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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왠지, 파란색 미니 사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시도해 보니….

    진짜 푸른 사신이 나타났다.

    황금 사신들도 신기한지 내 손바닥 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갓난아기 동생을 바라보는 것 같은 표정이네.

    생김새는 황금 사신처럼 나랑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손바닥 위에서 잠이 든 것처럼 누워있는 푸른 사신은 황금 사신과 비교하면 조금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모자를 썼다는 점일까? 

    물로 만들어진 커다란 마녀 모자.

    몸통은 푸른색을 띤 점을 제외하면 훨씬 투명했다.

    마치 깨끗한 물처럼 말이다.

    투명한 몸통 안에는 미약하게 빛나는 장작이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푸른 사신의 머리카락 가장자리는 마치 안개처럼 흐려져 몽환적인 느낌을 풍겼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눈을 깜빡거리던 푸른 사신은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에는 관심 있게 쳐다보는 황금 사신들.

    그 시선들을 느낀 건지, 푸른 사신은 두 손으로 모자를 푹 눌러쓰더니 쭈그려 앉았다.

    설마 이거 부끄러워하는 건가?

    그리고 한 손으로 허공에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자의 나열.

    하지만 내 눈에는 저절로 이해되었다.

    <선 채로 곤히 잠들어 주세요.>

    물로 만들어진 글자가 허공에서 나타나더니, 빛으로 변해 나에게 몰려들었다.

    뭔가 마법사 같은 녀석이 튀어나왔네.

    슬그머니, 모자를 올려서 나를 확인하는 푸른 사신.

    잠들지 않은 나를 보고는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다시 모자를 푹 눌러 썼다.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보니 ‘펑’ 하고 안개로 변해서 사라져 버렸다.

    ***

    서울 숲 한가운데, 오래된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은 벽돌집은 현대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풍화와 이끼로 뒤덮인 벽돌은 마치 자연에서 자란 것처럼 주변 환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묘한 매력을 가진 벽돌집 안에는 조금 색다른 풍경이 보였다.

    마치 판타지 소설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도구와 가구들.

    커다란 벽난로에서는 따스한 온기를 뿜어내며 벽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벽난로의 불빛이 방을 가로질러 춤을 추며 기묘한 기호가 새겨진 가죽으로 손수 제본된 책과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 찬 선반을 비추고 있었다.

    두루마리와 양피지가 어지럽게 놓여있는 튼튼한 나무 탁자 위에는 정체불명의 병이 놓여있었다.

    은은한 빛을 내며 정체불명의 액체가 담긴 병.

    병에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흐르며 맥동하는 액체가 담겨 있었는데, 확실히 쉽게 보기 힘든 물품이었다.

    서울 숲에서만 발견되는 이국적인 허브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고, 허브 찌꺼기로 얼룩진 절구가 그 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판타지 세계를 잘라서 붙여놓은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소녀가 말했다.

    “언니, 양천구 호수 놀러 가면 안 돼?”

    “안 돼.”

    식량을 사려고 잠깐 들린 서울에서 본 ‘양천구 호수’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르게 물들 것만 같은 멋진 관광지로 보였다.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야? 다들 아무 문제 없이 놀러 가는 것 같은데.”

    “절대로 안 돼. 얼마나 그곳이 위험한지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지.”

    장신의 여자는 찬장에서 자연스럽게 하얀 풀을 꺼내며 말했다.

    “마도서, 아니 오브젝트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이해할 수 없지만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

    하얀 풀에 불을 붙이자, 우유색 불꽃이 솟아올랐다.

    나무 탁자 위에서 활활 타오르던 하얀 풀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버렸다.

    손바닥으로 재를 쓸어내자, 탁자 위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하얀 풀처럼 오브젝트는 기본적으로 주변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지. 그걸 극대화한 게 양천구 호수라고 보면 된다.”

    수많은 예시가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화형 오브젝트는 주변은 멀쩡한데 사람만 불태운다던지 등등.

    물론 예외는 당연히 있으니까, 맹신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여동생을 진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거기선 사람이 죽어도 슬프지 않고, 이상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그리고 ‘지금’ 안 간다는 거지. 조만간 갈 예정이니까,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

    “정말? 정말 갈 거지?”

    싱글벙글한 여동생을 보면서 여자는 마음속으로 살짝 사과했다.

    기대하던 호수 여행이 아닐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

    노파를 처리한 뒤 돌아온 유람선은 아주 조용했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세희 연구소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걱정되는지, 쓰러진 사람마다 황금 사신이 달라붙어서 간호 중이었다.

    우울한 표정의 황금 사신들.

    안개가 사라지고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호수로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잠이 든 채였다.

    노파를 해치워도 잠에서 깨지를 않네.

    ‘푸른 달의 힘’을 빌려주겠다고 했었으니까.

    푸른 달을 박살 내야 잠에서 깨어나려나?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봐도 달은 붉은 달과 보통의 달뿐이었다.

    그러던 중, 호수에서 엄청난 악취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들도 화들짝 놀라더니 내 쪽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

    왜 나를 보는 거지?

    뚜방뚜방.

    후다닥.

    걸음을 옮기면 그만큼 황금 사신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쳤다.

    설마 지금 나를 피하고 있는 거야? 

    실수 좀 몇 번 했다고 이러면 섭섭한데….

    ***

    제대로 태양 빛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짙게 칠해진 창문을 가진 트럭 안에서 두 명의 남자가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런 일은 하청을 줘도 되는 일 아니야? 갑자기 왜 직접 감독하라고 그러는 거지?”

    “저번에 제임스 공장 실패 때문일걸. 그 ‘완벽하신’ 소장님이 실패해 버렸으니 얼마나 화가 나시겠어.”

    남자 두 명은 보기 드물 게 화를 내던 소장을 생각하면서 낄낄거렸다.

    “솔직히 저번 사건이 조금 이상하긴 해. 소장은 오브젝트 관련해선 거의 모르는 게 없는 수준이었는데, 실패해 버리다니.”

    “난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뭔 데이터나 실험 결과를 들이밀어도 무조건 자기 말이 정답이라고 우기기만 하잖아.”

    “하긴 그 양반은 연구소장이라기보다는 예언가에 가까웠지. 억지만 부리는데 시간이 지나 보면 실제로 소장 말이 맞아서 개 짜증 났는데, 이번에 틀려서 좀 괜찮아질지도 모르겠다.”

    트럭은 커다란 호수 기슭에 도착해서 멈췄다.

    투명하고, 광활한 호수. 

    양천구 호수였다.

    “드디어 도착이구만. 후딱 처리하고 돌아가자.”

    목적지에 도착한 남자들은 목장갑을 끼고 장화까지 챙겨 신더니 트럭에서 커다란 드럼통을 꺼내서 호수 안으로 굴려 넣기 시작했다.

    드럼통에서는 기분 나쁜 석유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 고약한 냄새에 남자들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드럼통을 나르고 있었다.

    “도대체 뭐길래 이런 냄새가 나는 거지?”

    “나도 모르지. 왠지 선임급 이상 연구원들만 아는 것 같은데, 소장한테 찍힌 우리들은 언제 선임 달아보나 모르겠다.”

    드럼통을 호수에 굴려서 넣을 때마다, 호수 주변의 온도가 점점 낮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호수 깊숙한 곳에서 짙은 안개가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안개는 수면 위에 얇게 깔린 베일로 시작해서 점점 더 불투명한 장막처럼 두꺼워졌다.

    안개가 짙어질수록 소리는 희미해졌고, 다른 세상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이거 괜찮은 거 맞나?”

    왠지 세상 속에 혼자 남은 것 같은 적막감에 중얼거려 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희미한 울부짖음이 들렸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

    “괜찮아? 무슨 일이야?”

    공포에 젖어 괜히 큰 소리를 내보지만, 안개가 소리를 흡수하는 것처럼 먹먹한 울림만 들려올 뿐이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자갈을 밟는 경쾌한 소리.

    그 소리를 따라가자, 남자가 마주한 것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해골이었다.

    “으아아아악!”

    갓 발려진 것처럼 살점과 핏물이 묻은 해골은 어떤 괴물의 손아귀에 들려 있었다.

    [감히, 감히. 이딴 수작을 부려?]

    안개 속에서 드러난 괴물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괴물의 몸의 반절은 검은 점액에 녹아내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검은 점액에는 징그러운 눈알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혈관이 밖으로 뻗어 나와 사방으로 날름거렸다.

    “어… 어째서.”

    소장이 검은 액체에 닿은 양천구의 오브젝트는 무력화될 테니 안전하다고 했는데!

    [너는 영원토록 피부가 녹아내려 고통받게 될 것이다.]

    피부가 버터처럼 녹아내렸다.

    비명을 지르려고 해도, 녹아버린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자갈 바닥을 필사적으로 기어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녹아버린 손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안개가 사라지자, 호숫기슭에는 붉은 덩어리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 덩어리는 끝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자기를 속인 소장을 끊임없이 저주하고 있었다.

    ***

    나는 마치 황금 사신이 도망가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슬픈 표정으로 난간에 앉았다.

    최대한 우수에 찬 표정으로.

    나를 피하던 황금 사신들이 그 모습을 보더니 쭈뼛거리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결국 황금 사신 한 마리가 폴짝폴짝 허벅지 위로 올라와서는 내 몸을 흔들면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때!

    허벅지 위의 황금 사신을 손가락으로 툭, 하고 밀었다.

    깜짝 놀란 표정의 황금 사신.

    나는 그 황금 사신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웃었다.

    히히.

    배신당한 것을 깨달은 황금 사신은 슬픈 표정으로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풍덩.

    호숫물에 빠진 황금 사신이를 다시 소환해 보니, 손바닥 위에서 축 늘어져서 있었다.

    마치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는 잔혹한 현실을 깨달은 표정.

    미안해. 

    너무 심했지?

    나는 감정을 담아 쓱쓱 황금 사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황금 사신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계속.

    *

    노파가 재워버린 사람들을 어떻게 깨워야 할지 고민하던 도중,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난간 위에 앉아서 호숫물을 가만히 내려다보니, 약간 검게 물든 호숫물 위로 하늘이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떠오른 푸른색 달. 

    물에 비친 달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뿐이었다.

    찾았다. 푸른 달! 

    나는 미소를 베어 물고, 푸른 달을 향해 ‘눈’을 사용했다.

    <푸른 마녀의 거울을 파괴한다.>

    다행히 푸른 달의 파괴 조건은 꽤 명확했다.

    이번에는 좀 쉽게 일이 풀리려나?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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