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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

         

         한가롭게 구경이나 할 때가 아니었음에도.

         

         장엄한 연극 무대나 하나의 행위 예술을 지켜보는 관객 마냥, 승객들은 물론이요 강도들마저 입을 벌린 채로 침묵을 지켰다.

         

         선혈을 내뿜으며 회전하는 머리, 중추 기관을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꾸물거리는 몸통.

         

         어쩌면 그 침묵의 기저엔 당혹뿐만이 아니라, 지금 성급하게 나섰다간 다음에 모가지가 날아가는 건 자신일 수도 있다는 직감 또한 결부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기묘한 마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버렸으니.

         

         철퍽….

         쿵!!

         

         호선을 그리며 튕겨 나간 빅보이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고, 고여 있던 거무죽죽한 죽은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던 육신도 붕괴되었다.

         

         시선을 강탈해가던 고기벽이 무너진 그제야 모든 이들은 화려하게 들어온 난입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천 뭉치 사이로 삐져나온 곱슬머리는 그의 인종을 짐작할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제공해주지 못했다.

         특기할 점은 역시 외팔이라는 건데… 여유가 있는 인간이었다면 진즉 재생 시술을 받던, 의수를 맞추던지 해서 약점을 보완했을 터다.

         

         하면 어부지리를 노리러 온 다른 스캐빈저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행색이 너무 말끔하지 않나?

         일반인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투쟁이 익숙한데?

         

         “흠….”

         

         고개를 흔들어 송골송골 맺힌 땀을 털어낸 그가 주변을 둘러봤다.

         집중된 시선을 받아낸 아시프는 겉으로는 정말 태연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살짝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원래는 이런 드라마틱한 대치 상황을 연출할 의도조차 없었다.

         여전히 수적 우위를 유지한 저들이 침착함을 되찾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난전을 이어 나가는 편이 훨씬 유리했으니까.

         

         “으음….”

         

         …그래. 혹사당한 팔과 과부하 된 임플란트가 말을 들어줬다면 말이다.

         

         아까부터 단검을 틀어쥔 채 굳어버린 손과 어깨를 움직여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던 그는 마지못해 인정했다. 모양새가 좀 나빠지더라도 여기서는 완급 조절이 필요하겠다는 걸.

         

         대화를 나눌 사람을 고르는 것처럼 좌중을 탐색하던 아시프의 눈이, 이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 하고 분위기를 살피던 승객들과 얼핏 마주치고 눈인사를 건넸다.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한 번 유추해보자면, ‘고생 많으십니다.’ 내지는 ‘조금만 더 수고하십쇼.’ 정도…?

         

         사실 딱히 돕고자 온 게 아니더라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상관없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객실 내부로 수류탄 같은 폭탄을 쑤셔 넣으려던 새끼들을 조져준 행위만으로도 신뢰할 이유는 충분했으니까.

         

         “그럼…!”

         

         그렇게, 멋쩍은 인사를 마친 아시프는 재빨리 왔던 길로 몸을 날렸고.

         

         “당장! 저 개새끼 죽여 이 머저리들아…!!”

         

         방해꾼의 의도를 알아보고자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갱단 두목은 포효와 함께 눈을 까뒤집었으며.

         

         “야! 씨발, 저 아재 총 맞는다!”

         “엄호 사격? 지원 사격?? 아무튼 일단 갈겨 봐!!”

         

         탕!! 타당! 탕—!

         

         승무원조차 배정되지 않은 입석칸에 뜻밖의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는 걸 깨달은 총기를 소지한 승객들은 앞다투어 몸을 돌린 강도들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비전문가들이 급한대로 쏘는 터라 빗나가는 탄환이 많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목숨 건 오지랖을 부린 그가 무사히 몸을 빼낼 기회를 버는 데는 성공.

         

         “이크!”

         

         살벌한 쇳소리와 공기 찢어지는 고음이 귓가를 스침과 동시에.

         탈옥수를 추격하듯, 발치에 튀는 불꽃을 간신히 따돌린 아시프가 벽 뒤로 숨었다.

         

         더 이상 이 난장판을 일으킨 연유를 그에게 따지려 들거나, 어떻게든 풀어보려는 사람은 남지 않았다.

         

         수비 측은 좆 같은 강도들에게 같이 엿을 먹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힘을 얻었고. 공격 측은 슬슬 앞쪽 화물칸에서 빼돌린 물건만으로 만족해야 할지, 본전이라도 챙겨서 도망가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기에.

         

         결국 끝까지 그의 뒤꽁무니에 따라붙은 적은 없었다.

         위기 상황도 어찌저찌 무사히 지나갔겠다. 아시프는 후들거리는 팔을 차가운 벽에 기댄 채로 천천히 문질렀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기행 아닌 기행에 나섰으나, 그는 본디 숙련된 사수射手. 그것도 초장거리전을 특기로 삼는 인재.

         그렇기에 비록 상태가 많이 불편하고 허전하기는 해도, 조금 더 노력해볼 여지는 남아있었다.

         

         “후우… 흡!”

         

         딸그랑! 하고 바닥에 두 사람분의 피로 엉망이 된 샴쉬르가 나뒹군다.

         

         벌벌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품안에서 가져온 핸드건을 꺼내 들었다.

         …잘 생각해보니 장전하는 수고로움을 고려하면 차라리 라이플을 가져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후회를 하며 그는 최대한 벽 모서리에 달라붙었다.

         

         되새겨야 하는 건 옛날 경험. 계산해야 하는 건 도출되는 궤도.

         

         – …너무 시원하게 깽판을 쳐서 인접한 카메라가 다 박살났잖아요! 이럼 음압(Sound Pressure; 공기의 진동)을 이용한 시각화 예측 모델밖에 못 만드는데…. –

         

         “박쥐 흉내가 처음도 아니니, 그걸로라도 적당히 해보도록 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대충대충 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자꾸만 엇나가려는 조준점을 다잡은 뒤.

         

         뻣뻣한 팔이 잘 말을 듣지 않자 아시프는 아예 탱크를 조종하듯 전신을 움직여서 사격 궤도를 조정, 복도로 빼꼼 내밀어진 건 오직 총구와 총열뿐. 머리는커녕 피격당할 만한 손가락조차 노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쪽 또한 총격전이 한창인지라, 각자 알아서 지형지물을 끼고 숨었기에 이런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맞출 대상이 전무했다.

         

         그렇기 때문에.

         안 그래도 더럽게 어지러운 탄도 계산식에 도탄이라는 변수까지 추가되었다.

         

         “…….”

         

         비스듬하게 눕혀진 핸드건이 바닥을 향한다.

         한 번 충돌해서 그 힘을 대다수 잃어버릴 권총탄으로 노릴 부위는 치명적인 급소가 많으면서도 강도가 약한….

         

         터엉—!

         

         “커흑?!”

         

         재장전 하느라 객실 문 뒤에 쪼그려 앉아있던 남자가 돌연 찾아온 후끈한 통증에 옆구리를 움켜쥐고 머리를 처박았다.

         

         찢어진 옷과 손가락 틈새로 울컥울컥 피가 샘솟는다.

         총성이야 당연히 무수히 많은 다른 총성에 파묻혔고, 돌아본 위치엔 같은 갱단원밖에 없었으니. 그의 머릿속엔 이게 무슨 좆 같다 못해 귀신이 곡할 노릇인가 하는 의문만이 떠돌았다.

         

         하지만 이미 내출혈과 장기손상으로 미래가 불투명해진 똘마니에게 매정한 아시프는 관심을 더 주지 않았다.

         한 번 사용해서 일그러진 위치에 또 발포하기엔 반사각이 예측이 힘들어서 자세를 바꾸고 새로 계산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니까.

         

         “큽!!”

         “썅…! 어느 병신이….”

         

         제일 탄도를 충실히 따른 탄두는 제이 탄도를 거쳐 목표물의 살점을 파고들고 내장을 찢는다.

         

         출처모를 공격에 피탄 당한 인원 사이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돈다.

         불신, 당혹, 공황. 다양한 감정이 아른거리고 슬금슬금 도망쳐야 하지 않겠냐는 나약하지만 달콤한 생각이 목구멍을 간질인다.

         

         실전에서 따라야 할 야전 교범(Field Manual)이라는 건 세상에 있는 조직의 숫자만큼 존재하고, 구시대의 지식까지 합치면 더더욱 그 수가 늘어난다.

         그 중에서도 아시프는 꼭 적을 다 죽여야 궤멸이 아니라, 전투 의지를 꺾는 것만으로도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논리를 따르는 파였다.

         

         “후우….”

         

         그런 의미로 보면 이제 거의 목표 지점에 다 왔다.

         게다가 아까 얼핏 봤을 때, 문 안쪽으로 사망자와 중상자가 다수 나온 게 보이긴 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 꽤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도울 수 있는 시민은 도왔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거기서 마무리되었다면 정말 완벽했겠지만….

         

         – 에…? ……으븝?! –

         

         팅!!

         

         난데없이 뇌간을 울린 높은 신음에 평정심이 깨진다.

         무심결에 발생한 집중력의 흔들림은 곧바로 몸에도 악영향을 끼쳐 기껏 발사한 총알이 엉뚱한 곳으로 튀게 만들었다.

         

         “……로잘린?”

         

         사이버웨어를 조작해 통신 품질을 확인해봐도 연결엔 문제가 없다고 나오거늘, 조용히 불러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들려오는 건… 거친 숨소리와 둔탁한 타격음. 그리고 중간중간 툭툭 끊어지는 그녀의 울음소리.

         

         “…….”

         

         말없이 으득! 하고 이빨이 갈려 나갔다. 마냥 딸내미 같던 동료(Teammate) 겸 전속 오퍼레이터가 다신 없을 모욕당하는 상황이 생중계되니, 방금 죽인 빅보이처럼 혈관이 파열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 있다. 사태가 악화되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릇된 방향으로 눈을 돌리는 쓰레기들이.

         

         누군가는 동료를 믿고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주장하겠으나… 지금 아시프의 앞에서 그딴 태평한 소리를 지껄이다간 자칫 목이 달아나리라.

         

         끼긱…!

         

         아직도 산소가 모자라서 노곤한 몸을 비틀거리며 일으켰다.

         

         지휘자가 변고에 휘말려 송신되는 시각 정보의 품질이 많이 일그러지긴 했으나, 마지막에 빗맞힌 공격으로 인해 후방에서 깔짝거리고 있던 그의 존재를 재차 확인한 적들이 다가오는 건 똑똑히 보였다.

         

         “…그렇게도 이승에 미련이 없다면 얼른 끝내주마.”

         

         속전속결. 총알을 몇 방 먹거나 말거나, 재빨리 정리하고 객실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이 섰다.

         

         어차피 자신은 호르몬 조절용 임플란트도 있어서 실혈이나 쇼크로 인한 전투불능 상태에 빠질 염려도 없다는 계산하에 이루어진 아슬아슬한 결정은.

         우습게도, 당장은 무시하기로 얘기했던 한 참견꾼의 활약으로 보류되었다.

         

         – …내가 용서해주기 정말 힘들거든? –

         – 지금이라도 얌전히 사라져주면…. –

         – …끌고가서 정리해버려. –

         

         “…허, 이것 참.”

         

         사사로운 과거의 원한 관계에 얽매이기 보단, 약자의 아군을 자청하며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인다.

         발걸음은 가볍지만 행동까지 가볍지는 않다.

         

         더군다나 친구면서도 적이 될 수도 있으니 아무튼 가깝게 지내자는 쾌활하면서도 헛웃음 나오는 제안은… 봉변을 당한 로잘린에게도, 간접 피해자인 아시프에게도 꽤 밝은 기분전환을 안겨주었다.

         

         …미심쩍던 임무가, 괜찮은 인맥으로 이어졌다는 기꺼움과 함께.

         

         – 으엑?! 통신이 왜 아직도… 리더! 그쪽은 괜찮아요? –

         

         “…심장은 좀 아프군.”

         

         곧 지원군이 도착할 테니, 부상당했더라도 조금만 버텨 달라는 로잘린의 통신을 대강 흘려 들은 그는 적들이 몸을 들이밀 예상 위치에 총구를 겨누고 기다렸다.

         

         지원군의 정체? 그건 굳이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제외하더라도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이라는 기인이 가세했다는 건, 자연스럽게 그 유별난 기계 병사도 따라온다는 걸 암시했으니까.

         

         “엉…? 누가 저렇게 열심히 달려오는….”

         “어? 어어어…???”

         

         우드득… 서걱. 으직!

         

         놈들이 대응방침을 의논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달려든 강철 짐승이 아시프를 처리하고자 빠진 별동대를 덮친다.

         

         차마 전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일방적인 폭력의 폭풍이 녀석들을 그대로 갈아버리고, 아무래도 객실에서 현장 보고를 기다리는 여성 둘에게 보낼 시청각 데이터가 필요한지 머리를 들이민 제로와 아시프의 시선이 교차했다.

         

         물끄러미. 통로-자신-을 향해 겨눠진 자기방위용 핸드건을 보고 아니꼽다는 듯이 빈정거리는 말투조차.

         

         벌써 싹터버린 내적 친밀감은 그저 좋게 좋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 …이건 혹시 시비거시는 겁니까? –

         

         “핫. 그럴 리가 있나.”

         

         아시프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즐겨 쓰던 팔 한 짝을 어디 사는 누군가가 허락도 없이 가져가버려서 항복의 제스쳐도 하기 어렵다는 안타까운 으쓱거림과 함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시프의 턴도 이걸로 끝.
    가라! 허당 소녀! 이 싸움을 끝내버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추천까지 아낌없이 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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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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