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2

       

       

       “···내가 왜 그랬지?”

       

       

       무심코 도와준다는 하율의 호의를 거절해버렸다.

       

       내가 왜 그걸 거절했을까.

       

       분명 도와준다는 이야기는 나쁠 게 없었는데.

       

       조금 미안하지만 고맙다고 받아들이고는 손을 빌렸으면 빨리 끝났을 텐데.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하율의 호의는 거절해버렸는데.

       

       널브러진 옷의 양을 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아무래도 매일같이 땀을 흘리다 보니까 시우는 옷을 자주 갈아입는 편이었으니, 그것 때문이겠지.

       

       

       “으음, 이상하네···.”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하나둘씩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내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고민하면서.

       

       반사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기는 했는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으니까.

       

       옷가지를 주우며 고민하길 잠시.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왜 하율이 도와주지 못하도록 했는지.

       

       

       “···위험했네.”

       

       

       나는 반사적으로 시우를 위험에서 지킬 정도였던가.

       

       괜한 뿌듯함에 어깨가 으쓱 솟아올랐다.

       

       

       “하율이 아라크네의 일원이라고 해도, 꼭 아군이라는 보장은 없지. 좋은 판단이었어.”

       

       

       하율은 아군이다.

       

       전직 수사관이라는 협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위치.

       

       수많은 실전을 겪어본 베테랑.

       

       거기에 인간을 상대로 오래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무적이나 다름없는 능력까지.

       

       아라크네의 일원 중 가장 강한 사람인 건 틀림없다.

       

       그래. 아라크네 중에서 제일.

       

       나를 포함하고서라도 말이야.

       

       

       “만약 배신자 설정이 붙어버려서 시우의 옷에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면···. 휴, 다행이네.”

       

       [아니 그게 무슨 헛소리···. 흡!]

       

       “?”

       

       

       뭐지.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

       

       

       

       소녀는 황급히 입을 막고 숨을 죽였다.

       

       이미 소리는 차단해서 그녀에게 들리진 않겠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소녀가 지켜보던 관찰 대상은, 문득 들려온 소리에 한참 동안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시금 옷을 하나둘 줍기 시작했다.

       

       

       “후아···. 큰일 날 뻔했네···.”

       

       [이걸 안 들키네.]

       

       “뭐, 뭐라고?!”

       

       [들켰어야 저놈이 질질 짜는 모습을 보았을 텐데···. 정말 아쉽구나···.]

       

       “안 울거든?!”

       

       

       소녀는 그렇게 일갈했지만, 정말로 울지 않았을지는 소녀도 확신하지 못했다.

       

       소녀는 다짐했다.

       

       독자님과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시작할 때. 그때가 오면 다시 독자님께 말을 걸겠다고.

       

       하지만 짧디짧은 소녀의 인내심은 최근 한 달의 생활에 박살 나버렸다.

       

       분명 소녀의 인내심은 초월자 중에서는 뛰어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답답하게 기다릴 바에는 그냥 강제로 이어버리겠다는 놈들이 많은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지.

       

       솔직히 말하자면, 소녀는 슬슬 독자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런데 말을 하지 못하는 건 꽤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소녀가 자신의 독자님에게 말을 걸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 달간의 시간이 아까웠으니까.

       

       말을 걸어버린다면, 지금껏 쌓아둔 것이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버티기 힘들어서. 이대로라면 포기하고 먼저 말을 걸어버릴 것만 같아서.

       

       잠깐 그때의 기분이라도 느껴보기 위해 소리를 연결했는데, 독자님의 혼잣말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버렸다.

       

       하마터면 한 달 남짓의 기다림이 허무하게 무너질 뻔했다.

       

       

       “아아, 짜증 나! 거기서 그런 식의 반응이 나오는 게 말이 돼?!”

       

       [언제는 그런 게 좋다더니?]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야! 한 달이나 기다려줬으면, 응? 서로 물고 빨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분명 계획은 완벽했는데.

       

       독자님이 생각보다 나를 두려워하고, 그런데도 의존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직후.

       

       혼날까 봐 다물었던 입을 자의적으로 다물었다.

       

       주인공과 독자님의 진도가 갑자기 확 빠졌으니까.

       

       그래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만히 있으면 진도가 더 나갈 거라고 생각해서 한 달이나 버텼다.

       

       물론 한 달이라는 시간을 길다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금방 진도가 나가겠지 싶어서.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소녀는 확신했다.

       

       독자님의 육체는 자신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만약 이런 세상이 아니라, 평범한 현대 사회에 나갔다면 그 얼굴만으로도 순식간에 유명 인사가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몸이다.

       

       그렇게 만든 이유는···. 뭐, 딱히 큰 의미는 없었다.

       

       내 신체의 일부가 섞여 들어가야 하는데, 못생기면 기분 나쁘니까.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다는 말도 있잖아.

       

       

       “저런 몸인데, 저런 몸으로 저렇게 행동하는데···!”

       

       

       어째서 주인공은 반응하질 않는 거지.

       

       고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멀쩡할 텐데? 설정상 그럴 리가 없는데?

       

       

       “왜 안 덮쳐? 왜 안 덮치냐고!”

       

       [슬슬 꼴불견인데.]

       

       “조용히 해! 너희들이 내 마음을 알아?!”

       

       [알고 싶지도 않다, 네 마음 따위는.]

       

       

       한 달 동안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거하기 이전의, 친구로서 대하던 느낌과는 다르게 확실히 가까워지기는 했다.

       

       

       시우도 아르테의 유혹 아닌 유혹 탓에 자꾸 신경 쓰는 게 보였으니까.

       

       아르테의 시선에는 보이지 않게 어떻게든 시선 관리를 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진도가 너무 느리잖아.

       

       자존심에 상처가 생겼다.

       

       네가 만든 몸은 예쁘지 않아. 그런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래, 주인공까지도 그렇다 쳐! 독자님이 제일 못 됐어!”

       

       

       백 보 양보해서 주인공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쳐보자.

       

       가장 얄미운 건 독자님이다.

       

       

       “저 반응은 진짜로 너무하잖아!”

       

       

       솔직히 억울했다.

       

       내가 뭘 했다고?

       

       애초에 독자님이 나를 그렇게까지 경계하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내가 독자님에게 나쁜 짓을 한 적이 있던가?

       

       독자님에게 혼난 적은 있어도, 괴롭힌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빌런을 죽이고 다니던, 전 수사관이 갑자기 배신자가 된다는 설정이라니! 내가 그런 걸···?”

       

       

       어라.

       

       뭔가 재밌을 것 같은데.

       

       사람을 죽이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걸 깨닫고 다시금 정의의 편으로 돌아선 수사관.

       

       초인사회를 주무르는 협회와 비밀조직에게 홀로 대항한다···?

       

       해볼까?

       

       

       [너 또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핫. 아, 아무 생각 안 했어!”

       

       [이년 또 뭔가 저지르려고 했구만?]

       

       

       흠, 흠.

       

       조금 군침 도는 설정이지만 일단 뒤로 미뤄두고.

       

       독자님도 분명 시우에게 마음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저렇게 붙어 다니는데, 사랑이 싹트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그런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전혀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몇 년 동안 천천히 진도가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독자님의 정신상태가 조금 좋아지기는 했지만···.

       

       

       “흐히히히,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강제로 이벤트를 만들어 낼 수밖에.

       

       감정을 싹틔우는 데에는 역시 사건이 필요한 법이다.

       

       독자님은 여전히 옷을 줍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채로.

       

       

       

       ***

       

       

       

       “···후우. 슬슬 끝인가.”

       

       

       옷을 주워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났네.

       

       시계를 바라보니 슬슬 십 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또 문제가 생기기 전에 어서 돌아가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다급히 세탁기로 향하는 순간.

       

       턱, 하고.

       

       발바닥에 무언가가 걸리는 감각과 함께 몸이 앞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아, 앗?!”

       

       -콰당탕.

       

       

       양손에 쥐고 있던 바구니의 내용물이 쏟아지고, 지탱할 방법이 없는 몸은 내용물 위로 쓰러졌다.

       

       아, 젠장.

       

       다시 주워야 하잖아.

       

       기분이 가라앉았다. 오늘은 뭔가 잘 풀리지 않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 주변에는 발에 걸릴만한 물건이라고는 없었을 텐데.

       

       도대체 뭐가 발에 걸린 건지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착각인가?

       

       

       “하아, 다시 주워야···.”

       

       

       이걸 뭐라고 변명하지.

       

       흙먼지가 묻다 못해 하얀색 옷들에 얼룩이 묻은 걸 보고 죄책감이 들었다.

       

       저런 건 잘 안 지워지는데,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네.

       

       잔뜩 가라앉은 기분을 달래며 옷을 다시금 주워 담았다.

       

       그리고 주워 담은 옷들을 일단 세탁기에 넣고 난 후.

       

       그제야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어라?”

       

       

       이상함을 느끼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며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다.

       

       시우와 떨어진 지 벌써 15분이 지난 시간을.

       

       

       “으음···?”

       

       

       시우와 떨어졌을 때, 십 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호흡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었는데.

       

       갑작스럽게 시간이 절반 이상 늘어나다니.

       

       말이 되지 않는데.

       

       갑작스럽게 몸이 나아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제도 한번 손이 떨린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뭐가 달라진 걸까.

       

       시우와 관련된 것 중에, 내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오래 버틸 수 있는 이유가···.

       

       그때.

       

       문득, 손에 들린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넘어졌을 때 뭔가 따뜻했던 것 같은데.

       

       

       “···.”

       

       

       꿀꺽.

       

       이걸 해야 할까.

       

       정말 해도 되는 게 맞을까?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아니, 하지만 여태까지 계속 들러붙어 있었던 게 더 민폐일지도 모르는데.

       

       그에 비해서 이것쯤이야···.

       

       

       “아르테! 아르테, 어디 갔어?! 괜찮아?!”

       

       “히익?!”

       

       “거기 있었구나! 아르테, 몸은 괜찮아?!”

       

       “네, 네···. 괜찮아요.”

       

       “다행이다···. 일단 방으로 돌아가자.”

       

       “아, 아뇨. 우선 그 전에 이것부터···.”

       

       “아, 그거. 말하려고 했는데 깜빡했네. 내 옷이니까 나중에 해도 괜찮아.”

       

       “아뇨, 그게···.”

       

       “우선 방으로 들어가자.”

       

       

       저기, 잠깐···.

       

       내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음에도 시우는 나를 방으로 들여보내기 바빴다.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훔쳐버리고 말았다.

       

       시우의 옷 하나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님 화이팅! 이모티콘.

    시우네 옷도둑이라니, 정말 나쁜 아이네요.

    그나저나, 이번에 새로 뽑은 아르테 일러스트가 반응이 좋아서 기쁩니다.

    왜냐면 제 취향이 듬뿍 담겼거든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