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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내 몸의 진짜 주인이 나타나 버렸다.

       이걸 한여름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리다가 한여름을 향해 달려나갔다.

       새벽이에겐 일단 나오지 말라며 손을 저어주었다.

       

       “어서 오세요···”

       

       거실로 들어서는 한여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밖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다운된 그녀의 기분 덕에 흔들리는 꼬리마저 멈춰 서고 말았다.

       

       “겨울아···”

       

       “네에···”

       

       그녀가 내게 터덜거리며 다가오더니, 갑작스레 몸을 끌어안았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더 좋았다.

       

       “겨울아, 언니가 정말 미안해···”

       

       “뭐가요···?”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헤헤.

       어색한 미소를 지은 한여름이 조심스레 뒤로 물러섰다.

       어쩐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저기 있잖아요.”

       

       “응.”

       

       “제가 급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응. 무슨 말?”

       

       상냥한 표정으로 눈높이를 맞춰온다.

       그래서 오히려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이상한 일이 생겨 버렸어요···”

       

       “이상한 일?”

       

       “네. 그게···”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물쭈물하며 그녀를 올려다보고만 있으니, 방에서 레비나스의 비명이 들려왔다.

       

       “으갹!”

       

       “······!”

       

       소리가 너무 커서 귀와 꼬리가 쫑긋 솟아오를 정도였다.

       내가 놀라는 그 순간에 한여름이 방문을 열어젖혔다.

       

       “무슨 일···!”

       

       문을 연 한여름이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새벽이를 보고 놀란 걸 테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지라, 가만히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혹시 새벽이니?”

       

       “응.”

       

       “응?”

       

       한여름이 어떻게 새벽이를 알고 있는 걸까?

       둘이 초면이 아니었던 건가?

       머릿속으로 의문이 피어오르려는 순간, 레비나스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왕아! 왕아 큰일 났다!”

       

       “으, 응···?”

       

       “어둠에 왕이가 생겨 버렸다! 왕이의 또 다른 인격이 나온 것이냐?!”

       

       어둠의 인격이라니.

       동물왕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개념이었다.

       주인공에게 또 다른 자아가 있었으니까.

       

       순수한 레비나스의 태도가 귀엽다.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레비나스를 향해 장난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맞아. 내 어둠의 인격이 나타나 버렸어.”

       

       “헉! 왕이의 어둠···!”

       

       파들파들 떨던 레비나스가 내 배에 얼굴을 파묻었다.

       빠른 동체시력을 통해 레비나스의 이마에 있는 뿔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안겨들 때 방해가 되지 않겠다는 듯이.

       

       ‘신기하다.’

       

       레비나스의 뿔도 내 꼬리처럼 자연스레 알아서 움직이는 건가.

       수인족의 신체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왕아, 어둠에 인격한테 레비나스를 공격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라···! 레비나스도 같은 편이라고 해주라···!”

       

       “응. 이미 말해뒀지.”

       

       “그러냐?!”

       

       “응.”

       

       나는 헤헤 웃으며 레비나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귀여운 그녀를 보고 있자니,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뭐.’

       

       진짜 몸이 나타나도 나는 나니까.

       그냥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겨울아, 언니 잠깐만 새벽이랑 대화 좀 나누고 싶은데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을까? 겨울이가 듣기에는 조금 무서운 말이 될 수도 있어서.”

       

       “네. 저 그럼 레비나스랑 공원에서 놀고 있을게요.”

       

       “응. 비켜달라 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나는 레비나스의 손을 붙잡고 공원을 향해 이동했다.

       레비나스는 ‘어둠에 왕이’가 신경 쓰였던 건지 계속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한여름은 새벽에게 모든 걸 들을 수 있었다.

       함께 실험을 받았던 어른들이 자신을 살려줬던 것까지도.

       

       “나 엄청 깊게 파묻혀서 못 나올 뻔했다?”

       

       “그래···?”

       

       “응. 근데 같이 실험받던 어른들이 던전 만들어줘서 겨울이가 빠져 나올 수 있었어.”

       

       “아···”

       

       던전은 근처에 있는 모든 걸 다 빨아들이니까.

       원한으로 만들어진 던전이, 새벽이가 묻혀있던 땅의 흙을 빨아들여 준 건가.

       

       어째서 과거에 일 단계 던전이 한 번 더 생겼나 했는데.

       이 모든 게 겨울이를 살리기 위한 어른들의 ‘기적’이었다.

       

       ‘근데 던전을 클리어 한 길드가 어디지?’

       

       원한 던전을 클리어했다면, 끔찍하게 실험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냈을 텐데. 

       

       뭔가 수상하다.

       아무래도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한여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새벽도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겨울이가 자기 정체를 비밀로 하고 싶어 했지.’

       

       겨울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 왔기에, 누구보다 겨울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겨울이가 말하기 싫어하는 건 절대로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머나먼 차원에서 불려 와 고생을 한 아이였으니까.

       

       새벽은 겨울에게 나름대로의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자신 이상으로 고생을 한 아이가, 보다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조금 거짓말을 해야겠다.

       길드 사람들이 겨울이를 향해 죄책감을 느낄수록 겨울이가 더욱더 사랑과 애정을 받을 테니까.

       

       “저기, 겨울이에 대해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떤 거?”

       

       한여름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새벽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표정한 새벽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사실 겨울이는 내가 살기 위해 만들어낸 인격이거든. 뭐든 할 수 있는 용감하고 씩씩한 아이야.”

       

       새벽은 만들어진 인격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말했다.

       겨울이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만들어졌다는, 불쌍한 아이라는 타이틀이 붙을수록 겨울은 더욱 사랑을 받게 될 테니까.

       

       “그랬구나··· 응··· 겨울이 되게 용감하고 씩씩하지.”

       

       “응. 근데 이제 나랑 겨울이가 분리됐잖아.”

       

       “음···?”

       

       그러네.

       새벽이랑 겨울이를 다른 사람으로 봐야 하나?

       아리송한 상황에 한여름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겨울이는 만들어졌지만, 생명을 지닌 진짜 사람이야. 그러니까···”

       

       새벽은 굳이 뒷말을 삼켰다.

       한여름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응. 새벽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겠어.”

       

       사랑을 통해서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아이.

       겨울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삶에 미련이 없는 겨울이라면···

       

       “읏.”

       

       한여름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끔찍한 미래 따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에게 겨울이와의 추억은 ‘진짜’ 였으니까.

       

       “나 때문에 겨울이가 고생을 했잖아. 나는 이제 겨울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응. 언니도.”

       

       그리고 새벽도.

       한여름이 속으로만 말했다.

       

       “이거 비밀인 거 알지?”

       

       “비밀?”

       

       “응. 비밀.”

       

       새벽이 쉿 하며 입술 위로 검지손가락을 올렸다.

       그러나 한여름은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겨울이에 관한 일들을 공유하자는 길드원들과의 약속이 있는 탓이었다.

       

       

       “그, 음···”

       

       

       한여름이 머뭇거리는 순간, 새벽이 입을 열어왔다.

       

       “길드에는 말해도 괜찮아. 길드 사람들이 겨울이를 아껴준다는 걸 알거든.”

       

       “···응. 그리 말해줘서 고마워.”

       

       한여름이 손을 뻗어 새벽이를 꼭 안아주었다.

       겨울이와 같은 외모였으나, 겨울이와는 달리 시종일관 무표정에 사나움까지 느껴지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한여름은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얼마나 착하고 상냥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는지를.

       

       “새벽이가 겨울이 보다 언니니까, 겨울이 잘 보살펴 줘야 한다?”

       

       “응. 겨울이는 내 소중한 동생이야.”

       

       새벽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건 똑같은 건가.

       한여름이 헤헤 웃음을 터트렸다.

       

       

       **

       

       

       나와 레비나스는 공원 벤치에 앉아 ‘어둠에 왕’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왕아, 어둠에 왕은 세상에 파멸을 이끌고 올 존재다!”

       

       “···그 정도야?”

       

       “응! 아주 무시무시한 존재다!”

       

       어둠이 무시무시하다니.

       뭔가 차별적인 느낌이 들긴 하는데, 레비나스가 그런 걸 생각하면서 말하지는 않았을 테지.

       애니메이션에서 ‘어둠의 인격’이 위험한 존재로 나오기는 했으니까.

       지금은 레비나스의 상상력 놀이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할까?”

       

       “레비나스도 잘 모르겠어···”

       

       “저런.”

       

       오들오들 떠는 레비나스의 어깨위로 손을 올렸다.

       급히 그녀를 달래주려는 찰나, 우리를 향해 새벽이 다가왔다.

       

       “겨울아.”

       

       “으갹!”

       

       레비나스가 내 품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가 새벽이를 얼마나 두려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새벽이 왔어요?”

       

       “응. 새벽이 왔어.”

       

       새벽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대화를 잘 끝냈는지, 그녀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새벽이는 앞으로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겨울이랑 친구가 되기로 했어.”

       

       “아하.”

       

       앞으로 잘 지내자는 뜻이겠지.

       내 꼬리가 그녀와 공명하듯 똑같은 주기로 흔들렸다.

       품속에 안겨있던 레비나스의 귀가 쫑긋 솟아오른 게 그때였다.

       

       “어둠에 왕이야, 레비나스랑은 친구 안 할 거냐···?”

       

       “어둠에 왕이는 레비나스랑도 친구야.”

       

       폴짝 뛰어오른 레비나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새벽을 바라보았다.

       그 무서운 존재와 친구가 된다는 사실에 놀란듯싶었다.

       

       “진짜냐···?”

       

       “응. 우리 앞으로 빈 병 주우면서 친하게 지내자.”

       

       “헉!”

       

       같이 빈 병을 줍자는 사실이 기뻤던 건지, 레비나스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레비나스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함이 돼용!

    어둠’에’왕이는 의도된 오타가 맞아용…!
    레비나스의 발음이 귀엽다는 걸 표현하기 위함이랍니다!

    2. 100화에 전부 댓글을 달긴 했는데, 답글을 안 했다든가 빠진 댓글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나하나 확인하긴 했는데, 댓글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렉이 심하게 걸리더라구요ㅠ.ㅜ 빼먹은 분이 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알려주시면 다시 달러 갈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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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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