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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마야는 어릴 때 고양이를 키웠었다.

       월리라는 이름의 카스티유 단모종으로 짙은 청색 바탕에 붉은색과 흰색이 교차로 나타나는 범 무늬를 지닌 녀석이었다.

         

       월리는 아빠를 제외하고 그녀에게서 희미한 미소라도 끌어낼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녀석은 키우기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애정을 가지고 키웠던 존재의 첫 죽음.

       그녀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그 슬픔을 극복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죽은 녀석을 그 자리에 그대로 버려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깥세상을 향한 문을 잠가 걸고 스스로 마음속에 논리의 성을 쌓아나갔다.

         

       생명과 세계에 대해.

       개체와 관계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그렇게 며칠을 혼자 고민한 끝에 그녀는 성의 가장 깊숙한 곳에 마음을 숨길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월리에 대한 사망보고서를 작성했다.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로 담백한 사실만 담아서 한 자 한 자 새겨나갔다.

         

       그 작업에는 슬픔도, 후회도, 아픔도 없었다.

       그녀는 안심했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움을 느꼈다.

         

       뭔가 불만스러운 듯 울어댔던 녀석의 목소리.

       갓 구운 쿠키에서 나는 것과 비슷했던 녀석의 털 흩날리는 냄새.

       툴툴거리는 녀석의 등과 배를 쓰다듬던 감각.

         

       그 모든 것이 기억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녀석의 생김새만 흐릿하게 잔상으로 남았다.

         

       그런데 오늘.

       그날 이후 처음으로.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기억 저편에서 들려왔다.

       다시는 가지지 못할 거라 여겼던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났다.

         

       그 대상은 바로 그녀를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였다.

       후드 달린 수도사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는 그녀를 돌아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데볼루트를 흡수하다니. 마야 양이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이군요. 저는 그저…….”

       “속일 생각은 하지 마세요. 다 봤으니까.”

         

       그녀의 단호한 말투에 원더스타인은 적당히 둘러대려던 계획을 접었다.

       그녀가 말을 꺼내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은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오해였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녀의 의혹을 해소해 줄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가 그의 비밀을 폭로한 순간 그는 속으로 바짝 긴장했다.

       그녀가 어디까지 알고 그런 소리를 내뱉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에 나왔던 저주 역병 환자들은 ‘원더스타인의 힘에 의한 희생자들’로 통했다.

       TTT 시점에서 이것은 원인불명의 병 같은 게 아니었다.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검은 마도사의 저주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제 신중해야 했다.

       단어 하나하나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했다.

       그가 무심코 흘린 단서가 그의 정체를 밝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궁금한 게 많겠군요.”

         

       원더스타인은 일단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지금의 그녀는 어떤 진실에 도달해서 그를 추궁하는 게 아니었다.

         

       “단장님은 지금 당장 은하수를 주사 받아야 해요. 그런 걸 계속 몸에 담고 있을 순 없어요.”

         

       그녀는 그저 그가 데볼루트를 흡수했다는 사실에 놀라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이걸 이용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데는 도달하지 못한 듯했다.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몸에 날뛰고 있는 역병 데볼루트들.

       은하수를 이용하면 확실히 몸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얻은 데볼루트인데 그걸 돈까지 써서 없애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나는 데볼루트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마도사다.’라고 변명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여기서 그녀에게 무언가 더 실마리를 줄 수는 없었다. 그녀의 명석한 머리라면 적은 정보로도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녀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 단서를 전달하는 것 또한 방지해야 했다.

         

       본편 전까지 원더스타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은 TT0 공략의 필수조건이었다.

       ‘검은 마도사’니 ‘저주 역병의 원흉’이니 같은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대회 진행은 물건너 가는 거였다.

         

       마야의 입을 막아야 한다.

       조금 비겁하긴 했지만, 효과는 확실한 방법이 그에겐 있었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야 양, 저에게 말했었지요? 제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제 부탁이라면 어떤 것이든 들어주겠다고.”

         

       그의 말을 들은 마야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웃는 남자의 입에 미소가 맺혔다.

         

       “그걸 지금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 일을 잊어주세요.”

         

       원더스타인은 마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중심적이고 냉정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입으로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성격이었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가 약속을 꺼내든 이상 마야는 더는 따지고 들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분한 표정을 지었다.

         

       “……치사해요.”

       “엘라 양이 말 안 해줬나요? 저 원래 치사한 인간입니다, 후후.”

         

       그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마주한 마야는 가끔 그를 쥐어박고 싶다는 엘라의 투정이 이해가 갔다.

         

       자신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요구해도 들어줄 각오를 하고 건넨 제안이었는데.

       그는 이런 데 그 기회를 써버렸다.

         

       그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흡수한 데볼루트가 주변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테니.”

         

       바보 같은 사람.

       멍청한 사람.

       누가 그딴 걸 걱정했을까 봐.

         

       그녀는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계속 상하게 했으면 했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주변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알고 있어요.”

         

       저주 역병 인자를 몸에 담고 다니는 사람을 보통 사람들이 곱게 볼 리 없었다.

       가뜩이나 괴물 단원들을 데리고 다닌다고 경원시 당하는 단장님이 돌림병 환자 취급까지 당하는 것은 그녀도 참기 힘든 일이었다.

         

       “영원히 입을 다물라고 안 하겠습니다. 2년만 참아주세요.”

         

       2년.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까지 남은 시간.

         

       그녀는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

         

       “알았어요. 대신 한 가지만 말씀해주세요. ……몇 명까지 흡수하실 생각이세요?”

       “……한 200명?”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미소짓는 그를 향해 마야는 욕을 내뱉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만큼이나요……?”

       “제가 피해를 안 보는 최소한의 선이라고 해두죠.”

         

       그녀는 냉정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쏘아봤다.

       그 말이 사실이냐고 되묻지 않은 것은 존경하는 스승에 대한 마지막 선이었다.

         

       “좋아요. 더는 묻지 않을게요. 대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셔야 해요. 약간이라도 위험해지면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단장님을 막을 거예요.”

         

       기억 저편에서 들려오던 월리의 울음소리가 멎었다.

       사라진 게 아니었다.

       어딘가 만족한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보더니 얌전하게 어둠속으로 돌아갔다.

         

       “물론이죠. 약속합니다.”

         

       원더스타인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어차피 그는 자신의 몸에 받아들인 데볼루트를 완전히 종속화할 때까지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몸이 좀 쑤시고 당분간 시스템의 힘을 사용할 수 없을 테지만 끝가지 견딜 생각이었다.

         

       마야는 야속한 눈빛으로 그를 잠시 바라보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이것으로 더는 단장님에게 진 빚은 없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마야 양.”

         

       마야는 그의 속 시원하다는 듯한 표정이 왠지 얄미웠다.

         

       그녀는 문 앞에서 그를 비켜주려다 말고 멈칫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궁금한 질문이 하나 남아 있었다.

         

       “부단장에게도 비밀로 할 건가요?”

         

       항상 자신이 모르는 단장님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우쭐대던 엘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마야였다.

         

       사실과 별개로 실제로 원더스타인이 그녀에게 상당히 의지하는 것 같아 지금까지 늘 마음이 불편했었다. 그녀의 존경하는 스승이 어린 계집한테 쩔쩔매는 것 같아 속이 답답했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실을 공유하고 있는 듯한 두 사람.

       이번에는 어떨까?

       자신에게는 맹세까지 사용해 약속을 받아냈던 단장님이 그녀에게는 그냥 비밀을 털어놓을까?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지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이건 마야 양과 저만의 비밀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마야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미처 그가 뭐라고 붙잡기도 전에 방을 나가버렸다.

       원더스타인은 난처한 듯 뺨을 긁적였다.

         

       이걸 어쩌나.

       유일하게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는 단원과 다시 거리가 벌어지다니.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그녀도 자기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서 약속을 내건 것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걸 이용해버렸다.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오늘의 일로 그녀도 자신이 더는 평범한 서커스 단장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약속을 핑계로 물린 재갈이 언제까지 효험을 발휘할까.

         

       방을 나가며 상태창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호감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올리는 건 힘들겠지.

         

       그는 조금 침울한 마음으로 방을 나갔다.

       회관의 입구에는 기사 이바넨코와 마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여전히 다른 사람들은 알아볼 수 없는 희미한 것이었다.

         

       “어서 가요. 도와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마$%야의 호#@%가 2 상승@#%다. 호감@# 30을 달성한 보#@으로…….]

         

         

       상태창 오류 때문에 메시지를 제대로 읽을 수 없었지만, 분명 마야의 호감도가 30을 돌파했다는 내용이었다.

         

       음…….

       어쩌면 자신은 아직 마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을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를 뒤따라가면서 마야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원더스타인은 오늘 본 것을 잊어달라고 했지만, 그녀의 두뇌는 그러지 못했다.

       아까 방에서 그녀가 봤던 것과 들었던 것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넘기던 그녀는 어느 대목에서 멈춰섰다.

         

       -단장님은 지금 당장 은하수를 주사 받아야 해요.

         

       이 대목에서 원더스타인은 갑자기 약속을 꺼내들어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몸에 받아들인 데볼루트로 괴로워하는 것은 봤다.

       그걸 가만히 몸에 두는 것보다 약을 써서 제거하는 게 낫지 않을까?

         

       -2년만 참아주세요.

         

       불안한 직감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몸에 데볼루트를 쌓아둘 수 있는 이유.

       그가 은하수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

       2년이라는 기한.

         

       그 모든 답이 하나로 이어졌다.

         

       어차피 그는 오래 살지 못할 테니까.

       은하수로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줄일 수 없으니까.

       그 안에 그는 서커스 그랑프리에 오른다는 꿈을 이루고 싶으니까.

         

       그 남은 기한이 바로…….

         

       마야는 앞서가는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고, 그의 미소에는 그늘 한 점 없어 보였다.

         

       저것이 죽으러 가는 사람의 얼굴일 리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도 안 되는 억측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는 약속했다.

       200명까지는 그가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는 은하수를 거부한 것일 것이다.

       굳이 부작용을 감수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럴 것이다.

       분명히.

         

       월리가 어둠 속에서 갸르릉 거리는 소리를 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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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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