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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네르는 하루종일 베르그를 관찰했다.

     

     

    미묘하게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느낌이었다. 미묘하게 짧은 한숨을 자주 내쉬는 것 같았다. 미묘하게 표정이 굳어있는 듯 했다.

     

    “…”

     

    다른 누군가에게 생긴 변화였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는 베르그였다.

     

    지난 몇 달간 계속해서 붙어있던 사람.

     

    남편이자, 그녀의 짝.

     

    사소한 차이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아르윈. 밖에 마른 천을 뒀어. 씻고 몸 말려.”

     

    ‘네. 고마워요, 베르그.’

     

     

    네르는 몸을 씻는 아르윈을 챙기는 베르그를 바라보았다.

     

    아르윈에게만큼은 그 미묘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둘은 더욱 친해진것만 같은 기분이다.

     

    아까전까지만 해도 손을 깍지 껴 잡고 있지 않았던가.

     

     

    네르는 얼굴을 필 수가 없었다.

     

    인상을 계속해서 찌푸리게 된다.

     

    왜 이런 변화가 생긴걸까.

     

    …혹시, 어젯밤에 둘의 사이가 진전이라도 한걸까.

     

     

    “…읏.”

     

    그 상상에, 네르는 심장이 뻐근해졌다.

     

     

    작은 신음소리에 베르그가 고개를 돌린다.

     

    “…”

     

    네르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찌푸렸던 표정은 풀지 않았다.

     

    이러고 있으면 언제나 그랬듯 자신을 위로하러 올테니.

     

     

    “…”

     

    하지만 베르그는 고개를 돌린다.

     

    “…어?”

     

    그리고는 무언가 생각할게 있다는 듯, 방으로 향했다.

     

     

    어느새 뻗어진 네르의 손이 허공을 잡는다.

     

    덩그러니 거실에 남은 네르는…정체불명의 공허함에 휩싸였다.

     

     

     

    ****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앉았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수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려했지만 말처럼 되지 않는다.

     

    어떻게 네르에게 다가가야하는지 잊은것만 같다.

     

     

    그녀에게 공감하고 있어서 그런걸지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녀의 입장이었다.

     

    …물론 네르는 누구와 사랑에 빠진건 아니라지만.

     

     

    나는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둔 채로, 이성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 원치 않는 접근이 싫었다.

     

     

    그런 짓을 네르에게 하려니, 예전처럼 쉽사리 되지 않는다.

     

     

    …혹시 이에 대해 물어봐야하는 걸까.

     

    나조차도 시엔의 이야기를 숨겨오고 있는데 말이다.

     

     

    “…”

     

    사실 내가 이런다고 달라질 건 없다.

     

    아르윈에게 말했듯, 우리는 부부니까.

     

    그건 변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기회가 있다면 나를 떠나고 싶어할 수 있다는게 내심 마음에 걸린다.

     

    “…”

     

    잊고 있던 고독함이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다.

     

    시엔이 날 떠나고, 그 아픔에서 나름대로 일어선 이후.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할거라 생각했던 감정이었다.

     

     

    이런걸 보면, 나도 네르에게 많은 감정을 주었나보다.

     

     

    -푹.

     

    나는 침대에 누웠다.

     

    네르의 그 불만 섞인…또 걱정스러웠던 표정이 머리에서 맴돈다.

     

     

    눈을 감는다.

     

    “…유치하게.”

     

    내가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감쌌다.

     

     

     

    ****

     

     

     

    시간이 그렇게 흐른다.

     

    네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위로와 사과를 받아야하는 건 자신이었는데… 조마조마한 것 또한 자신이다.

     

    베르그가 어떠한 말도 건네오지 않는다.

     

    싸운것도 아니지만, 화해한 것도 아니다.

     

    이상한 경계선에서 베르그와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왜 이렇게까지 가슴이 답답한건지는 알수가 없었다.

     

    베르그가 자신에게 화를 낸것도 아니었다.

     

    다른 여자들에게 그렇듯, 자신을 밀어낸것도 아니었다.

     

     

    그저 상냥함을 잠시 감추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네르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는 용기가 없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냐 물을 힘이 없다.

     

    혹시라도 정말로 싸우게 될까 두렵다.

     

    싸우고, 미움받을까 두렵다.

     

    그냥 아무일 없듯 화해하고 싶은 마음도 한켠에 존재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스탁핀.

     

    네르는 오늘도 밤산책을 나와있었다.

     

     

    이 작은 숲이 그리워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이곳에 기다리고 있다보면,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고 한들 나와주지 않을리 없었다.

     

    자신을 또 구속하러 올 것이었다.

     

    네르는 거기에 몸을 맡겨 베르그를 기다렸다.

     

     

     

    “…”

     

    하지만 기다리는 매순간, 마음이 따끔거린다.

     

    답답해 힘들다.

     

    아무것도 아닌 이 일로, 괜히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이해할 수 없으니 더 두렵다.

     

     

    왜 이런 차이가 한순간 생긴걸까.

     

    아르윈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베르그는 언제 나타나주는 걸까.

     

     

     

    -자박…

     

     

    그 순간, 기다리던 발소리가 들려왔다.

     

    네르는 몸을 움찔 떨고 뒤를 돌아봤다.

     

     

    “…”

     

    아니나 다를까, 베르그가 그 곳에 서 있었다.

     

     

    네르는 몸을 재빨리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걱정에 일그러진 제 표정을 숨긴다.

     

    두려움에 몸이 굳어, 어떠한 선택도 내릴 수가 없다.

     

    베르그가 행동하기만을 기다렸다.

     

     

     

    천천히 걸어오던 베르그는, 이내 네르의 옆에 앉았다.

     

    그가 항상 지녔던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가 돌아왔다.

     

     

    “…”

     

    네르는 이상한 안도감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이럴 수 있었으면서 왜 하루종일 그랬던 걸까.

     

    따지고 싶었지만, 마찬가지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도 않다.

     

     

    베르그가 말한다.

     

    “미안해.”

     

    “…”

     

    “…돌아온다 했는데, 걱정했지.”

     

     

    이어지는 안도감에 숨겨왔던 토라진 감정들이 돌아온다.

     

    그녀는 마치 다시 어려진 듯 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감정이 상하고, 별 것도 아닌 걸로 삐졌다.

     

     

    “걱정 하지 않았어.”

     

    그녀가 거짓된 말을 흘렸다.

     

     

    베르그가 피식 웃으며 더욱 가까이 앉았다.

     

    허벅지가 맞닿는다.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미안해, 네르.”

     

    베르그가 다시금 사과했다.

     

    “…”

     

    -휙.

     

    네르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하지만 깊은 마음속에서는 얼마나 안도중이었는지, 베르그는 알지 못할 것이었다.

     

    “…화 안 풀거야?”

     

    “…”

     

    이내 짧은 한숨이 이어진다.

     

     

    네르는 베르그의 한숨에 또 멋대로 놀란다.

     

    혹시 사과를 받아줄 기회를 놓친걸까?

     

     

    동시에 베르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네르는 자신이 찰나의 순간 놓친 그 화해의 손을 다시 잡기 위해 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니, 베르-”

     

    -휙!

     

    그 순간, 네르는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번쩍 들어올려지는 걸 느꼈다.

     

    “꺅!”

     

    순식간에 그녀의 앞으로 돌아선 베르그는, 네르의 골반을 잡고 그녀를 높이 들어올리고 있었다.

     

    네르는 베르그의 어깨를 당황스레 누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베르그를 내려다보았다.

     

    “아! 뭐, 뭐하는 거-”

     

    “-어떻게 해야 내 아내가 화를 풀까?”

     

    베르그는 분위기를 띄우려는 과장을 담아, 농담처럼 물어왔다. 일전의 태도에 대한 사과 같기도 했다.

     

     

    “…아.”

     

    네르는 뱉으려던 말을 삼켰다.

     

    ‘내 아내.’

     

    그의 말에 화가 너무도 쉽게 녹아내린다.

     

    사소한 싸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납득시키면서도, 또 이런 싸움이 궁극적으로 관계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견고한 단어.

     

     

    그랬다.

     

    너무도 당연해 잊고 있었지만…자신은 이미 베르그의 아내였다.

     

    그보다 베르그와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가 있을까.

     

    그 사실에 마음의 벽이 허물처럼 무너진다.

     

     

    아내.

     

    아내.

     

    네르는 그 단어를 자신도 모르게 곱씹었다.

     

    이렇게 가슴 벅찬 단어가 있을까?

     

    베르그는 평생토록 자신의 편이라는 이야기였다.

     

     

    “빨리 말해, 네르. 어떻게 하면 화를 풀래.”

     

    “…”

     

    “말하기 전까지는 안 내려줘.”

     

    “…”

     

    침묵을 유지하던 네르는 그의 말에 끝내 작은 미소를 터트렸다.

     

    한번 기분이 밑바닥을 맛봐서 그럴까.

     

    현재 이 작은 행복조차 더욱 달콤하게 느껴진다.

     

     

    베르그가 묻는다.

     

    “파이 좋아하잖아. 파이를 만들어줄까? 아니면, 내일 멀리 산책을 나갈까?”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며 베르그는 더 큰 미소를 지었다.

     

     

    “말해봐, 네르.”

     

    네르는 이내 눈을 깜빡이며 베르그를 내려다보았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터질 정도로 안아줘.’

     

     

    그녀는 그 한숨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속삭일 뻔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서야, 그 말을 입술 뒤에 꾹 눌러둔다.

     

    그런 부끄러운 말 따위 할 수 없는게 당연했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물론, 그런 시간은 앞으로도 충분히 많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럴수록 자각한다.

     

    자신의 마음을 더는 스스로도 속일수가 없었다.

     

    그에게 향한 감정이 무엇인지…점차 확실해져갔다.

     

     

    “…오늘 같이 술을 마셔주면 화를 풀게.”

     

    그러니 대신 그녀가 말했다.

     

    그녀 나름의 화해의 손길이기도 했다.

     

    베르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계획도 분명 있었고.

     

     

     

    “술?”

     

    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술.”

     

    “…괜찮겠어?”

     

     

    네르는 또 말을 억지로 삼켰다.

     

    ‘너랑 마시면 좋을 것 같아.’

     

    대신 미소를 지었다.

     

     

    “…싫어?”

     

    장난스럽게 물었다.

     

    베르그는 그녀의 도발에 미소를 지었다.

     

    “싫을 리가.”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술 마시러 가자.”

     

     

    .

    .

    .

    .

     

     

    “…”

     

     

    아르윈은 어느새 단아하게 앉아 술을 나눠마시는 베르그와 네르를 바라보았다.

     

    베르그가 기뻐보이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이유는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그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네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조언을 전달했다.

     

    네르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는 숨기고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에게 상처주지 않는 한에서, 네르를 멀리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바보.’

     

    아르윈은 또 다시 생각했다.

     

    …하지만 저 어리석은 인족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저런 모습에, 더욱 이끌리는 걸지도 모른다.

     

     

    아내라고 소중히 대하는 그 책임감이 어쩔 수 없이 믿음직스러웠다.

     

    대체 어떻게 저러는 걸까.

     

    엘프인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모습들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요?”

     

    아르윈은 결국 그들의 술자리에 끼어들었다.

     

     

    “…아.”

     

    킥킥대며 웃던 네르가 아르윈의 질문에 표정을 굳힌다.

     

     

    “술을 좀 마셨네, 네르?”

     

    아르윈이 이어 물었다.

     

     

    네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네.”

     

    “너도 한잔 할래?”

     

    베르그가 아르윈에게 물어왔다.

     

    아르윈은 그들이 마시는 술을 내려다보았다.

     

     

    …바르디 술.

     

    그녀는 베르그가 그 술을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말 바르디 술을 좋아하시네요.”

     

     

    아르윈은 같은 질문을 또 다시한번 물었다.

     

    어쩌면 그녀 마음속에 자리한 찝찝함이 이런 질문을 계속하도록 그녀를 내몰고 있는걸지도 몰랐다.

     

     

    술기운 덕인지, 큭큭대며 웃던 베르그가 입을 열었다.

     

    ‘먹다보니.’ 라는 익숙한 대답이 올거라고 예상했다.

     

     

    “네가 처음 내게 준 술이잖아.”

     

    “……………”

     

     

    하지만 이어지는 베르그의 말에 아르윈은 살짝 심장이 놀란다.

     

    아르윈은 동요를 숨겼다.

     

    …결국 술은 음식이다.

     

    음식에는 그 어떠한 문제도 없다.

     

     

    “…”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던 네르가 이내 빈 베르그의 술잔을 보고, 술병을 들어올린다.

     

     

    조신한 아내처럼 베르그의 잔을 채운다.

     

    이유를 알지 못할 미소를 베르그에게 지어보이는 건 덤이었다.

     

    “한 잔 더 해, 베르그.”

     

     

    아르윈은 그런 네르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술잔을 들어올리던 베르그가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춘다.

     

    “…아 맞다.”

     

    “…?”

     

    “…바르디 술이 다 떨어져가던데.”

     

     

    아쉽다는 듯 씁쓸히 혀를 차는 베르그.

     

    아르윈은 순간적으로 끼어들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금주해보시는 건 어때요?”

     

     

    베르그는 그게 무슨 말도 안되냐는 말이냐는 듯 피식 웃었다.

     

    “용병이 술을 어떻게 끊어.”

     

    “…그런게 어디있어요.”

     

     

    베르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르윈을 바라보았다.

     

    아르윈은 그런 그의 시선을 오래 마주하지 못했다.

     

    동시에 베르그가 묻는다.

     

     

    “혹시 바르디 술 좀 더 구해줄 수 있나?”

     

    “…”

     

    아르윈은 눈을 슬쩍 들어올려 베르그를 바라보았다.

     

    거절하고 싶었지만…그것도 어색할것만 같다.

     

    바르디 술이 별거라고.

     

    그러니 그녀가 다시금 생각했다.

     

    …음식에는 그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아르윈이 답했다.

     

    “…생각해볼게요.”

     

     

    ****

     

     

    네르는 베르그를 부축하여 방으로 들어섰다.

     

     

    그녀 또한 균형을 잡는게 쉽지는 않았지만…그래도 어렵게 그를 데려다 방에 놓았다.

     

    아르윈도 그런 그들을 도왔다.

     

     

    “…너무 많이 먹인거 아니야?”

     

    아르윈이 불만스레 네르에게 물었다.

     

     

    네르는 베르그의 잔이 비워질때마다 그의 곁에서 술을 따랐다.

     

    하지만 네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베르그가, 히끅. 원했는걸요…”

     

    “…”

     

     

    둘은 동시에 누워 잠든 베르그를 내려다보았다.

     

    누구하나 오랜 시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도 모르게 곯아떨어진 그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세요. 히끅.”

     

    네르가 아르윈에게 말했다.

     

    “저희 자야해서…”

     

    그러며 네르는 베르그의 윗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르윈이 다시금 표정을 찌푸렸다.

     

    “…내버려두지 왜 옷을-”

     

    “-베르그가 이렇게 자는 걸 좋아하잖아요.”

     

     

    아르윈은 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잠시 굳어있다 말한다.

     

    “…어차피 베르그도 곯아떨어졌는데,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자자. 굳이 오늘까지 함께 잘 필요는 없잖아.”

     

    “…”

     

     

    네르는 베르그의 옷을 벗기다 말고 아르윈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걱정 고마워요. 하지만 괜찮아요.”

     

     

    -휙!

     

    네르는 이내 베르그의 옷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네르의 노란 안광이 어둠속에서 번들거렸다.

     

    베르그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이 바뀐 것 같기도 했다.

     

    술기운 때문일까.

     

     

    -…스윽.

     

     

    “…?”

     

    네르의 손길이 베르그의 가슴을 가볍게 훑었다.

     

    아르윈은 그런 네르를 바라보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 지나간 그 손짓에,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 알수가 없었다.

     

     

     

    “…아.”

     

    이내 네르가 탄식했다.

     

    그러며 아르윈을 바라본다.

     

    마치 그녀가 거기있었다는 걸 잠시 깜빡했다는 듯.

     

     

    “…들어가서 쉬세요.”

     

    네르는 이내 아르윈을 배웅하며 방 밖으로 밀어냈다.

     

    “…”

     

     

    아르윈은 아무말도 못하고 그녀의 손길에 방에서 밀려났다.

     

    “…좋은밤 되시고요.”

     

    -쿵.

     

     

    그리고 아르윈이 문 밖으로 밀려나는 순간, 네르는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아르윈은 왜 자신의 주먹이 말아져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

     

     

    “하아…하아…히끅.”

     

     

    네르는 간만에 맡는듯한 베르그의 향을 원없이 맡았다.

     

    술냄새와 함께 섞인 그의 체취.

     

     

    무엇도 이제는 그녀를 막는게 없었다.

     

    발정기의 이유도 알았다.

     

     

    이유를 아는만큼, 이제 더는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네르는 과하게 선을 넘지 않도록 유의했다.

     

    술을 마셔서 자제력이 원래같지 않다는 걸 잊지 않으려 했다.

     

     

    네르는 베르그의 몸에서 나는 아르윈의 향기에 화가 났다.

     

    대체 어젯밤 무엇을 한걸까.

     

    분명 둘의 몸이 맞닿고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오늘 베르그의 변화도 혹시 그런 이유였을까.

     

     

    그리고 그런 분노가 머리를 지배할수록, 네르는 더욱 거칠게 제 향을 베르그에게 묻혔다.

     

     

    보상심리였을지도 모른다.

     

    어젯밤부터 불안했던 마음을 이렇게 보상 받으려고 한걸지도 모른다.

     

    “…베르그.”

     

    네르는 베르그에게 몸을 비비며 속삭인다.

     

    “…고마워.”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그 말로는 그녀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

     

    네르는 천천히 베르그에게 몸을 비비던 걸 멈추고, 그의 몸 가까이에 붙었다.

     

    맨상체를 손으로 부드럽게 훑으며, 그의 팔을 베고 누웠다.

     

    살짝 제 옷을 들어올려, 맨 배꼽을 베르그의 옆구리에 붙인다.

     

     

    베르그의 귀가 바로 그녀 앞에 있었다.

     

     

     

     

    “……………..좋아해.”

     

    네르는 다른 말도 시험해보았다.

     

    그가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배덕감이 그녀를 지배했다.

     

    오싹한 기분이 든다.

     

    이 말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줄 수 있을까.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도 부족한 느낌이 든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베르그였다.

     

    앞으로도 자신의 곁에 있어줄 베르그였다.

     

    자신을 위해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싸워주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무모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던 베르그였다.

     

    그의 미소에 마음이 녹아내리고, 그의 손길에 소름이 돋는다.

     

    이런 마음을 좋아한다는 걸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었다.

     

    그러니 그녀가 말했다.

     

     

    “…”

     

    처음에는 쉽게 나오지 않은 말.

     

    할머니 외에게는 해보지 않았던 말.

     

    하지만 취기가 그녀를 밀어붙인다.

     

    충동적으로 한 번 말해본다.

     

    귀에다 분명히 들리도록 속삭인다.

     

     

    “………..사……..랑해.”

     

    네르가 미소를 지었다.

     

    말하고 나니 분명해진다.

     

     

    인정하고 나니 너무도 당연해진다.

     

     

    이 말이었다.

     

    소름이 온 몸에 흐른다.

     

    이 말이 그녀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했다.

     

     

    “…..사랑해.”

     

    그녀가 또 다시금 속삭였다.

     

    자제력을 잃어서 그럴까.

     

    넘쳐흐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사랑해, 베르그.”

     

     

    그녀가 또다시 말했다.

     

    단어 자체를 말하는 쾌감이 있다.

     

    마법과도 같은 단어였다.

     

    어른이 되어서는 처음 말해보는 단어.

     

    이제야 이 감정을 알게 된다.

     

    가족에게 느끼는 사랑과는 달랐다.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다.

     

     

     

    “사랑해.”

     

     

    그녀가 속삭였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말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랑해.”

     

     

    그저 아이처럼, 그녀가 반복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LeAnz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멸망의뽐뽀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왜 다시 악녀가 되는거야 의 팬아트를 그려주셨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ㅎㅎ 이전작품까지도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다는게 기쁘네요. 허락해주신만큼, 작품 공지에 팬아트를 올려두도록 할게요.

    그리고 이제야 저도 알게 되었는데, 제 소설에 대한 팬아트가 꽤나 많았습니다…!

    흔재한생님! 시엔과 베르그의 만화를 그려주셨더라고요. 한번 말씀해주셨던 것 같은데, 당시에 이미 그려주신거였더군요. 몰랐습니다. 뒤늦게 감사인사를 전하네요. 감사해요. 혹시나 허락해주신다면 공지에 올리고 싶습니다. 괜찮을까요…?

    맜있으면짖는개님! 아르윈의 AI 팬아트 감사드립니다! 마찬가지로 허락해주시면 공지에 팬아트를 올리고 싶습니다!

    다음화 보기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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