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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일주일간의 황도 요양이 끝나고 공작저로 돌아왔다.

         

       프란체는 돌아오자마자 룬어 해독에 몰두 중. 나는 찻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녀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 그래. 그러렴.”

       “…….”

         

       전부터 저 고대 마법서 해독에 몰두 중이다. 카자르 말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문제없겠지?’

         

       저 고대 마법서는 카자르도 해독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 룬어를 갓 배운 프란체는 절대 해독할 수 없을 터.

         

       ‘문제없겠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방문을 나왔다.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헬레나가 움찔거리며 힐끔힐끔 눈치를 본다.

         

       “…….”

       “…….”

         

       얘랑 더 얘기하고 싶어도 못한단 말이지.

         

       ‘프란체가 대체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다마는.’

         

       이 프란체 코퍼레이션에서 나를 소외시키기라도 할 생각인가…?

         

       ‘됐다.’

         

       고개를 휘젓곤 공작저를 나왔다. 늘 하던 것처럼 오러를 활성화해 지붕을 넘어 다니고, 엑시드의 술집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늘 하던 것처럼 접수원을 옆으로 치워주고 안으로 들어가니 셀다스는 금빛이 나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낮부터 술인가?”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야.”

         

       그리 말하곤 잔을 들이킨다. 술꾼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왜 찾아왔지? 성녀와 황태자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아닌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그래. 그거에 대해서 알아달라고 하는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셀다스는 “정보?”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성녀 대신 움직이는 놈의 정체를 알았어.”

         

       덜컥! 방금까지 책상에 다리를 꼰 채 올려뒀던 셀다스가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누구지?”

       “초월 마법사다.”

         

       가면 사이로 보이는 휘둥그레진 눈.

         

       “그런 말도 안 되는 인물이 왜…? 어떻게 알아낸 거야?”

         

       나는 모옥의 마스터와 했던 얘기를 알려주었다.

         

       “모옥을 입막음할 수 있으면서 흔적은 전혀 남기지 않고 어쌔신들을 농락할 수 있는 마법사…….”

         

       셀다스는 허탈한 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간 놈이 우리의 추적을 완벽하게 피한 것이 이해가 가는군. 생각보다 훨씬 말도 안 되는 상대였어.”

         

       그렇긴 하다. 나도 초월 마법사가 어째서 소미레를 도와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둘이 전혀 접점이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결혼식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확실한 조사와 감시를 부탁하지.”

       “알겠다. 그놈이 괜히 모옥에까지 의뢰해서 우리 쪽을 건드렸으니 이번에는 최대한 협조하지.”

         

       그러고 보니 얘도 카아락한테 뒤지게 처맞았지.

         

       “모옥 때문에 입은 피해가 컸나?”

       “그래. 엑시드의 어쌔신이 많이 죽었지.”

         

       동선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많이 들켰나 보군. 그놈들이라면 셀다스 급 어쌔신이 아니고서야 전부 찾아낼 수 있었을 거다.

         

       “이번에는 문제없겠나? 칠성이랑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인 초월 마법사인데.”

         

       초월 마법사가 마음만 먹으면 엑시드를 소리소문없이 없애버릴 수 있다. 위험성이 많이 큰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놈이 우리를 공격할 거였으면 진즉에 공격했지.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도 모자라 흔적만 남기는 걸 보니 다른 꿍꿍이가 있어.”

         

       그렇긴 하다. 자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숨길 수 있음에도 마력의 흔적을 남겼다. 마치 자기 자신이 했다는 걸 알아달라는 것처럼.

         

       ‘아마 초월 마법사도 결혼식에 참가하겠지.’

         

       그때 다시 만나보도록 할까. 그 할멈이라면 모든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알겠다. 정보가 들어오면 전서나 어쌔신을 보내라. 모옥 때와 같은 실수는 없었으면 좋겠군.”

         

       셀다스는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이번 일로 배운 게 많았으니.”

         

       뭐, 애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보지.”

       “그래, 빨리 나가.”

         

       거, 까칠하기도 하셔라.

         

         

       * * *

         

         

       시간이 흐르고, 성녀와 황태자의 결혼식이 정말 코앞이다. 특별히 셀다스에게 온 소식은 없었다.

         

       팔락. 눈앞에 프란체는 마법서를 넘기며 열심히 룬어 해독에 몰두하고 있다.

         

       헬레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기를 준비하고, 찻잔을 채워주었다.

         

       참 평화로운 일상이지만…….

         

       ‘나는 지옥이야.’

         

       프란체의 해독이 벌써 중반부로 들어갔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카자르가 말했다. 초반부만 조금 해독하다가 다른 책으로 갈아탄다고. 그런데 지금 중반부에 들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카자르한테 상담 좀 받아야 하나?’

         

       그래도 아직은 모른다. 영혼 결속은 상당히 후반부에 있다고 했으니. 카자르도 중반부부터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큰 걱정은 하지 말자.’

         

       중반부에서 튕겨져 나올 거다. 분명.

         

       “진?”

       “예.”

       “뭐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니?”

         

       네가 영혼 결속 마법을 사용할까 두려워서요.

         

       “아닙니다. 그나저나 룬어 해독이 잘 되고 있나 봅니다?”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전까지 활용해서 마력의 흐름을 읽는 데 집중하니 큰 문제가 없더라고.”

         

       점점 더 불안해진다.

         

       “중반부에 들어오신 거 같은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많이 어려운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아예 못 읽을 정도는 아닌 거 같아.”

         

       이거 진짜 큰일이군.

         

       “룬어가 많이 재미있으신가 봅니다.”

       “당연하지. 난 새로운 게 좋아.”

       “근데 굳이 룬어인 이유가 있습니까?”

         

       프란체는 “으음…….”하면서 검지로 볼을 톡톡 건드리더니.

         

       “비밀이야.”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끼를 부렸다.

         

       “…….”

         

       이러니까 더 불안해지잖아. 사실 영혼 결속 마법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좀 의심스러운데.

         

       ‘그렇다고 이걸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다.

         

       “근데 이 마법서에 관심이 많아 보이네? 보면 안 되는 거라도 있나?”

       “예? 아닙니다. 공녀님이 뭐 하시는지 궁금한 것뿐이죠.”

       “정말? 그렇다고 하기엔 아까부터 계속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내가 티를 좀 낸 것도 있지만, 이 공녀님은 너무 날카롭다.

         

       “사실 카자르가 그 마법서는 위험하다고 해서 걱정 중입니다. 자칫하다가 저번에 흑마법처럼 이상한 일이 생기면 어떡합니까.”

         

       오케이. 이 정도면 진짜 잘 돌려 말했다.

         

       “그 정도는 내가 직접 판단해. 너는 가끔 보면 나를 너무 애로 알더라?”

       “아닙니다. 이게 다 공녀님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죠.”

         

       사실 내 걱정이 제일 크긴 해.

         

       “마음은 고맙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내가 그만둘 거니까.”

         

       결국, 다시 룬어 해독에 몰두하는 프란체. 점점 불안감만 심해진다.

         

       ‘차라리 안경을 숨겨볼까?’

         

       좋은 방법이긴 하다. 안경을 숨긴 뒤 카자르와 말을 맞춰서 만들기 힘들다는 설정을 짠다면…….

         

       ‘이건 안 될 거야.’

         

       저 안경이 마도구라는 사실은 프란체도 알고 있다. 황실과의 연도 있겠다, 궁정 마법사단에서 새로 받아올 게 뻔하다.

         

       ‘기도하는 수밖에 없나.’

         

       운명에 맡기는 건 취향이 아니다만, 어쩔 수 없지…….

         

       문득 프란체가 물었다.

         

       “그런데 케일과 라데아는 어쩌고 있니?”

       “결혼식 날까지 휴가를 줬습니다.”

       “그렇구나.”

       “용건이 있으셨습니까?”

         

       프란체는 슬쩍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라데아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 없다면 됐어.”

         

       그 할 이야기가 뭔지 알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이 공녀님은 점점 나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지고 있다. 원래도 있었던 감정을 흑마법이 증폭시키고 있는데 여기서 의존성까지 더 해지니…….

         

       ‘그래도 얼마 안 남았어.’

         

       이대로 프란체와 떨어지는 건 아쉽다. 좀 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고, 옆에서 많은 걸 지켜보고 싶다마는.

         

       죽음이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근데 각인 효과는 어땠니?”

       “각인으로 내린 명령 말씀이십니까?”

       “그래.”

         

       초월 마법사가 직접 새긴 각인이라 그런지 제대로 먹혀들었다. 피부를 태우는 듯한 고통.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번쩍. 룬어 해독에 몰두하던 프란체가 고개를 들더니 지그시 나를 바라봤다. 이내 안경까지 벗었다.

         

       “둘이 뭔가 있긴 있었구나?”

       “…….”

       “분명 거리를 유지하라고 했는데.”

       “…….”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는데 함정이었나? 이런.

         

       “관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아니면 그 전에?”

         

       톡. 톡.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프란체.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싸우는 도중에 일어난 접촉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 전이나 관광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좀 그렇네…?”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싸 등줄기에 오한이 깃들었다. 이 몸이 감각이 말도 안 되게 뛰어난지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암전.’

         

       이 공녀님은 가끔 자기도 모르게 암전을 사용한다.

         

       “공녀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전투 도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나는 “그리고.”하곤 말을 이었다.

         

       “그 각인 때문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갑자기 등이 타오르는 고통이 느껴져서 자칫하면 다칠 수도 있었습니다.”

         

       이대로 프란체에게 잘못을 돌린다. 주도권을 가져와야 해.

         

       “그게 정말이야?”

         

       프란체의 동그래진 눈. 많이 놀랐군.

         

       “미안해, 그럴 줄은 몰랐네…….”

         

       이내 잔뜩 시무룩해져서 축 늘어졌다. 저 모습을 보니 좀 미안하지만, 얘기를 잘 돌리는 건 성공했군.

         

       “아닙니다. 결과적으론 괜찮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런데 각인을 풀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참에 각인 명령까지 해제해 달라고 하자. 너무 불편했어.

         

       “왜?”

       “예?”

       “그걸 왜 풀어줘야 하는데?”

       “…….”

         

       뭐지. 이건 누가 봐도 풀어줘야 하는 상황 아니었나.

         

       “비상시에 큰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흐음…….”

         

       프란체는 못마땅한 듯 입술을 일그러트리곤.

         

       “그래, 알겠어.”

         

       노예 구속구를 꺼냈다.

         

       “각인 명령을 해제한다.”

         

       지잉- 붉은빛이 반짝였다. 등에 새겨진 노예 각인의 획이 줄어듦과 동시에 따가운 느낌이 전해졌다.

         

       “그래도 라데아와 거리는 유지해야 한다?”

       “예…….”

         

       왜 이렇게 라데아를 견제하는 건지. 오히려 더 친근한 카자르와의 관계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근데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어떤 이유?”

       “제가 라데아와 거리를 둬야 하는 이유입니다.”

         

       셋의 차이는 무엇인가. 헬레나는 각인 명령까지 새기진 않았고, 카자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반면, 라데아는 빈틈을 절대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진.”

       “예?”

       “나는 눈빛만 봐도 그 사람의 심정을 유추할 수 있어.”

         

       뭐야, 그거 무서워.

         

       “20년간 눈칫밥 먹고 지내야 했던지라 이런 거에는 내가 능통하지.”

         

       오랜 기간 단련된 감각 같은 건가? 프란체가 살아온 삶은 사람의 심정과 분위기를 읽지 않으면 그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법이니까…….

         

       “카자르와 헬레나랑은 다르게 라데아는 너에게 바라는 뭔가가 있어. 그게 애정일 수도 있고 관심일 수도 있지. 나는 그걸 견제하는 것뿐이란다.”

         

       정확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 라데아가 내게 뭔갈 바라고 있었다마는, 사랑 같은 감정은 아닌 거 같은데.

         

       ‘나이 차 많이 나는 남매 느낌이었지.’

         

       프란체는 눈을 얕게 뜨고 나를 쏘아봤다.

         

       “그러니 너도 조심하렴. 라데아는 너에게 뭔갈 바라고 있단다.”

         

       나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진 바렌베르크는 반년 뒤면 없을 사람이다.

         

       어찌 되어도 상관없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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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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