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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EP.102

     

   마왕성의 인근에는 사람들의 마을 어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수 자원이 풍부한 편이었다.

     

   물론 땅 자체가 풍요롭다는 말은 아니었다.

   마왕성의 기운으로 인해 기본적인 과일이나 채소 따위가 자라지 못 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 어떤 척박한 땅에서도 자란다는 구황 작물이나 웬만한 곡식도 그건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유일하게 넘쳐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마왕성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에너지원 삼아서 살아가는 마력초나 어류, 어패류, 그 외 짐승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힘을 가지고 마왕성의 주변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던 포식자가 하나 있었으니.

     

   -크와아앙!

     

   그가 바로, 호수의 파란 이무기 ‘크레센도’.

   녀석은 과거, 탑의 5층이 만들어진 이래로 호수에 자리를 잡은 뒤, 그곳을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왕성의 주변이었기에 애초에 잡스러운 몬스터들이 찾아올 일도 없었다.

   게다가 마왕성에서 뿜어진 마력을 먹고 자란 영양가 풍부한 음식들이 지천에 널렸으니, 굳이 그곳을 벗어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마력이 넘치는 식단과 지상보다 마력과 압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물속에서의 수련.

   그 긴긴 시간 속에서 녀석은 블루 와이번의 신분을 벗어나 이무기라는 보급형 드래곤 정도의 격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녀석이 서식하는 호숫가에 탑이 어쩌고 마왕이 어쩌고 알 수 없는 말을 떠드는 소수의 인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왕성이 코앞이군. 여기에서 조금 쉬다 갈까?」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다들 잠시 체력을 보충하긴 해야 할 것 같군요.」

   「오는 길에 오크 부락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들은 자연스럽게 호숫가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호수의 물을 정화해서 마시고, 손을 씻거나 옷가지와 얼굴에 붙은 딱딱하게 굳은 피를 닦아냈다.

     

   귀찮았다. 하지만 시비가 붙어서 인간들과 싸우는 건 좀 무서웠다.

   그랬기에 크레센도는 그들이 호수를 떠나기를 묵묵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그때.

     

   「오, 여기 물고기가 사네요? 우리 하나 잡아먹고 갈까요?」

     

   아.

     

   마법사로 추정되는 눈치 없는 백발 여자의 발언에 크레센도는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감히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도 모자라 일용할 양식까지 강탈하려 하다니, 이렇게 개탄스러운 일이 또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헛소리 말게. 마왕성 옆에 있는 물고기에 무슨 독이 있을 줄 알고…… 응?」

     

   눈치 없는 마법사를 막아서는 도복의 노인의 등장.

   하지만 그의 발언에 크레센도의 마음이 편해진 것도 잠시, 노인이 호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녀석의 마음 한 편에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저건 화리가 아닌가?」

     

   노인의 말을 필두로 호수를 기웃거리기 시작하는 도복 무리.

   뒤에 있던 마법사나 중갑옷을 입은 기사들은 별 반응이 없었으나, 그때쯤 도복 무리들이 일제히 감탄을 터트리며 말을 잇자 그들도 호숫가로 달려왔다.

     

   「마, 맞는 것 같습니다! 스승님!」

   「저기! 저거 혹시 자패 아닙니까? 어찌하며 극양의 영물과 극음의 영물이 한 곳에……」

   「놀라울 따름이구나, 저 성에서 흘러나오는 마력 때문에 이런 영물들이 나타난 것인가?」

     

   그들이 ‘화리’라 부른 물고기와 ‘자패’라 부른 조개.

   그 둘은 크레센도가 처음 입에 댔을 때, 몸이 달아오르고 이가 시려서 먹지 않은 두 가지의 음식이었다.

     

   「당 아저씨. 지금 무림 소속 플레이어들이 저 물고기를 보고 화리라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대체 뭐예요? 자패는 또 뭐고요.」

   「잉? 자네 세상에는 화리가 없나?」

     

   백발 마법사의 물음에 당 아저씨라 불린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화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의 기운을 머금어 내단을 지니게 된 붉은 잉어.

   그리고 극음의 정기를 받아 진주를 품게 된 조개.

     

   그 둘을 화리와 자패라 불렀고 노인의 설명을 따르자면 크레센도가 편식을 하여 먹지 않은 저 두 가지 음식은 이 호수에서 가장 귀하다 할 만한 자원이 아닌가 싶었다.

     

   부글부글……

     

   「응? 방금 수면에 기포가 올라온 것 같은……」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크레센도는 자신의 음식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졌다.

     

   -크와아앙!!!

     

   녀석은 처음으로 호수 밖으로 몸을 내보였다.

   수십 년간 지켜온 영역을 사수하기 위해, 그리고 맛없다고 걸렀던 자신의 소중한 영양식을 사수하기 위해!

     

   「요,요,용이다!!!」

   「이런 미친! 그래, 저런 영물이 조약돌처럼 굴러다니는데 왜 이렇게 조용하나 했네!!!」

     

   녀석의 등장에 플레이어들은 혼비백산했다.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격, 그저 겉모습만 보더라도 무림의 사람들에게 용이라는 비주얼은 그들을 위축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펄럭! 콰아앙!

     

   녀석이 이제 슬슬 성장하는 조막만 한 날개를 펼쳐 주변을 내려치니 사람들이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한다.

     

   사실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쳤다면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더라도 녀석을 처치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만나는 부류의 몬스터이기도 했고 마왕성의 클리어가 코앞인데 마왕의 하수인도 아닌 녀석과 싸우며 전력을 잃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리된 싱거운 싸움.

   그 플레이어들이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 크레센도는 알 수 없었다.

     

   그 이후, 호수와 식량을 지켜낸 블루 와이번 크레센도는 가려 먹던 붉은 물고기와 파란 조개를 골고루 섭취했다.

   그렇게 녀석은 기존의 몇 단계를 초월한 격을 얻게 되었고 호수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웬걸.

     

   쿵! 쿵! 쿵! 쿵!

     

   꽤 오랜 세월이 지나며 더 이상은 없을 줄 알았던 침입자들의 그의 영역을 침범했다.

     

   -…으라!

   -……잡아서 통째로 구워 버리라!

     

   쿠윅!!!

     

   과거부터 거슬려서 언젠가는 박멸해야겠다 싶던 오크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기에 신중에 신중을 가하던 크레센도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이 물러가도록 위협을 가했다.

     

   「크롸아악!!!」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자, 오크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전투법.

     

   크레센도가 봤을 때, 지금의 오크들은 이렇게 쳐다만 보고 있어도 금방 후퇴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

   녀석은 오크들이 먼저 그의 호수를 침범하지 않기를 바랐고 그 방법으로 자신의 위용을 놈들에게 뽐내고자 날개를 최대한 강하고 빠르게 활짝 펼쳤다.

     

   화아악!!!

     

   녀석의 날갯짓만으로 곳곳에 돌풍이 불어 닥치며 뿌리가 얕은 나무들이 하나둘 맥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것은 오크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것은 그 이후의 상황이었다.

     

   -쿠윅? 이, 이건 물고기라?

   -음식…! 음식이라!!!!!

     

   음식을 본 놈들의 눈이 뒤집어졌다.

   위협을 가하고자 했던 날갯짓이 오랜 시간 게으름에 잠들어 있던 크레센도의 날개에 기생하던 어패류와 어류를 털어낸 것.

     

   오크들은 그렇게 놈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전투, 수많은 오크를 찢고 후려치며 해치웠다.

   하지만 한 마리를 쓰러뜨리면 열 마리가. 열을 쓰러뜨리면 그 뒤에 서른, 마흔 마리가 나타나 녀석에게 창과 도끼를 던졌다.

     

   크레센도는 점점 지쳐갔다.

   온몸에는 생채기가 생겨나고 이윽고 날갯죽지가 찢어지며 날갯짓에도 어마어마한 고통이 수반됐다.

     

   하지만 그때.

     

   「엥? 김시인 씨, 어디 가요? 마왕성은 그쪽이 아닌데요?」

     

   익숙한 목소리가 녀석의 청각을 자극했다.

     

   붉은 눈에 백발.

   과거 크레센도에게 화리와 자패라는 영물의 정보를 얻게 해준 마법사의 목소리에 녀석은 급하게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봤다.

     

   그 여자가 맞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온 것이 아닌, 단 한 명의 흰 도복을 입은 남자와 함께 나타났다.

     

   -크롸아아아!!!

     

   녀석은 포효했다.

   아니, 정확히는 울었다. 나 좀 살려주라. 우리 서로 알던 사이잖아 라고.

     

   그리고 그의 부름에 응답한 것은 백발의 마법사가 아닌, 한 걸음 앞으로 걸어온 백의의 남자였다.

     

   ***

     

   “저거 지금 울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네, 울고 있네요.”

   “아니, 으르렁하고 우는 거 말고 엉엉 우는 거 같다고.”

     

   나의 말에 토끼가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한 번 드래곤이 있는 호수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봐도 찡찡거리며 울고 있는 듯한 느낌.

   내가 살면서 드래곤을 본 것도 처음이고 파충류가 눈물을 찔끔거리는 것조차 본 적이 없지만, 아무리 봐도 울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아무렴 어떤가 생각하며 호수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인간…! 아까 그 인간이라!!!

   -방해! 죽으라!!!

     

   나를 알아보고 무기를 휘두르는 오크들.

   하지만 호수의 드래곤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놈들이 갑작스럽게 기습을 가하는 나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서걱! 서걱!

     

   한 걸음을 뗄 때마다 한 놈의 목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진다.

   감히 감당하지 못할 가공할 속도와 위력. 하지만 놈들의 수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고 놈들을 다 베어내기 전에 저 파란 드래곤이 목숨을 잃게 될 것 같았다.

     

   ‘호수에 살던 놈이니 추위에는 강하겠지……!’

     

   추뢰신법 追雷身法

     

   파츠츳!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한철검을 앞으로 내세우며 호수를 방향을 향해 보법을 펼쳤다.

     

   순식간에 시야를 스쳐 가는 주변의 풍경.

   오크를 베지 않고 오로지 달리는 것에만 힘쓰니 나는 금방 호수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고 적당한 거리가 되자 나는 최대한 높이 도약해 호수의 중앙으로 몸을 날렸다.

     

   ‘지금 필요한 건…!’

     

   나는 곧장 아공간 주머니에 챙겨둔 서늘한 보석을 하나 꺼내 들었다.

     

   —

   [한기의 심장 (S)]

   —

     

   3층에서 가져온 세 가지 물건 중 하나.

     

   한기의 심장을 사용하는 동시에 나의 입가에 서리가 맺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 한철검이 차갑게 굳어지며 새로운 메시지를 띄웠다.

     

   [극음의 기운에 한철검이 반응합니다.]

   [마력 Lv.5가 추가로 상승합니다.]

     

   쩌저적!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호수 중심의 습한 공기가 얼어붙자 공기 중에 서리가 맺히기 시작했고 이내 호수에 냉기가 닿자 호수의 표면이 순식간에 결빙했다.

     

   “흐읍!”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나는 한철검을 역수로 쥔 채, 얼어붙은 호수에 직선으로 내리꽂으며 마력을 방출했다.

     

   쫘자자자자작!!!

     

   더 이상 육안으로 보이는 흐르는 물은 그곳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얼어붙은 호수 속에서 발을 빼려고 버둥거리는 당황한 드래곤과 산 채로 냉동이 된 오크들 뿐.

     

   “하아아……”

     

   입에서 여전히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나마 외곽에 있던 오크들은 발 빠르게 호수를 벗어나긴 했지만, 위험을 감지한 것인지 함부로 덤벼들 생각은 못 하는 것 같았다.

     

   “와, 미친?”

     

   멀리서 나를 보던 토끼가 감탄을 터트리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짧은 정적이 지나간 후.

     

   -포기……

     

   덩치로 봐서 서열이 높을 것 같은 오크가 입을 열었다.

     

   -밥은 다음이라…

   -쿠윅……

     

   놈들은 그곳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드래곤과의 싸움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고 지친 상태에서 죽어 버린 동료들을 뒤로한 채.

     

   “김시인 씨! 이 녀석은 어쩌죠?”

     

   처음에 드래곤이 등장했을 때부터 도망가자며 재촉하던 토끼 녀석이 기세등등하게 얼어붙은 호수 위로 뛰어온다.

     

   드래곤의 하체가 대부분 얼어붙었으니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는 안심.

   하지만 그것은 토끼만의 착각이었다.

     

   드드득…

     

   “엥?”

   “아직 아니야.”

   “뭐가요?”

   “저거 데미지 하나도 안 들어갔다고.”

     

   얼어붙었던 호수에 균열이 생기며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도와달라며 칭얼거리는 듯도 했지만, 오크들이 빠지자마자 기세가 반전되며 다시 분노하는 괴물의 모습.

     

   -크롸아아!!!

     

   와장창!!!

     

   놈이 고래고래 괴성을 지르며 호수 밖으로 한 발을 꺼냈다.

   온몸 비틀기가 진행되며 서서히 얼음을 뚫고 빠져나오는 괴물.

     

   -아아아…아?

     

   하지만 녀석의 포효는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정의의 사도랍시고 안일하게 악당들 앞에서 변신을 시작하는 머저리들을 상당히 싫어하던 현실적인 어린이였으니까.

     

   -롸?

     

   “안녕?”

     

   녀석의 코앞까지 뛰어오른 나.

   그리고 놈은 한 발을 여전히 빼지 못한 채, 나의 공격을 직격으로 허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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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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