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2

       “후아아…….”

         

       일을 끝낸 파스텔은 거대 병아리 위에 늘어졌다. 분홍 머리카락이 병아리 털을 덮었다.

         

       교단 토벌의 뒤처리를 대략 완료.

         

       교단과의 전투로 생긴 사상자와 포로를 관리한 뒤 멜리사가 정리해 놓은 내통자 기사단원을 확인하고 사후 결재했다.

         

       교단이 성지에 무슨 짓을 한 건지 조사하기 위해 아카데미의 연구진도 불러오기로 했다.

         

       세부적으론 더 디테일하고 시일도 걸리겠지만 당장은 실무진이 처리할 부분이었다.

         

       애초에 바보바보 파스텔은 아무것도 몰라.

         

       “권력자 파스텔, 파릇파릇 파스텔.”

         

       사실 지금은 안 파릇.

         

       권력은 좋지만 꼬인 가정사와 별개로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 별로야아.

         

       전자동 업무처리 시스템 없나. 있더라도 자리에 앉은 책임은 또 별개인가.

         

       “뿌뿌.”

         

       손을 움직여 병아리 털 냄새를 맡았다.

         

       “닭 냄새.”

       ―삐약?!

         

       아기새가 몸을 떨었다. 치킨과 동급이라는 사실이 충격인 모양이었다.

         

       실수로 심한 말 한 듯.

         

       “미안, 아기새 친구. 피곤해서 진심을 말해버렸어. 넌 항상 닭 냄새가 났는데.”

       ―삐약?!

         

       아기새의 부리가 충격으로 벌어졌다.

         

       “헛! 진짜 미안!”

         

       찔린 파스텔은 주섬주섬 내려왔다.

         

       “그보다 그보다 부모님은 찾았어? 전투가 격해서 피아 구분이 됐을지 모르겠네. 너희가 교단을 배반한 걸 부모님은 몰랐고.”

       ―삐약.

         

       날개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부유섬 중 한 곳에서 성체 새가 아기새 두 마리를 모아놓고 뭔가 혼내는 중이었다. 어느 아기새가 슬쩍 도망치려고 몸을 돌렸다가 부리에 쪼였다.

         

       “우왕. 너희 자기 앞가림은 잘하는구나? 다행이야.”

       ―삐약~!

         

       아기새가 으스댔다.

         

       “납치만 두 번째지만.”

       ―삐약.

         

       아기새를 토닥였다.

         

       “자자! 어서 가! 이럴 때 혼자만 빠지면 안 되지! 부모는 소중한 거라구!”

       ―삐약!

         

       아기새가 파닥파닥 날아갔다. 어미새가 자식이 날아오는 걸 지켜보다가 느린 속도에 답답한지 먼저 날아와 물어 챘다. 목덜미 물린 아기새가 버둥거렸다.

         

       ―삐야아악!

         

       뒤늦게 생각해 보니 다른 아기새들처럼 본인도 혼날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듯한 발버둥이었다.

         

       “사고 치지 말고~!”

         

       파스텔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혼나는 아기새가 세 마리로 늘어난 광경을 웃으며 지켜보다가 힘없이 손을 내렸다.

         

       으에.

         

       “맛있는 밥에 따듯한 잠자리가 필요한 시점.”

         

       친구도 좋지만 오늘은 정신이 흐리멍덩해서 말실수 안 할 자신이 없어.

         

       근데 그렇다고 혼자 있긴 또 싫은데…….

         

       『먼저 목욕부터 즐기는 게 좋을 거다.』

         

       악마가 성지의 하얀 건물에서 걸어 나왔다. 정장 소매를 안 젖게 걷어 올린 게 목욕물이라도 준비한 듯한 모습이었다.

         

       “앗! 악마님!”

         

       파스텔은 표정이 밝아졌다.

         

       『본래 루틴이라면 전투 뒤 목욕을 바로 했을 텐데 시간 남을 때 세수와 샤워만 잠깐씩 했으니 꽤 피곤하겠지.』

         

       일부러인지 아빠 언급은 없었다.

         

       “그렇네요! 어쩐지 탈력감이 안 사라지더라구요!”

         

       악마는 잠시 살펴봤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넓은 욕탕에 당도했다. 광원 없는 실내는 뚫린 천장으로 인공 달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올려 보자 동굴 천장의 광원들이 별처럼 빛났다.

         

       “우와아!”

         

       완전 목욕 즐길 분위기!

         

       물에 손을 대자 살짝 후끈한 온도가 느껴졌다. 물결을 따라 잎사귀가 흔들렸다. 물을 뜨듯 건져 향기를 맡자 청량한 숲내음이 났다.

         

       악마님이 뿌려주신 건가 생각하니 뚫린 천장에서 잎사귀 하나가 내려왔다. 천장 구멍 주변으로 풍성한 가지와 잎사귀들이 일부 펼쳐졌다.

         

       허억, 천연 향료가 알아서 떨어지는 목욕탕?

         

       슈퍼 울트라 명당!

         

       “악마님! 악마님! 여기 슈퍼 울트라 명당!”

         

       하늘섬 부동산보다 비쌀 듯!

         

       격한 손놀림이 물장난을 쳤다.

         

       “이러니까 숲 향기가 두 배로!”

       『그래. 수건은 이쪽에 있다. 갈아입을 옷은 여기에. 마법진이 신전 사양이라 낯설 수는 있겠지만 크게 다르진 않으니 직관대로 쓰면 될 거다.』

         

       붉은 눈동자가 욕탕을 둘러봤다.

         

       『그리고, 더 없군. 천천히 즐기다 배고프면 나와라. 준비해 놓을 테니.』

         

       대강 설명해 준 악마가 몸을 돌렸다. 물장난치느라 안 듣고 있던 파스텔은 움찔했다.

         

       “앗, 잠시만요!”

         

       작은 손이 잡을 듯 뻗어졌다.

         

       악마가 의아해하며 돌아봤다.

         

       분홍 눈동자가 살짝 주눅들었다.

         

       “그러니까아.”

         

       망설이는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은 혼자 두지 마세요.”

         

       물기 젖은 손가락이 꼼지락댔다. 물방울이 손을 타고 흐르다 떨어졌다.

         

       분홍톤 소녀는 그걸 내려보다가 밝은 표정으로 악마를 바라봤다.

         

       “물론! 식사 준비가 중요하지만요! 오래 걸리는 요리라면 별수 없네요! 맛있겠다!”

         

       악마가 작게 한숨 쉬었다.

         

       그러더니 몸을 돌렸다.

         

       아.

         

       손에 힘이 빠졌다.

         

       『의자를 가져오마.』

       “앗!”

         

       소녀는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네!”

         

         

         

       #

         

         

         

       옷을 다 벗은 파스텔은 묘한 표정으로 입욕제를 들었다. 유려한 유리병에 피부 관리용 고급품이 찰랑였다. 서민은 쓰지도 못할 외형이었다.

         

       “어디서 난 거예요?”

         

       성지에 이런 게 다 있어.

         

       『거기 있는 건 기사단의 짐에서 가져왔다.』

         

       등진 채 의자에 앉은 악마가 꼰 다리를 까닥였다.

         

       『종류별로 많더군.』

       “놀러 온 건가?”

         

       크래프트 각하는 조건반사적으로 말해버렸다.

         

       기사단의 본래 목적은 유적 공략일 텐데 짐가방은 귀족분들의 나들이로 구성?

         

       으이.

         

       파스텔은 기사단 구조조정과 흡수합병을 심각하게 고려하다가 흠칫 떨었다.

         

       “헛!”

         

       지금은 릴렉스! 릴렉스!

         

       일 얘기는 안 돼……!

         

       파스텔은 다른 의미로 심각한 표정이 됐다.

         

       “기사단의 성지 반입물이라니 매우 위험해 보이네요! 정의로운 학생회가 확인하겠어요!”

         

       오예.

         

       입욕제의 뚜껑을 뽕 땄다. 돈 많은 기사단원은 취향이 고상한지 천박하지 않은 은은한 꽃향기였다. 욕탕의 천연 숲내음과 잘 어울릴 듯하다.

         

       “속내를 숨기듯이 향기는 좋으니 위험한진 직접 사용해 봐야 알 수 있겠군요!”

         

       룰루룰루~!

         

       욕탕에 입욕제를 기울였다. 투명 액체가 콜콜콜 쏟아졌다.

         

       『이 향기는. 목욕을 마치고 가볍게 바르면 좋을 거다. 피부 보습용으로 만들어진 로션…….』

         

       악마가 물소리에 말을 멈췄다.

         

       『뭐한 거지……?』

         

       오잉.

         

       파스텔은 다 부어진 입욕제(아님)를 내려봤다. 잘 섞이지 않은 투명 로션이 둥둥 떠다녔다.

         

       눈을 굴리다가 로션을 삿대질했다.

         

       “얘가 목욕물과 친구 하고 싶대요!”

         

       진짜로 그랬음!

         

       『무슨 짓을 한 거냐.』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요! 실수한 건 절대 아니고 부탁을 들은 제 똑똑한 머리가 삐슝삐슝! 아! 얘네는 사이좋게 지낼 궁합이 있어! 인기인 파스텔이 도와줘야지!”

         

       로션을 가리켰다.

         

       “보세요! 벌써 절친!”

         

       기름 성분이 물 위에 동동 떠다녔다.

         

       파스텔은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기름을 보다가 악마의 뒷모습을 힐끔거렸다. 슬쩍 몸을 숙였다. 손놀림이 빠르게 물을 휘저었다.

         

       첨벙첨벙!

         

       모른 척 서둘러 일어났다. 다시 가리켰다.

         

       “보세요!”

         

       입욕제가 조화롭게 물과 섞여 있었다.

         

       허억.

         

       “완전 절친 상태!”

         

       이것이 내 머리가 확신한 궁합?

         

       완전 똑똑.

         

       『설마 로션을 부은 건가? 얼마나 부은 거지?』

       “친구들! 내가 간다~!”

         

       파스텔은 텅 빈 유리병을 대충 놓고 물에 들어갔다. 풍덩. 후끈한 열기가 단번에 몸속까지 뜨겁게 했다. 뜨거운 날숨이 내뱉어졌다.

         

       “우와! 우와!”

         

       온도 조절 완벽.

         

       전 세계에 파스텔 취향에 맞게 목욕물을 준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악마님뿐이야! 파스텔 포함!

         

       몸을 뒤집다가 욕조 테두리를 잡고 물장구쳤다. 양다리가 표면을 치며 물거품을 일으켰다.

         

       첨벙첨벙!

         

       “악마님! 악마님! 악마님은 안 씻으세요?!”

         

       악마가 자세를 바꿔 앉았다.

         

       『검으로 돌아가면 고정된 상태로 돌아가서 필수는 아니다. 지금은 성지라 못 해도.』

         

       생각해 보니 감옥에 갇혀 있을 동안 못 씻으셨겠구나?

         

       헤에.

         

       “그럼 악마님에게서 나는 비누 향기는 봉인된 시점에 나던 향기인 거예요?”

       『흠?』

         

       악마가 옷깃의 냄새를 맡아봤다.

         

       『모르겠군. 뭔가 나나?』

       “좋은 향기니까 괜찮아요!”

         

       이런 분이니 자꾸 이부자리 정리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시는 거구나아.

         

       뿌뿌.

         

       욕조에 얌전히 앉았다.

         

       “악마님! 악마님!”

       『안 부르고 말해도 된다.』

         

       그렇게 말하며언.

         

       “악마님! 악마님!”

       『그래.』

         

       그런데 파스텔은 막상 불러놓고 보니 할 얘기가 없었다.

         

       그냥 부른 거임.

         

       멍하게 고개를 들었다. 동굴의 저 높은 천장에서 별자리가 빛났다.

         

       아하!

         

       몸을 돌려 악마를 바라봤다.

         

       “연애 이야기 해주세요!”

         

       악마가 멍해졌다.

         

       『왜 그렇게 되는 거지?』

         

       그것은! 그것은!

         

       “제가 사랑에 관심이 생길 나이라 그런 것!”

       『그걸 네 입으로 말하지 마라.』

         

       헤헤.

         

       “어쨌든요! 악마님 그 외모로 연애도 못 해보셨다거나 그런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정 없다면 짝사랑 얘기라도 좋아요!”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아버지 말로는 악마님이 엄마를 짝사랑했다가 실패했다던데?

         

       그렇고 그런 아버지에게 패배한 악마님.

         

       허억.

         

       살짝 아릿한 배덕감이……!

         

       악마님 힘내세요!

         

       이미 졌지만!

         

       악마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뭐가 듣고 싶고 싶은 건지 알겠군.』

       “전 엄마 얘기라고 안 말했어요!”

       『지금 말했다.』

         

       허억, 충격.

         

       악마가 앉은 자세를 바꿨다. 반대 다리로 바꾸더니 다시 다리를 꼬았다.

         

       『연애인가. 무슨 마음이 든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안 하는 게 좋다. 다시 생각해 봐라.』

         

       혹시 경험에서 우러러 나오는 조언?

         

       『반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야.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야 하니 최소한 네가 미성년자가 아닐 시점부터 차분히 고민하는 게 좋겠지.』

         

       악마가 턱을 문질렀다.

         

       『흠. 그렇군. 향후 몇 년간은 생각도 하지 마라. 내가 보아하니 어차피 네 주변엔 너와 걸맞은 상대가 있지도 않다.』

         

       갑작스러운 잔소리에 파스텔은 맹한 표정이 됐다.

         

       그러다 밝은 표정으로 변했다.

         

       “연애 이야기 해주세요!”

       『하아.』

         

       겸사겸사 말을 돌리던 악마가 얼굴을 짚었다.

         

         

         

         

         

       

       

    다음화 보기


           


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