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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실비아 씨…. 이제 더 이상은 못 먹겠어요….”

       “저도요….”

       “쀼국.”

       

       라볶이를 그렇게 먹고도 우리는 냄비에 남은 라볶이 양념을 이용해 밥을 알뜰하게 볶아 먹었다. 

       

       “라볶이가 끝인 줄 알고 면 추가해서 먹었는데…. 밥 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면….”

       “면 추가해도 밥까지 충분히 다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결국 다 먹긴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게 됐긴 한데….”

       “쀼국.”

       

       아침 겸 점심이라는 걸 고려해도 엄청난 과식이었지만, 솔직히 참을 수가 없었다. 

       

       ‘라볶이 먹고 난 뒤에 영롱한 흰 쌀밥이 볶아지길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안 먹고 배기냐고.’

       

       그것도 밥을 볶기에 완전히 안성맞춤인 넙대대한 냄비가 떡하니 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김가루까지 있는데!’

       

       사실 김은 캐머해릴에서 사 올까 말까 상당히 고민한 품목 중 하나였다. 

       

       ‘한국이었으면 얼마 하지도 않았을 텐데, 여기선 진짜 너무 비쌌지. 무슨 김 값이 고깃값이야.’

       

       물론 기후와 환경이 한국과는 다르니 김 양식이 어려울 수도 있고, 그래서 값이 비싼 거야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돈 걱정은 없이 살고 있는 나조차도 멈칫할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나서 처음에는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김을 보고도 안 사고 지나칠 수가 없었단 말이지.’

       

       영양도 풍부하고 맛까지 있는 원조 밥도둑.

       기름을 잘 발라서 구워 소금을 적당히 뿌려 주면 그야말로 반찬 하나에 밥 한 공기 뚝딱 가능한 게 바로 김이다.

       

       구매를 망설이고 있을 때 가게 주인이 즉석에서 서비스로 구워서 잘라 준 김 맛을 본 나는, 그 자리에서 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아르도 시식해 보고 맛있다며 좋아했으니, 잘 샀지.’

       

       캐머해릴을 떠나기 전에 묶음으로 구매하겠다고 말하자, 김을 원하는 만큼 즉석에서 다 구워서 포장해 준 건 물론이거니와 뿌려 먹기 좋도록 잘게 부숴 김가루로 만들어 따로 포장해 주기까지 했다.

        

       한국이었으면 그렇게 상품화되어 포장해 나오는 게 당연한 얘기였겠지만, 아날로그한 페룬 대륙에서 이 정도 서비스면 꽤나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여튼.

       

       ‘배가 터질 것 같긴 해도…. 맛있었다.’

       

       졸아서 걸쭉해진 라볶이 국물에 방금 지은 촉촉한 흰 쌀밥을 투하, 넙대대한 냄비에 골고루 볶아지도록 주걱으로 잘 눌러 준다. 

       

       어느 정도 볶아졌으면 눌어붙기 전에 김가루를 듬뿍 넣으며 주걱으로 섞어 주고, 이때 참기름을 첨가한다.

       

       그다음부터는 골고루 볶이도록 양념과 계속 섞어 주면서 참기름 특유의 고소한 냄새를 맡다가, 다 볶아지면 맛있게 먹는다. 

       

       이 완벽한 과정을 거친 우리는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먹은 뒤 배가 불러 드러누운 것이다.

       

       “쀼국.”

       

       아르도 간만에 꽤나 과식을 해서 그런지 연신 트림을 하고 있었다. 

       

       ‘배 뚠뚠해진 거 봐….’

       

       나는 대 자로 드러누운 아르의 말랑뚠뚠한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뀨우.”

       

       아르는 기분이 좋은지 오른쪽으로 삐져나온 꼬리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앗, 레온 씨. 치사해요. 저도 아르 배 만지고 싶은데….”

       “으음, 저 5분만 더 만지고요.”

       “5분은 너무 긴데요!”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그러면 제가 비킬 줄 알고요…!”

       

       나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지만.

       

       “후후. 안 비키셔도 상관 없는데요?”

       

       실비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내 손을 감쌌다. 

       

       버트 씨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

       

       “워터.”

       

       나는 마법으로 순식간에 설거지를 마쳤다. 

       

       ‘마법이 진짜 편하긴 편하단 말이야.’

       

       일반적인 흐르는 물로는 어림도 없을 냄비에 눌어붙은 밥풀이나, 심지어는 기름기조차도, 무려 112나 되는 마력 스탯(아르에게 빌려 옴)으로 시전한 워터 한 방에는 무력하게 씻겨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진짜 식기 세척기가 따로 없네.’

       

       식기 세척기는 초벌 세척도 해야 되고 돌려 놓고 다 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워터 마법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모든 걸 휩쓸고 지나가 새것처럼 만들어 주었다. 

       

       물론 워터 마법을 시전하고 이렇게 세심하게 수압과 움직임 등을 잘 조절해서 깨끗하게 씻는 데까지는 꽤나 수련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접시도 여러 개 깨 먹었지….’

       

       처음에는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했던 내가 ‘그냥 마법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워터 세척기’ 프로젝트.

       

       그러나 100이 넘는 마력 스탯을 과소평가하고 접시를 연속으로 세 개 깨먹고 나서, 나는 실비아 씨가 수련장에서 돌아오기 전에 얼른 똑같은 접시를 사 와서 완전 범죄를 이룩한 전적이 있었다. 

       

       -쀼, 쀼우?!

       -앗, 아르야. 놀랐어? 미안해. 별건 아니고 접시를 좀 깨 먹었거든. 금방 똑같은 걸로 사 올 테니까 실비아 씨한텐 비밀이다?

       -쀼우…!

       

       엄밀히 따지면 목격자가 있긴 했지만, 아르니까 비밀로 해 주겠지.

       

       어쨌든 그렇게 수련을 거듭한 나는 이제 30초 안에 모든 설거지를 끝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 이런 게 가능하니까 과학이 발전이 없지.’

       

       산업 혁명을 거치고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여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최신형 식기 세척기를 발명하면 뭘 하겠는가. 

       

       그냥 워터 마법 한 번 쓱 해서 씻은 것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전기 공급도 필요한데.

       심지어 식기 세척기는 무겁고 부피도 많이 차지한다. 

       

       ‘숙련도만 받쳐 준다면 식기 세척기가 ‘씻어야 한다!’ 하는 동안 ‘딸깍’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워터 마법이 압승이지.’

       

       누구나 이렇게 간편하게 설거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이 세계에는 마도구나 아티팩트라는 게 있어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 마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과학 기술의 위대한 산물 중 하나인 냉장고만 하더라도 마법석으로 어느 정도 퉁칠 수 있기도 하니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 정도려나.’

       

       자기 전에 누워서 뉴튜브나 넷플렉스 같은 걸 볼 수 없다는 건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두 세계 중 한 세계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이 세계를 고를 것이다. 

       

       ‘여기엔 아르가 있으니까.’

       

       영혼의 계약까지 한, 귀여운 평생의 파트너가 이렇게 바로 옆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솔직히 뉴튜브에서 귀여운 동물 영상들 백 개, 천 개를 봐도 이렇게 가까이서 아르 한 번 보는 건 이길 수가 없거든.’

       

       심지어 아르는 보는 것뿐 아니라 말랑뚠뚠한 배를 쓰다듬고 손과 발의 젤리를 마음껏 만지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냥 아르는 귀엽다. 

       

       졸귀탱. 세젤귀.

       

       ‘후우.’

       

       나는 생각 난 김에 귀여운 아르를 바라보았다. 

       

       “쀼우웃!”

       

       아르는 어느 정도 소화가 됐는지, 힘차게 주변을 뛰어 다니며 놀다가 아까 건초를 주었던 말들과 교감을 하며 놀고 있었다. 

       

       ‘말이 은근히 사나워서 애들이 가까이 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저걸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말들은 아르가 꽤나 맘에 들었는지, 아르가 장난 치는 것도 다 받아 주고 혀로 아르의 뺨을 핥기도 했다. 

       

       “쀼우우…!”

       

       그리고 나중에는 주둥이를 껴안은 아르를 그대로 자신의 등 위에 슉 하고 올려 주기도 했다. 

       

       ‘신기하긴 하네. 보통 동물들은 마물을 무서워하고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하는데 말이야.’

       

       게다가 아르는 무려 드래곤이지 않은가. 

       

       훗날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하는, 10성의 마법을 구사하는 거대한 은룡이 될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동물들이 저리 경계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드래곤이라서 오히려 경계하지 않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레키온 사가」를 플레이할 때만 해도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잔악무도하고 고고한, 인간이나 동물 따위는 개미 같은 미물로 여기고 거슬리면 죽이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를 만나고, 꿈에서 카르사유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드래곤이란 존재가 대륙의 수호자 역할을 했던 종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동물들은 그런 드래곤을 잘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

       

       드래곤 중에서도 유독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개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진짜 흑막은 마왕과 마신이었으니까. 

       

       ‘그럼 저 말들은 아르가 드래곤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건가?’

       

       순수한 궁금증이 일었지만, 그렇다고 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뭐, 드래곤인 걸 모른다고 해도 사실 당장 저렇게 무해하고 귀여운데 동물들도 꺼릴 이유가 없긴 하겠지.’

       

       히힝!

       

       “쀼웃!”

       

       나는 말의 등에 꾹꾹이를 해 주는 아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 보자. 대충 정리는 다 끝난 것 같고.’

       

       내가 설거지를 한 이후 식기들을 정리해 넣는 동안 실비아는 어느새 텐트 철거 작업을 완료한 참이었다. 

       

       텐트를 포함한 짐을 전부 마차에 실은 나는 지도를 펼쳤다. 

       

       “어디 보자….”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일정이 조금 꼬였으니, 오늘 해가 질 때까지 갈 수 있는 안전한 지점이나 마을을 다음 목적지로 변경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경로도 최적화를 시켜 줘야겠지. 이쪽 길로 가면…. 아. 혹시 모르니 여기 한번 들러 볼까.’

       

       가가레일 유적지.

       

       흐름 상 이 시점이면 이미 다른 사람들이 털어 갔을 가능성도 있지만, 운이 좋다면 레벨업도 하고 짭짤한 보상도 챙길 수 있는 곳이다. 

       

       ‘좋아. 다음은 여기로 간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연재 회차 마지막 부분에 약 150자 분량의 짧은 장면이 추가되었습니다. 어제 올라오자마자 초기에 읽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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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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