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서 있는 노예 상인들.
나는 팔을 들어 구덩이를 가리켰다.
“자, 들어가세요.”
“…우리를 산체로 묻을 셈이오?”
사실 생매장도 나쁘지는 않다.
이런 놈들 살려 둬봐야 피해자들만 더 생기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내가 무당인데, 원혼들을 만드는 건 내키지가 않았다.
“빨리 들어가요. 바쁘니까.”
몸을 움찔거리던 놈들이 일제히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살려주시오!”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지랄이라는 단어는 이런 것에 쓰는 것이다.
저놈들이 잡아간 사람이 얼만데 살려달라는 소리가 나오냔 말이다.
이런 생각은 파라몬 영감님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흠…거절이라….”
스르릉.
꺼내지 않았던 영감님의 검이 시퍼런 날을 드러냈다.
“헙…!”
“어디 거절한번 해 보겠는가?”
일제히 침을 삼키는 노예 상인들.
영감님에게 맞았던 놈들은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직 못깨어난 놈들마저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몸을 떨었다.
“다리가 없으면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네.”
“드…들어가겠습니다!”
“제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우르르 –
하나둘 들어간 놈들이 어느새 구덩이를 가득 메웠다.
숫자가 많아서 그런지 큰 구덩이에도 자리가 모자랄 지경.
마침 일손이 필요하던 찰나에 잘된 일이었다.
“이런데다가 정령을 쓰면 노움이 기분 나빠하겠지?”
“네.”
“어쩔 수 없네.”
원래 지은 죄는 스스로 속죄를 해야 하는 법이다.
남이 때린다고 죄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못 들어간 사람들은 저거 다 묻어요.”
눈치를 보던 놈들이 움직이며 구덩이를 흙으로 덮기 시작했다.
“서…선착순인 줄 알았으면 안 들어왔…”
“조용히 안 해요? 뭘 잘했다고 입을 열어.”
머리까지 땅에 파묻어 버릴까 했지만, 이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인과응보라고 알아요? 원래 업을 쌓다 보면 다 돌아와요.”
선업을 쌓은 사람들도 다 복이 찾아온다.
꾸준히 쌓이다가 귀인을 만나거나, 혹은 그 행동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귀인이 되어 준다거나.
그런식으로 복이 들어오는 것이다.
선업이 돌아오는 방법은 셀 수도 없이 다양하다.
악업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나와 마주쳐서 악업이 터졌다는 게 맞을 듯했다.
“꼼꼼히 묻어요.”
어느덧 머리만 남기고 땅에 묻혀 버린 이놈들.
나는 주변땅을 꾹꾹밟으며 땅을 다지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들은 서로 묶으세요.”
“…예?”
놈들의 수레를 터니 각종 납치도구가 쏟아져 나왔다.
수갑과 족갑.
밧줄과 이상한 약품들.
규모가 큰놈들인지 안에 실린 귀금속들도 상당했다.
“뭐 해요? 거꾸로 매달아요.”
“….”
마지막 한 명만이 남아 눈치를 보고 서 있었고, 그 주위로는 사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고 아주 여기저기 열려있는 게 볼만한 광경.
스윽-
“그놈은 내가 묶겠네.”
“감사해요.”
파라몬 영감님이 친히 줄을 들고 다가섰다.
“으음…”
이제 심문이라는 걸 해 봐야 한다.
정황을 보면 놈들이 다른 곳에서도 노예를 잡았을 것은 분명한 일.
“참나…나라가 아주 개판이네.”
네크로맨서들이 관련된 것을 확인한 이상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내가 심문이라는 걸 해 본적이 없다는 것.
“일단 때려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불로 지져야 하는 건가?”
“…헙!”
다행히도 이런 잔혹한 방법은 쓸필요가 없었다.
나에게는 필요한 정보를 술술 불어 줄 영혼들이 보이니까 말이다.
“그…어르신?”
– ….?
매캐한 탄냄새.
온통 불에 그슬려 일그러진 피부들.
하지만 불에 타죽어 이승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페란트라는 사람의 인생때문에 남아 있으신 분들이었다.
“좀 똑바로 살지 그랬어요? 어르신들 가슴이 또 찢어지네.”
“…”
비뚫어져 버린 자식의 인생을 바로잡고 있으니, 어르신들이 협조적이라는 것.
“이놈들이 노예를 잡아서 어디다 넘기고 있나요?”
순식간에 영혼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충은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 ….
“네크로맨서에게 가는 건 알고 있어요. 더 구체적인걸 알아야 해요.”
끄덕.
아버지로 보이는 어르신이 손짓했다.
허공에 그려지는 사각형.
그리고 가리켜지는 땅.
“지도가 필요하신 거예요?”
끄덕.
내가 말을 함과 동시에 세레나가 옆에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이쪽인가요?”
– ….
클로셀 영감도 신중한 얼굴로 지도를 들여다봤다.
“지도를 볼 줄 아는 것을 보니,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나보군.”
“용병이셨던 것 같아요.”
끄덕.
“그렇다네요.”
영혼의 손끝이 한곳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영지였다.
그리고 길을 따라 이동하는 손가락.
“여기도요?”
끄덕.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이 향한 곳은 바다가 있는 곳.
영감님이 수염을 매만졌다.
“역시나 수도로군. 이상한 일일세.”
“뭐가요?”
“그곳엔 수상한 것이 없네.”
모든 상황이 대놓고 그곳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제국은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을 추적해왔네.”
“그렇다고 했었죠.”
“왕국들의 수도라고 해서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네. 지금도 은밀히 조사가 이어지고 있지.”
이것이었나보다.
때마침 지나가던 제국 정보원의 정체가.
“심지어 지금은 사신단이 파견되어 있다네. 그들의 눈 마저 피하기는 쉽지 않지.”
“음…”
“조금 더 자세히 조사하라 연락해두겠네.”
역시나 느낌이 쎄했다.
애초에 수도부터가 글러 먹었을 가능성이 컸다.
영혼만을 모아서 간 것이라면 흔적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슬슬 움직여 보시죠. 가는 길에 사람들도 구하고.”
“그러세나.”
이들을 두고 움직이려던 나는 멀뚱히 이곳을 바라보는 영혼 앞에서 멈춰 섰다.
“에휴…”
살며시 등을 흔들어 자고 있던 루나를 깨웠다.
“루나야 손 좀 줘볼래?”
“움…?여기쪄!”
이렇게 해도 안 된다면 그것은 인과응보이니 어쩔 수 없는 일.
“빠! 나 또 커쪄!”
“그래?”
“종! 잘하고 이쪄. 그래서 또 커! 빨리 커!”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
“다시는 혼자다니지 말거라!”
훌쩍 –
얼마 전에 자식을 잃을 뻔했던 사냥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얼마나 허망했던가.
마치 세상이 통째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앞으로 혼자서는 사냥 금지다.”
토끼라도 잡아 오라고 보냈던 것이 그런 결과를 낳을 줄이야.
사냥꾼의 자식을 사냥꾼으로 키우려했던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조금만 늦게 가르칠 것을.
사냥꾼의 주변에는 같이 동행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모두가 똑같이 자식이 납치되었던 사람들이었다.
“얼른 돌아가자꾸나.”
신관들이 찾아와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더라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새삼 손수 자신들을 찾아와 도움을 준 신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스님이라고 하셨던가…”
외우기도 쉬운 이름이었다.
당장 집건너편에도 한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으니까.
“신관 아저씨들은 대단하세요.”
“그렇더구나…”
사냥꾼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평민들에게 신관이라 하면 거의 준 귀족쯤 되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함부로 말을 섞기도 부담스러운 존재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신관들은 달랐다.
이름마저도 그들과 비슷했으며, 자신들에게 한없이 호의적이지 않았던가.
아프지 말라며 신성력으로 치료까지 해줬으니.
“참 별일이 다 있구만. 신성력으로 치료를 받아 볼 줄이야.”
“우리 딸도 신관님께 치료를 받았네.”
“나도 아프던 허리가 씻은 듯이 나았어!”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걸음을 서둘렀다.
그들의 마을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도착할 것이다.
“어서 갑시다!”
“자, 잠깐…!”
사람들 중 한 명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사냥꾼. 이질적인 풍경에 눈매를 찌푸렸다.
“…사람?”
“사람이 왜 공중에 떠 있지?”
“그게 아닙니다.”
공중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나무에 묶여 매달려 있었을 뿐.
“또 노예 상인에게 당한 것일지도 모르오.”
“얼른가서 도와줍시다.”
근처에 위협이 될 만한 게 없다고 판단한 사냥꾼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그들이 만난 것은 바닥에서 삐죽튀어나온 머리들과 나무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도적에게 당한 것인가?”
바닥과 나무밑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를 좀 도와줘!”
“도적들에게 습격을 당했어!”
사냥꾼이 싸늘한 표정을 하고선 단검을 꺼내 들었다.
방금 막 납치된 아이들을 찾아온 참이었다.
도적에 대한 인식이 고울리가 없었다.
“내 금방 풀어드리겠소.”
묶여 있는 사람을 향해 다가가던 그때.
“아빠!”
“응?”
“이,이 사람들이야!”
뒤따라온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나를 납치했어!”
“…!!!”
“맞아요! 이 아저씨가 저희들을!”
어른들 중에서도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들이나 딸이 마나에 자질이 있다며 접근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싸늘한 눈빛들이 오고 갔다.
“퉤!”
침을 뱉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주워 왔다.
팔뚝만 한 것으로.
“감히 내 새끼를!”
퍼억 –
“으억!”
빠악!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몽둥이들.
바닥에 심어져 머리만 나온 사람에게는 발길질이 쏟아졌다.
“사…살려!”
퍼억!
그들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몽둥이질은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이어졌다.
사냥꾼이 줄에 묶여 있는 쪽지 하나를 발견하기 전까지.
[노예 사냥꾼, 쪽지를 근처 신관들에게 전달해주세요.]
밑으로 적힌 크리스라는 이름.
그리고 루나라는 이름 옆에 작은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금방 아이들에게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 이거 신관 형이 가지고 있던 건데?”
“맞아! 그 형이 엄청 아끼던 거랑 똑같아.”
“누나보다 아꼈어.”
사람들이 금세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보육원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신관을.
“아무래도 그 사람에게 전해 줘야겠구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