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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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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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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 이제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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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침은 어느새 멈췄지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 작게 기침을 하는 척을 유지하고 있었다.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살기 위한 구멍을 절실하게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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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해. 그렇지 않으면 꼴사납게 코피를 흘리면서 죽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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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여성의 몸은 유니콘의 사랑을 받는 남자를 천계로 보내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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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피를 흘리며 행복한 얼굴로 쓰러져 영혼이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장면은 개그 세계에서 종종 발생하는 사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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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머릿속에 ‘그 장면’을 한번 떠올려보곤 코가 시큰거리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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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죽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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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죽음의 공포에 리안의 몸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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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였다면, “어라? 리안 왜 그렇게 몸을 떨어?” 정도의 단순한 반응이 나올 법한 떨림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전혀 다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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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빠!”
   “젠장!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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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릴처럼 몸을 떨어대는 리안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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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떨어대는 리안의 모습에 릴리와 네로는 리안의 몸을 꽉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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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럽게 발작이 일어난 경우, 자신도 모르게 목을 조르거나 힘 조절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다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네로와 릴리는 강한 힘으로 리안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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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초조함에 몸을 떨었을 뿐인 리안은 쉽게 제압되었다. 문제는 제압한 사람이 릴리와 네로 뿐만 아니라, 노아도 있었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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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괜찮아?”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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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훅 다가온 노아가 어깨를 힘을 줘 누르자 떨림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리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아름다운 녹안에 갇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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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헙,허업…조,좋은 냄새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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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그저 노아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좋은 것일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훅 다가온 노아에게선 꽃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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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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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되겠어! 우선 눕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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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의 단호한 목소리에 네로가 빠르게 응답했다. 리안은 순식간에 침대에 눕혀지고 이불이 덮어졌다. 여기서 리안은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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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아악…! 노, 노아 향기가 너무 가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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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눕혀진 곳이 노아의 침대였던 탓에, 그녀의 체향이 리안을 감싸 안는 것 같았다. 뒤늦게 맡아지는 향기에 자신도 모르게 킁킁거릴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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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의 의지를 내보이며 깨물어 버린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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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술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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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 형이 피를…!”
   “잠깐만 기다려 이번에 새로 구한 마도구로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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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다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 세 사람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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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가서 다른 치료사를 데려올게!”
   “아, 이번에 새로 들어온 그 뮤칸이라는 사람?! 그래, 그 사람이라면 원인을 알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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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칸은 사천왕이 외부 본관을 습격했을 때 몰려오는 몬스터를 두려워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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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숭고한 노력 덕분에 꽤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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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조직에서 반쯤 노예처럼 일하던 뮤칸은 경력이 매우 많은 치료사였기에, 그녀라면 리안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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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뮤칸을 데려오기 위해 다급히 방을 뛰쳐나가고 릴리가 처음 보는 마도구로 리안을 진단하려 했다.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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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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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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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갑작스럽게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키더니 말려보기도 전에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아니, 방에서 뛰쳐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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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어어?”
   “리,리안 형! 그 몸으로 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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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다 빨리 정신을 차린 네로가 뒤늦게 리안의 뒤를 따라 방을 뛰쳐나왔다. 네로가 밖으로 빠져나왔을 땐 리안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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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어? 형? 어디 있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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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행랑칠 때는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도망치는 개그 세계 주민답게 거의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사라져버린 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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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가 뮤칸을 반쯤 들어 올리다시피 하여 데려왔지만 리안은 이미 사리진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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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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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은 꽤 많은 방이 비어있었다. 건물 크기에 비해 간부들의 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리안은 사람들이 평소 잘 드나들지 않는 방 중 한 곳을 들어와 벽에 이마를 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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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에 쌓인 의자나, 테이블을 봐선 창고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잘 관리되지 않던 장소인지 먼지가 얇게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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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적 충격이 극심한 리안에겐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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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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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작게 신음을 흘리다가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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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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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에 이마를 박았다. 손뼉을 치는 것보다 못한 자극이 이마를 때렸다. 별로 안 아프단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행위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을 점령하려는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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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쿠웅!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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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몇 번이고 머리를 박자 이마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살짝 까진 피부에서 핏물이 한 방울 흘러나와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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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을 한 대 맞으면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는 것처럼, 이마를 벽에 쿵쿵 박으면 지금처럼 한 방울의 핏물이 예술 작품처럼 얼굴 위로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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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개그 세계의 수많은 법칙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리안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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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에게 중요한 건 혼돈 상태가 되어버린 머릿속 상태였다. 굳이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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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 가슴!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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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미니 리안들이 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중간중간 ‘네가 무슨 신관이냐!’라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오랜 시간 굶주려 온 본능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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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기억’에 관한 추잡한 생각부터, 노아와 결혼해 애를 낳아 대대손손 행복하게 사는 상상까지 -… 온갖 장면들로 리안은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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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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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지나지 않아 리안은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벽에 머리를 박은 효과가 있는지 얼추 이성의 힘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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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서 시위하던 미니 리안들이 우르르 감옥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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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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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그제야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한쪽에 밀어놓았던 의문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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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지기 직전에 보았던 ..‘그 장면’과 막 깨어났을 때 보았던 노아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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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장면이 사실이라면 평소 노아의 모습은 말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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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붕대나 옷으로 압박한다고 해도 그렇게 커다란 걸 숨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귓바퀴와 볼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꿋꿋이 생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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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내가 봤던 그 장면이 꿈이었다는 게 더 말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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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걸 리안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장면’을 마주한 순간 누군가가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린 것처럼 밀리초 단위로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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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응… 남장이라기엔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그 일이 꿈은 아닌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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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끙끙거리던 리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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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직접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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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능에 눈이 멀어버린 미니 리안들을 감옥에 가둬버린 덕분일까? 리안은 노아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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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그럼 우선 방에서 나가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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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중얼거리며 몸을 휙 돌려 나가려는 순간 제 꼴이 눈에 들어왔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제 상의가 반쯤 풀려있으며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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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절한 리안이 불편하지 않도록, 네로가 편안한 셔츠로 갈아입히고 릴리가 신발과 양말을 벗긴 탓이었다. 리안은 까맣게 물든 제 발을 보며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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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로 신을 법한 것이 있나 찾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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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끙, 안 보이네. 그냥 빨리 노아의 방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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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결론 내리며 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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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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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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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쪽으로 향하던 중 툭 튀어나와 있는 의자 모서리에 어깨가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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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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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게 쌓여있던 의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이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리안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쏟아지는 의자에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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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장창! 쾅, 쿠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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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의자가 이리저리 부서지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리안은 자욱하게 올라오는 먼지에 연신 기침했다. 먼지 때문에 눈이 충혈되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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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혼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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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그리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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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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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란을 듣고 누군가 달려온 것이다. 리안은 우선 먼지가 자욱한 방에서 빠져나가야겠단 생각에, 다급히 문 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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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구들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곳에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다가 그만 새끼발가락이 테이블 다리 모서리를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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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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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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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득한 고통에 리안은 그대로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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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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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지나지 않아 각혈이 입을 통해 토해졌다. 치명상을 입은 탓이었다. 분명 다친 곳은 새끼발가락이었지만 온몸이 두드려맞은 것처럼 통증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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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허리를 앞으로 둥글게 말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입가에서 쏟아진 핏물이 바닥을 적시자 다급히 입가를 손으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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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 핏물은 청소하기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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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마검을 소환하면 괜찮지 않을까?’같은 생각을 하며 징징 울리는 새끼발가락을 움켜쥐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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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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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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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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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온 사람은 창백한 얼굴을 한 노아였다. 리안은 노아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알아차렸다. 오늘은 제대로 대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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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눈이 곧바로 땅바닥에 처박히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그 장면’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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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금슬금 몸을 뒤로 빼려는 순간 순식간에 다가온 노아가 리안의 어깨를 틀어쥐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노아가 본 리안 : 알 수 없는 이유로 피를 쏟으며 기절, 아프면서 “괜찮다”발언하기, 위급한 상황에 도망치기, 혼자서 먼지 가득한 창고에서 피흘리고 있기, 울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로 시선 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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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생각했다.

‘으으, 이제 어쩌지?’

기침은 어느새 멈췄지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 작게 기침을 하는 척을 유지하고 있었다.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살기 위한 구멍을 절실하게 찾기 시작했다.

‘빠,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해. 그렇지 않으면 꼴사납게 코피를 흘리면서 죽을 수도 있어!’

아름다운 여성의 몸은 유니콘의 사랑을 받는 남자를 천계로 보내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코피를 흘리며 행복한 얼굴로 쓰러져 영혼이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장면은 개그 세계에서 종종 발생하는 사건 중 하나였다.

리안은 머릿속에 ‘그 장면’을 한번 떠올려보곤 코가 시큰거리는 걸 느꼈다.

‘정말 죽을지도 몰라..!’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죽음의 공포에 리안의 몸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개그 세계였다면, “어라? 리안 왜 그렇게 몸을 떨어?” 정도의 단순한 반응이 나올 법한 떨림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전혀 다르게 보였다.

“오,오빠!”

“젠장! 저주인가?”

드릴처럼 몸을 떨어대는 리안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떨어대는 리안의 모습에 릴리와 네로는 리안의 몸을 꽉 붙잡았다.

갑작스럽게 발작이 일어난 경우, 자신도 모르게 목을 조르거나 힘 조절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다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네로와 릴리는 강한 힘으로 리안을 짓눌렀다.

그저 초조함에 몸을 떨었을 뿐인 리안은 쉽게 제압되었다. 문제는 제압한 사람이 릴리와 네로 뿐만 아니라, 노아도 있었다는 데 있었다.

“리안 괜찮아?”

“헉..”

훅 다가온 노아가 어깨를 힘을 줘 누르자 떨림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리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아름다운 녹안에 갇히고 말았다.

‘헙,허업…조,좋은 냄새가 나.’

샤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그저 노아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좋은 것일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훅 다가온 노아에게선 꽃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리안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안 되겠어! 우선 눕히자!”

릴리의 단호한 목소리에 네로가 빠르게 응답했다. 리안은 순식간에 침대에 눕혀지고 이불이 덮어졌다. 여기서 리안은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흐,아악…! 노, 노아 향기가 너무 가득해!’

리안이 눕혀진 곳이 노아의 침대였던 탓에, 그녀의 체향이 리안을 감싸 안는 것 같았다. 뒤늦게 맡아지는 향기에 자신도 모르게 킁킁거릴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필사의 의지를 내보이며 깨물어 버린 탓일까?

입술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릴리! 형이 피를…!”

“잠깐만 기다려 이번에 새로 구한 마도구로 어떻게든…”

리안이 다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 세 사람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당장 가서 다른 치료사를 데려올게!”

“아, 이번에 새로 들어온 그 뮤칸이라는 사람?! 그래, 그 사람이라면 원인을 알지도 몰라!”

뮤칸은 사천왕이 외부 본관을 습격했을 때 몰려오는 몬스터를 두려워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녀의 숭고한 노력 덕분에 꽤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다른 조직에서 반쯤 노예처럼 일하던 뮤칸은 경력이 매우 많은 치료사였기에, 그녀라면 리안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노아가 뮤칸을 데려오기 위해 다급히 방을 뛰쳐나가고 릴리가 처음 보는 마도구로 리안을 진단하려 했다. 그 순간.

벌떡!

“어어?”

“형?”

리안이 갑작스럽게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키더니 말려보기도 전에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아니, 방에서 뛰쳐나가 버렸다.

“어어어어?”

“리,리안 형! 그 몸으로 어디가?!”

보다 빨리 정신을 차린 네로가 뒤늦게 리안의 뒤를 따라 방을 뛰쳐나왔다. 네로가 밖으로 빠져나왔을 땐 리안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어? 어어? 형? 어디 있어? 형?”

줄행랑칠 때는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도망치는 개그 세계 주민답게 거의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사라져버린 리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가 뮤칸을 반쯤 들어 올리다시피 하여 데려왔지만 리안은 이미 사리진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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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꽤 많은 방이 비어있었다. 건물 크기에 비해 간부들의 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리안은 사람들이 평소 잘 드나들지 않는 방 중 한 곳을 들어와 벽에 이마를 붙이고 있었다.

주변에 쌓인 의자나, 테이블을 봐선 창고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잘 관리되지 않던 장소인지 먼지가 얇게 쌓여있었다.

정신적 충격이 극심한 리안에겐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으으…”

리안은 작게 신음을 흘리다가 이내.

쿵!

벽에 이마를 박았다. 손뼉을 치는 것보다 못한 자극이 이마를 때렸다. 별로 안 아프단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행위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을 점령하려는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었다.

쿵! 쿠웅! 쿵!

그렇게 몇 번이고 머리를 박자 이마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살짝 까진 피부에서 핏물이 한 방울 흘러나와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얼굴을 한 대 맞으면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는 것처럼, 이마를 벽에 쿵쿵 박으면 지금처럼 한 방울의 핏물이 예술 작품처럼 얼굴 위로 흘러내린다.

이는 개그 세계의 수많은 법칙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리안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리안에게 중요한 건 혼돈 상태가 되어버린 머릿속 상태였다. 굳이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가슴! 가슴! 가슴!’

머릿속에 미니 리안들이 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중간중간 ‘네가 무슨 신관이냐!’라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오랜 시간 굶주려 온 본능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기억’에 관한 추잡한 생각부터, 노아와 결혼해 애를 낳아 대대손손 행복하게 사는 상상까지 -… 온갖 장면들로 리안은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으윽…”

얼마지나지 않아 리안은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벽에 머리를 박은 효과가 있는지 얼추 이성의 힘이 돌아왔다.

머릿속에서 시위하던 미니 리안들이 우르르 감옥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하아아..”

리안은 그제야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한쪽에 밀어놓았던 의문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쓰러지기 직전에 보았던 ..‘그 장면’과 막 깨어났을 때 보았던 노아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장면이 사실이라면 평소 노아의 모습은 말이 안 돼.’

아무리 붕대나 옷으로 압박한다고 해도 그렇게 커다란 걸 숨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귓바퀴와 볼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꿋꿋이 생각을 이어갔다.

‘차라리 내가 봤던 그 장면이 꿈이었다는 게 더 말이 될 거야.’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걸 리안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장면’을 마주한 순간 누군가가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린 것처럼 밀리초 단위로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끄응… 남장이라기엔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그 일이 꿈은 아닌 것 같고.’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끙끙거리던 리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냥 직접 물어보자!”

본능에 눈이 멀어버린 미니 리안들을 감옥에 가둬버린 덕분일까? 리안은 노아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좋아, 그럼 우선 방에서 나가서…아.”

그리 중얼거리며 몸을 휙 돌려 나가려는 순간 제 꼴이 눈에 들어왔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제 상의가 반쯤 풀려있으며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기절한 리안이 불편하지 않도록, 네로가 편안한 셔츠로 갈아입히고 릴리가 신발과 양말을 벗긴 탓이었다. 리안은 까맣게 물든 제 발을 보며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신발로 신을 법한 것이 있나 찾기 시작한 것이다.

‘끙, 안 보이네. 그냥 빨리 노아의 방으로 돌아가자.’

그리 결론 내리며 문 쪽으로 향했다.

텁!

“엇?!”

문 쪽으로 향하던 중 툭 튀어나와 있는 의자 모서리에 어깨가 부딪쳤다.

끼이익..

높게 쌓여있던 의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이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리안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쏟아지는 의자에서 도망쳤다.

와장창! 쾅, 쿠르릉!

낡은 의자가 이리저리 부서지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리안은 자욱하게 올라오는 먼지에 연신 기침했다. 먼지 때문에 눈이 충혈되는 게 느껴졌다.

“으으..혼나겠네.”

리안은 그리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닷!

그 순간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란을 듣고 누군가 달려온 것이다. 리안은 우선 먼지가 자욱한 방에서 빠져나가야겠단 생각에, 다급히 문 쪽으로 달려갔다.

가구들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곳에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다가 그만 새끼발가락이 테이블 다리 모서리를 차버렸다.

우드득!

“끅…?!”

아득한 고통에 리안은 그대로 몸을 떨었다.

“커헉…”

얼마지나지 않아 각혈이 입을 통해 토해졌다. 치명상을 입은 탓이었다. 분명 다친 곳은 새끼발가락이었지만 온몸이 두드려맞은 것처럼 통증이 밀려왔다.

리안은 허리를 앞으로 둥글게 말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입가에서 쏟아진 핏물이 바닥을 적시자 다급히 입가를 손으로 막았다.

‘으아, 핏물은 청소하기 힘든데!’

리안이 ‘마검을 소환하면 괜찮지 않을까?’같은 생각을 하며 징징 울리는 새끼발가락을 움켜쥐고 있을 때.

콰앙!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리안!”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온 사람은 창백한 얼굴을 한 노아였다. 리안은 노아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알아차렸다. 오늘은 제대로 대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리안의 눈이 곧바로 땅바닥에 처박히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그 장면’ 탓이었다.

슬금슬금 몸을 뒤로 빼려는 순간 순식간에 다가온 노아가 리안의 어깨를 틀어쥐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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