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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날이 바뀌었다.

        리브라는 주딱과 자신을 이어주던 희미한 운명의 실이 방금 끊어진 것을 깨달았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잠시 후 머리를 두드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앞으로 평생 옆에 두고 싶은 온기를 내뿜는 손.

        그러나 다른 운명의 끈에 의해 칭칭 묶인 그것은 이윽고 인력에 의해 떨어지고 말았다.

       

        “죄송하지만 급한 일이 생겨 가봐야겠군요.”

        “어디로 가는데?”

        “글쎄요, 아마 걸음이 닿는 곳이겠죠. 아무튼 오늘은 이만 늦었으니 헤어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전야제의 아름다운 불꽃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위치노트를 보며 말하는 주딱.

        리브라는 곧장 주딱의 오른손을 당기는 실을 한 오라기 풀어 천칭에 올렸다.

       

        마녀 특유의 꿉꿉하고 음습한 욕정이 가득 담긴 체향이 코를 파고든다.

        정체를 감추고 숨어있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마법이 발현된 이상 마탑 최고의 점성술사로부터 정체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으스러진 노란 튤립의 뿌리를 뽑아 천칭이 기우뚱할 정도로 강하게 내려놓는다.

        그러자 늘어진 실을 따라 지금 있는 곳으로부터 3개 층 위의 술집 뒤 골목까지 가는 모든 길이 리브라의 푸른 동공에 비쳤다.

       

        ‘저기요, 당신들 뭔데 얠 끌고가는 거에요!?’

        ‘우린 교국의 사제와 병사들이다. 당신 친구가 마녀의 종복으로 의심되기 때문에 낙인을 찾으려는 것이다.’

        ‘프리나는 저주술사지 마족은 아니에요. 자꾸 이러시면 저희 공략대원들을 부르겠어요.’

        ‘낮은 위계도 아닌 듯한데 마녀로 의심되는 자를 비호하다니, 마탑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이유가 있군.’

       

        실낙원에 찾아왔던 교국의 병사들이 한 무리의 마법사들과 마찰을 빚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막 발아하려고 하는 마녀의 씨앗을 특정해 정화하려던 중이었다.

        특이한 점은 주딱이 그곳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함인지 실이 이어져 있는 38층까지 수많은 마녀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대륙에 남은 세력이 극소수로, 동료를 끔찍히 아끼는 이들 답지 않게 자신들의 막내를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가지 마, 주딱.”

       

        그래서 리브라는 그를 붙잡았다.

        동족상잔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륙에서 마족이 하나 줄어든다면 그것만으로 인류에게는 이득이었다.

        게다가 저들은 기껏해야 중층에서 활동하는 마법사.

        같은 학파도, 면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보다 한참 낮은 위계의 존재들에게 1초라도 시간을 쓰는 걸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가면 귀찮아질 뿐이야. 이건 내가 끊어줄 테니 여기 있어.”

        “으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파딱 하나가 곤경에 처한 모양이라서요.”

        “그렇다고 교국과 마찰을 빚으려고?”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파딱 같은 건 쓰다 버리는 부품일 뿐이라고 항상 말했잖아.”

        “그렇다고 해서 남이 망가뜨려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바구니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리브라에게 있어 가장 우선순위는 술에 취한 채 감정을 배설하는 저들보다 더욱 깊은 한을 안고 가라앉은 자들이었다.

        주딱의 말처럼 한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거대한 재앙에 휩쓸려 이렇다할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망가져버린 영혼들.

        그 재앙 중 하나를 구하겠다는 말은 그가 실낙원의 꽃들을 피워낸 것과는 반대되는 행보였다.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올 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건강했으면 좋겠네요.”

        “그거 알아 주딱? 사실 찰스는 이 시대의 인간이 아니야.”

        “예?”

       

        죽은 이들이 원념과 비한을 내려놓으면 비로소 천칭에 무게를 더할 수 있다.

        리브라는 시들어버린 꽃잎을 주워모으며 그에게 말했다.

       

        “결투 재판같은 야만적인 사법이 현 제국이 존재할 리 없잖아. 내가 거둔 이들은 모두 오래 전에 죽었어, 대부분은 어떤 기록도 남기지 못한 채 존재조차 잊혀졌지.”

        “…….”

       

        그가 살던 시대는 마법 대신 검술이, 학파 대신 유파가 득세하던 전란의 시기였다.

        그때도 제국은 지금처럼 존재했지만 대륙에는 황제가 아닌 다른 ‘주인’도 있었다.

        명계의 왕을 토벌하기 위해 천산(千山)에서 도립한 검주(劍主)와 휘하의 다섯 제자.

        찰스는 오성검(五星劍) 중 두 번째 실력자로 당시에는 소드마스터라 칭하던 경지의 인물이었다.

       

        “하필 와이프가 검주의 첫 번째 수제자였나 그랬을 거야. 아무튼, 내가 하고싶은 말은 이거야 주딱. 이 세상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각의 ‘시대’가 존재하고 당시에 활동하던 사람들의 강함은 지금과는 사뭇 달라.”

       

        검의 시대가 저물고, 십인명(十人名)과 함께 암주(暗主)가 득세하던 어둠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들조차 사라져 백 년이 흐른 뒤에는 교국의 위대한 지도자 ‘교주’가 태양의 적 토벌을 위해 ‘삭일전쟁’을 벌였다.

       

        싸우고, 패배하고, 잊혀지고…….

       

        기록은 없지만 영혼은 남아있다.

        그렇기에 오직 실낙원의 주인인 리브라만큼은 그들에 대해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낙원에 들어왔던 자들은 모험가들이야. ‘횃불의 시대’를 살며 성주의 명에 따라 마룡을 잡고자 했던 자들.”

        “…….”

        “그들은 유일하게 성공했어. 비록 지금은 서서히 잊혀지는 중이지만 낙원에서는 대부분 떠났거든.”

       

        다음 시대의 주인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반복될 것이다.

        재앙을 처치하지 못하면 역사에서 존재가 지워지며 죽어서도 안식을 찾지 못하는 영혼이 생긴다.

        그렇기에 리브라는 주딱이 마녀를 살려둬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애를 지키려고 하지 말아줘. 나는 주딱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되려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주인이요?”

        “다른 칠현자들은 죄다 거름더미 같아, 자격이 있는 건 오직 주딱뿐이야! 왜냐하면 주딱은 용을……!”

        “으음,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 왜……?”

        “전 새로운 시대를 열 만큼 마법을 잘 쓸 줄 모르거든요. 아마 앞으로 5년을 더하더라도 마찬가지겠죠.”

       

        충격적인 발언.

        그러나 뒤에 이어진 말은 그것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주딱은 허리춤에 매달린 검에게 뭐라고 속삭이더니, 화톳불의 연기가 사라지는 마탑의 천장을 가리켰다.

        혹시 들키지나 않을까 멀찍이 떨어져서 실눈을 뜨고 있는 마녀들의 눈이 있는 방향이었다.

       

        “또 마녀들을 혼내준다고 해서 영혼들이 안식을 찾진 않습니다. 다른 재앙들도 마찬가지에요.”

        “그, 그럴 리가 없어! 얘들은 분명히……!”

        “찰스나 다른 이들이 한 번이라도 말한 적 있던가요? 대륙을 악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검을 들었던 일이 후회스럽다고?”

        “…….”

        “물론 결과는 같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어요.”

       

        그의 손에는 어느새 창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찰스가 검보다 수십 배는 하등하고 덜떨어지는 무기라며 실낙원의 다른 꽃들에게 열변을 토하던 그 무기였다.

        창끝으로 땅에 죽죽 그림을 그린 주딱은 한 권의 책처럼 보이는 것을 완성했다.

        얼핏 보기에 위치노트와 닮았으면서도 모서리가 삐죽삐죽하고 그로데스크한 게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뭐야 이건?”

        “똑똑한 천문이에게는 숙제를 하나 내줄게요. 어째서 시대에는 주인이 필요할까요?”

        “그야 재앙을 토벌하려면 지도자의 힘이 강해야 하니까…….”

        “제국의 황제가 있는데도요?”

        “…….”

        “주인은 부하를 지키기 위해 있는 거에요. 제가 지금 파딱에게 가는 것처럼. 그들이 무엇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주인을 자처했는지 고민해 보세요.”

       

        알려주지도 않은 공식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낸 수습생에게 차분하게 더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라는 스승과 같은 말투.

        허나 은하수만큼 방대한 지식을 품고 있는 칠현자는 질문을 들은 순간 답을 도출해냈다.

       

        재앙에 맞서려는 이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무엇인가.

        명계의 왕이든 태양의 적이든 딱히 명성이 있어야만 토벌에 나설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힌트는 그들이 모두 지배자를 뜻하는 칭호를 내세웠다는 데 있었다.

        그것도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의 주인이 존재하는 곳에서.

       

        ‘황실이구나.’

       

        재앙을 토벌하기 전에 황실에게 동등한 힘을 가졌다고 선포하기 위함.

        그렇다면 황실은 지금껏 재앙을 토벌하려는 자들을 방해해 왔다는 뜻이 된다.

       

        주딱이 말한 바에 따르면 이것밖엔 될 수 없었지만 리브라는 일단 고개만 끄덕였다.

        이렇게 해야만 그를 또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응, 생각해보고 알려줄게.”

        “좋아요, 그럼 전 이만…….”

        “그러니까 다음에 들으러 오기야?”

        “크흠, 꼭 그래야 할까요? 세상엔 위치노트라는 좋은 발명품도 있고 관리자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굳이 저희가 따로 시간을 내서 번거롭게 만나지 않아도…….”

        “나 띄어쓰기 잘 못하거든. 오타도 많고 길게 쓰면 제대로 읽지도 못할 거야.”

        “으음…… 알겠습니다. 일단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하죠.”

       

        그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운명의 실이 다시 엮였다.

        그것으로 만족한 리브라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살살아, 좌표 다 땄지? 빨리 가자. 뭐? 방해가 심하다고? 너 자꾸 핑계 대면 경매장에 팔아버린다? 엄살부리지 말고 빨리 이동해.”

       

        주딱이 검과 대화하며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리브라는 하늘에 떠 있던 별을 붙잡아 그대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 예, 예 현자님! 이 밤중에 어쩐 일이십니까!

       

        잠시 후, 행정부의 수장이자 점성학파의 장문인 베이커의 목소리가 손톱만한 수정구 너머에서 들려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스토리 진행을 하려다 보니 파트가 다소 늘어지네요.
    이번 챕터는 다음 화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타는…… 내일 퇴근을 마치고 수정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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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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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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