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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 ***

         

       낭인 두 사람의 부상은 생명과 직결될 정도는 아니었다. 개명부 그 자식이 작정을 했는지 검기가 두 사람에게 내상을 입히긴 했지만 다행이랄까 두 사람은 모두 절정인지라 일주일 내로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부상들이었다.

         

       두 사람은 애매한 표정으로 유사연이 받아온 잠봉문의 보상을 받아들었다. 문파들의 회합에 참여하겠다고 씩씩거리며 나섰던 유사연은 고작해야 돈주머니만을 동봉한 채 침울한 안색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에 나를 위시한 모든 낭인들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직감대로 대규모 연극은 그대로 막을 내렸다.

         

       “선배. 시간이에요.”

       

       “음. 그럴까.”

       

       혁기린의 숙소는 객잔에서 황금가로 옮겨졌다. 황금가 앞에 갈 때마다 사실 썩 유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는 몰라도 흑묘는 황금가의 경비무사들이 알아보기에 충분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사술 공연을 부리고 소란을 피웠으니 당연히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심기 불편해 보이는 혁기린이 나타나고 황금가를 조금 벗어나자마 혁기린은 강한 불만을 터트렸다. 나나 흑묘나 이제 익숙해진 혁기린의 모습.

       

       “황금선이 오늘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래도 사천성의 문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답니다! 하 참! 그걸 또 다른 자들은 자비롭다고 칭찬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뭐어…황금선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니까요.”

       

       흑묘가 조심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이 사태가 장기화 되면 될수록 자본이 없는 영세 상인들이 말라죽게 될 테고 영세 상인들의 지분을 헐값에 인수할 수 있을 테니 그 작자 입장에서야 이 사태가 장기화 되어도 손해 볼 것은 없겠지요! 후안무치한 작자 같으니…!”

       

       혁기린은 어지간히 화가 치미는지 콧김을 푹 내뿜었다. 화내는 모습이 위협적이라기보다는 아이가 발로 대지를 탕탕 차는 느낌이었지만 내용은 꽤 심각한 것이었다.

       

       “그냥 대상인이면 그렇다 치겠지만 사천상인연합회에 소속되어 감투까지 쓰고 있는 자가! 이 혼란한 와중에 제 이득만 챙기려 들다니!”

       

       혁기린의 말을 들어 보면 황금선은 이번 사태로 인해 이런 저런 영향력이나 이득을 보고 있는 모양이다. 황금선 역시 여일예의 원수들 중 한명일까.

       

       그러나 물증 없이 몰아 붙일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진짜 상인들이란 불지옥에서도 횃불을 팔아 먹고 장마철에 물동이를 팔아 먹는 자들. 황금선이 산적 사태로 인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이득을 볼 여지가 생겼다고 해도…지금 산적 사태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사천의 상인들이다.

       

       현재 사천의 경기침체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 사천성의 최대 장점은 안전이다. 안전하기에 호위 한 명 고용할 돈 없는 시골 마을의 사람들도 안심하고 사천성에 물건을 팔러 온다. 비단 사람이 많이 몰리니 당연히 그만큼 장사가 잘 되기 마련이고 숙박업이나 요식업이 크게 발달했다.

       

       사천성 인근에 사는 자들의 노동력이 싼값이 공급되고 있었고 그게 이 사천성의 성장원동력 중 하나였다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제 사천성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니 어디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 들겠는가. 어차피 촌민들의 대부분 본인이 지은 농사로 먹고 사는 이들. 그들이 주로 파는 채집물이나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물품들은 그냥 산에서 캐지 않거나 집안에 쌓아두면 그만.

       

       돈이 돌지 않으면 바로 숨통이 막히는 상인들과는 결이 다르다.

       

       사람 때문에 발 디딜 곳도 없었던 사천의 대로는 드문드문 통행인만 보일 뿐이고. 매일 목이 쉬도록 소리치며 호객을 하던 노점이나 상인들도 모두 어두운 안색으로 제 자리만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사천성 전체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는지 혁기린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혁기린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흑묘가 말을 걸었다.

       

       “오늘도 상인들을 찾아갈 생각이신가요?”

       

       “예….”

       

       혁기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방파들의 최초 회담이 끝난 이후 혁기린은 매일매일 상인연합회 소속의 상인들을 찾아가 여일예의 사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여일예를 걸고 넘어지는 산적들의 명분은 아무 효용이 없으니 점창파에 걸린 조건을 철회하는 일에 목소리를 내달라는 설득을 하고 있겠지.

       

       그러나 딱히 점창파와 인연이 없는 상인들이라면 고개를 저을 조건이었다. 굳이 상인연합회의 의사를 거슬러 가면서 점창을 지지해야 할 매력이 없겠지. 혁기린이라고 아예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니 이런 저런 조건을 제시해 보겠지만…

       

       애초에 혁기린과 점창의 성정이 이런 로비 작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뭐라 해야 할까. 정도에서 벗어난 제안을 하지 않을 테니 그 정도로 상인연합회와 대립각을 세울 상인은 거의 없지 않을까.

       

       그게 점창이고 점창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는 이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태평한 말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젠 시간이 별로 없는데…”

       

       혁기린의 한숨짓는 이유. 이제 오늘이나 내일중으로 각 문파의 중진이 도착할 예정이기 때문. 사천성에 지부를 세우는 커다란 일에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들이 온다.

       

       “그러고보니 점창에서는 어느 분이 오실 예정이십니까.”

       

       “…제 스승인 청허 진인께서 오실 겁니다.”

       

       환영일검 청허인가. 역시 큰 일이니만큼 묵직한 자가 온다. 그러나…인선이 영 그렇네. 솔직히 청허 진인이 이 아귀다툼의 극치인 이 판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좀 의문이다.

       

       아니 뭐 점창에서 이 아귀다툼판에 그나마 어울리는건 장문인이나 혁기린인데 장문인이 직접 올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나.

       

       어차피 다 순둥순둥한 사람이 올 거라면 존나 쎈 순둥이가 오는게 맞긴 하네.

       

       청허 도사는 이 사천에 몇 없는 현경의 고수니까.

       

       이게 점창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인성의 반증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점창만의 특색이다.

       

       구파일방에도 현경의 고수는 있다. 근데 장문인이 ‘어르신 좀 나서 주시지요.’하면 현경의 고수님께서는 일단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래, 그건 내 제자와 관련된 일이냐?’고 묻는다.

         

       아니면? 현경의 고수는 어지간한 일로는 콧방귀를 뀌며 아랫놈들이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현경쯤 되면 이미 제자도 장성시킨지 오래이며 문파에 기여를 할 만큼 한 상태. 문파에 할 만큼 다 해줬다는 소리다. 그런데 배분도 낮은 장문인이나 장로 따위가 와서 일을 시키려고 하면 하겠는가?

       

       구파일방의 저력이 전대고수인 것은 맞는데..그 전력을 왜 놀리겠어. 구파일방이 뭐 보통 집단인가? 천하 최고의 무림문파들이다.

       

       정말정말 중요할 때 아니고는 못 부려먹으니까. 전대고수란 놈들은 나서지 않으면 문파의 어르신으로서 체면이 구겨질 정도로 큰일이 아니면 꿈쩍도 안 하니 놀리고 있는 거지.

       

       근데 이 점창의 고수들은 참된 인성의 소유자들이라 문파나 제자들의 일에 손쉽게 발 벗고 나선다.

       

       구파일방의 말석? 절대적인 전력의 차이? 실존하지. 근데 평상시에 동원할 수 있는 가동전력은 점창 쪽이 압도적으로 높다.

       

       문파의 기둥뿌리가 뽑힐 때쯤이나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전대고수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불씨에서 진화할 일이 이미 집을 태우고 있는 상황이니.

       

       대신 점창은 다른 곳에서 효율을 까먹기는 한다. 대부분의 정파는 겉으로는 결백한 듯 보여도 뒤로는 다 호박씨를 까기 마련이니까. 호박씨를 까지 않는 정직한 점창만 손해지 뭐.

       

       청허 선사가 점창에게 불리한 이 판도를 뒤집어 낼 것 같지는 않다.

       

       청허 선사의 무력은 잘 알아도 성향이나 정치력은 모른다. 그래도 혁기린의 태도를 보면 대충 짐작은 간다. 스승님이 정말 든든했다면 이렇게 초초함을 드러내지는 않겠지.

       

       혁기린은 사천을 누비며 여러 상인들을 만났지만 딱히 성과는 없어 보였다.

       

       환대를 받으며 들어가기는 했지만 나올 때 혁기린의 얼굴은 어두웠으니까. 흑묘는 그런 혁기린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드세요!”

       

       “예? 아아…괜찮습니다. 다과라면 안에서도 대접받아서…”

       

       “에잇! 먹으라면 먹지 왠 잔말이 이리 많아욧!”

       

       “웁웁?!”

       

       쌀튀김까지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보였지만 혁기린이 흑묘도 아니고 쌀튀김을 먹는다고 얼굴이 펴질 리가 없었다.

         

       혁기린이 상단의 인물을 설득하기 위해 상단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바깥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입구가 보이는 인근 골목을 걷고 있자니 소란이 들려왔다.

         

       우당탕탕!

         

       “빌어먹을 자식들 꺼지라고!”

         

       “네놈들도 고수들의 지원을 거부한 녀석들이냐!”

         

       성난 사람들이 던지는 진흙이나 오물을 맞아가며 도망치는 무인들.

         

       낭인들과의 연출 합작은 실패했어도 몇몇 문파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봉사 활동을 이어갔지만 그 결과는 지금 보는 것과 같았다.

       

       “누군가 소문을 유포하고 있다고.”

         

       흑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밤의 거리에서부터 사천성 문파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소문이 크게 확산되고 있어요. 저기 저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바람잡이로 활동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인위적이죠.”

         

       “배후를 찾을 수 있을까?”

         

       흑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선배도 아시죠? 지금 이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러니 깊게 파 보지는 않았어요. 어떤 위험이 돌아올지 모르니까요.”

         

       흑묘의 말은 내가 애매하게 외면하고 있던 주제를 대면하게 만들었다.

         

       “후우.”

         

       나는 대답이라고 하기 애매한 한숨을 흘렸고 흑묘는 그 뒤로 입을 열지 않았다.

         

       너무 깊었다. 지금 나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고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화리를 구하기 위해 수중동굴로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을지라도…지금과 같은 결과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상대의 뿌리가 너무 깊었고, 영향력 역시 방대했다.

         

       황금가로 대변되는 사천상인연합회를 수중에 두고 수족처럼 부리고 있으며 사천의 거대방파를 유치했다. 뿐인가? 사천에서 3강이라 꼽히는 잠봉문마저 완전히 한통속이었고 사천의 유흥가쪽에서도 조력자가 있지 않은가.

         

       고작해야 일류무사 따위가 나선다고 뭐가 되는 판이 아니었다. 수속성 내단을 위해 자리를 비운다던가 아니면 내가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던가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체급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막막함. 답답함.

         

       내가 흑묘와 월복당의 힘을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사천낭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힘의 차이가 있었다. 사천성 전체를 거의 장악한 자를 상대로 내가 얼마나 수를 펼칠 수 있을까.

         

       흑묘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고 나 역시 품에 있는 무협지를 꺼냈다. 염병.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네.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며 무협지를 접어 품에 넣고 있을 때 혁기린이 바깥으로 나왔다.

       

       상단주로 보이는 자와 정중하게 포권을 주고 받았지만 혁기린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그늘이 있었다.

       

       우리 셋은 말없이 어둠에 잠긴 사천성의 거리를 걸었다.

       

       황금가를 찾아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커다란 부지에 수많은 등을 밝혀 마치 태양이 내려온 듯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평상시의 사천성이라면 몰라도 드문 드문 등이 밝혀진 지금 황금가는 마치 일종의 이정표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두 분. 내일 뵙지요.”

       

       우리는 가볍게 서로에게 읍을 해 보인 뒤에 돌아섰다. 혁기린이 마지막 외출자였는지 황금가의 대문이 닫혔다. 나와 흑묘는 문틈 사이로 사라지는 혁기린을 확인하고는 낭인객잔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골목을 돌기도 전.

       

       “[황금서어어어어어언!!]”

       

       대기를 울리는 엄청난 노성이 들렸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곧바로 들리는 폭음. 나와 흑묘의 시선이 마주쳤다. 여일예의 목소리였고 지금 터져 나갈 것이라고는…황금가의 대문일까.

       

       흑묘와 나는 곧바로 황금가로 돌아갔다. 기껏해야 황금가에서 골목 두어 개 정도 돌았던 위치였고 순식간에 황금가의 정문에 도착했다.

       

       사람 열 아름은 되어 보이는 정문은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다.

       

       “침입자다! 막아라!”

       

       문지기들이 창백한 안색으로 애써 검을 뽑고 달려들었지만 여일예의 검도 아닌 주먹질에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뒹구는 모양새가 죽지는 않은 모양.

       

       문 한 쪽이 2장에 가까운 거대한 황금가의 대문에는 이미 사람 몇이 드나들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갑작스럽게 여일예가 난입한 상황을 보니 어째서 지금 여일예가 이곳에 와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곧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사천성에 산적이 나타난 소문이 비단 사천성에만 퍼졌겠는가. 온 사천을 진동시키고 있을 일이었다. 원수를 갚기 위해 움직이고 있던 여일예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시간문제에 불과했을 뿐.

         

       소문으로 지금 사천성의 사태를 파악한 여일예는 분노에 가득 차 이곳까지 일직선으로 달려왔겠지.

         

       결국 여일예의 원수는 현 황금가의 가주 황금선이었던 모양이다.

       

       여일예는 이미 눈이 돌아갔는지 전신에서 폭풍 같은 기세와 살기를 쏟아내고 있는 형편.

       

       여일예의 손이 움직이자 반쯤 기능을 상실한 대문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사나운 눈길을 하며 성큼 걸어 들어간 여일예의 발이 곧바로 멈추었다.

       

       “….”

       

       혁기린.

       

       혁기린이 그곳에 서 있었으니까.

       

       “…이곳은 황금가. 황금가에 잠시 신세를 지고 있는 객으로서 묻겠다. 여일예 그대는 무슨 용건으로 이리 참람된 짓을 저지르는가!”

       

       “[비키십시오. 대사형.]”

       

       “나는 지금 그대의 대사형이 아니다! 다시 묻겠다! 무슨 용건으로 황금가를 방문했는가! 정당한 용건이 없다면 물러서라!”

       

       혁기린의 목소리는 늠름했지만 표정은 안타까웠다. 분노에 일그러진 얼굴을 한 여일예의 모습도 안타까울 것이고 그녀가 벌인 행동을 스스로 막아서야 한다는 이 현실이 가슴 아프겠지.

       

       “[물러서세요. 황금선은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종자입니다! 내 오늘 저 자식을 죽이고 무림 공적이 되더라도! 그 자식을 반드시 죽여 버리겠습니다!]”

       

       “그것을 내가 좌시할 것 같으냐.”

       

       혁기린이 검을 뽑았다. 동시에 혁기린의 옷도 펄럭이기 시작했다. 여일예처럼 정신나간 내공을 보유하지는 않았지만 혁기린 역시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

       

       세상을 모두 쓸어버릴 것 같은 여일예의 내공 앞에서 심지를 굳건히 세웠다. 그야말로 폭풍을 막아내는 철벽과 같은 견고한 기가 피어났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대로 돌파하지요.]”

       

       “어림도 없는 소리.”

       

       순간적으로 두 사람의 신형이 사라졌다. 평범한 눈으로는 쫓지도 못할 빠르기. 급히 내공을 눈에 몰아넣고 나서야 흐릿하게나마 두 사람의 신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꽈아아앙!!

       

       검강과 검강이 충돌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여일예의 검강과는 달리 좀더 정련된 물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혁기린의 검강.

       

       여일예가 아직 초절정 초입의 티를 벗지 못했다면 혁기린은 안정적인 초절정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구도는 여일예가 불리했다. 여일예는 그저 혁기린을 떨쳐내기 위한 검을 뻗었을 뿐이지만 혁기린은 여차하면 여일예를 제압하기 위한 검을 뻗고 있었으니까.

       

       쿠구궁!

       

       막대한 내공이 담긴 여일예의 검강과 완숙의 경지에 오르는 혁기린의 검강이 충돌할 때마다 사방으로 충격파가 흩날렸다. 내가 근처에 있었다면 3초안에 피를 토하고 나가 떨어질 자신이 있을 만한 경력이 단순히 검이 부딪힐 때마다 휘몰아쳤다.

       

       “일예야, 자신을 다스리거라!”

       

       “[비키세요! 대사형!]”

       

       “이대로 살귀가 될 셈이냐! 그러지 않기 위해 휴적을 한 것이 아니더냐!”

       

       콰광! 쾅!

       

       충돌은 백중세였으나 실제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자는 혁기린이었다. 십여 회가 넘는 합의 교환 동안 여일예가 전진한 거리는 고작해야 3장 정도. 내공의 고하 차이인지 혁기린은 수를 교환할 때마다 조금씩 물러났지만 이 정도면 훌륭히 여일예를 막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황금가에서는 무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나 둘 나타난 무사들이 물경 수십.

       

       “황금가에서 이 무슨 소란이냐!”

       

       거기에 현재 황금가에서 머물고 있는 자들까지 튀어나왔다.

       

       여일예는 검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에게 무기를 겨눈 수십의 사람들.

       

       이 순간에도 황금가 곳곳에서 경비무사들이 몰려들어 여일예를 둘러싸고 있었다. 대체 황금가의 경비 인력은 몇 명일까.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경비 무사들의 숫자는 사람을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일예가 습격해 오리라는 것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미리 비상사태를 갖추어 놓지 않는 이상 이렇게 신속하게 무사들이 쏟아져 나올 수가 없었으니까.

       

       아마 황금선 역시 모종의 방법으로 안전을 강구해 놓은 상태일 것이다.

       

       여일예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허탈하다는 듯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물러서거라 일예야. 이제 다 끝났다.”

       

       혁기린이 검을 내리며 앞으로 나섰다. 안타까움에 물든 혁기린의 얼굴을 보며 여일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하필이면 여기에 대사형이 있을 연유가 무엇입니까.]

       

       “…일예야!”

       

       여일예가 하늘을 보았다. 혁기린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그리고 나는…

       

       “선배?”

       

       앞으로 움직였다.

       

       쉬익!

       

       여일예에게 던져진 물건. 뒤에서 무언가 날아오는 기색에 반사적으로 그 물건을 쳐낸 여일예가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뜬 뒤…떨어진 물건을 바라보았다.

       

       은원패.

       

       “원수보다도 우선해 은혜를 갚겠다 하지 않으셨소.”

       

       “[….은공 어찌 이곳에…?]”

       

       “은원패를 써서 말하겠소. 따라오시게.”

       

       여일예를 보고 있자니 깨닫는 것이 있었다.

       

       확실히 산적들이 여일예를 걸고 넘어진 것은 여러 가지 효과가 있었다. 우선 여일예의 이성을 흐리게 했으며 점창파 제자와 산적관의 은원 관계가 생기니 점창파의 사천지부 경쟁력에도 타격을 입었다. 거기에 점창은 여일예를 명분으로 삼아 억지스럽게나마 산적을 토벌할 수 있으니 다른 문파들이 점창을 집중적으로 견제하는 구도까지 만들어지겠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틈이 생겼다.

       

       지금의 여일예는 휴적 상태. 점창파 제자가 아니라 초절정 고수 여일예일 뿐이었다. 그러나 산적과의 원한 관계는 어디까지나 여일예 개인의 것이다.

       

       그러니까 여일예 개인이 산적을 싹 토벌해 버린다면?

       

       지금 산적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일련의 사건은 단번에 박살이 나 버린다.

       

       여일예는 협객이 되고 황보, 청성, 종남, 아미, 심지어 점창까지 이 사천성에 뿌리를 내릴 일 자체가 사라진다. 문파가 아닌 개인이 처리했으니 사천성의 생태계도 보존되겠지.

       

       그러니 일단 여일예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눈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는 여일예를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때의 말은 그저 허언에 불과했소?”

         

       “[어찌…이리 야속하십니까.]”

       

       여일예가 나를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내 눈에 깃든 의지를 읽은 것인지 여일예는 질끈 눈을 감았다.

       

       “따라 오시겠소?”

       

       “[…가겠습니다.]”

       

       “감히 황금가의 정문을 부수고 무사히…!”

       

       여일예가 물러서려고 하자 기세를 올리려던 황금가 무사의 우두머리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여일예가 폭발적으로 기를 운용하며 한 순간에 좌중의 분위기를 휩쓴 탓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머지않아 내 발로 다시 황금가를 방문할 테니]”

       

       “제길…!”

       

       황금가의 호위무사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입술을 짓씹고는 무사들을 물리라는 손짓을 했다. 무림문파라면 모두가 죽을 각오로 달려들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저들은 상가의 무사들…다행히 좋게 풀렸다.

       

       어차피 예일예의 일수면 죄다 제압될 자들이기는 했지만 괜한 피를 보는 것보다는 충돌 없이 빠져나오는 것이 낫지.

       

       나와 흑묘 그리고 여일예는 황금가를 빠져 나와 골목으로 들어섰다.

       

       “일예야!”

       

       그리고 그런 우리를 쫒아 황금가를 뛰쳐 나오는 혁기린.

         

       “…대사형.”

       

       격화된 감정이 진정된 것일까. 여일예는 우울한 눈으로 혁기린을 바라보았고 혁기린 역시 만감이 교차하는 눈길로 여일예를 바라보았다.

       

       “일단…낭인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일예를 말려 주신 덕에 최악의 사태는 면했습니다.”

       

       “별말씀을요.”

       

       “그나저나…갈 곳은 있으십니까? 황금가의 무사가 들이 닥칠 수도 있고 내일이나 모래부터는 구파일방의 고수들도 도착할 터. 그들까지 합류할지 모를 일입니다.”

       

       “고견이 있으신지요?”

       

       사실 방금의 일은 대책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저지른 일은 맞았다. 하지만 당장 여일예를 저곳에서 빼내지 않았으면 정말 수가 생기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달까.

       

       “일단은 사천성을 빠져나갈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제가 안전한 장소로 안내해 드리지요.”

       

       안전한 장소라. 안전한 장소가 어딘지 감도 안 잡히긴 했지만 무엇보다.

       

       “저희와 동행하셔도 괜찮겠습니까? 황금가에서 난리가 났을 텐데요.”

       

       “흥. 저들이 뭘 어쩌겠습니까? 전 공식적으로는 황금가에 침입한 괴한을 막아낸 사람입니다. 저들의 후안무치함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분노를 토해낸 혁기린은 성큼성큼 걸어가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혁기린의 발이 멈춘 곳은.

       

       “멈춰라! 이곳은 사천 태수님의 저택이다! 물러서라!”

       

       “태수님에게 옥룡신협 혁기린이 찾아왔다고 전해주세요.”

       

       사천 태수의 저택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2/08/11일 86~104화 리메이크가 적용되었습니다.

    ep.89~104화 사이를 읽던 독자님들은 내용 수정 공지를 참고하시어 수정 내용을 파악하시거나 89화부터의 재독을 권장드립니다.

    댓글과 본문의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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