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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머리를 두드려 바루를 깨웠다.

       

       “무어냐. 벌써 도착한 게야?”

       “손님이다.”

       “적?!”

       

       내 말에 다급히 목에서 뛰어내린 그녀는 네 발로 땅을 디딘 채 앞을 노려보았다.

       

       방금 전까지 마음 편하게 자고 있었던 주제에 갑자기 진지한 체를 해도 전혀 멋있지 않다.

       

       그리고 말이다.

       

       내 손님이라 하지 않았느냐. 왜 바로 적이라 소리치는 것이야.

       

       저 자가 지닌 삿된 기운 때문인가? 그럴 수 있겠구나. 신령인 그녀에게 저런 기운은 상극이나 마찬가지일 터이니.

       

       내기를 주변에 퍼트려 남자의 사기를 막아냈다. 그러자 바루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괜찮다. 내 뒤에 있거라.”

       

       무얼 걱정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긴장할 필요 없다.

       

       날 찾아온 이가 손님으로 남는다면 스쳐 지나갈 뿐이고, 저 자가 적으로 돌변한다 한들 내 적이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바루가 발을 옮겨 내 뒤에 숨은 후 남자가 내 앞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화령님.”

       

       그는 나의 이름을 부르며 미소를 지었다.

       

       “누구인가?”

       “저는 혈사파의 베르단이라고 합니다.”

       

       남자와의 거리가 좁아지니 그가 어찌 무공을 쌓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놈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죽음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마심으로써 내공을 키웠구나.

       

       인신공양이라. 내게는 무척 익숙한 단어였다.

       

       혈교놈들이 쓰던 방식인데 그 종교를 멸망시킨 내가 그를 눈치 채지 못하겠느냐.

       

       그 곳의 수하라면 자신의 기운을 숨겼어야지. 무림에서 혈교를 환영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거늘.

       

       용케도 여태 멀쩡히 무림을 돌아다녔구나. 어떤 무인을 마주치더라도 이 기운을 느낀 순간 이 놈을 척결하려 했을 터인데.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혹시 저희 문파에 들어오실 생각이 없나 싶어서요.”

       

       남자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험악했다.

       

       만일 거절의 말을 입에 담는다면 억지로라도 나를 데려가겠단 의지가 느껴지는 구나.

       

       이래서 주제를 모르는 애송이들이 귀찮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 믿고 그를 기준으로 판단을 하니 말이다.

       

       지금 이 자도 그러했다. 남자는 내 육신만을 보고서 나를 아래라 판단하고 깔보고 있었다.

       

       실로 우둔한 녀석이로다.

       

       무의 세상에서 육체는 중요하지만 육체만으로 모든 게 이루어지진 않는다.

       

       육신을 다루는 것은 사람이고, 그를 잘 다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의 이치이고 사람의 경지다.

       

       내 친히 그대에게 육신보다도 중요한 게 있음을 알려주어야겠구나.

       

       “본인이 싫다 말하면 어쩔 것이지?”

       “다시 정중히 여쭈어봐야겠죠.”

       

       정중하게라는 말을 꺼내는 남자의 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대가 말하는 정중함은 아무래도 내가 아는 정중함과는 다른 모양이야.

       

       “그래. 그럼 다시 물어 보거라.”

       

       물을 수 있다면 말이다.

       

       말을 하며 주변에 퍼트린 내기에 무게를 더했다.

       

       지닌 육신의 좋지 못해 물리적으로 짓누르는 건 불가능했으나 상대의 내기를 흩어버리고 압박감을 주는 데는 충분했다.

       

       “묻지 않을 게냐?”

       

       재차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저 압박감을 버티기 위해 입을 꽉 다물고 있을 뿐.

       

       무를 수련하지 않고 내공만을 키우니 이 꼴이 나는 게다.

       

       내기를 다루는 법을 수련했다면 이 압박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을 터이거늘.

       

       혀를 차며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이 녀석 쓸데없이 키가 크구나. 덕택에 내가 올려다봐야 하지 않으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차 강제로 무릎을 꿇렸다.

       

       이제야 시선이 맞구나.

       

       “말을 하지 않으니 내가 묻겠다. 혈교주가 보냈느냐?”

       

       남자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말은 하지 못해도 고개를 움직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터이거늘. 본인에게 반항을 하는 것인가?

       

       발로 무릎을 찍어 뼈를 으깨어 주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고통에 비명을 질러야 했는데 상대의 입에선 아무런 목소리도 새 나오지 않았다.

       

       황망한 눈에서 나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으나 그저 그 뿐이었다.

       

       무엇인가.

       

       마치 감각이 아예 없는 사람 같잖으냐.

       

       생각해보면 VR게임을 하는 유저에게는 통각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했었지.

       

       이 자는 지금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인 것일까.

       

       곤란하게 되었구나.

       

       본인이 고문에 조예가 있는 건 사실이다만 지금의 육신으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를 괴롭힐 방법이 마땅치 않다.

       

       조금 수고를 들이면 못 할 것도 없긴 하지만 굳이 이 자에게 시간을 들여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겠지.

       

       척 보기에도 그리 지위가 높아 보이지 않는 자다. 아는 것도 많지 않을텐데 굳이 시간을 들이고 싶진 않다.

        

       남자의 경혈을 찔러 몸을 움직이기 못하게 만든 후 주저앉아서 남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해야. 어떤 식으로 죽었으면 좋겠느냐?”

       

       그대에게 제대로 된 굴욕을 선사해야 그대의 문파에서 내게 복수를 하러 올 것 아니더냐.

       

       그 중엔 그대와 달리 가치 있는 정보를 지닌 자도 있을 터.

       

       “직접 장기를 구경시켜주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만 아무래도 방송을 하는 중이라 너무 잔인한 것은 그렇구나.

       사지를 잘라 혈액부족으로 서서히 죽어가게 해줄까?

       아니면 뼈만 부수어 아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적당한 짐승에게 던져주는 것도 괜찮겠지.

       아니면 한 번 화형을 경험해 볼 테냐?”

       

       남자의 앞에서 그가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죽음을 이야기해주었더니 점차 남자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갔다.

       

       왜 그러느냐. 어차피 그대는 유저인지라 죽어도 죽지 않는 몸 아닌가.

       

       나를 괴물 보듯 바라보는 이유를 알 수가 없구나. 본인을 겁박하겠다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리 될 것을 각오했어야지.

       

       괜찮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을 하던 중 갑자기 남자의 신형이 사라져 버렸다.

       

       “흠?”

       

       무어냐.

       

       어찌 모습을 감춘 것이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터인데.

       

       혹여 이 현상에 대해 아는 이가 있을까 싶어 채팅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그 곳엔 본인이 방금 한 일에 대한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 진짜 무섭다.

       –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악당 같았음.

       – 보는 것도 그런데 당사자인 쟤는 어떨까.

       – 혈사파 애들 별로 안 좋아하는 데 쟤는 좀 불쌍하네.

       

       보기에 좋지 않을까 싶어 나름 손속을 둔 것이다만 이런 반응이라니.

       

       곤란하구나. 혈교주를 만나면 진심으로 정색을 하게 될 터인데.

       

       무서워서 달아나는 이가 생기진 않겠지?

       

       “아해들아. 이 자가 왜 사라졌는지 아느냐?”

       

       – 로그아웃 한 듯?

       – 전투 중에 나가면 패널티 생겨서 어지간하면 안 하는데 많이 무서웠나봄.

       

       아하. 게임을 하는 유저이기에 그런 식의 도주방법도 있는 것인가.

       

       덕분에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게 되었으니 수고를 덜었다 해야겠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시선을 돌리니 바루가 꼬리를 만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겁에 질려 있느냐?”

       

       현대의 사람이 놀라는 건 이해를 한다만 무림의 사람인 그대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손속에 망설임이 없구나.”

       “별 일 하지 않았다만?”

       

       좀 재미난 경험을 시켜 줄 생각이었으나 상대가 도주를 해버려 아무것도 못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 전에 한 일도 기껏해야 다리 좀 박살 낸 것 뿐. 잔인하다는 말이 끼어들 곳은 없을 터인데.

       

       애초에 말이다. 먼저 본인에게 적의를 드러낸 것은 저 남자일 터.

       

       본인은 그에 정당한 응대를 했을 뿐이거늘 그런 시선을 받아야 한다니 좀 억울하구나.

       

       적의에 그만한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건 무림의 상식이지 않은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 무슨 말이더냐?”

       “…아니다. 신경 쓰지 말거라.”

       

       바루는 고개를 내젓고는 폴짝 뛰어서 다시 내 어깨 위에 안착했다.

       

       이 녀석아. 말을 하다 말면 더 신경이 쓰이지 않으냐. 할 말이 있으면 시원하게 할 것이지.

       

       – 신령이 하려던 말이 뭔지 알 것 같다.

       – 너두?

       – 나두.

       

       “알 것 같으면 설명을 해 보거라.”

       

       – 사람 죽이는 데 익숙해 보이잖아.

       – 우리 입장에선 단순한 PK지만 NPC입장에선 다르니까.

       – 갑자기 사람이 바뀌어서 놀란 것도 있을 듯.

       – ㄹㅇ. 평소엔 은근 허술한데 싸울 때는 장난 아니잖아.

       – 가끔 이중인격처럼 보인다니까.

       

       시청자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에 허술하다니? 내가 언제 그랬단 말이더냐.”

       

       본인이 언제 진지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고 그러는 것인가.

       

       – 암요. 그렇죠.

       –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겠지.

       

       “그런 식으로 말을 할 게 아니라 제대로 이야기를.”

       

       – 마방석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거 받고 화 풀어.]

       

       “화가 난 게 아니라. 하아. 되었다.”

       

       여기서 더 따지고 들어가 봐야 나만 짜증이 날 것 같으니 그만하자꾸나.

       

       “그건 그렇다 치고 그대들 중에 방금 그 남자가 속한 문파에 대해 아는 이가 있느냐?”

       

       남자는 유저였다. 그러니 당연 남자가 속한 문파도 유저들끼리 만들어 낸 곳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게임을 하는 이들 중에 이 자가 속한 문파에 대해 아는 이도 있을 터.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 검은새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혈사파는 화룡무인에서 유명한 악질문파에요.]

       

       “악질이라 함은?”

       

       – 사파 컨셉이라면서 지랄하는 애들.

       – 혈교에 붙어서 온갖 나쁜 일 다하고 다님.

       – 사람들 다 싫어하고 얘네 보이면 PK거는 사람도 많아.

       

       그리 평이 좋지 못한 문파인 모양이구나. 거기에다 혈교와 관련이 있는 것도 맞는 것인가.

       

       “혈교와 관련이 있는 이들이라면 화산에서 다시 보게 될 수도 있겠구나.”

       

       지금 화산에서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혈교 나부랭이들이니 말이다.

       

       어디보자. 화산까지 가는 데에 삼십분을 더 걸어야 한다 했었지.

       

       이미 절반이나 왔는데 다시 돌아가 지역이동을 배울 수도 없는 노릇.

       

       일단은 부지런히 발을 움직여 화산을 향해 가자꾸나.

       

       *

       

       “씨발.”

       

       VR에서 빠져나온 박도윤은 기기를 벗어 던지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도대체 그 년은 뭐야.”

       

       화령. 최근 아피스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임으로써 여러 커뮤니티를 달구었던 유저이자 화룡무인을 시작하자마자 검선의 인정을 받은 괴물.

       

       도윤도 화령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당장 아피스에서 그녀가 벌인 위업만 해도 몇 개던가. 당장 프로로 데뷔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녀의 실력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피스에서의 일이었다.

       

       화룡무인과 아피스는 전혀 다른 게임이었다.

       

       모두가 비슷한 스펙을 지닌 아피스와 달리 화룡무인은 RPG에 가까운 게임. 오랫동안 게임을 해 온 유저와 막 시작한 유저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있었다.

       

       그걸 알았기에 도윤은 화령을 만나러 가면서도 자신이 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최상위권은 아니어도 나름 중견은 되는 유저인 도윤이다. 이제 막 튜토리얼을 끝낸 캐릭터에게는 질래야 질 수가 없으리라 여겼다.

       

       허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도윤은 방금 전에 자신이 당한 일을 떠올렸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 압박감을.

       

       자기를 무릎 꿇린 후 내려다보면 차가운 눈동자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리를 박살내던 그 동작을.

       

       자신과 눈을 마주하고 무덤덤하게 죽음의 방식을 읊조리던 그 목소리를.

       

       그게 이제 막 화룡무인을 시작한 유저라고?

       

       “지랄하네.”

       

       말이 안 되잖아.

       

       젠장. 문주 그 인간이 일을 떠넘길 때부터 뭔가 이상하단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체급도 실력이 엇비슷할 때나 의미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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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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