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2

       *

        “읏,”

        ​

        ​

        ​

        무릎에 느껴지는 간지러운 감촉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잠에서 깨어났다.

        ​

        실비아씨와 재회한 이후, 나는 눈을 뜰 때마다 버릇처럼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

        ​

        ​

        “오늘도… 나갔네.”

        ​

        ​

        ​

        실비아씨는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

        내가 잠들어 있는 새벽쯤에 먼저 일어나 산책이라도 나가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녀의 오두막에서 살 때는 분명 그녀에게 그런 습관은 없었다.

        ​

        피부에 와 닿는 싸늘함으로, 나는 그녀가 이미 밤부터 내 옆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아니, 사실 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었다.

        ​

        나 역시 그녀처럼 점점 시간이나 날짜를 세는 일이 어려워 지고 있어 확실하진 않으나, 이 텅 빈 오두막에서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렸던 시간이 아마 한 달은 될 것이다.

        ​

        그 한 달간의 고독 덕분에 내 피부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온기를 예민하게 알아차리곤 했고, 그 예민한 감각은 내게 그녀의 부재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

        내가 잠들고 나면 실비아씨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

        아무래도 그녀는 잠을 전혀 자지 않는 것 같았다.

        ​

        온통 부족한 것투성이인 이 오두막에서 몸을 쓰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몰려드는 잠기운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써봐도 결국 눈이 스르르 잠겨버리곤 했다.

        ​

        천천히 감겨가는 내 시야에 비치는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실비아씨의 미소 띤 얼굴이었다.

        ​

        그러나, 반대로 내가 그녀의 잠드는 모습을 본 적은 지난 며칠간 한 번도 없었다.

        ​

        물론 단순히 나보다 늦게 자서 나보다 먼저 깨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차갑게 식어있는 오두막의 공허한 빈자리는 그녀가 밤중에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내게 강력하게 주장하곤 했다.

        ​

        ​

        ​

        “…하.”

        ​

        ​

        ​

        나는 누운 채로 머리를 헝클이며 긁적거렸다.

        ​

        이 공허한 아침이 너무나 싫었다.

        ​

        내게 불길한 상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

        ​

        ​

        “미친 건가…”

        ​

        ​

        ​

        아침에 눈을 뜨고 그녀가 없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나는 혹시 내가 미쳐버린 건 아닐까 고민하곤 했다.

        ​

        사실 실비아씨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고, 이건 호숫가의 오두막에서 얼어 죽어가는 내가 보는 비참한 환각에 불과한 건 아닐까.

        ​

        그런 고민 말이다.

        ​

        하,

        ​

        아니지,

        ​

        어쩌면, 나는 실비아씨와 헤어지던 그날 빗속에서 죽어가며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

        내가 정령 술사라니,

        ​

        어쩌면 그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아무런 힘이 없던 나약한 내가 만들어낸 비참한 상상력에 불과한 건 아닐까.

        ​

        온몸으로 느껴지는 추위는 지금 숲속에서 죽어가는 내 몸 위로차 가운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아니지, 아니야.

        ​

        빗줄기 하면 오히려 그보다 더 전으로 돌아가야지.

        ​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그 비 오던 날 밤에 마차 사고를 당한 내가 온몸이 부러진 채 비참하게 쓰러져 보는 긴 주마등 같은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죽어가는, 혹은 이미 죽은 라일라 옆에서 미약한 숨을 몰아쉬는 내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라보는 세상일지도 모르지.

        ​

        사실 가장 가능성 있는 가설이기도 했다.

        ​

        용사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누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숨겨진 힘과 운명도 찾는다.

        ​

        어린아이의 꿈처럼 허무맹랑한 이 이야기는 얼핏 살펴보면 다 내가 원하던 것들이었다.

        ​

        나 역시 남자이기에 멋진 여자와 사랑도 해보고 싶었고 섹스도 해보고 싶었다.

        ​

        자랑스러운 누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었고, 속으로는 그런 누나를 부러워하며 질투했기에 그녀만큼의 능력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다.

        ​

        하, 딱딱 들어맞네.

        ​

        동화 속에 나오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나 역시 죽어가며 이 모든 환상을 보고 있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점점 확신이 들어찼다.

        ​

        ​

        ​

        “…실비아 씨… 빨리 와줘요.”

        ​

        ​

        ​

        나는 그녀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며 중얼거렸다.

        ​

        실비아씨와 보낸 나날들이 나의 비참한 상상력이 빚어낸 허망한 상상이 아니기를, 그녀가 나를 안아주는 온기로 증명하고 싶었다.

        ​

        그렇기 때문에 재회한 이후로는 그녀를 ‘실비아 누나’ 라고 부르며 어울리지도 않는 아양까지 떨어댄 것이다.

        ​

        이제서야 실비아씨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

        어째서 그녀가 내 가족이 되겠다며 이상한 행동을 했었는지,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았다.

        ​

        혼자 있을 땐 무감각하다 오히려 곁에 누군가가 있어 주는 순간, 그제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이 무시무시한 크기의 공허함.

        ​

        그녀는 내 존재에, 내 온기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

        지금의 내가 그녀의 존재에 목말라 있는 것처럼.

        ​

        ​

        ​

        “…그 천둥 번개.”

        ​

        ​

        ​

        옛날 그녀가 내 앞에서 되지도 않는 여동생 흉내를 냈을 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

        그땐 실비아씨의 그런 이상 행동이 무척 기괴하게 느껴졌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참 야속한 생각이었다.

        ​

        어제 보았는데, 심지어 어제 하루종일 그녀와 몸을 겹쳤는데.

        ​

        너무나도 실비아씨가 보고 싶었다.

        ​

        보통 그녀는 이쯤 되면 나타나곤 했는데, 오늘은 아직도 그녀가 나타나질 않았다.

        ​

        그 순간, 다시 한번 무릎에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어,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

        ​

        ​

        “…?”

        ​

        ​

        ​

        아직 제대로 된 처리가 덜 끝난 가죽인지라, 혹시 사슴의 털에 살고 있던 이라도 옮은 걸까 싶었던 나는 천천히 이불 대신 덮고 있던 사슴 가죽을 들추었다.

        ​

        ​

        ​

        “피아?”

        ​

        ​

        ​

        내 자그마한 수호 정령이 이불 아래에서 꼼지락대며 내 무릎을 핧고 있었다.

        ​

        ​

        ​

        ​

        ​

        ​

        ​

        ​

        ​

        ​

        *

        그저께였나.

        ​

        실비아씨와의 뜨거운 밤을 보내던 도중 나도 모르는 새 무릎이 까졌었다.

        ​

        실비아씨도 눈치 못 챘을 정도로 사소한 상처였고, 나 역시 이 정도 상처를 치료해달라 징징대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두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피아가 내 무릎의 상처를 핧고 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아니, 그보다도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나타난 피아가 당황스럽기도 했다.

        ​

        피아는 평소처럼 불덩이를 몸에 두른 모습이 아닌 푸른빛이 도는 은색 빛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

        그러고 보니, 이 정령은 불꽃의 정령이 아니라, 그저 정령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르던 나의 불꽃을 타고 나타나던 것뿐이라고 녹색의 여인이 설명해주었던 게 떠올랐다.

        ​

        나는 피딱지가 진 내 무릎을 연신 할짝대는 자그마한 아기 여우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마음이 편해지는 치명적인 귀여움을 담고 있었다.

        ​

        나는 웃으며 피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

        피아는 내 손길에 잠깐 움찔거리더니 이내 곧 제 머리를 내 손바닥에 꾹꾹 밀어 올리며 더 쓰다듬어 달라는 듯 보채기 시작했다.

        ​

        그 모습에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공허함과 우울감이 조금 수그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

        나는 실비아씨가 없던 그 시간 동안 피아가 내 곁에 있어 주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음을 새삼 떠올리며 말했다. 

        ​

        ​

        ​

        “…고마워.”

        ​

        ​

        ​

        내 말을 알아 듣는 건지 모르는 건지, 피아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다시 여우 특유의 실눈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

        기분 좋은 듯 머리 위의 양쪽 귀가 살짝 까닥거린다.

        ​

        나는 피아의 몸을 살짝 들어 올렸다.

        ​

        실비아씨가 없는 동안 따듯한 피아의 몸을 끌어안으며 잠을 청했던 게 하루 이틀이 아녔다 보니, 그 북슬북슬한 꼬리털의 감촉도 그립기도 했기에, 오랜만에 꼭 안아주려는 생각이었다.

        ​

        ​

        ​

        “피아, 조금 커졌네?”

        ​

        ​

        ​

        피아의 앞다리 아래로 양손을 넣어 들어 올리자 이전보다 묵직한 무게감과 훨씬 크게 잡히는 둘레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

        나는 녀석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피아는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나를 빤히 바라보며 코끝을 킁킁거렸다.

        ​

        ​

        ​

        “그새 자라기라도 했나… 내가 딱히 밥 같은 걸 챙겨준 기억은 없는데, 아니… 정령이 뭘 먹긴 하던가?”

        ​

        ​

        ​

        갑작스러운 수호 정령의 변화에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왜 빨리 안아주지 않느냐는 듯 네 다리를 버둥거리는 피아를 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피아를 품에 폭 안았다.

        ​

        ​

        ​

        “낑”

        ​

        ​

        ​

        얇고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피아는 내 품 안에 폭 안겨들었다.

        ​

        오히려 크기가 커지니 안는 기분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했다.

        ​

        부들부들한 몸체와 북슬북슬한 털,

        ​

        그리고 깨끗한 매끈매끈한 피부의 감촉이 보드라워 몇분이고 몇시간이고 계속 안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잠깐”

        ​

        ​

        ​

        피부?

        ​

        나는 깜짝 놀라 피아를 떼어내 바라보았다.

        ​

        ​

        ​

        “왜?”

        ​

        ​

        ​

        피아는 두 눈을 똥그랗게 뜨며 왜 그러냐는 듯, 내게 물어보았다.

        ​

        물어보았다…?

        ​

        나는 순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굳어버렸다.

        ​

        ​

        ​

        “빨리, 안아줘.”

        ​

        ​

        ​

        피아는 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되어있었다.

        ​

        ​

        ​

        “피아?”

        ​

        ​

        ​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폭 안겨들었다.

        ​

        나는 당황스러운 나머지 뻣뻣한 동작으로 아이를 토닥이며 안았다.

        ​

        푸른빛의 은색이 도는 머리카락을 보면, 이 녀석이 내 수호 정령 피아임은 확실해 보였다.

        ​

        아니, 대체 왜 사람의 모습이 된 거지?

        ​

        ​

        ​

        “쓰다듬어줘.”

        ​

        “아, 응…”

        ​

        ​

        ​

        녀석의 요구대로 머리를 쓰다듬자, 머리카락에 딱 붙어 뒤로 넘겨진 커다란 두 쌍의 귀가 만져졌다.

        ​

        내 손이 닿자, 여우의 것을 닮은 그 귀 두짝이 쫑긋 일어섰다.

        ​

        나는 천천히 피아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사람의 귀가 위치해야하는 부분을 만져보았으나, 그곳엔 북슬거리는 머리카락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

        ​

        “…너 정말… 피아 맞아?”

        ​

        “?”

        ​

        ​

        ​

        피아는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

        아니면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거나.

        ​

        멍하니 피아의 머리를 토닥이며 상황 파악이 덜 끝난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던 그 순간.

        ​

        갑자기 오두막의 문이 열렸다.

        ​

        ​

        ​

        “애쉬, 일어났…”

        ​

        “아, 실비아씨.”

        ​

        “… 어?”

        ​

        ​

        ​

        아니, 지옥문이 열렸다.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ㅋㅋ
    다음화 보기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나를 살려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Score 4.2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aving lost all my family, I fled. As I was running away, she saved me when I was on the brink of death due to an accident. The moment our eyes met, I knew I couldn’t leave h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