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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땅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

        그리고 그 앞으로 서 있는 노예 상인들.

        ​

        나는 팔을 들어 구덩이를 가리켰다.

        ​

        “자, 들어가세요.”

        ​

        “…우리를 산체로 묻을 셈이오?”

        ​

        사실 생매장도 나쁘지는 않다.

        ​

        이런 놈들 살려 둬봐야 피해자들만 더 생기겠는가.

        ​

        하지만 그래도 내가 무당인데, 원혼들을 만드는 건 내키지가 않았다.

       

       

       “빨리 들어가요. 바쁘니까.”​

       

       몸을 움찔거리던 놈들이 일제히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

        “살려주시오!”

        ​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

        지랄이라는 단어는 이런 것에 쓰는 것이다.

        ​

        저놈들이 잡아간 사람이 얼만데 살려달라는 소리가 나오냔 말이다.

        ​

        이런 생각은 파라몬 영감님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

        “흠…거절이라….”

        ​

        스르릉.

        ​

        꺼내지 않았던 영감님의 검이 시퍼런 날을 드러냈다.

        ​

        “헙…!”

        ​

        “어디 거절한번 해 보겠는가?”

        ​

        일제히 침을 삼키는 노예 상인들.

        ​

        영감님에게 맞았던 놈들은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

        아직 못깨어난 놈들마저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몸을 떨었다.

        ​

        “다리가 없으면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네.”

        ​

        “드…들어가겠습니다!”

        ​

        “제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

        우르르 –

        ​

        하나둘 들어간 놈들이 어느새 구덩이를 가득 메웠다.

        ​

        숫자가 많아서 그런지 큰 구덩이에도 자리가 모자랄 지경.

        ​

        마침 일손이 필요하던 찰나에 잘된 일이었다.

        ​

        “이런데다가 정령을 쓰면 노움이 기분 나빠하겠지?”

        ​

        “네.”

        ​

        “어쩔 수 없네.”

        ​

        원래 지은 죄는 스스로 속죄를 해야 하는 법이다.

        ​

        남이 때린다고 죄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

        “못 들어간 사람들은 저거 다 묻어요.”

        ​

        눈치를 보던 놈들이 움직이며 구덩이를 흙으로 덮기 시작했다.

        ​

        “서…선착순인 줄 알았으면 안 들어왔…”

        ​

        “조용히 안 해요? 뭘 잘했다고 입을 열어.”

        ​

        머리까지 땅에 파묻어 버릴까 했지만, 이편이 더 나을 것이다.

        ​

        “인과응보라고 알아요? 원래 업을 쌓다 보면 다 돌아와요.”

        ​

        선업을 쌓은 사람들도 다 복이 찾아온다.

        ​

        꾸준히 쌓이다가 귀인을 만나거나, 혹은 그 행동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귀인이 되어 준다거나.

       

       그런식으로 복이 들어오는 것이다.

        ​

        선업이 돌아오는 방법은 셀 수도 없이 다양하다.

        ​

        악업도 마찬가지다.

        ​

        이번에는 나와 마주쳐서 악업이 터졌다는 게 맞을 듯했다.

        ​

        “꼼꼼히 묻어요.”

        ​

        어느덧 머리만 남기고 땅에 묻혀 버린 이놈들.

        ​

        나는 주변땅을 꾹꾹밟으며 땅을 다지기 시작했다.

        ​

        “남은 사람들은 서로 묶으세요.”

        ​

        “…예?”

        ​

        놈들의 수레를 터니 각종 납치도구가 쏟아져 나왔다.

        ​

        수갑과 족갑.

        ​

        밧줄과 이상한 약품들.

        ​

        규모가 큰놈들인지 안에 실린 귀금속들도 상당했다.

        ​

        “뭐 해요? 거꾸로 매달아요.”

        ​

        “….”

        ​

        마지막 한 명만이 남아 눈치를 보고 서 있었고, 그 주위로는 사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고 아주 여기저기 열려있는 게 볼만한 광경.

        ​

        스윽- 

        ​

        “그놈은 내가 묶겠네.”

        ​

        “감사해요.”

        ​

        파라몬 영감님이 친히 줄을 들고 다가섰다.

        ​

        “으음…”

        ​

        이제 심문이라는 걸 해 봐야 한다.

        ​

        정황을 보면 놈들이 다른 곳에서도 노예를 잡았을 것은 분명한 일.

        ​

        “참나…나라가 아주 개판이네.”

        ​

        네크로맨서들이 관련된 것을 확인한 이상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었다.

        ​

        다만 문제가 있다면.

        ​

        내가 심문이라는 걸 해 본적이 없다는 것.

        ​

        “일단 때려야 하나….”

        ​

        그것도 아니면.

        ​

        “불로 지져야 하는 건가?”

        ​

        “…헙!”

        ​

        다행히도 이런 잔혹한 방법은 쓸필요가 없었다.

        ​

        나에게는 필요한 정보를 술술 불어 줄 영혼들이 보이니까 말이다.

        ​

        “그…어르신?”

        ​

        – ….?

        ​

        매캐한 탄냄새.

        ​

        온통 불에 그슬려 일그러진 피부들.

        ​

        하지만 불에 타죽어 이승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

        페란트라는 사람의 인생때문에 남아 있으신 분들이었다.

        ​

        “좀 똑바로 살지 그랬어요? 어르신들 가슴이 또 찢어지네.”

        ​

        “…”

        ​

        비뚫어져 버린 자식의 인생을 바로잡고 있으니, 어르신들이 협조적이라는 것.

        ​

        “이놈들이 노예를 잡아서 어디다 넘기고 있나요?”

        ​

        순식간에 영혼의 얼굴이 굳어졌다.

        ​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충은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

        – ….

        ​

        “네크로맨서에게 가는 건 알고 있어요. 더 구체적인걸 알아야 해요.”

        ​

        끄덕.

        ​

        아버지로 보이는 어르신이 손짓했다.

        ​

        허공에 그려지는 사각형.

        ​

        그리고 가리켜지는 땅.

        ​

        “지도가 필요하신 거예요?”

        ​

        끄덕.

        ​

        내가 말을 함과 동시에 세레나가 옆에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

        “이쪽인가요?”

        ​

        – ….

        ​

        클로셀 영감도 신중한 얼굴로 지도를 들여다봤다.

        ​

        “지도를 볼 줄 아는 것을 보니,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나보군.”

        ​

        “용병이셨던 것 같아요.”

        ​

        끄덕.

        ​

        “그렇다네요.”

        ​

        영혼의 손끝이 한곳을 가리켰다.

        ​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영지였다.

        ​

        그리고 길을 따라 이동하는 손가락.

        ​

        “여기도요?”

        ​

        끄덕.

        ​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이 향한 곳은 바다가 있는 곳.

        ​

        영감님이 수염을 매만졌다.

        ​

        “역시나 수도로군. 이상한 일일세.”

        ​

        “뭐가요?”

        ​

        “그곳엔 수상한 것이 없네.”

        ​

        모든 상황이 대놓고 그곳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

        “제국은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을 추적해왔네.”

        ​

        “그렇다고 했었죠.”

        ​

        “왕국들의 수도라고 해서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네. 지금도 은밀히 조사가 이어지고 있지.”

        ​

        이것이었나보다.

        ​

        때마침 지나가던 제국 정보원의 정체가.

        ​

        “심지어 지금은 사신단이 파견되어 있다네. 그들의 눈 마저 피하기는 쉽지 않지.”

        ​

        “음…”

        ​

        “조금 더 자세히 조사하라 연락해두겠네.”

        ​

        역시나 느낌이 쎄했다.

        ​

        애초에 수도부터가 글러 먹었을 가능성이 컸다.

        ​

        영혼만을 모아서 간 것이라면 흔적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

        “일단은 슬슬 움직여 보시죠. 가는 길에 사람들도 구하고.”

        ​

        “그러세나.”

        ​

        이들을 두고 움직이려던 나는 멀뚱히 이곳을 바라보는 영혼 앞에서 멈춰 섰다.

        ​

        “에휴…”

        ​

        살며시 등을 흔들어 자고 있던 루나를 깨웠다.

        ​

        “루나야 손 좀 줘볼래?”

        ​

        “움…?여기쪄!”

        ​

        이렇게 해도 안 된다면 그것은 인과응보이니 어쩔 수 없는 일.

        ​

        “빠! 나 또 커쪄!”

        ​

        “그래?”

        ​

        “종! 잘하고 이쪄. 그래서 또 커! 빨리 커!”

        ​

        “응?”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

        ***

        ​

        “다시는 혼자다니지 말거라!”

        ​

        훌쩍 –

        ​

        얼마 전에 자식을 잃을 뻔했던 사냥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

        얼마나 허망했던가.

        ​

        마치 세상이 통째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

        “앞으로 혼자서는 사냥 금지다.”

        ​

        토끼라도 잡아 오라고 보냈던 것이 그런 결과를 낳을 줄이야.

        ​

        사냥꾼의 자식을 사냥꾼으로 키우려했던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

        조금만 늦게 가르칠 것을.

        ​

        사냥꾼의 주변에는 같이 동행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

        모두가 똑같이 자식이 납치되었던 사람들이었다.

        ​

        “얼른 돌아가자꾸나.”

        ​

        신관들이 찾아와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더라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

        새삼 손수 자신들을 찾아와 도움을 준 신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

        “한스님이라고 하셨던가…”

        ​

        외우기도 쉬운 이름이었다.

        ​

        당장 집건너편에도 한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으니까.

        ​

        “신관 아저씨들은 대단하세요.”

        ​

        “그렇더구나…”

        ​

        사냥꾼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

        평민들에게 신관이라 하면 거의 준 귀족쯤 되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

        함부로 말을 섞기도 부담스러운 존재들.

        ​

        하지만 이번에 만난 신관들은 달랐다.

        ​

        이름마저도 그들과 비슷했으며, 자신들에게 한없이 호의적이지 않았던가.

        ​

        아프지 말라며 신성력으로 치료까지 해줬으니.

        ​

        “참 별일이 다 있구만. 신성력으로 치료를 받아 볼 줄이야.”

        ​

        “우리 딸도 신관님께 치료를 받았네.”

        ​

        “나도 아프던 허리가 씻은 듯이 나았어!”

        ​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걸음을 서둘렀다.

        ​

        그들의 마을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도착할 것이다.

        ​

        “어서 갑시다!”

        ​

        “자, 잠깐…!”

        ​

        사람들 중 한 명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

        고개를 돌린 사냥꾼. 이질적인 풍경에 눈매를 찌푸렸다.

        ​

        “…사람?”

        ​

        “사람이 왜 공중에 떠 있지?”

        ​

        “그게 아닙니다.”

        ​

        공중에 있는 게 아니었다.

        ​

        나무에 묶여 매달려 있었을 뿐.

        ​

        “또 노예 상인에게 당한 것일지도 모르오.”

        ​

        “얼른가서 도와줍시다.”

        ​

        근처에 위협이 될 만한 게 없다고 판단한 사냥꾼이 달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도착한 그들이 만난 것은 바닥에서 삐죽튀어나온 머리들과 나무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었다.

        ​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

        “도적에게 당한 것인가?”

        ​

        바닥과 나무밑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

        “우리를 좀 도와줘!”

        ​

        “도적들에게 습격을 당했어!”

        ​

        사냥꾼이 싸늘한 표정을 하고선 단검을 꺼내 들었다.

        ​

        방금 막 납치된 아이들을 찾아온 참이었다.

        ​

        도적에 대한 인식이 고울리가 없었다.

        ​

        “내 금방 풀어드리겠소.”

        ​

        묶여 있는 사람을 향해 다가가던 그때.

        ​

        “아빠!”

        ​

        “응?”

        ​

        “이,이 사람들이야!”

        ​

        뒤따라온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졌다.

        ​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

        “이 사람들이 나를 납치했어!”

        ​

        “…!!!”

        ​

        “맞아요! 이 아저씨가 저희들을!”

        ​

        어른들 중에서도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

        아들이나 딸이 마나에 자질이 있다며 접근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싸늘한 눈빛들이 오고 갔다.

        ​

        “퉤!”

        ​

        침을 뱉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주워 왔다.

        ​

        팔뚝만 한 것으로.

        ​

        “감히 내 새끼를!”

        ​

        퍼억 –

        ​

        “으억!”

        ​

        빠악!

        ​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몽둥이들.

        ​

        바닥에 심어져 머리만 나온 사람에게는 발길질이 쏟아졌다.

        ​

        “사…살려!”

        ​

        퍼억!

        ​

        그들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

        몽둥이질은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이어졌다.

        ​

        사냥꾼이 줄에 묶여 있는 쪽지 하나를 발견하기 전까지.

        ​

        [노예 사냥꾼, 쪽지를 근처 신관들에게 전달해주세요.]

        ​

        밑으로 적힌 크리스라는 이름.

        ​

        그리고 루나라는 이름 옆에 작은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

        금방 아이들에게서 반응이 터져 나왔다.

        ​

        “어? 이거 신관 형이 가지고 있던 건데?”

        ​

        “맞아! 그 형이 엄청 아끼던 거랑 똑같아.”

        ​

        “누나보다 아꼈어.”

        ​

        사람들이 금세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

        보육원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신관을.

        ​

        “아무래도 그 사람에게 전해 줘야겠구나.”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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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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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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