.

         

       “이제 용건은 끝이다만, 모처럼 왔으니 만찬을 즐기고 가겠는가? 태자와 성녀도 같이 있는 저녁 만찬이네만.”

         

       그 재수 없는 새끼들이랑 같이 겸상을 하라고? 순간 표정 관리를 실패할 뻔했다. 이는 프란체도 마찬가지였는지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제안은 황송하옵니다만, 제 호위기사인 진 바렌베르크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바, 먼저 돌아가는 걸 허락해주십사 합니다.”

         

       잘 돌려 말했다.

         

       “그런가. 아쉽군. 진 바렌베르크도 그들을 상대하느라 힘들었겠지. 좋네, 이는 나중으로 미루세.”

         

       프란체는 고개를 숙이곤 “양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다시 한번 황실 예법으로 인사한 뒤 등을 돌리는 프란체. 나 또한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한 뒤 그녀를 따라나섰다.

         

       쿵. 아치형 문이 닫히고, 황궁을 조금 걸어 나오자 프란체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숨 막혀서 죽는 줄 알았네.”

         

       말은 잘하던데. 사실은 분위기에 압도당해 있던 건가.

         

       “그래도 떨림 없이 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럼 다행이구나.”

         

       안도의 미소를 짓는 프란체.

         

       “그러고 보니 정보를 알아본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언제 알아볼지는 결정됐니?”

       “오늘 돌아가는 즉시 알아보려 합니다.”

         

       성녀 대신 움직이고 있던 놈의 정체가 초월 마법사라는 걸 셀다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럼 정보를 캐내는 방식이 달라질 테니 새로운 무언가를 찾을 수도 있겠지.

         

       프란체는 입술을 삐죽였다.

         

       “아쉽네. 오랜만에 둘이서 외출하려 했는데.”

       “외출 말씀이십니까?”

       “그래. 최근 바쁘기도 했고 너도 사하라로 가는 바람에 혼자 외로웠거든.”

         

       이 공녀님이 귀여운 소리를 하시네.

         

       “그럼 일은 조금 뒤로 미루겠습니다.”

       “정말? 말이 잘 통해서 좋아.”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체도 방긋 미소를 지었다.

         

       “빨리 돌아가자.”

         

       그리하여 황궁을 나와 마차에 탑승하고, 싱글벙글 하이텐션 프란체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원래라면 안전을 위해 바로 공작령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대낮부터 황도에 있는 우리를 습격할 암살자는 없겠다고 판단했다.

         

       “역시 황도가 재밌어.”

       “공작령으로는 부족하십니까?”

       “그건 아닌데, 매번 보니 질리잖아.”

         

       프란체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공작령에는 그다지 좋은 추억이 있지도 않고.”

         

       아, 그런 거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분간 별채에서 지내시겠습니까? 일주일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프란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일주일? 정말 그 정도나?”

       “예. 괜찮을 겁니다.”

         

       정보 전달이 늦어지는 건 좀 그렇지만, 이리 즐거워 보이는 프란체를 실망시킬 순 없으니.

         

       ‘전서구를 보낼 수 있으면 편할 텐데.’

         

       엑시드는 다른 암흑 길드와는 다르게 일방적으로 전서를 보낼 뿐, 자신들이 받지는 않는다.

         

       이유는 그냥 셀다스의 변덕이다. 미친놈.

         

       ‘귀찮게 한단 말이지.’

         

       뭐, 그래도 일주일하고도 더 있으니 남은 시간 조사하는 건 충분할 거다.

         

       “그럼 별채로 가기 전에 황도에서 좀 놀까요?”

       “그래, 그러자. 유명한 레스토랑도 가보고, 디저트 가게도 가보고.”

         

       마치 부모님과 소풍 온 듯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프란체. 나도 모르게 뿌듯해 웃음이 나왔다.

         

       [플레이어의 몰입도가 상승합니다.]

         

       ‘이런.’

         

       [동기화가 심화합니다.]

         

       [인물 – 진 바렌베르크.]

         

       [인물의 기억과 인격을 계승합니다.]

         

       빠드드드득─!

         

       전신의 뼈가 뒤틀리며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와 신경을 관통한다. 거기다 살을 하나하나 발라내어 그곳에 황산을 뿌리는 듯한 느낌.

         

       “으흑…!”

         

       주먹을 꽉 쥐고 어금니를 부순다는 생각으로 물었다. 어떻게든 고통을 참아야 한다. 모처럼 둘만의 시간인데 분위기를 망칠 수 없지.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지고 관자에 핏대가 솟는다. 그렇게 고통을 참고 있자니 이내 음성이 들려왔다.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방법은?」

       「킬킬, 존재하는 세계를 바꾸는 거야.」

       「프란체를 다른 곳으로 보내자는 건가?」

       「아니, 가는 건…….」

         

       들려온 음성은 여기까지였다.

         

       “…….”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혹시나 싶어 정면을 바라봤다. 아직 프란체는 창밖을 바라보느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땀과 피를 빠르게 닦아냈다.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다.

         

       ‘그런데 이제 고통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참을 수는 있군.’

         

       조금 씁쓸하지만, 프란체를 걱정시킬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근데 이제 반년도 안 남았구나.’

         

       눈앞에 있는 프란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 * *

         

         

       “대체 어쩌자는 거야!”

         

       이제는 아무도 오지 않는 황궁의 탑. 여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킬킬, 기다리라니까.”

       “기다리고 있는데 이 꼴이잖아!”

         

       소미레는 마룻바닥에 발을 쿵쿵 찍으며 불평불만을 토해냈다.

         

       “처음에 그 여자를 죽일 수 있게 도와준다며? 근데 이게 뭐야! 죽이기는커녕 손을 댈 수도 없을 정도잖아!”

         

       근 반년간 프란체 데카르트는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이루었다.

         

       제국에서 제일가는 사업가가 되었고, 황실의 인정을 받아 페델리안 사자 패를 받은 것도 모자라서 알 수 없는 계획들까지 진행하고 있다.

         

       ‘탑 건설이랑 마석 광산 사업은 대체 뭐야?’

         

       이뿐만이 아니다. 그 진 바렌베르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까지 한다.

         

       ‘최대한 힘을 줄이려고 진 바렌베르크를 포섭하려 했던 건데.’

         

       그날 파티장에서 자신의 제안을 확고하게 거절한 진 바렌베르크. 그놈만 이쪽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면 프란체 데카르트를 죽이는 것 정도야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럴 것이, 대륙에서 최강이라고 불리오는 초월자 둘이 자신의 편인데 불가능할 게 뭐가 있겠나.

         

       하지만 이는 그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할머니, 설마 나를 가지고 노는 거 아니지? 우리 계약한 사이잖아.”

         

       초월 마법사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내가 할 짓이 없어 너를 가지고 놀겠남? 킬킬, 그냥 때를 기다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 모르남?”

         

       소미레는 이 망할 할멈이 답답하면서도 역겨웠다.

         

       “그럼 견제라도 확실히 하라고! 돈도 쓸어 담고 권력도 점점 키우고 있잖아! 곧 있으면 성녀인 나도 넘보겠다고!”

         

       그 어떤 병도 치료할 수 있는 성녀의 능력은 소미레에게 엄청난 권력을 안겨주었다. 일은 다소 귀찮지만, 결과는 그 어떤 것보다 확실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프란체 데카르트에게 따라잡히기 직전이다.

         

       “킬킬킬, 곧 결혼식이잖남?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야. 그리고 무조건 적합한 때는 오게 되어 있으니 기다리라고.”

         

       소미레의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구겨졌다.

         

       “매번 때를 기다려라, 때를 기다려라. 하는데, 그때가 대체 언제인데! 두루뭉술하게라도 알려줄 수 있잖아!”

         

       씨익. 초월 마법사의 입꼬리가 올라가다 못해 광대에 걸쳤다.

         

       “반년도 안 남았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100화 기념 후원 정말 감사드림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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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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