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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102 – 과제하는 친구들>

     

    세상에는 수많은 의무가 있다.

    아카데미의 교칙을 준수하는 학생의 의무.

    밤늦은 시간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신입생의 의무.

    과제는 성실하게 해야 하는 수강생의 의무.

    애석하게도 모든 의무를 동시에 지키는 것은 힘들다.

     

    “과제를 하려면 밤에도 50m 100m 150m 200m 떨어진 곳에 표적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밤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교칙을 지켜?”

     

    즈앙은 불만이 가득했다.

    표적을 맞추는 거야 어려울 것도 없다.

    일정거리 떨어진 표적을 맞추는 암기술 수련은 스승님에게 질리도록 배웠다.

    눈을 감고도 맞출 수 있고, 창문을 뚫고 나오면서도 맞출 수 있고, 고층건물이나 높은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면서도 맞출 수 있다.

    문제는 실내에서는 그만한 표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고, 암기는 한 번 던지면 회수하러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오늘밤도 바로 자긴 글렀네.’

     

    이렇게 밤늦게 돌아다니면 키가 안 큰다고,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잠은 잘 자고 다니라고 스승님이 당부까지 했었는데.

    아무래도 981기 학생 중에서 세 번째로 키가 작은 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오래도록 유지될 것 같았다.

     

    “얘. 혹시 오크노디 봤니?”

    “못 봤다냐.”

    “정말로?”

    “공부하기 싫어서 계속 휴게실 밖만 보고 있었다냐. 확실하다냐.”

    “고마워. 답례로 나중에 학식에서 생선이 나오면 양보해줄게.”

    “와! 착하다냐!”

     

    몸은 날래지만 머리는 멍청한 고양이수인 제냐의 진술에 따르면 오크노디는 방에 돌아오지 않았다.

    오크노디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원거리 병기숙달> 강의를 듣고 있음을 감안하면 부쩍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야기였다.

     

    ‘밖에서 과제를 하고 돌아올 셈이구나?’

     

    오크노디는 기프트 아카데미에 대해서 이상할 정도로 많은 것을 안다.

    이제는 그 출처를 그녀도 알고 있다.

    선배들이 남긴 지혜가 양면띠지에 적힌 지혜의 방.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

    바로 양면띠지의 방이다.

     

    ‘분명 거기에 힌트가 있겠지?’

     

    너무 많은 내용으로 인해 모든 띠지의 내용을 보고 외우지는 못했지만, 아카데미에 숨겨진 비밀을 찾을 장소는 그곳뿐이다.

    2시 22분.

    그 시각이 되기만 기다리며 야외에서 나무에 대고 표적지를 생성해 암기를 던지던 도중이었다.

     

    탁탁탁!

     

    “거기 서!”

    “무단탈주범! 순순히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으면 벌점을 열배로 먹여주겠다!”

     

    한 학생이 경비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통금시간을 어기고 몰래 기숙사를 나가려다가 걸린 학생이었다.

     

    ‘어설프네.’

     

    몰래 나올 거면 잘 숨기라도 하지.

    걸렸으면 잘 도망치기라도 하던지.

    뭐든지 어설픈 탓에 경비들에게 쫓기고 있다.

    마냥 한심하게 여기며 무시하려던 즈앙이었지만 가로등에 비치는 도주자의 얼굴을 보고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나무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서는 근처 수풀에 들어갔다가 도주자가 옆을 지나칠 때, 팔을 붙잡아 수풀 안으로 쏙 잡아당겼다.

     

    “으헉!”

    “쉿. 조용히 해. 들키고 싶진 않지?”

     

    즈앙이 도주자의 입을 막고 조용히 시키는 사이, 경비들이 길을 달려 지나갔다.

     

    “모브. 맞지?”

     

    도주자의 정체는 모브.

    <원거리 병기숙달> 강의에서 오크노디와 함께 달렸던 엄청나게 많은 감점을 받은 학생이었다.

     

    “그러는 넌 누구야?”

    “오크노디 친구.”

    “도와줘서 고마워. 과제가 급한데 교관들은 절대 내보내줄 생각이 없기에 몰래 나왔더니 이렇게 됐지 뭐야? 정말 꼴통 같은 녀석들이야.”

     

    즈앙은 모브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흐응.”

    “왜 그래?”

    “이상하네. 오크노디는 강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윽. 내가 약한 것쯤은 나도 안다고.”

    “요리 잘해?”

    “계란후라이 가능.”

    “밥 잘 사줘?”

    “포인트 거덜 났어. 하루 한 끼만 먹어.”

    “이상하다. 오크노디가 네 어딜 보고 그리 높이 평가한 거지?”

     

    티토소가는 겁쟁이이기는 해도 돈이 많다.

    조명대 같은 웃기지도 않는 보물을 가지고 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은 실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오크노디도 어울리는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즈앙은 안다.

    오크노디가 부유하지도 않고 힘이 세지도 않은 학생들에게는 기이하리만치 무관심하고 먼저 걸어온 말에 대답은 해도 어울리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음을.

     

    ‘무의식중에 느끼는 거겠지? 상대의 가치를.’

     

    암살자들은 그런 훈련을 받는다.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상대인지, 준비가 필요한 상대인지, 극도로 어려운 상대인지.

    적의 강함과 암살가능유무를 본능 수준으로 즉시 판단하는 훈련을.

     

    ‘요리와 부유함.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상대 중에 오크노디가 어울리는 예외는 두 가지 뿐이었어.’

     

    모브는 그 두 가지 예외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진정한 예외 중의 예외였다.

    그래서 이상했다.

    오크노디는 이 아이에게서 무엇을 본 걸까?

    생긴 것도 평범하고 실력도 평범한데.

     

    “아! 이제 기억났네. 너도 <원거리 병기숙달> 강의를 듣지? 활은 아니지만 암기를 쓰고.”

    “이제 기억났어?”

    “미안. 지난번에 경주 끝날 때 말도 걸어줬었지? 그땐 너무 힘들어서 잘 기억이 안 났어.”

    “기억력도 평범하네.”

    “윽. 평범해서 미안하게 됐네요. 아무튼 덕분에 살았어. 나도 과제를 해야 하니까 가볼게.”

     

    그나마 봐줄만한 것이 있다면 저 진지함일까.

     

    “헛수고야.”

     

    즈앙은 모브의 신경을 긁어보았다.

     

    “오크노디나 나처럼 실력자라면 모를까, 너처럼 평범한 애는 밤새 노력해봤자 거리별로 1000점을 채우는 과제는 성공할 수 없어.”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해야만 해.”

    “어째서? 과제수행에 실패해봤자 벌점을 조금 받을 뿐이잖아. 너, 지난 경주에서 꼴등이었고. 그걸로도 이미 충분히 벌점 받지 않았어?”

     

    모브의 점수는 이미 회생불가능한 수준.

    처참할 정도로 바닥에 깔렸다.

     

    “그렇다고 포기해버리면, 나라는 녀석은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정해지는 거잖아.”

    “응?”

    “나도 알아. 교관이나 친구들이나 다른 그룹 애들까지 전부 그런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쯤은.”

     

    모브는 몰라서 미련하게 고집하는 것이 아니었다.

    알고 있기에 더욱 절박한 것이었다.

     

    “그래도 한 사람이 믿어줬어.”

    “헤에.”

    “그 한 사람은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멋진 사람이야.”

    “그게 오크노디였구나?”

    “오크노디한테는 말하지마. 부끄러우니까.”

    “혹시 반했어?”

    “아니거든! 그냥 나 때문에 오크노디가 욕먹고 비웃음 당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을 뿐이야.”

     

    모브는 기억했다.

     

    “지난 번 경주에서 우릴 보던 선배들이 이런 말을 했어. A그룹 수석도 별거 아니구나, 변방 출신은 역시 변방이구나, 같은 소리를.”

    “짜증나는 놈들이네.”

    “나 때문이었어. 뒤처진 나를 돕겠다고 오크노디가 역주행을 한 탓에 그런 욕을 먹었던 거야.”

     

    누군가가 자신 때문에 대신 욕을 먹는다.

    한 남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최악의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모브는 바로 그 순간을 손꼽을 정도로 그때의 순간들이 분했다.

     

    “오크노디는 저런 녀석을 돕기 위해 물러섰던 거냐고, 그런 소리를 하는 녀석들이 나오게 두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이 과제만큼은 절대로 포기 못해.”

    “따분하네. 하품이 나올 정도로 평범하고 지루한 애기야.”

     

    눈물을 슬쩍 훔친 즈앙이 성큼 앞장섰다.

    무시당해도 어쩔 수 없지.

    모브가 쓴웃음을 짓는 그때, 즈앙이 그에게 말했다.

     

    “뭐해? 안 따라오고.”

    “따라오다니… 어딜?”

    “야밤에도 신입생이 교관 눈치 보지 않고 훈련할 수 있는 장소. 잘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거든.”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과제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과 목숨을 걸고 수행해야 할 과업으로 여기는 사람.

    암살자는 후자다.

    목표를 제거하지 못하면 자신이 잘려나가니까.

    그런 신조를 지닌 그녀에게 매사에 진지하지 못한 하급반 학생들은 혐오의 대상이다.

     

    -이건 무리지. 난 포기할래.

    -밥이나 먹으러 갈까?

    -오는 길에 봤는데 매점에서 카드도 빌릴 수 있대. 카드놀이나 하자.

     

    기껏해야 활쏘기 과제조차 내팽개치는 이들이다.

    목숨이 걸린 의뢰라고 수행할 수 있을까?

    가능할 리가.

    한 번 낙오자는 영원한 낙오자다.

    그런데도 눈앞의 낙오자만큼은 후자이고자 발악한다.

     

    ‘조금은 알 것 같네. 오크노디가 이 녀석을 친구라고 인정하는 이유를.’

     

    새벽 2시 22분.

    양면띠지의 방에 들어간 즈앙은 원하는 정보를 얻고 나왔다.

     

    “자, 따라와. 마법동에 비밀훈련장이 있어.”

    “괴, 굉장해. 발소리도 나지 않고 건물을 드나들다니.”

    “하. 이런 걸로 일일이 놀라지 말라고. 촌스럽게.”

     

    투덜거리면서도 제대로 뒤를 따라오고는 있나, 뒤처지지는 않나 열 걸음에 한 번씩 뒤를 돌아보는 즈앙.

    그녀의 배려심에 모브도 가슴 속에 열의가 더더욱 차올랐다.

     

    “응? 너는… C그룹이었지?”

    “…야간데이트?”

    “아니거든? 훈련장에 왔을 뿐이야. 그러는 너는?”

     

    마법동 입구 근처 창가자리.

    모포를 덮고 있던 카시아가 즈앙과 뚫어져라 눈을 마주쳤다.

    즈앙은 놀랐다.

    암살자의 살기를 품은 자신의 눈은 아무나 쉽게 마주칠 수 없는데.

    실수로라도 눈을 마주쳐도 교관조차 이따금 고개를 돌리기 마련인데.

    카시아라는 이 아이는 호승심이 일 정도로 흔들림 없이 온전하게 시선을 받아내었다.

     

    “그냥. 여기가 편해.”

    “별난 녀석이네.”

     

    편하기는 개뿔.

    의자는 불편하고 근육도 경직되어 있다.

    돈 주고 자래도 못잘 곳이다.

    심지어 뒤에는 살기를 품은 교관도 있다.

    누군가 그녀에게 이런 곳에서 자라고 한다면 단검에 손부터 갈 정도.

    굉장히 흥미가 이는 광경이다.

    오크노디라면 분명히 참견했겠지.

     

    ‘말하기 싫으면 말던가.’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녀는 오크노디가 아니다.

    뒤만 졸졸 쫓아오는 평범한 남자도 있다.

    승부를 겨루기엔 좋지 않은 상황.

     

    “너, 꽤 강하지?”

    “네가 져.”

    “나중에 한 번 겨뤄보자.”

    “…흥.”

     

    새침한 소녀와 살벌한 교관을 뒤로한 채, 비밀훈련장의 입구로 향했다.

     

    “교관님이 불쌍하시네. 학생이 창가에서 잔다고 옆에서 같이 불편하게 주무시고.”

    “교관보다는 쟤가 더 불편할걸?”

    “왜?”

    “하아. 모르면 됐어.”

     

    비밀시설은 학생전용화장실의 청소함 문이었다.

     

    ‘참 똑똑하게도 만들었어.’

     

    그냥 열면 평범한 청소도구함이 열린다.

    마력패스에 정해진 양식으로 마력을 흘린다면?

    청소도구함이 통째로 딸려 나오며 불법개조된 훈련장이 나온다.

     

    “우와.”

     

    감탄하는 모브와 함께 안으로 들어오니 훈련장 입구를 지키던 남학생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무슨 입학 둘째 주부터 1학년이 셋이나 비밀훈련장에 들어와?”

     

    감탄하는 남자 너머로 과녁에 활을 쏘던 오크노디가 손을 흔들었다.

     

    “와! 즈앙이랑 모브다! 여긴 어떻게 알았어?”

    “띠지보고 찾았지. 오크노디도 그랬잖아?”

    “으, 응! 그랬었지! 헤헤.”

     

    거짓말쟁이.

    띠지를 안 봤으면 여긴 또 어떻게 알아낸 걸까.

    참 흥미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니깐.

    즈앙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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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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