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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노아의 시선이 줄리아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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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갑자기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무리 자극이 강한 걸 봤 -…웁읍! ]
    ​
    ​
    노아가 줄리아나의 입을 틀어막으며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노아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고, 줄리아나도 말을 이을 수 있었다.
    ​
    ​
    [ 크흠, 아무튼 내 말은! 이 녀석 분명 다른 걸 더 숨기고 있어! 그게 병이든, 상처든…! 아! 그러고 보니 여기 좀 봐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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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리아나가 리안의 상체를 가리키자 노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자 줄리아나가 혀를 찼다.
    ​
    ​
    [ 남자 몸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왜 그래? ]
    ​
    ​
    줄리아나의 말대로 노아는 남자의 몸을 처음 보는 게 아니다. 남장을 한 채 생활하다 보니 옆에서 훌렁훌렁 상의를 벗어버리는 남자들의 모습을 의도치 않게 보게 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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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랑 이게 어떻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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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는 그리 말하면서도 자신이 왜 이리 동요하는지 알 수 없었다. 리안이 걱정되어 초조하면서도 얼굴에 열이 올라 식지를 않았다. 줄리아나는 그런 노아의 모습을 보며 고양이처럼 능글맞게 웃어 보이다가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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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부끄러워서 잘 안 보이나 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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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리아나가 리안의 명치 부근에 검지를 척하고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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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원래 있던 흉터가 전부 사라졌어. 깔끔하게. ]
    “..!”
    ​
    ​
    그 말에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던 노아의 시선이 리안의 상체를 향했다. 그녀의 말대로 리안의 상체는 섹시한 잔근육이 보일 뿐 흉터라고는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
    ​
    “이게 어떻게…?”
    [ 흉터에 관한 거 들은 얘기 없지? ]
    “없, 었어..”
    ​
    ​
    줄리아나는 작게 침음을 흘리고는 말을 이었다.
    ​
    ​
    [ 하아, 아직도 숨기는 게 있을 줄이야. ]
    ​
    ​
    줄리아나의 한숨과 탄식이 노아의 심장을 화살로 콕 찌른 것처럼 아파졌다. 그녀가 그를 지키기 위해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리안은 항상 제 상처를 숨기기 바빴다.
    ​
    ​
    노아는 고개를 살짝 저어 가라앉는 기분을 털어냈다. 더 이상 과거처럼 절망에만 매여있을 생각은 없었다. 
    ​
    ​
    ‘감추고 있다면 알아가면 되는 거야.’
    ​
    ​
    리안은 어째서 자신에 관한 걸 비밀로 하고 있을까?
    ​
    ​
    노아는 그 이유를 ‘믿음’과 ‘신뢰’에 있다고 생각한다. 리안이 노아를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제 상처나 고통을 기꺼이 공유하려 했을 것이다. 
    ​
    ​
    그렇다고 해서 리안이 노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리안의 믿음과 신뢰는 대등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과는 다르다. 
    ​
    ​
    ‘마치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것과 같은… 그런 믿음과 신뢰일 뿐이야.’
    ​
    ​
    부모가 자식에게 제 고달픔을 말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좋은 것만 보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리안 또한 제 상처를 남에게 알리지 않는다.
    ​
    ​
    노아는 곤히(행복한 얼굴로) 잠든 리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
    ​
    ‘이번에야말로 지켜낼 거야.’
    ​
    ​
    노아가 결심을 굳히고 있을 때.
    ​
    ​
    똑똑, 벌컥!
    ​
    ​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노아는 곧바로 방문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
    ​
    “형 여기 있…?”
    ​
    ​
    남매 사이인 만큼 거리낌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네로는 눈 앞에 펼쳐진 장면에 할 말을 잃고 굳어버렸다.
    ​
    ​
    멋대로 방문을 열고 들어온 네로에게 한마디 하려던 노아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굳어버린 네로의 모습에 도리어 당황하고 말았다.
    ​
    ​
    “네로 무슨 일…”
    “죄송합니다.”
    “뭣..?”
    ​
    ​
    쾅!
    ​
    ​
    노아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네로가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가버렸다. 노아가 어정쩡하게 손을 든 채 문 쪽을 바라보고 있자 줄리아나가 음흉한 표정을 지은 채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었다.
    ​
    ​
    노아는 여전히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한 얼굴로 문 쪽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문밖에서 네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릴리! 형이 아니, 누나가 드디어 리안 형을 자빠뜨렸어!”
    “뭐, 머, 무어..?!”
    ​
    ​
    노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 돌려 리안쪽을 바라보았다. 피에 젖은 옷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상의를 벗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리안과 허겁지겁 옷을 입느라 흐트러진 채 침대 위에 올라와 있는 제 모습이 그제야 인지되었다.
    ​
    ​
    충분히 그렇고 그런 오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노아는 뒤늦게 자각했다. 
    ​
    ​
    “자, 잠깐! 네로 잠깐만!”
    ​
    ​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노아가 허우적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
    ​
    쿵!
    ​
    ​
    “아윽..!”
    ​
    ​
    허겁지겁 내려오다가 그대로 방바닥을 뒹굴고 말았다. 노아는 작게 신음을 흘리며 문 쪽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지만 네로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
    ​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네로를 붙잡아 오고 싶지만 리안을 저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었다. 노아는 고개를 휙 돌려 줄리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
    “줄리아나! 릴리를 데려올 테니까 리안 좀 부탁해요!”
    ​
    ​
    줄리아나는 기민하게 저 말속에 ‘네로를 조지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
   
   “네로!!”
    ​
    ​
    탁.
    ​
    ​
    노아가 방을 뛰쳐나가고 혼자 남은 줄리아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후 리안을 돌아보았다.
    ​
    ​
    [ 어휴.. 손자, 손녀 보려면 오래 걸리겠네. ]
    ​
    ​
    줄리아나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노아의 말대로 착실히 리안의 곁을 지켰다.
    ​
    ​
    ***
    ​
    ​
    “여긴 어디지?”
    ​
    ​
    나는 묘하게 하얗고 분홍한 세계에 둥둥 떠 있었다. 
    ​
    ​
    “저건…”
    ​
    ​
    시선 끝에 있는 건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 복숭아였다. 
    ​
    ​
    “예쁘게 생겼네.”
    ​
    ​
    정신이 몽롱해서 그런지 생각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뽀얗고 분홍한 복숭아는 물에 둥둥 뜬 것처럼 나를 스쳐 지나갔다. 
    ​
    ​
    “어..?”
    ​
    ​
    그런 복숭아가 하나, 둘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아졌는지 복숭아 강을 헤엄치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손이 복숭아에 닿았다.
    ​
    ​
    “말랑..”
    ​
    ​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스쿼시처럼 말랑말랑한 감촉에 조물조물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
    “복숭아가 아닌가?”
    ​
    ​
    멍하니 중얼거리며 복숭아를 들여다보았다. 그래, 그건 복숭아가 아니라 -…
    ​
    ​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
    ​
    ***
    ​
    ​
    “아.”
    ​
    ​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리안이 눈을 번쩍 떴다. 리안은 멍한 얼굴로 조금 전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건 천국 같은 지옥이었다.
    ​
    ​
    ‘압사하는 줄 알았어..’
    ​
    ​
    주변을 빼곡히 메꾸던 복숭아가 어느 순간부터 파도처럼 밀려오더니 리안을 압사할 듯 짓누르기 시작했다.
    ​
    ​
    ‘말랑해서 살았다.’
    ​
    ​
    만약 복숭아가 단단했다면 그대로 압사해버렸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으니 점차 주변 상황이 파악되었다.
    ​
    ​
    “여긴…”
    ​
    ​
    리안은 천천히 마지막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
    ​
    ‘분명.. 릴리의 부탁으로 노아를 붙잡아 두려고 노아의 방을 찾아왔었지, 그리고..’
    ​
    ​
    맹인처럼 어둠 속 기억을 더듬던 리안이 ‘그 기억’을 떠올리곤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동시에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정확히는 코 아래를 가렸다.
    ​
    ​
    조금만 늦었어도 또다시 거하게 피를 쏟아낼 뻔했다. 리안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정처 없이 눈동자를 떨었다.
    ​
    ​
    “오빠! 갑자기 움직이면 안 돼요!”
    ​
    ​
    막 방에 도착해 리안의 안색을 살피던 릴리가 당황한 얼굴로 리안의 팔을 붙잡았다. 이내 리안이 뭔가를 틀어막듯 입가를 가린 모습을 보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
    ​
    “오,오빠 괜찮아요? 또 피 토할 것 같아요?”
    “…?”
    ​
    ​
    ‘그 기억’으로 인해 혼란 상태에 빠져있던 리안이 릴리의 말에 이성을 되찾았다. 고개를 슬쩍 들자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네로와 노아, 릴리의 모습이 보였다.
    ​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
    리안의 시선이 볼이 팅팅 부은 네로를 흘긋거렸다. 머리까지 산발인 게 어디 가서 드잡이질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
    ​
    네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로의 곁에 서 있는 노아 탓이었다. 
    ​
    ​
    ‘으아아…누,눈을 못 마주치겠어.’
    ​
    ​
    분명 개그 필터는 제대로 적용되어 평소보다 자욱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와 리안의 시야를 가렸었다. 문제는 리안과 노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는 데 있었다. 
    ​
    ​
    원래는 보지 못했을 것을 리안은 시야에 담고 말았고, 패닉에 빠져버렸다.
    ​
    ​
    세계의 법칙이 자체 검열을 하는 개그 세계에서 살아왔던 리안에겐 너무나 자극적인 사건이었다. 
    ​
    ​
    빙빙 돌려 말해 뭐할까? 리안은 처음으로 노아가 ‘여자’로 인식되어 말조차 붙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유니콘의 사랑을 받는 남자다웠다.
    ​
    ​
    ‘뭐지? 방금 굉장히 기분 나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
    ​
    리안은 누군가에게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기분이 묘하게 나빠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릴리의 조심스러운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
    ​
    리안이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린 덕분에 더 이상 코피가 터질 것 같지 않아 두 손을 들어 보이며 괜찮다고 말하려 했다.
    ​
    ​
    “얘들아 나 -…”
    “정말 많이 아픈 거야?”
    “커흑..!”
    ​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아가 성큼 다가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노아가 남장을 한 덕분에 코피가 터지진 않았지만, 사레에 걸리고 말았다.
    ​
    ​
    “콜록콜록!”
    “오빠!”
    “리안..!!”
    “형!”
    ​
    ​
    리안이 피를 토해낼 것처럼 기침을 쏟아내자 하얗게 질린 목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엄한 것을 떠올린 탓에 달아오른 얼굴이 기침 때문에 달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
    ​
    리안은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
    ​
    “나, 나는 괜찮아. 진짜 정말로…커흣,콜록..!”
    ​
    ​
    리안은 노아를 멀쩡한 얼굴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일지 리안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리안이 개그 필터 너머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복합적 입니다.

1. 상대가 리안을 위협하지 않음.
2. 상대가 리안에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음.
3.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임
4. 다른 세계에서 개그 필터가 적용됨.
5. 연령대가 높아져서.

조만간 제스와 아이리스도 다시 등장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어린 아이들을 맡아서 챙기고 있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노아의 시선이 줄리아나를 향했다.

[ 갑자기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무리 자극이 강한 걸 봤 -…웁읍! ]

노아가 줄리아나의 입을 틀어막으며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노아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고, 줄리아나도 말을 이을 수 있었다.

[ 크흠, 아무튼 내 말은! 이 녀석 분명 다른 걸 더 숨기고 있어! 그게 병이든, 상처든…! 아! 그러고 보니 여기 좀 봐봐. ]

줄리아나가 리안의 상체를 가리키자 노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자 줄리아나가 혀를 찼다.

[ 남자 몸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왜 그래? ]

줄리아나의 말대로 노아는 남자의 몸을 처음 보는 게 아니다. 남장을 한 채 생활하다 보니 옆에서 훌렁훌렁 상의를 벗어버리는 남자들의 모습을 의도치 않게 보게 되고는 했다.

“그때랑 이게 어떻게 같아..!”

노아는 그리 말하면서도 자신이 왜 이리 동요하는지 알 수 없었다. 리안이 걱정되어 초조하면서도 얼굴에 열이 올라 식지를 않았다. 줄리아나는 그런 노아의 모습을 보며 고양이처럼 능글맞게 웃어 보이다가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 부끄러워서 잘 안 보이나 본데. ]

줄리아나가 리안의 명치 부근에 검지를 척하고 올리며 말했다.

[ 원래 있던 흉터가 전부 사라졌어. 깔끔하게. ]

“..!”

그 말에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던 노아의 시선이 리안의 상체를 향했다. 그녀의 말대로 리안의 상체는 섹시한 잔근육이 보일 뿐 흉터라고는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 흉터에 관한 거 들은 얘기 없지? ]

“없, 었어..”

줄리아나는 작게 침음을 흘리고는 말을 이었다.

[ 하아, 아직도 숨기는 게 있을 줄이야. ]

줄리아나의 한숨과 탄식이 노아의 심장을 화살로 콕 찌른 것처럼 아파졌다. 그녀가 그를 지키기 위해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리안은 항상 제 상처를 숨기기 바빴다.

노아는 고개를 살짝 저어 가라앉는 기분을 털어냈다. 더 이상 과거처럼 절망에만 매여있을 생각은 없었다.

‘감추고 있다면 알아가면 되는 거야.’

리안은 어째서 자신에 관한 걸 비밀로 하고 있을까?

노아는 그 이유를 ‘믿음’과 ‘신뢰’에 있다고 생각한다. 리안이 노아를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제 상처나 고통을 기꺼이 공유하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안이 노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리안의 믿음과 신뢰는 대등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과는 다르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것과 같은… 그런 믿음과 신뢰일 뿐이야.’

부모가 자식에게 제 고달픔을 말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좋은 것만 보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리안 또한 제 상처를 남에게 알리지 않는다.

노아는 곤히(행복한 얼굴로) 잠든 리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지켜낼 거야.’

노아가 결심을 굳히고 있을 때.

똑똑, 벌컥!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노아는 곧바로 방문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형 여기 있…?”

남매 사이인 만큼 거리낌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네로는 눈 앞에 펼쳐진 장면에 할 말을 잃고 굳어버렸다.

멋대로 방문을 열고 들어온 네로에게 한마디 하려던 노아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굳어버린 네로의 모습에 도리어 당황하고 말았다.

“네로 무슨 일…”

“죄송합니다.”

“뭣..?”

쾅!

노아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네로가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가버렸다. 노아가 어정쩡하게 손을 든 채 문 쪽을 바라보고 있자 줄리아나가 음흉한 표정을 지은 채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었다.

노아는 여전히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한 얼굴로 문 쪽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문밖에서 네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릴리! 형이 아니, 누나가 드디어 리안 형을 자빠뜨렸어!”

“뭐, 머, 무어..?!”

노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 돌려 리안쪽을 바라보았다. 피에 젖은 옷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상의를 벗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리안과 허겁지겁 옷을 입느라 흐트러진 채 침대 위에 올라와 있는 제 모습이 그제야 인지되었다.

충분히 그렇고 그런 오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노아는 뒤늦게 자각했다.

“자, 잠깐! 네로 잠깐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노아가 허우적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쿵!

“아윽..!”

허겁지겁 내려오다가 그대로 방바닥을 뒹굴고 말았다. 노아는 작게 신음을 흘리며 문 쪽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지만 네로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네로를 붙잡아 오고 싶지만 리안을 저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었다. 노아는 고개를 휙 돌려 줄리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줄리아나! 릴리를 데려올 테니까 리안 좀 부탁해요!”

줄리아나는 기민하게 저 말속에 ‘네로를 조지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네로!!”

탁.

노아가 방을 뛰쳐나가고 혼자 남은 줄리아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후 리안을 돌아보았다.

[ 어휴.. 손자, 손녀 보려면 오래 걸리겠네. ]

줄리아나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노아의 말대로 착실히 리안의 곁을 지켰다.

***

“여긴 어디지?”

나는 묘하게 하얗고 분홍한 세계에 둥둥 떠 있었다.

“저건…”

시선 끝에 있는 건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 복숭아였다.

“예쁘게 생겼네.”

정신이 몽롱해서 그런지 생각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뽀얗고 분홍한 복숭아는 물에 둥둥 뜬 것처럼 나를 스쳐 지나갔다.

“어..?”

그런 복숭아가 하나, 둘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아졌는지 복숭아 강을 헤엄치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손이 복숭아에 닿았다.

“말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스쿼시처럼 말랑말랑한 감촉에 조물조물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숭아가 아닌가?”

멍하니 중얼거리며 복숭아를 들여다보았다. 그래, 그건 복숭아가 아니라 -…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

“아.”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리안이 눈을 번쩍 떴다. 리안은 멍한 얼굴로 조금 전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건 천국 같은 지옥이었다.

‘압사하는 줄 알았어..’

주변을 빼곡히 메꾸던 복숭아가 어느 순간부터 파도처럼 밀려오더니 리안을 압사할 듯 짓누르기 시작했다.

‘말랑해서 살았다.’

만약 복숭아가 단단했다면 그대로 압사해버렸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으니 점차 주변 상황이 파악되었다.

“여긴…”

리안은 천천히 마지막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분명.. 릴리의 부탁으로 노아를 붙잡아 두려고 노아의 방을 찾아왔었지, 그리고..’

맹인처럼 어둠 속 기억을 더듬던 리안이 ‘그 기억’을 떠올리곤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동시에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정확히는 코 아래를 가렸다.

조금만 늦었어도 또다시 거하게 피를 쏟아낼 뻔했다. 리안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정처 없이 눈동자를 떨었다.

“오빠! 갑자기 움직이면 안 돼요!”

막 방에 도착해 리안의 안색을 살피던 릴리가 당황한 얼굴로 리안의 팔을 붙잡았다. 이내 리안이 뭔가를 틀어막듯 입가를 가린 모습을 보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오,오빠 괜찮아요? 또 피 토할 것 같아요?”

“…?”

‘그 기억’으로 인해 혼란 상태에 빠져있던 리안이 릴리의 말에 이성을 되찾았다. 고개를 슬쩍 들자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네로와 노아, 릴리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리안의 시선이 볼이 팅팅 부은 네로를 흘긋거렸다. 머리까지 산발인 게 어디 가서 드잡이질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네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로의 곁에 서 있는 노아 탓이었다.

‘으아아…누,눈을 못 마주치겠어.’

분명 개그 필터는 제대로 적용되어 평소보다 자욱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와 리안의 시야를 가렸었다. 문제는 리안과 노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는 데 있었다.

원래는 보지 못했을 것을 리안은 시야에 담고 말았고, 패닉에 빠져버렸다.

세계의 법칙이 자체 검열을 하는 개그 세계에서 살아왔던 리안에겐 너무나 자극적인 사건이었다.

빙빙 돌려 말해 뭐할까? 리안은 처음으로 노아가 ‘여자’로 인식되어 말조차 붙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유니콘의 사랑을 받는 남자다웠다.

‘뭐지? 방금 굉장히 기분 나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리안은 누군가에게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기분이 묘하게 나빠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릴리의 조심스러운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리안이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린 덕분에 더 이상 코피가 터질 것 같지 않아 두 손을 들어 보이며 괜찮다고 말하려 했다.

“얘들아 나 -…”

“정말 많이 아픈 거야?”

“커흑..!”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아가 성큼 다가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노아가 남장을 한 덕분에 코피가 터지진 않았지만, 사레에 걸리고 말았다.

“콜록콜록!”

“오빠!”

“리안..!!”

“형!”

리안이 피를 토해낼 것처럼 기침을 쏟아내자 하얗게 질린 목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엄한 것을 떠올린 탓에 달아오른 얼굴이 기침 때문에 달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리안은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는 괜찮아. 진짜 정말로…커흣,콜록..!”

리안은 노아를 멀쩡한 얼굴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일지 리안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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