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2

    ——-

    꾀죄죄한 복장, 온몸을 감싼 붕대, 지독한 악취…….

    게다가 인상은 더러운데다 묘하게 눈이 풀려있는 것이, 어딘가 정신도 이상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처음엔 예르나도 인상을 찌푸리며 흘겨보았다.

    ‘애들 놀이터에 무슨 노숙자가 있어.’

    그 말이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은 것은 단지 루크가 그 말을 들을까봐서일 뿐이다.

    예르나는 금세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루크에게 묻는다.

    “루크, 만나기로 한 친구는 아직이니?”

    루크는 여전히 피곤한지 눈가를 비비고 기지개를 켠 뒤, 놀이터를 느긋하게 둘러보고는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기 있군 그래.”

    조그만 손으로 루크가 가리킨 사람은…….

    방금까지 자신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남자다.

    “저, 저 사람이었어……?”

    예르나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은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큭, 역시 함정이었나. 숲지기를 데려올 줄이야…….”

    안 그래도 컨디션은 엉망이다.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것만해도 이미 한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숲지기라니?

    숲지기를 보호자로 삼은것은 단순한 위장이 아니었던건가?

    ‘서클러’ 암살자와 숲지기가 정말로 같이 사는 것이었다고?

    ……당했군.

    “설마,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거냐.”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루크에게 씹어뱉듯이 말했다.

    겨우 10살짜리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분위기의 어둡고 음침한 목소리와 분위기였지만, 루크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기며 대답했다.

    “그 성질머리는 여전하군……. 걱정말게, 예르나는 우리의 편이니까.”

    “내, 내가?”

    어불성설이다.

    이런 위험해보이는 남자랑 얽히는 거에 동의한 적은 없는데.

    ‘그치만…….’

    대충 분위기를 보니까, 정말 아는 사이인 것 같기는 해.

    “큭, 아무래도 상관 없어. 어차피 내다버린 목숨이니까. 쿨럭……!”

    돌연 남자가 기침을 토해내자, 기침에 섞여 튀어나온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뭐, 뭐야?”

    단지 기침뿐인데 출혈량이 상당했다.

    이정도라면 이미 내부출혈까지 진행된게 아닐까 싶을 정도.

    예르나는 1초 단위로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일단은 그것도 다 살아있어야 물어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녀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들고선 구급차를 부르려했다.

    “바로 병원에…….”

    “안돼!”

    그러나 남자가 가까스로 일어나서는 피를 토하며 외쳤다.

    그 절박한 외침에 예르나는 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병원은……. 안돼, 쿨럭!”

    “그럼 어쩌자는 건데요? 당신, 지금 죽어가고 있잖아요!”

    “……네가, 말했지. 날……. 고칠 수 있다고.”

    남자의 눈동자가 향한곳은 루크였다.

    이 상황조차 달관한듯, 여전히도 나른한 표정의 여자아이.

    “……뭐라고? 루, 정말이야?”

    루크가 대체 무슨 재주가 있어서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겠는가?

    “……일단 비켜보게나.”

    ———-

    남자의 증상은 전형적인 서클폭주였다.

    증상이 전형적이라고 해서, 그 수준이 일반적인 폭주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본 남자의 서클은 정말이지, 엉망이었다.

    단지 엉망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실례에 가깝다.

    서클(원)이라고 부르기도 뭐했다.

    그것은 이미 마구잡이로 엉킨 그물과도 같았으니까.

    이미 한계에 달한 서클에 최근 엄청난 무리를 가한게 분명했다.

    대체 어째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뒷골목에선 이토록 살벌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아직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을 차근차근 풀어내다간 남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루크는 결단을 내렸다.

    풀 수 없는 매듭은 단호히 잘라내버리고 새로운 매듭을 짓는것이 낫겠다고.

    루크는 섬세하게 남자의 서클을 파괴했다.

    그리하니 서클의 무분별한 박동 말고도 온전하게 느껴지는 마나의 감각이 있었다.

    ‘이건…….’

    비록 자신의 작품보다야 품질이 현격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심장은 틀림없이 ‘드래곤 하트’였다.

    과연, 그동안 이 남자에게 알 수 없는 연민이 들었던 이유는 이 탓이었나.

    그렇다면 더욱 쉽다.

    남자의 마나감응력으로 인한 필요마나 총량은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계산에 넣고는 마력의 형태를 잡았다.

    드래곤하트라면 적어도 이정도론 ‘용량 초과’가 일어날 리가 없으니까.

    루크는 살짝 웃고는 남자의 서클을 다시 매듭지었다.

    후유증은……. 당장 생각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 어떤 후유증도 죽음보다는 훨씬 수위가 낮으니 말이다.

    그리고 정말 고통스럽고 살고싶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자신에게 연락을 해오지도 않았을 터.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살려줄 뿐이다.

    그렇게 루크는 마침내 남자의 서클을 부수고 재구축시켰다.

    “후우…….”

    루크는 드디어 남자의 심장에서 손을 떼었다.

    “이걸로 응급처치는 끝났군.”

    루크는 피로감이 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피곤했던 루크는 이번의 마력운용으로 완전히 지쳐버린 것이다.

    “루……. 방금 그건, 대체?”

    예르나는 방금 루크가 해보인 무언가에 적잖히 충격을 받았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이것과 비슷한 증상을 수도없이 많이 겪어봤다는 듯이, 한치의 망설임 없이 행해진 응급조치.

    그것이 그냥 흉내뿐인 소꿉놀이는 아니었는지 실제로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남자의 표정은 어느새 고통이 많이 가신 듯 평온한 표정으로 변해있었으니까.

    일단 고비를 넘겼다 생각하니 예르나는 또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루크는 대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이런 ‘응급조치’를 알게 된 걸까?’

    숲지기를 20년 이상 해오면서 온갖 마법적 현상에 대해 일정수준 이상의 지식을 가진 베테랑인 예르나도 ‘서클폭주’에 관련한 의학적 지식은 전무했다.

    애초에, 서클 폭주에 관해선 응급조치랄게 거의 없다.

    감정을 억제하는 약을 털어넣고 늦지 않았기를 기도한다던가, 스스로가 서클폭주를 버텨낼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로 운이 좋게도, 4클래스 이상이 허용된 마법사가 근처에 있어서 마나 그 자체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마법을 때려박는 걸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마법사는 병원이나 발전소등, 고급 마법허용근무지가 아니라면 쉬이 찾아 볼 수 없다.

    애초에, 그런 마법사들이 해당 마법을 쓸 수 있는 지팡이를 상시 착용하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루크는 그것을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일단 심장의 서클을 새로 안정화시켰으니 한동안은 괜찮을 거다.”

    루크의 설명은 일견 간단해보였으나, 그것이 4클래스 이상의 마법을 사용해 마나 그 자체를 다뤘다는 말과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라는 것을 예르나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완전히 말이 안되는 말도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루크는 심장에 서클이 존재하는데다, 의지만으로 마나를 다뤄본 경험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그다지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번 일로 오히려 명확해졌다.

    “루……. 너, 서클마법도 쓴 적 있는거지?”

    “…….”

    예르나의 질문에 루크는 그저 남자의 곁에 무릎을 꿇은채 숨을 몰아쉴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또한 긍정의 한 종류가 될 수 있음을,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루크는 마법사인 주제에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예르나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다고 예르나에게 당시의 사고를 일일히 설명하기도 싫었고.

    혼나기 싫어서 거짓말을 했다니, 너무 아이같지 않은가?

    그땐 마음에 여유가 없었음을 인정한다. 당시엔 ‘겨우’ 1서클을 새겼을 뿐이었으니까.

    예르나도 루크에게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냐며 탓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어두운 표정을 짓고있는 루크를 탓하는 말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예르나는 그렇게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루크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루크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괜찮아? 많이 피곤해? 집으로 갈까?”

    한눈에 보아도, 루크는 쏟아지는 졸음을 겨우 참는 것 처럼 보였다.

    ……그래, 아무리 지금 궁금한게 많아도 오늘은 그만 몰아붙이는 게 좋겠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앞으로도 루크는 쭉 자신과 같이 살 테니까 말이다.

    루크는 멋쩍게 볼을 긁적이다가, 어쩐지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조금은.”

    ——-

    “정신이 좀 들어요?”

    “여기……는?”

    깨어난 남자는 가장 먼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르나는 그저 담담하게 사실을 전했다.

    “안심해요, 병원은 아니니까요.”

    “그 꼬마는……?”

    “당신의 서클을 고치고 피곤했는지 곧바로 잠들었어요.”

    “…….”

    남자는 고요히 맴도는 자신의 서클을 느끼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설마……. 정말로 고친건가?

    “저기요, 물어볼게 산더미같아요.”

    자신의 가슴께를 붙잡고 내려다보던 남자를 바라보던 예르나가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 이름은요?”

    남자는 사실 이름이 없었다.

    지어줄만한 사람도 없었고, 그럴만한 환경도 아니었다.

    의사소통따윈 그저 별명인 ‘서드’로 충분했으니까.

    “……서드.”

    “하, 좋아요, 서드. 대체 루크와는 어떤 관계죠?”

    남자는 예르나의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를 일이니, 직접적인 말은 숨기는 방향으로, 좋아. 그렇게 하자.

    남자가 신중하게 고른 말은 이것이다.

    “……같은 세계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군.”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유추한 예르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 설마, 정말로……? 저기, 미안해요.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예르나는 남자의 의도대로, 루크와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 예측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루크와 비슷한 인체실험의 ‘피해자’라고.

    ‘같은 세계’라는 말에 반응 한 것이다.

    남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단순히 떠보는 말이었지만 굉장히 잘 먹히는 것 같군.’

    아무래도 암살자 꼬마를 보호하는 것을 보면 그녀도 순수한 숲지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뭔가 사정이라도 있는걸까?

    하지만 자세히 물었다간 의심을 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심장이 직감적으로 그리 말해주고 있다, 이 것에 대해서 더는 묻지 말라고.

    그래서 그는 더이상 그 이야기에 대해선 신경을 꺼버리기로 했다.

    이미 알고있는 정보로부터 신경을 끄는 것은 익숙하니까.

    ‘뭐, 날 당장 적대하지 않는다면 충분해.’

    제 몸상태도 아닌데 숲지기와 대치하는건 그로서도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 루크숲의 숲지기라니……. 

    몸상태가 정상이더라도 그다지 엮이고 싶지는 않아.

    게다가 과거를 알 수 없는 20년차 숲지기라면 더더욱.

    남자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자신이 입고온 옷을 주워입었다.

    빨래를 했는지 조금 축축하지만……. 이정도는 그냥 입고다니다보면 마를것이다.

    마침 날씨도 더웠는데, 시원하고 좋겠군. 따위의 실없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킨 남자가 입을 연다.

    “이제 가봐야겠어.”

    “벌써 가시게요? 좀 더 쉬어야 할텐데…….”

    예르나의 목소리는 처음과는 거의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180도 달라져 있었다.

    남자의 입장에선 말 몇마디 나눈것으로 인식의 전환이 너무 갑작스러운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더 오래 있다간 여기도 위험해질테니까.”

    “뭘 경계하는거죠?”

    “난, 쫓기는 몸이야, 그래서 한곳에 오래 머물면 안돼.”

    “……그게 무슨 소리죠? 누구한테, 왜 쫓기는데?”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프로이튼.”

    예르나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아버림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